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기피 우려에 장애 밝히기 어려운 장루·요루장애인
장루·요루장애 이해·배려 부족에 일자리 얻기도 힘들어
장루주머니 터지는 등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기도
장애용품 지원 확대 필요…“당사자 목소리 반영돼야”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사회라고 평가된다. ‘나’만큼이나 ‘우리’가 중요한 사회 분위기 속에 집단에 들지 못하는 소수의 삶은 바늘 가는 데 실 따라가듯, 차별과 배제가 당연하게 뒤따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수집단 안에도 또 다른 소수는 존재한다. ‘소수장애인’도 그중 한 집단이다. 대표적인 소수장애인인 신장장애, 심장장애, 간장애, 호흡기장애, 장루·요루장애, 뇌전증 등 내부기관장애인과 더불어 언어장애, 안면장애 등 소수장애인은 전체 장애 인구의 10%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장애대중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각종 복지정책으로부터 역차별을 당할 뿐만 아니라 장애를 장애로 봐주지 않는 또 다른 편견과 무관심 속에 살아간다.

본보는 장애 대중과는 또 다른 소수장애인의 일상적 어려움을 시작으로 사회적 편견, 정책 차별 등을 조명해 보는 [소외된 이들, 소수장애인]을 기획했다. 소수장애인들의 삶을 통해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우리 사회의 ‘차별 속 차별’의 실상을 들여다보자. 

장루장애인 한아름씨가 지난 9월 14일 경기 남양주시의 한 카페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장루장애인 한아름씨가 지난 9월 14일 경기 남양주시의 한 카페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은 가장 먼저 화장실에 갈 것이다. 하루 몇 차례 화장실을 가는 것은 특별할 것 없는 일이다.

화장실에 가서 배변활동을 하는 것은 비장애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배변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장루·요루 장애인이다.

장루·요루 장애인들은 자신의 장애를 밝히기 꺼린다. 배변 장애이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거나, 자신의 장애를 밝힐 경우 상대가 자신을 피하는 경우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가족성 용종증’으로 대장 절제 후 갖게 된 장루장애

장루장애인 한아름씨는 지난 2013년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으로 대장 전체를 절제하면서 장루장애를 갖게 됐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은 대장내시경상 선종성 용종이 100개 이상 발견되는 경우 의심할 수 있으며, 대장암 발생 확률이 100%에 이르는 질병이다.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대장을 절제하게 된다.

“엄마 말씀으로는 신생아 때부터 설사를 했대요. 계속 설사를 해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가 ‘가족 중에 장이 안 좋으신 분이 있느냐’고 묻더래요. 아빠가 장이 안 좋으셔서 설사를 하시고 혈변을 보시기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당시에 병원에서는 유전인 것 같다고 했고요. 살면서 남의 변을 볼 일이 없으니 어렸을 때는 ‘변은 다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생각했었죠. 그러다가 발병하기 6개월쯤 전부터 혈변을 봤는데, 제가 한창 술을 많이 마실 때라 ‘술 때문인가 보다’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핏덩어리처럼 큰 덩어리가 나와서 대장내시경을 받았죠. 그랬더니 용종이 너무 크고, 암이 진행됐을 거라면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대학병원에 갔더니 대장에 용종이 3822개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대장 전체가 다 용종으로 덮여 있었던 거예요. 일분 일초가 급하다고 해서 바로 수술을 했어요.”

장루란 항문이 아닌 복벽을 통해 장 내용물이나 대변을 배설하기 위해 소장 또는 대장의 일부를 복벽을 통해 몸 밖으로 꺼내어 고정한 인공 항문이다. 장루장애인은 대장 일부 또는 전체를 절제한 뒤 배에 구멍을 뚫고 인공적으로 장루를 만들어 배변을 한다.

장루는 위치에 따라 회장루(소장)와 결장루(대장)로 구분되는데, 회장루의 경우 수분을 흡수하는 대장을 전부 절제한 상태이기 때문에 물을 꾸준히 마시는 것이 중요하며, 대장이 수분을 흡수하기 전에 배변을 하게 돼 묽은 변이 나온다. 또 소화액이 변에 섞여 나와 피부에 닿으면 가려움증 등 피부질환이 생길 수 있다.

