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외벽 청소 노동자 추락사…이달만 4명째
첫 출근인 노동자, 보조 로프 없이 근무 투입
시정 지시 무시한 채 업무 강행…예견된 사고
‘갈팡질팡’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안정화는 언제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뉴시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20대 청소노동자를 살릴 수 있었던 건 단돈 ‘3만원’

30일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 27일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유리창 청소를 진행하던 20대 청년 A(29)씨가 40m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당시 A씨는 머리 등을 크게 다쳐 119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그를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은, 그를 살릴 수 있었던 방법은 보조 밧줄이다. 보조 밧줄은 노동자가 매단 작업용 밧줄이 끊어질 경우, 추락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설치해야 하는 최소한의 안전 장비다. 하지만 현장에선 작업의 효율성을 위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A씨가 속해있던 청소업체 역시 보조 밧줄 없이 작업용 밧줄 하나에 의지한 채 작업을 강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업줄과 구명줄 총 2개의 줄에 작업자의 생사가 걸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첫 출근자인 A씨의 등엔 구명줄이 걸려있지 않았다. 밧줄 하나에 목숨을 내건 A씨는 결국 작업을 이어가던 중 목숨을 잃었다.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는 “사고 3일 전인 24일에 한국안전보건공단의 안전 지도 점검에서 ‘보조 밧줄 모서리보호대 구비’ 등 시정조치를 받았으나, 이를 무시하고 보조 작업줄도 없이 작업지시를 내렸고, 산재 사망사고로 이어졌다”며 “노동자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는 기업 논리와 횡포 속에 하루 일당에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청년 노동자들은 안전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어제도 오늘도 죽어 나가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안전 장비를 갖춘 노동자의 모습.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뉴시스

“안전 장비 갖춰라” 지적에도 작업 강행한 업체

사실 A씨의 사고를 막을 기회가 한차례 있었다.

안전보건공단 인천광역본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해당 아파트 관리소로부터 유리창 청소 작업 신고가 접수됐다. 본부는 다음날인 24일 현장 안전 점검을 시행했고, 당시 청소 작업을 담당하는 업체가 노동자들의 보조 밧줄을 갖추지 않아 이에 대해 시정을 지시했다.

경찰 조사 결과 사고 당시 A씨가 앉아 있던 달비계의 작업용 밧줄이 끊어지면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미뤄볼 때 청소업체가 본부의 시정 지시를 따랐다면 사고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청소업체는 노동자들의 보조 밧줄을 갖추라는 본부의 시정 요구를 무시하고 그대로 작업을 진행했다고 공단 측은 설명했다. 

고용노동부의 경우 단속 점검을 통해 안전관리 불량사업장 집중 점검 및 감독을 할 수 있다. 또 적발된 사업장에 대해서는 위험 요인이 사라질 때까지 점검 감독 행정 및 사법 조치를 실시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보건공단은 행정적 권한이 없어, 공단 내린 시정 조치는 강제성을 띠지 않는다. 이 때문에 청소업체에서도 안전보건공단의 시정 지시를 이행하지 않고 무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전보건공단 인천광역본부 한성주 부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업체에 대해 시정 지시를 내렸을 때 강제성을 띠지 않는다. 노동부에서는 작업 중지 명령이나 과태료 처분 등 행정 조치가 가능하지만, 우리는 노동부와 같은 법적인 권한이 없다”며 “공사가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현장이라면 주기적인 점검이 가능하지만, 단기간에 끝나는 인테리어나 청소업체가 시정 지시를 무시한다면 다음에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뉴시스

한 달 새 ‘20대 노동자 4명 추락사’…반복되는 참극

지난 8일에도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에서 외벽청소를 하던 23세 청년이 추락해 사망했다. 바로 다음 날인 9일에는 공덕역 지하철 환기구 공사 현장에서 근무하던 27세 청년이, 10일에는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에서 작업 중이던 25세 청년이 떨어져 세상을 떠났다. A씨의 사망까지 더하면 한 달 새 총 4명이 추락으로 목숨을 잃었다. 

