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봄그늘 최선 매니저·어린왕자 마음보듬사
아이디어에서만 그치지 않고 직접 경험하고자 시작
시각장애인의 장점을 극대화, 한정된 고용기회 늘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의 틀을 없애 같이 경쟁하고자
스스로 만든 편견에서 벗어나, 장점부터 살펴봐주길

봄그늘협동조합 팀원들 ⓒ봄그늘협동조합
봄그늘협동조합 팀원들 ⓒ봄그늘협동조합

【투데이신문 조유빈 기자】 봄그늘협동조합(이하 봄그늘)은 서울대학교 소셜벤처경영학회 ‘인액터스’에서부터 출발해, 2019년 7월에 법인으로 설립됐다. 봄그늘은 사회적 가치 창출을 주된 활동 목적으로 삼았고, 그들이 추구한 소셜 미션 중 하나가 시각장애인의 특화직업 창출이었다. 

봄그늘에서 진행하는 마음보듬 블라인드 상담 서비스는 시각장애인 상담사(마음보듬사)와 50분 동안 어둠 속에서 오직 목소리만 듣고 진행되며, 미리 상담을 받기 전에 정한 별칭을 사용하기 때문에 익명성이 보장된다. 

기자 역시 인터뷰에 앞서 직접 블라인드 상담을 체험해봤지만 어둠 속 상담이 무섭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보듬사의 목소리에 집중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또한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진짜 속내를 더 거리낌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털어놓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오히려 더 휼륭한 상담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하지만 아직 한국사회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에 대한 편견이 있다. 실제 일반적으로 시각장애인의 일자리라고 하면 헬스키퍼(시각장애인 안마사)를 먼저 떠올린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일을 할 수 있고 연계고용이나 정부 지원이 상대적으로 잘 이뤄지기 때문이다. 특히 주맹증이 심한 시각장애인 같은 경우에는 마사지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

또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2020년 12월에 발행한 ‘시각장애인 직업훈련 체계 및 훈련 직종 개발 연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의 장애 정도가 서로 다르고 관련 기준도 세세하게 나눠져 있어 직업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려워 직업능력개발 역시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시각장애인협회 관계자 역시 “요즘 시각장애인의 직업군이 공무원, 교사 등 확대됐지만 아직도 시각장애인이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제한적인 상황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스로 희망하는 직업이 있다 하더라도 해당 직업에 관련한 교육이나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공적기관이 전무한 상태다”라며 “시각장애인의 직업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선 시각장애인을 위한 직업훈련 전문기관이 설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봄그늘은 이런 시각장애인의 고용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던 중 눈을 가리고 데이트 상대와 함께 식사를 나누는 블라인드 레스토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아울러 현대인의 우울증 증가 추세로 인해 앞으로 상담 서비스가 잠재수요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아이디어와 생각을 한데 모아 접목시켜 탄생한 것이 마음보듬 블라인드 상담 서비스다. 봄그늘은 마음보듬을 통해 한정된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에 또 다른 기회를 늘렸다. <투데이신문>은 봄그늘의 최선 매니저와 시각장애인 상담사로 활동하는 어린왕자 마음보듬사를 만나 블라인드 상담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봄그늘협동조합 최선 매니저 ⓒ투데이신문

그늘진 마음을 보듬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먼저 부탁한다.

저는 올해 4월부터 봄그늘협동조합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자율전공학부에 재학 중에 있고, 저 외에도 봄그늘협동조합의 대표님이나 매니저님들도 다 학생이다. 모두 무급으로, 오로지 열정으로 임하고 있다.

어렸을 때 인권·사회운동과 관련된 책들을 접하면서 이런 사회적인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고등학생 때도 다문화 센터에서 한 5년 동안 봉사활동을 했었고, 대학생이 돼서도 관련 대외활동에 관심을 가졌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대외활동이 주춤했다가 이번에 인액터스에 합류해서, 봄그늘협동조합을 선택하게 됐다.

Q.  ‘봄그늘협동조합’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학교에서 아이디어나 기획을 짜는 것까지는 많이 해봤지만, 그 아이디어를 실제로 적용해 체험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교내 학회에서 주최한 다섯 개의 프로젝트 중 하나인 봄그늘을 택해 아이디어가 어떻게 실행되는지 직접 체험해보고자 했다.

당시 봄그늘에서 제시한 시각장애인의 고용기회 확대에 대한 소셜 미션이 참신하게 다가왔다. 또 정신건강 서비스가 중요해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 봄그늘을 선택했다.

Q. ‘마음보듬’을 소개한다면.

봄그늘에서 운영하는 마음보듬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50분 동안 이뤄지는 힐링대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에 대한 공감이나 경청을 기반으로 고객의 감정순화와 스스로의 문제해결에 조력한다.

마음보듬은 말그대로 마음을 보듬어준다는 의미로, 현대인들의 힘들고 지친 마음을 보듬아준다. 아울러 해당 서비스는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 또한 될 수 있다.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할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쓰며 본인의 마음을 숨긴다. 그러다보니 본인의 진짜 마음을 잘 모를 때도 있다. 저도 종종 그렇게 느낄 때가 있다.

