[인터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오순이 정책위원장
‘여성농민’ 개념조차 시절도…이젠 주역으로 우뚝 서
어려워지는 농가살림, 겸업에 따른 과노동에 지쳐가
농업인으로서 권리·지위 인정 안 돼 혜택도 못 누려
마을에서조차 여성 농민의 의사결정 권한 크지 않아
농업인 성평등 지위·권리 의식 함양 위한 교육 필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오순이 정책위원장 ⓒ투데이신문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오순이 정책위원장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과거에는 ‘여성 농업인’이라는 개념이나 인식 자체가 없었지만 이젠 다르다. 농촌에서 여성 농민들의 역할이나 활동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그들의 존재 가치도 커졌다.

그러나 관련 농업정책이나 시스템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남성 농업인이 농기계의 뼈대라면, 여성 농업인들은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경영주로 인정은커녕 공동경영주로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여성 농업인이 많고, 노동의 가치마저 제대로 인정되지 않아 임금에서도 차별을 겪고 있다. 또 조합에서 주요 의사결정은 남성 중심의 대의원과 이사진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며, 마을의 살림살이는 대부분 부녀회의 몫이다.

여전히 남성 농업인 중심의 구조와 정책으로 여성 농업인들은 농업인으로서 주체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본보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 오순이(52) 정책위원장을 만나 농업현장에서 여성 농업인이 겪는 여러 가지 성차별과 더불어 정책적 문제를 짚어보고, 해결방안을 논의해 봤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과노동에 시달리는 여성 농업인

오 위원장은 전남 화순에서 남편과 함께 벼농사와 각종 밭작물을 재배하는 농업인이다. 그는 1995년 당시 농사를 짓던 농부와 결혼을 한 후로 지금까지 27년간 농업인의 길을 걷게 됐다.

그가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한 때만 하더라도 ‘여성 농업인’이라는 개념조차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여성 농업인이 농촌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제가 사는 동네만 하더라도 남성보다 여성 농업인의 수가 훨씬 많다. 여성 농업인들이 농촌의 주역이 돼가고 있다. 여성 농업인들이 고민해야 하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농민으로서 직면한 농업문제와 동시에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들도 고민하고 있다. 예전에는 ‘여성 농업인’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여성농민을 위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논의도 없었다. 그런데 2001년부터 여성농어업인육성법이 시행됨에 따라 형식적일지라도 변화된 부분이 있었다. 점차 농촌 사회가 열린 공간이 되며 우리가 요구하는 바도 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성 농업인의 처지는 여전히 여의치 않다. 농촌 사회는 농촌인구의 감소 및 고령화, 농가부채 및 소득, 양극화 등으로 점차 활로를 잃어가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라고 농업인들은 말한다.

오 위원장은 특히나 여성 농업인들이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장 대표적 문제로 과노동을 꼽았다.

“여성 농업인의 노동시간은 정확하게 따지기 어렵다. 보통 농업노동을 떠올리면 ‘들판에서 일하는 시간’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성이 남성보다 노동하는 시간이 적은 듯 보이지만 집에서 하는 일도 굉장히 많다. 예를 들어 인력을 고용해 일할 땐 새참을 준비한다거나, 다음 날을 위해 미리 손질하는 일, 거둬들인 작물을 갈무리하는 일 등도 모두 농업의 영역이지만 집안에서 이뤄진다는 이유로 노동이라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성 농업인의 노동시간의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다시 하고 있다.”

농외소득 벌이도 여성 농업인 과노동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짚었다.

“농업소득은 1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정부에서 농가소득이 4500만원이 넘어섰다고 하던데, 우리는 코웃음을 쳤다. 대농이나 기업농들은 소득이 높겠지만, 대개의 농업인은 그의 10분의 1 수준으로 빈부격차가 심하다. 농사만으로는 소득을 해결할 수 없어 겸업할 수 밖에 없다. 농외소득을 벌어들여야 하는 건데, 대부분 여성 농업인들이 맡고 있다. 학교급식 종사자나 요양보호사, 가사도우미 등을 통해 전체 농가 살림을 유지해오고 있다. ”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동등한 권리·지위 보장되기 위해선