결장루의 경우 남은 대장의 길이에 따라 장루의 위치가 다르며, 상행결장루, 횡행결장루, 하행결장루 등으로 구분된다. 대장의 길이가 짧은 상행결장루의 경우 묽은 변을 주로 보게 되고, 대장의 길이가 긴 하행결장루는 굳은 변을 보게 된다. 회장루와 비교할 때 관리가 수월한 편이다.

장루의 위치에 따른 분류. 왼쪽부터 회장루, 상행결장루, 횡행결장루, 하행결장루. 사진출처 = (사)한국장루장애인협회 홈페이지
장루의 위치에 따른 분류. 왼쪽부터 회장루, 상행결장루, 횡행결장루, 하행결장루. <사진출처 = (사)한국장루장애인협회 홈페이지>

장루용품 지원 부족…“현실화 해야”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으로 대장 전체를 절제한 한씨는 회장루에 해당한다. 그는 처음 장루장애를 관리하면서 애를 먹은 적이 많다고 했다.

“배에 동그란 구멍이 나 있는 장루판을 맞춰 붙여요. 거기에 장루주머니를 연결해서 변을 받아내는 거죠. 샤워를 할 때마다 이걸 떼었다 붙였다 하는 건데, 피부가 빨갛게 일어나요. 또 잘못 연결하면 새기도 하고. 피부가 헐 수도 있어서 관리를 잘 해줘야 해요.”

장루장애인들은 잠을 자는 동안이나 이동을 하면서, 일상생활 중에 예상치 못하게 장루주머니가 터지는 등 불편을 겪기도 한다고 한다. 장루주머니가 빠지거나 가스가 차면서 터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수술하고 3~4개월 됐을 때, 고속버스를 타고 대전을 가는 길이었어요.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를 한 사이에 화장실을 갔는데, 거기서 장루주머니가 빠진 거예요. 그런데 여분의 장루주머니가 없어서 이걸 다시 달아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고속버스는 운행 시간을 맞춰야 하니까 마냥 기다려주지 않잖아요. 그런데 승객 가운데 한 분이 저를 찾으러 왔더라고요. 화장실에서 저를 딱 보는 순간 황당했을 거예요. 여기저기 똥이 다 튀어 있고, 장루주머니를 들고 있으니까 ‘저게 뭐지’, ‘왜 저러지’라고 생각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서 냄새 안 나게 다 처리한 뒤에 버스에 탔어요. 그때 대전에서 예정됐던 일을 포기할 생각으로 친구에게 터미널로 데리러 와달라고 연락을 했어요. 한참을 울면서 생각을 해보니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일어날 텐데, 그때마다 피할 수는 없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대전에 도착하고 나서 예정됐던 일을 마무리했어요. 아직도 그때 일은 그림처럼 기억에 남아 있어요.”

장루장애인 중에는 배변을 조절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조절이 불가능해 24시간 아무 때나 변이 나오고, 가스가 찬다. 때문에 수시로 장루주머니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대변이나 가스가 차면 주머니가 팽창되다가 터져요. 그러니까 자다가도 터지기도 해요. 자다가도 화장실에 가서 장루주머니를 열고 가스를 빼줘야 돼요. 이게 터지면 옷 버리고, 자다가 터지면 이불도 버리는 거잖아요. 또 장루주머니를 새 걸로 갈아줘야 하는데, 이게 처방을 받지 않고 사려면 비싸요.”

정부는 장루장애인의 장루판과 장루주머니 구매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다. 하지만 처방을 받아야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처방 개수는 이틀에 한 개 꼴이다. 장루장애인들은 이틀에 한 개 꼴이면 생활이 불편하다며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장루장애인 70분 정도가 참여하는 대화방이 있는데, 모두 장루용품(장루판·장루주머니) 지원 확대가 가장 급하다고 말해요. 약국에서 처방 없이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죠. 저는 항상 일 년치를 한꺼번에 사는데, 처방을 받아서 사면 15~20만원 정도가 들어요. 그런데 처방 없이 사려면 같은 돈으로 한 달 치밖에 못 사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언제 장루주머니가 터질지 모르잖아요. 또 이걸 매일 교체할 수 있으면 샤워도 매일 할 수 있고, 피부 관리가 더 수월해지겠죠.”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은 ▲장루와 함께 요루 또는 방광루를 갖고 있는 사람 ▲장루와 함께 요루 또는 방광루를 갖고 있으며 합병증으로 장피누공 또는 배뇨기능장애가 있는 사람 ▲배변을 위한 말단 공장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장애의 정도가 심한(중증) 장애인으로 구분한다. 또 ▲장루 또는 요루를 가진 사람 ▲방광루를 가진 사람 ▲방광루를 갖고 있으며 합병증으로 장피누공이 있는 사람을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경증) 장애인으로 분류한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지난 2018년 5월 발표한 ‘장루·요루장애인의 복지욕구 및 정책방향’에 따르면 장루·요루 장애인의 8%만이 중증 장애인이며, 나머지 92% 정도는 경증 장애인으로 분류된다.

