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희수 교수가 말하는 역사 콘텐츠
역사 드라마, 정통 사극과 시대극으로 분류
대중매체 파급력↑ 대중들 역사 왜곡에 예민
창작자는 상상력 중시, 학계 사실관계 중시해
역사적 상상력, 합리적 범위 안에서 펼쳐야
다양한 소재의 역사 드라마가 제작되길 바라

MBC 드라마 <대장금>의 이영애 배우와 KBS2 드라마 <연모> 포스터 ⓒMBC, KBS

【투데이신문 김다미 기자】 역사는 콘텐츠의 주요 소재다. 역사 콘텐츠는 실제 사건 또는 실존 인물에 역사적 상상을 결합하거나 시간적 배경 혹은 공간적 배경만 빌려와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맘껏 펼쳐보기도 한다.

한국에서의 인기뿐만 아니라 한류 열풍을 몰고 왔던 사극 <대장금>부터 한국형 좀비물로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시대극 <킹덤>과 오는 10월 방영을 앞둔 기대작 <연모>까지 역사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들은 대중매체를 타고 시청자에게 전달됐다.

역사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하고 있어 ‘재미’와 ‘역사적 교훈’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일거양득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잘 만들어진 콘텐츠라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역사 콘텐츠를 잘 만들기 위해서 역사적 사실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대중들이 수용하는 범위 속에서 상상력을 펼쳐야 한다.

오늘날 역사 콘텐츠는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로 뻗어 나가기 때문에 대중들은 역사적 상상력에 더욱 예민해졌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지난 9월 28일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최희수 교수를 만나 역사 콘텐츠 왜곡 논란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최희수 교수 ⓒ최희수
최희수 교수 ⓒ최희수

역사 드라마 정통사극과 시대극으로 나눠볼 수 있어

Q. 역사 드라마는 어떤 종류로 나눌 수 있는지 궁금하다.

사극의 범주에 따라서 정통사극과 시대극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정통 사극은 보통 역사적인 사실을 충실하게 전개하는 콘텐츠다. 현재 퓨전 사극이라는 표현은 잘 쓰이지 않고 보통 시대극으로 표현한다. 시대극은 시간 배경과 공간 배경만 차용하거나 더 나아가 인물, 민중의 이야기를 다루고 그 시대 쓰였던 도구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Q. 그렇다면 시대극도 역사 콘텐츠의 범주에 들어가나.

역사 콘텐츠는 ‘역사적인 사고력 향상과 역사의식 함양에 기여해야 한다’라는 인식이 있다. 시대극은 시대, 장소, 인물뿐만 아니라 당대 쓰였던 물건이나 도구를 차용하기 때문에 넓게 보면 사극의 범주로 역사 드라마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의식 함양을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좁은 의미의 역사 콘텐츠로써는 미흡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Q. 일본과 중국은 정통사극이 유행하는데 우리나라는 정통사극이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 번째 요인은 문화적 차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국수주의가 강하다. 우리나라도 국수주의에 물든 사람들이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보다 상당히 약하다. 중국의 ‘중화주의’나 일본의 ‘천황주의’는 우리나라가 따라가지 못하는 그들의 신념이고, 역사 속에서 자기들의 자부심을 발견하는 것이 크기 때문에 정통사극이 유행하고 있다. 두 번째 요인은 드라마 제작환경이다. 사극 한 편을 만드는데 상당한 비용이 투입된다. 50부작의 정통사극을 만들기 위해 약 100억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제작환경은 그만큼의 여건이 되지 못해 제작이 힘들다. 중국이나 일본 같은 경우 민족과 국가에 대한 자부심 등을 국가적인 시책으로 추진하고 있어 정통사극이 많이 제작된다. 반면 우리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제작하고 있다 보니 제작비 회수나 판로 개척을 고려할 수밖에 없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Q. 우리나라 역사 콘텐츠는 인기 있는 시대극 위주로 제작되고 있다. 시대극의 인기 요소는.

정통사극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다 보니 현대인의 정서나 문화 코드상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현재와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반면 시대극은 현대인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고증보다는 현대인이 흥미를 느낄만한 소재나 에피소드를 넣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시대극들이 많이 제작되는 배경에는 중국이나 동남아 등 해외 시장에 수출할 계획을 갖고 대기업들이 투자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KBS1 드라마 <징비록> 포스터 ⓒKBS