이처럼 여성 농업인들이 퇴보하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 이바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위치는 ‘보조인’, ‘경영주의 배우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농업인들의 직업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공동경영주’ 제도가 도입된지도 6년 차이지만, 지난해 기준 전국 농업경영체 등록수 대비 여성경영주의 비율은 30%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농촌에서 부부가 농사를 지을 땐 남성이 경영주, 대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은 농업인으로서 전혀 지위랄 게 없었기 때문에 공동경영주 제도를 도입하라고 했던 거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경영주인 남성은 일당 1만원 기준으로 보험금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여성은 가족 종사원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냥 가정주부인 거다. 그래서 일당 5000원으로 책정돼 보상이 이뤄진다. 이 밖에도 여성 농업인의 개별적 지위가 인정되지 않는 다양한 문제가 있었고, 이를 해결하고자 경영주와 똑같은 지위와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공동경영주 제도를 요구했던 거다. 결국 도입은 됐으나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는 없었다. 공동경영주 등록에 관한 법조항은 농업 관련 기본법에조차 없다. 단지 경영체를 처음 등록할 때 신청 서류의 별지 서식란에만 명시돼 있다. 공동경영주는 겸업을 할 수 없는데, 농외소득 대부분은 여성 농업인들의 몫 아닌가. 실질적으로 이득이 있으면 찾아서라도 등록할 텐데 사실상 달라질 게 없어 굳이 할 필요성도 못 느끼고 있는 상태다.”

가입 시 농업인으로서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농협조합원’ 가입률도 여성 농업인은 높지 않다. 과거에는 한 가구당 한 사람만 가능했기 때문에 대체로 경영주이던 남성이 대표적으로 등록했다. 하지만 이제 복수조합원 제도가 도입됐음에도 가입률은 여전히 미미하다.

“조합원 가입이 한 가구에 한 사람만 하게끔 돼있을 때는 당연히 남성이 등록했었다. 투쟁을 통해 복수조합원제를 도입하면서, 여성 농업인들도 대거 가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현재 조합원 등록을 하려면 평균 출자금을 내라고 한다. 그게 보통은 몇백만원 정도 하기 때문에 여성 농업인들이 그 돈을 내고 등록하는 게 쉽지 않다. 또 가입 조건이 까다롭다. 본인 앞으로 된 농지원부가 있으면 쉽게 가능한데 부부 공동이나 남편의 이름으로 돼있으면 인정되지 않는다. 자신의 명의로 된 농지가 있으면 방법이 있겠지만, 그런 여성 농업인은 별로 없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제약들로 여성 농업인의 조합 가입 문턱이 높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오순이 정책위원장 ⓒ투데이신문

여성 농업인의 의사결정권 확대하라

조합에 가입했더라도 주된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대의원이나 이사 등 주요 보직을 차지하기도 쉽지 않다. 2015년 농협법 개정에 따라 지역 농협의 여성조합원 비율을 35%, 여성임원 비율을 8%로 하는 ‘여성임원 할당제’가 도입됐음에도 ‘허울뿐인 제도’에 그쳤다.

“대의원 같은 경우는 보통 마을 단위로 뽑는데 보통은 1명, 많게는 2명까지 선발한다. 여성 임원을 일정 비율 뽑으라고 권장하지만 대의원에 등록하려면 여러 가지 규정이 있다 보니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농협 이용 실적, 판매 실적 등이 있어야 하는데 부부가 같이 농사를 지으면 대부분 남성의 명의로 거래를 많이 하기 때문에 이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여성 농업인이 많지 않다. 대의원 보다 이사는 더 까다롭기 때문에 자격조건을 갖춘 여성 농업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때문에 최근에는 대의원과 이사의 진입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요구들을 하고 있다.”

마을 단위에서조차 여성 농업인들은 의사결정 권한이 크지 않다. 이른바 ‘부녀회’, 이제는 ‘마을여성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여성 농업인 중심의 조직은 예나 지금이나 마을 살림살이를 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부녀회는 지금까지 ‘밥하는 조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마을 단위 행사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면민의 날, 군민의 날 행사에서까지 부녀회는 당연하게 장을 보고 밥을 하며 늘 부엌에 있었다. 마을의 주된 의사결정 기구인 전체 총회와 그 밑에 마을 개발위원회의라는 조직이 있다. 개발위원은 10명으로 구성되는데 부녀회장 1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남성이다. 심지어 여성의 비율이 훨씬 더 많은 마을임에도 말이다.