경증으로 분류되는 장루·요루 장애인 대다수는 활동보조서비스 이용이 제한되고, 전기요금 지원, 도시가스 요금 할인 등에서 제외된다. 때문에 장루장애인들은 장루장애를 중증 장애로 분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장루장애도 종류가 다양해요. 종류에 따라 그나마 저처럼 관리가 수월한 경우도 있죠. 하지만 관리가 수월한 편이라고 해도 많은 불편을 겪어요. 그래서 장루장애인들은 ‘중증으로 분류돼야 한다’고 말해요. 장애등급을 구분하는 것도, 장루용품을 구매하는 것도 그렇고 모두 당사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장루장애인 한아름씨와 배우자 최준용 배우. 사진제공 = 한아름씨
장루장애인 한아름씨와 배우자 최준용 배우. <사진제공 = 한아름씨>

방송 출연 후 악성댓글 쏟아지기도

장루장애인은 자신의 장애를 밝히기를 꺼린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는 한국 사회에서 배변기능 관련 장애를 밝힐 경우 불편한 시선을 받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씨는 방송에서 자신의 장애를 밝혔다. 배우자인 최준용 배우와 함께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서다.

“제가 장애를 공개함으로써 인식이 개선되고, 장루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방송에서 장애를 공개한 것도 그것 때문이거든요. 외국에서는 장루장애인이 장루주머니를 찬 상태로 비키니 수영복 입고 사진 찍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장애를 드러내는 것조차 어렵죠.”

최 배우는 한씨의 장애를 처음 알게 된 때에도 전혀 거리낌 없이 대했다고 한다.

“신랑(최 배우)이 처음 제 장루주머니를 봤을 때 제가 ‘황금 똥만 싸라고 이름을 황금이라고 붙여줬다’고 했거든요. ‘얘는 황금이라고 해’했더니 신랑이 ‘네가 황금이구나’ 하면서 장루주머니에 뽀뽀를 하더라고요. 그때 마음이 확 열렸어요. 보통은 ‘나 때문에 괜히 아프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다가오지 못하는데, 신랑은 그런 게 없었어요. 비장애인 입장에서 배려한답시고 거리를 좀 두기도 하는데 저는 오히려 그게 더 싫었거든요. 신랑은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최 배우와 함께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서 한씨는 많은 응원을 받기도 하지만, 악의적인 댓글이나 메시지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처음 방송 출연하고 나서 악성 댓글이 정말 많았어요. ‘똥 얘기 좀 그만해라’라거나, 똥 모양 이모티콘을 잔뜩 보내기도 하고요. 그런데 감동적인 건, 저를 응원하는 분들이 더 많다는 거예요. 저를 대신해서 악성 댓글에 대응을 해주시기도 하고요. 그런 게 감사하더라고요.”

장루장애인 한아름씨가 지난 9월 14일 경기 남양주시의 한 카페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장루장애인 한아름씨가 지난 9월 14일 경기 남양주시의 한 카페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도와주는’ 것을 넘어 스스로 긍정하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씨는 장애를 갖기 전에는 장애인에 대해 별다른 인식을 갖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장애인이 된 후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저는 사격선수로 체육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운동을 했으니까 감기도 한 번 안 걸릴 정도로 정말 건강했어요. 그런데 장애를 갖게 되니까 그때부터 장애인이 보이더라고요. 장애인을 불쌍하고 무언가 부족한, 결핍된 사람으로만 볼 게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 대하는 사회가 돼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개선돼야겠죠.”

비장애인이라고 해도 언제든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갖게 될 수 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사회가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장애인이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장애인이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잖아요. 장애인을 많이 도와주면 좋겠어요. 또 ‘도와주는’데서 그치지 않고 장애인이 스스로 활동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제도적 지원이 잘 이뤄져서 장애인이 숨지 않고 스스로 긍정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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