역사 콘텐츠 디테일에 목매기보다 큰 틀을 중시해야

Q. 최근 대중들이 역사 드라마 왜곡 문제에 관심이 많아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매체의 영향력을 주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대중매체가 갖는 파급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잘못된 역사 사실이나 해석이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파됐을 때 역사의식이 잘못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역사적 상상력을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드라마로서 보면 되는데 그것이 실제 역사적 사실과 혼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 때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시청자층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Q. 드라마 <징비록> 자문위원으로서 콘텐츠 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드라마 자문 요청을 수락한 가장 큰 이유는 인물을 다룬 게 아니라 <징비록>이란 책을 다뤘기 때문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대부분 과정을 정리한 일종의 회고록이고 임진왜란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확인할 수 있다. 디테일한 면보다는 큰 틀의 흐름에서 역사 인식에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제작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극 자문해 줄 때 여러 가지 요청 사항이 들어온다. 전체적인 정세에 대한 내용부터 디테일한 소품이나 장면 묘사까지 굉장히 다양하다. 하지만 디테일한 장면 묘사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왕의 신발을 신겨주는 사람이 내시인지 상궁인지에 대한 사실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는 것처럼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물론 아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웃음). 제일 힘들었던 부분은 <징비록>은 일종의 반성문이기 때문에 우울한 내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드라마라고 했을 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야 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요소를 찾기 어려웠다.

Q.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방영 2회 만에 폐지 사태를 맞았다. 이 같은 상황까지 이르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제작진이 대중들의 폭발적인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대중들은 맞다 틀리다의 문제를 벗어나 어느 방향으로 한 번 쏠리기 시작하면 여론이 굳어지는 특징이 있다. 이 드라마 같은 경우 그런 사태를 초반에 진압하지 못한 케이스다. 사실 방송 장면 자체에는 왜곡 논란이 있을 정도의 큰 문제는 아니다. 여러 전문가도 지적했지만, 이 드라마가 시대극이면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시청자들에게 그 사실을 각인을 시켜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이 점이 왜곡 논란을 불러온 가져온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Q. 그렇다면 실존 인물 대신 가상 인물로 설정했으면 이런 사태를 피해 갈 수 있었을까.

조선 초기의 시대적인 배경을 설정하고 가명을 썼더라면 논란이 덜 했을 것이다. 시청자는 가상 인물의 모티브가 되는 인물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태종’이나 ‘충녕’ 같은 직접적인 실명을 거론했을 때와는 반응이 달랐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가상의 인물이고 그럴듯하게 설정했다’라는 의식이 먼저 들어가기 때문에 논란이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Q. <조선구마> 사태는 학계와 창작진 사이에서 의견이 나뉘는데.

역사 왜곡은 <조선구마사>뿐만 아니라 역사 드라마에 대해 지속적으로 있었던 논란이다. 예컨대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비담은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등장인물이다. 시대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드라마적인 요소를 넣은 것이다. 이런 논란은 창작과 역사적 사실 사이에서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역사적 사건 A와 B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할 때 역사학에서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통해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창작진은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를 상상력으로 채운다. 학계에서는 사실의 선후 관계가 크게 바뀌거나 시대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등장인물이 나오면 이해하기 어렵고, 창작진 입장에서 이 부분은 창작인데 왜곡 논란이 무엇 때문에 야기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다양한 소재의 역사 콘텐츠가 만들어지길 바라

Q. 역사적 상상력은 어느 범위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상상력은 무한하나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런 내용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까지만 허용된다고 생각한다. 제 입장에서 보면 양자 사이의 어떤 점을 어떤 수준에서 절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지키면서 재미 요소나 갈등 요소를 증폭시키는 에피소드들을 넣는 정도가 현재 적당한 수준이다. 

Q. 역사 콘텐츠를 만들 때 창작진의 태도와 주의해야 할 점은.

커다란 틀에서 왜곡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하고 그렇다고 사소한 고증에 목매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주 디테일한 건 아무도 모른다. 알려진 게 많지 않아 그런 부분에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제작의 발목을 잡는다. 역사 콘텐츠로써 의미 있기 위해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나 <불멸의 이순신>처럼 어떤 사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시각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성균관 스캔들>, <이산>, <동이>처럼 새로운 생활상이나 조직에 대해 조명해 주는 부분이 필요하다. 창작자는 철저하게 기획 의도에 맞춰 드라마를 제작하지만, 기획 의도와 대중들의 수용 범위가 차이가 나면 논란이 생긴다. 대중들의 선호도, 시사 문제를 파악해 콘텐츠를 제작하면 도움이 된다.

Q. 한국의 역사 콘텐츠들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역사 콘텐츠 소재가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드라마 <장영실>이 나왔으니까 장영실 다음의 인물이나 영화 <신기전>처럼 특정 무기 체계 등 다양한 소재를 만들면 좋겠다. 역사는 사람들이 만들어왔지만, 역사 안에 인물만 있지 않다. 옷이나 음식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지도나 생활상 여러 가지 요소들이 존재하니 소재를 다양화해서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을 통해 한국 역사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OTT 플랫폼은 보편화되고 앞으로 역사 콘텐츠의 영향력은 커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왜곡 논란에 예민해지고 더 나아가 동북아 3국의 상호관계와 외교 문제에서 민감해질 수 있다.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콘텐츠를 OTT 플랫폼에 제공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중국을 어떻게 그려낼지 고려해야 한다. 즉, 다양한 시각과 문화적인 코드를 고려해 역사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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