제주도에서는 2년 전부터 성평등한 마을 만들기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더라. 마을 단위로 성평등한 규약을 만드는 거다. 제주도에는 아직도 마을 이장을 뽑을 때 투표권을 가구 당 한표만 주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런 것부터 차근차근 바꿔 나가는 중이다. 이런 사례를 기반으로 앞으로 각자의 마을을 어떻게 성평등하게 만들 것인가 고민하고 시도하는 과정에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성평등 성취를 위한 향방은 

여성 농업인은 임금에서도 남성 농업인과 상당한 차별을 받는다. 기본적으로 ‘남성이 힘쓰는 일을 한다’는 인식이 깊게 깔려있기 때문인데, 사실 동일노동을 하더라도 임금 차이는 여전하다. 다만 농업소득 문제가 워낙 크다 보니 임금 문제에 관한 논의는 그동안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하지만 임금문제를 바로잡지 못하면 다른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에는 공론화를 시도하는 단계에 있다.

“농사에 있어 남성은 ‘힘쓰는 일을 한다’며 역할을 높게 치하해 왔다. 기계 작업을 주로 남성이 하다 보니 고평가를 받았고 그런 관념이 오래도록 고착화됐다. 사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보통 하루 임금이 3~4만원 정도 차이 난다.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말을 꺼내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임금을 똑같이 맞춘다고 하면 높은 쪽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데 농사만 지어서는 실질적으로 이익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쉬운 결정은 아니다. 때문에 성차별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늘어나는 생산비 부담에 확실하게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계속 방치만 해서는 다른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여성의 노동을 하찮게 봐서는 안 된다.”

오 위원장은 농기계 시장도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농기계는 오로지 남성 중심으로 만들어져 왔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은 여성 농업인이 다루기는 쉽지 않았다. 때문에 기계를 다루는 작업은 자연스럽게 남성이, 수작업이나 밭농사 등 몸으로 직접 하는 일은 여성이 중심이 됐다.

“농기계는 남성이 사용하는 거란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모든 게 남성의 키와 체격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트랙터를 다룬다고 하면 운전은 성별에 상관없이 잘 할 수 있지만 부속 장치를 탈부착 하는 건 사실 남성들도 다루기 어렵다고 할 정도다. 최첨단 시대에 이렇게 힘들게 일해야 하나. 그래서 주장하는 것이 여성 친화형 농기계 제작이다. 여성이 쉬우면 남성은 더 쉬울 것 아닌가. 농가원에서 개발은 되는데 상품화되기까지 문턱이 굉장히 높다고 한다.”

농사일이라는 게 대부분 허리를 숙이거나 쪼그려 앉아 해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 경우도 많아졌다. 월 생활비의 절반 이상을 병원비로 사용하는 게 일상이 돼버렸다.

“밭농사는 여성 농업인의 역할이 크다. 밭농사는 전부 쭈그려 앉아 하는 일이다 보니 대개 허리와 어깨, 무릎 등에 무리가 간다. 여성은 이 같은 질환에 많이 노출돼 있다. 우리끼리는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표현한다. 비 오는 날 오전이면 동네 병원이 여성 농업인들로 꽉 찬다. 아침에 물리치료 받고 오후에는 밭일하는 패턴이다. 이러한 질환에 대한 예방을 국가가 책임지는 형태가 돼야 한다. 농업병을 정확히 진단하고, 국가 의료 체계 안에서 진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조금 희망이 생긴 것은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에 여성정책팀이 생겼고 여성농업인 특화 건강검진 사업을 시범적으로 시행했다. 내년에도 예산 일부가 반영돼 시범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라고 알고 있다. 원래는 개인적으로 병원치료를 했지만, 이런 사업이 지속적으로 운영되면 건강검진을 통해 진단을 받고 농업병이라고 판단되면 의료보험 혜택의 길이 열리는 거 아닌가. 월 생활비의 50% 이상을 의료비로 지출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게 보고 있는 정책이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오순이 정책위원장 ⓒ투데이신문

오 위원장은 현 농업사회의 성평등 성취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농가중심의 기조 유지’라고 분석했다. 때문에 농가가 아닌 농업인 개별 단위를 중심으로 한 정책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여성 농업인의 지위와 권리 향상 인식개선을 위해 농업인 대상 성평등 교육도 실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 정책부터 농업 관련 법률 모두 지금까지 농가중심의 기조를 유지해 왔다. 그 기조 아래 모든 것을 따르다 보니 여성 농업인의 자리는 당연히 어디에도 없었던 거다. 이제는 농가가 아닌 농업인 개별 단위로 살펴야 한다. 인식개선을 위한 방안으로는 성평등 교육을 많이 이야기한다. 마을 이장이나 조합장 등 선출직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교육을 통해 농업인의 성평등한 지위와 권리에 대한 의식이 함양되고 조금씩 변화해 나갈 수 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