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부당한 일을 강요받을 때 우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 우리 회사의 공장에서 나오는 오폐수를 정화 처리하지 않고 모아뒀다가 비가 많이 오는 날마다 몰래 흘려 내보내도록 지시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또는 우리 회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몸에 해로운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허술하게 관리하면서 훨씬 더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방향의 업무를 지시받는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또는 많은 노동자를 해고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회사의 부당한 지시를 당당히 그리고 당연히 거부할 수 있을까요? 내가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회사는 다른 누군가를 시켜서 결국에 그 일을 할 것이고 나는 해고 혹은 인사고과 반영으로 승진이나 임금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것이 뻔하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속한 조직의 비리와 부정을 바꾸고자 노력했던 ‘공익제보자’들에게 실제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수많은 사례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건강, 삶의 질, 생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당한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시키는 부당한 일을 하는 게 자신에게 ‘가장 저항이 적은 길(paths of least resistance)’이기 때문에 그 일을 수행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소한 본인에게는 부당한 명령에 따르는 것이 가장 ‘저항’이 적기 때문입니다. 명령을 거부하면 자신도 잘릴 수 있기 때문이죠.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들을 다시 그 길로 불러들이려고 하는 모든 형태의 압력을 ‘저항’이라고 합니다. ‘가정 저항이 적은 길’에서 말하는 저항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부드러운 권유 혹은 거절, 협박, 기회 박탈, 무리에서 쫓겨남, 해고, 왕따, 폭력, 구타, 고문, 죽임 등까지 사안에 따라서 그리고 그 공동체와 사회의 문화와 분위기에 따라서 같은 사안이라도 다른 반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도록 ‘정해진’ 그 길 하나밖에 보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종종 ‘대안적인 길’이 있다는 것을 알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을 선택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날 경우 어떤 일이 닥칠지가 두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자신이 겪어야 하는 심리적인 고통을 줄이기 위해 해고 노동자들의 ‘근태’, ‘업무 태도’ 또는 ‘실력’이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기도 합니다. ‘위험 물질인 건 맞지만 건강에 큰 위협이 있을 정도의 양은 아니었다’고 주장할 수 있도록 조사 결과를 조작하거나 은폐하기도 합니다.

부당한 일이 의무라고 정해져 있을 때 우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군대에 간다는 것을 어떤 의미일까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군사훈련(군대에 속한 군인이 되는 방법을 훈련)을 받고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 오면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폭력을 쓰거나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배웠고, 그것은 사람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지켜지는 기본적인 규칙 중에 하나입니다. 이렇게 사회화된 사람들에게 폭력, 무기, 전쟁, 살인을 정당화하고 이해시키기 위한 많은 언어가 존재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라고 포장을 하거나 ‘남자는 군대에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며 ‘남자다움’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혹은 ‘애국, 국가, 희생, 헌신’ 등의 장엄한 느낌의 미사여구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국가가 군대를 통해서 하는 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자신이 징병 대상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휴전중이라는 특수상황을 이해하고 군대라는 조직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최소한 나는 그 일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군대를 갈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군대에서 일어나는 각종 폭력이나 불미스러운 일들이 불안하다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혹은 적절한 보상(최소임금 수준의 임금 등)도 없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글, 그림, 영화 등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으로 군대의 폭력성(국가폭력, 구조적인 폭력)에 대해서 알릴 수 있습니다. 국가에게 최소한 최저임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종전선언으로 남한과 북한이 서로를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하며 평화롭게 지내기로 약속을 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모병제를 도입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여성에게 ‘여자도 군대가라’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은 문제의 원인, 해결의 주체, 해결책을 어느 하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쉬운 길은 아니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왜 ‘쉬운 일은 아니지만’이라고 했냐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순한 병역기피로 규정하며 ‘불법’행위의 결과로 1년 6개월 감옥에 수감돼야 했습니다. 이제는 불법이 아니지만 ‘진실한 양심’의 여부를 국가가 판단하면서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대체복무를 할 수 있게 됐지만 이 역시도 여전히 징벌적이고 UN과 국제사회에서 권고하는 가이드라인을 크게 벗어납니다. 현재 18개월인 군복무 기간보다 2배나 긴 36개월로 정해졌고, 당초 이야기됐던 여러 근무지와 노동의 형태들(치매노인 돌봄, 중증장애인 돌봄, 의무소방관 등)은 사라지고 합숙이 가능해야 한다는 이유로 ‘교도소’에서 36개월 합숙하며 복무하는 선택지 하나만 남았습니다.

‘저항이 가장 적은 길’ 하나만이 ‘정해진 길’이고 유일한 선택지로 보인다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입니다. ‘저항이 가장 적은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경우 나에게 닥칠 일을 감당할 수 없게(혹은 감당할 수 없다고 믿게) 만들어 놓은 사회구조가 있습니다.

일상의 부당한 일들에 항상 목소리 내고 있나요?

남성들은 남성인 친구들이나 동료가 성차별적이고 여성에 대해 성적도구화하는 농담을 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을 써서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은 그냥 그런 농담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했다는 이유로 그룹에서 배제되거나 놀림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침묵하는 게 가장 저항이 작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성들의 경우는 어떨까요? 나를 성희롱을 하는 직장 상사나 교사, 교수 등과 같은 사람들을 신고하기 쉬울까요?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성희롱을 경험해도 ‘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이유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어서’, ‘나에게 불이익이 올까봐’,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등이 가장 많았습니다. (여성가족부,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 발표: 공공기관 400개, 민간사업체 1,200개 여성 노동자 9,304명 응답자 중 8.1%가 성희롱 피해 경험, 성희롱 피해자 10명 중 3명은 2차 피해 경험, 성희롱 대처 방법 중 1위는 ‘참고 넘어감’ 81.6%)

익숙한 길에 새로운 길을 내려면?

세상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른 길을 가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 개인이 감내해야하는 저항을 예감할 수밖에 없는 이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동참을 이끌어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변화와 함께 개인의 변화도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이라고 해서 반드시 ‘가장 쉬운 길’도 아니고 나와 사회에 ‘가장 좋은 길’도 아닙니다. 지금 내가 순응하고 타협한 폭력과 억압은 나에게 그리고 사회에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다른 길을 내는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을 해도 ‘징벌’을 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세상은 모두가 함께할 때 만들 수 있습니다. 특별한 용기를 내지 않아도 다른 길에 합류할 수 있도록 ‘겁쟁이들의 연대’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가장 저항이 적은 길, 늘 선택했던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 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방법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사회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른 칼럼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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