이렇듯 마음보듬은 본인의 마음을 잘 모르거나 헤매는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시각 정보 없이도 소통이 원활한 시각장애인의 역량을 활용해 헬스키퍼로 제한돼 있던 고용기회의 확장에도 도움이 되고자 했다.

Q. 학교 공부와 사업을 병행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학교 수업 시간이 외부업체에서 일하는 시간과 겹치다 보니, 미팅을 하거나 약속을 잡을 때 시간대가 다르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현재 총 7명의 팀원(매니저)들이 서로 협력해서 최대한 시간을 맞춰가면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Q.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고객님의 후기를 들었을 때다. 고객님들이 해당 서비스가 끝나고 홈페이지에 후기를 남겨주거나 직접 말로 표현해주신다. 이렇게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한 건 처음이라면서 서비스에 만족해주시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후기 중 하나가 마음보듬사 선생님을 요정 할머니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마치 동화 속에 들어가 요정 할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같다면서 말이다.

저희는 이러한 블라인드 상담 서비스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왔고, 마음보듬사 선생님들도 이 직업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임하신다. 그래서인지 고객님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가 가장 보람을 느낀다.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기업이나 정부기관에서도 해당 서비스를 많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제안해나갈 예정이다. 올해 4월부터 지역적인 한계로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전화 마음보듬’을 론칭했다. 또한 마음보듬의 가치를 담은 대화카드를 제작해 펀딩을 계획 중에 있다. 이외에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개인적인 목표는 아직 정확히 정해진 바가 없지만, 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천천히 구상해 나갈 생각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확실치 않지만 여러 가지 경험을 쌓고 어떤 길이 맞을지 고민해나가고 싶다. 현재로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직업이나 그런 방향성을 갖고 움직이는 곳을 택하지 않을까 한다.

마음보듬사 어린왕자 ⓒ투데이신문

비장애인들과 같은 선상에 서고 싶다

Q. 마음보듬사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같은 시각장애인을 상대로 한 동료상담가로 일을 하고 있던 중 학생들이 먼저 제게 제안해 왔다. 학생들이 제시한 비전이 제가 추구하는 길과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보듬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특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직업군을 만들어준다는 말이 결정적으로 마음을 움직인 계기가 됐다. 이런 사업이 시각장애인의 인식을 바꿔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장애인이어도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게끔 해줬다.

Q. 마음보듬사로서 보람을 느낀 순간이 언제인지.

초창기 때 가장 보람을 느꼈다. 그 당시에 거의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했다. 주민센터와 연계도 해보고, 학생(봄그늘 매니저)들의 학교에서 직접 체험도 해봤다. 비용도 없이 재능기부 차원으로 같이 돌아다니면서 여러 환경 속에서 실험했다. 초반에 노하우도 없이 진행하다 보니 고생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가치 있고 보람찬 기억으로 남아있다.

Q. 상담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는지.

그냥 상담사라는 직업 자체가 참 험난한 길이라고 느낀다. 특히 학사를 졸업했다 해도 ‘시각장애인이 얼마나 잘 상담할 수 있겠어?’라는 말들이 늘 따라다녔다. 그렇다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같은 시각장애인을 상대로 하는 동료상담사 일자리 밖에 없었다. 그런 제한적인 상황들이 제게 힘들게 다가왔던 거 같다.

Q. 시각장애인들의 일자리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시각장애인의 일자리는 헬스키퍼나 사회복지사 밖에 없을 정도로 한정적이다. 현재 정부에서 조금씩 장애인들을 위한 직업들을 창출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시각장애인이 갈 곳이 적다고 느낀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의 일자리 활성이 활발히 이뤄졌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부분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취업은 다 보조업무뿐이란 것이다. 제가 이렇게 상담 공부를 한 이유는 단순작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의 직업군은 이것밖에 없다고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느낌을 받았다. 저는 비장애인과 같이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비장애인과 같은 선상에 두지도 않는다. 

시각장애인의 장점은 사람의 마음을 호흡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언변술과 표현력이 좋은 시각장애인분들이 참 많다. 그런 분들의 장점을 특화시킨 직업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동료(시각장애인)들을 찾아갈 때 상담을 전공했든 안 했든 간에, 앞서 말한 분들도 같이 데려갔으면 좋겠다. 같은 시각장애인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Q. 같은 입장을 겪고 있는 장애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자신을 비장애인과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또 장애인들끼리도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장점을 먼저 살펴봤으면 한다.

장애인 중에 꽤 많은 이들이 스스로 틀을 만들거나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이들을 볼 때마다 저는 ‘틀을 없애세요,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해주고 싶다. 틀에 갇히지 말고 깨우치고 나와야 한다. 물론 저 또한 그런 틀과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재 봄그늘 팀을 만나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생각과 용기를 가지게 됐다.

Q.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저는 지금 미술 심리상담 쪽을 공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이 미술 심리상담을 어떻게 하냐’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저는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현재 개인사업자로 상담심리연구소를 차린 상태고, 석사과정도 밟고 있다. 제가 공부한 것들을 바탕으로 동료(시각장애인) 상담가 양성에도 앞장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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