노동부가 공개한 산업재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재사고 사망자 수는 연간 900여명에 육박한다. 하루 평균 2.5명이 산재사고로 사망하는 셈인데, 전체 사망사고 중 추락에 의한 사망자 수는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매일 0.98명이 추락사한다고 볼 수 있다. 

노동부가 올해 추락 산재 사망사고 원인을 분석해 보니 8.9%가 달비계(간이의자) 안전조치 불량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달비계 안전조치 불량의 경우 달비계 작업이 있는 경우에만 점검이나 감독을 실시할 수 있어 점검·감독 시점에 관련 작업이 없다면 확인할 수 없는 한계가 내포돼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하위 법령인 산업안전보건 규칙의 ‘제63조 달비계 조항’ 문제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해당 조항에는 △비계가 흔들리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연결하거나 고정할 것 △보의 접속부 및 교차부를 철선 등을 이용해 확실하게 접속시키거나 단단하게 연결할 것이라고 규정돼 있다. 

이는 고공 외벽 작업자들의 달비계 안전과는 관련 없는 내용들이다. 외벽에 고정된 형태의 달비계와 달리 외벽 도장 작업자들이 간이의자 형식으로 이용하는 달비계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외벽 작업 노동자의 안전과 관련된 조항은 산업안전보건 규칙 제63조 10항이 전부다. 해당 조항에는 노동자의 추락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달비계에 안전대 및 구명줄을 설치하라고 적혀 있다. 다만, 별도의 처벌조항이 존재하지 않아 구명줄을 설치하는 조항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온라인으로 생중계 되는 '노동자 시민의 요구 외면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온라인으로 생중계 되는 '노동자 시민의 요구 외면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산재 사망사고 이어지는데…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잡음’ 여전

정부는 지난 28일 40일간의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을 의결했다. 그러나 내년 1월 법 시행을 앞두고 발표된 이번 제정안에서도 노사 양측의 불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4조 제1항 제1호에는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 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정부는 시행령에서 이 부분을 축소해 제4조 제4호 가목의 ‘재해예방을 위해 필요한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 및 장비의 구비’등에 관련된 조항을 넣는 것으로 대신했다.

또한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한 법인 또는 기관의 경영책임자에 대한 교육은 기존과 유사한 안전보건교육이 아닌, 중대산업재해 발생에 따른 향후 안전보건 계획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되는 교육이 돼야 하며 중대 산업재해가 2회 이상 발생하였을 때 가중 교육을 도입하는 내용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의결 결과에는 노동계뿐만 아니라 경영계에서도 반발이 나타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범위는 명시하지 않았다. 경영계는 처벌 당사자인 경영책임자의 개념과 범위가 아직도 불명확하다고 지적하며 재개정을 요구했다. 또한 사업장의 안전보건 관리를 총괄하는 다른 책임자가 있으면 대표이사 등이 처벌을 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은 “이윤 때문에 노동자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는 기업논리와 횡포로 하루 일당에 목숨 걸고 근무해야 하는 청년 노동자들은 안전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어제도 오늘도 떨어져죽고, 끼어 죽고 있다”며 “청년노동자가 사망한 다음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사업주에게 면죄부를 쥐어주는 누더기 법인데도, 자본은 과잉처벌이 우려된다는 과장된 근거로 보완 입법과 유예를 주장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청년들을 죽여서는 안 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완전히 개정해야 한다. 우리는 더 많은 청년들을 모으고 더 크게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정의당 김정우 대변인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이런 비극을 멈춰 세우는 방법은 명료하다.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고,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며 “정부가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을 마련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 생을 마감하는 비극 속에서 노동자를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아직도 노동계와 경영계 사이에서 갈팡질팡 중이다. 그러는 동안 고래 싸움에 의지할 곳 없는 노동자들은 목숨을 잃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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