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대유(大儒).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에 대한 평가는 이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이이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과 함께 한국 유교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손꼽힌다. 그러나, 이기(理氣)에 대하여 이황과는 사뭇 다른 입장을 보여주었고, 이황이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었던 것과 달리, 이이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고,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이 두 사람의 다른 행적은 결과적으로는 한국 유학의 원류인 중국의 유학을 계승하고, 당대 조선의 실정에 맞게 발전시키며 조선화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만큼, 이이는 학자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면모에서도 주목할 만한 행적을 남겼다. 십만양병설을 주창하여 외침에 대비할 것을 요구했고, 선조 즉위 직후부터 경장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동호문답(東湖問答)>, <만언봉사(萬言封事)> 등의 시무 관련 상소를 계속 올려서, 임금의 자질과 당대 정치의 폐단을 비판하고 경장을 위한 대책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당쟁 시작의 당사자인 심의겸(沈義謙, 1353-1587)과 김효원(金孝元, 1542-1590)에 대해서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을 제기하여 이를 해결하고자 하였다.1) 이에 비해, 이이의 제자인 송시열 등이 훗날 격렬해지는 당쟁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인물 자체로서의 이이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주고 있다. 이이의 어머니인 신씨는 우리가 흔히 “신사임당(申師任堂)”으로 알고 있는 인물로, 이이에 대한 교육, 남겨놓은 회화와 글들이 지금까지 인정받고 있다. 또한, 과거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지금 같지 않았을 때 신씨는 어머니의 표상으로 추앙받았다. 그리고 한국 지폐사에서 최초로 모자가 함께 지폐 도안의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이이는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손꼽혔고, 9번의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불리며 그 우수함과 뛰어남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렇게 과거에 급제했다는 것은 이이가 어려서부터 가졌던 풍부한 지식과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이가 한 때 출가하여 1년간 승려로 산 속에서 살았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이다. 성리학(性理學)이 벽이단(闢異端), 즉, 성리학 이외의 사상에 대하여 매우 비판하고 배척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이이는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일컬어졌다. 그가 아홉 번이나 과거에 장원급제 했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학문에 몰두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이가 학문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성리학 경전 뿐 만 아니라, 일부 불교 경전도 탐독했음을 의미하고, 이이의 학문적 완성에 불교가 일정한 영향을 끼쳤음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이가 불교에 잠시 귀의한 것은 어머니 신씨의 죽음에 따른 슬픔과 성격이 좋지 않은 서모(庶母)와의 갈등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2) 이것은 이이 출가의 직접적 원인은 개인적인 차원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이 자신의 철학적 문제인 기(氣)를 기르고 마음에 의해 몸을 자유자재로 주재(主宰)하려는 의도가 출가의 근본적 동기임을 의미한다.3) 아니면, 이이의 출가가 입산수도(入山修道)라는 불교의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서 지향하는 것은 성리학적 이상의 실현4)이었을 수도 있다. 결국 이이의 출가는 개인적 측면과 성리학 이상향의 완성, 선가의 깨달음 등 복합적인 배경 때문이었다.5) 이이의 이러한 행적은 훗날 이이가 관직에 진출했을 때 발목을 잡았고, 사후 당쟁에서도 언급될 정도였다.


1)이근호, 「이이-개혁안 주장, 동‧서인 갈등 해소에 노력한 조선 중기 학자」, 『인물한국사』, 네이버캐스트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69850&cid=59015&categoryId=59015)
2)이병도, 『栗谷의 生涯와 思想』, 瑞文堂, 1973, 27-29쪽.
3)송석구, 「불교와 이율곡의 철학」, 『한국의 유불사상』, 思社硏, 1985, 391쪽.
4)오지섭, 「16세기 조선성리학파의 불교인식」, 『종교연구』, 제36호, 한국종교학회, 2004, 56쪽.
5)이이, 「李珥의 佛敎認識에 대한 硏究成果와 課題」, 『율국사상연구』, 제18집, 율곡학회, 2009, 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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