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차 보험설계사의 정직한 삶의 현장, 솔직한 동행기
코로나19, 대면 영업 직격탄…꽁꽁 얼어붙은 보험시장
설계사 부정적 이미지…인원 줄이고, 진입장벽 높여야
고용보험·제판분리, 보험업계 변화…현장 반응은 ‘글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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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이세미 기자】 전 세대를 막론하고 과거 ‘우리 엄마 친구, 혹은 우리 아빠 친구’ 중에 ‘보험 설계사’가 한 명씩 꼭 있었다는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은 ‘내 친구’ 중에 한 명이 보험설계사라고 하니, 국내에서 이 직업만큼 친숙하고 대중적인 직종도 없을 것이다. 

보험설계사는 자격증만 있으면 학력·성별 관계없이 누구나 보험영업이 가능하다. 대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영업활동을 할 수 있어서 사람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안성맞춤이라고들 한다. 더군다나 열심히 일한 만큼 고객이 많아지면 성취감은 물론 고소득까지 달성할 수 있으니, 누구나 한 번쯤 ‘혹’ 할 만한 조건을 갖춘 직업인 것은 확실하다. 

다만 일부 설계사들의 잘못된 관행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 곳곳에 잔존한 보험설계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지상파의 한 드라마에서 극 중 보험설계사를 ‘보팔이(보험팔이)’, ‘보걸(보험구걸)’이라며 비하하는 대사가 등장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해당 사건은 보험 설계사들의 반발과 방송사의 사과로 일단락됐지만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많은 보험설계사들에게 큰 상처가 됐다. 

이 밖에도 보험설계사들이 맞닥뜨린 문제들은 다양하다. 그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세와 경제난을 기본 옵션으로 장착한 채 보험업계의 저성장 탈출을 위한 보험 법인대리점(GA) 설립에 따른 혼란과 진통을 겪어야 했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금융업계 전반에 퍼진 비대면의 가속화는 앞으로 대면 영업현장이 점점 축소될 것이라는 예고를 동반하며 보험 설계사들의 미래를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기자는 보험설계사를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보험설계사와 꼬박 하루를 동행하며 그들이 가진 고충과 생각을 직접 현장에서 느끼고,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렇게나마 보험설계사들의 안녕을 묻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서울 소재의 ○보험사에서 근무하는 5년 차 보험설계사에게 하루를 나눠달라고 요청했다. 대신 설계사의 이름과 나이, 속한 회사 등은 일절 밝히지 않기로 약속했다. 꽤나 바쁠 것이라고 각오하고 갔지만 글쎄, 기자는 평소에 비해 유난히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게 됐다.

이 기사는 숨 막히고 분주한 보험 영업현장을 담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한, 현실 보험 설계사와의 생생한 하루를 담은 동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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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반납하고픈 설계사, 고객은 코로나19가 아니어도 만나기 힘들다    

오전 9:20 ○보험사 지점 로비에 도착했다. 낯선 ‘남’의 회사에 출근을 하니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지고 눈치를 보게 되는 등 긴장모드에 돌입하게 됐다. 잠시 뒤 A설계사가 한 손엔 서류 가방을, 다른 한 손엔 커피 한 잔을 들고 등장했다.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내 상상 속 ‘보험설계사’ 이미지 그대로였다.

A설계사는 5년차 경력 사원이다. 그는 그동안 팀 내에서 매달 1~2위의 실적을 달성하는 우수사원으로서 고실적·고소득을 쟁취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신의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해서 걱정을 한 아름 안고 있는 상태다.

9:30~10:00 A설계사와 함께 아침 조회에 들어갔다. 조회는 매일 아침 9시 30분부터 10시까지 지점 매니저들이 돌아가면서 진행한다. 조회 때는 보통 설계사들을 대상으로 마케팅 교육, 회사&지점 공지사항, 시책 공유 및 시상 등이 이뤄진다.

이날 조회는 조회를 진행하는 매니저 1명 외에 직원 7명가량이 참석했다. 조회 말미에 매니저는 대면 영업에 대한 희망을 설계사들에게 제시했다. 은행권이 점포를 줄이며 온라인 영업으로 전환하는 등 금융권 전반적으로 ‘비대면’이 대세이긴 하지만 결국 ‘대면 파워’는 따라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낙오되지 않고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며 설계사들을 격려했다. 리더의 따뜻한 한마디가 위로처럼 느껴졌다.

10:10 조회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A설계사가 “오늘 오후 1시에 약속했던 고객이 어제저녁부터 계속 전화를 받지 않는다”라며 조심스럽게 고객의 ‘잠수’ 가능성을 제기했다. 참고로 이날은 오후 1시와 오후 6시 30분, 2개의 약속이 잡혀 있었다.

설계사는 대신 오전에 신입 설계사 교육에 집중하고, 남는 시간에는 주말에 만날 고객들이 있는지 DB(Data base)를 확인해 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일이 흔하기 때문에 본인은 개의치 않는다며 덤덤하게 말했다.

영업이 안 될 때 주로 어떤 생각을 많이 하냐는기자의 조심스러운 첫 질문에 A설계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는 아무리 경력이 많아도 허탈하게 느낀다며,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고객을 찾아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영업하기가 더 어렵지 않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기자의 예상과 달랐다. “솔직히 코로나19는 제 영업에서 큰 의미가 없어요. 고객이 약속을 취소하는 데는 그것 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거리 두기 강화나 감염의 위험 등으로 인해 대면 영업 시장이 확실히 힘들어진 건 사실이에요.”

A설계사의 말을 듣다 보니 영업이 어려우면 슬럼프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었다. 안 그래도 요즘 영업이 힘들어졌다며 걱정하던 그였기에 사정이 궁금했다.

“맞아요. 슬럼프가 오죠. 그래서 1년에 한두 번은 무너지는 것 같아요. 평소 약속이 많을 때는 하루에 4번, 일주일 12~13명까지 만나기도 했지만 슬럼프가 오면 2주 동안 한 명을 만나는 것도 어렵더라고요. 똑같이 일해도 능률이 안 오르는거죠. 요즘은 슬럼프라기보다 집중력이 확실히 떨어진 것 같긴 해요.”

A설계사는 기자를 만나기 전 날 오늘(취재 날 기준)부터 토요일까지 만날 고객들에게 제시할 상품 설계를 이미 끝냈다고 했다. 어림잡아 6~7명 정도의 고객이다.

10:30 사람이 별로 없는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 있으려니 자연스럽게 ‘여유 있어서 좋다’리는 생각을 했다. 일반 직장인들에게 이런 여유는 마치 사막의 단비와도 같은 잠깐의 휴식이지 않은가. 그러나 A설계사는 이런 여유는 여유가 아닌 재앙과도 같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여유 있는 날이 싫다”, “여유로운 게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11:00 A설계사 곁으로 7개월 차 신입 설계사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책상에 있는 상품 설계서를 챙겨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신입 설계사는 최근 영업실적이 좋지 않아서 한 달 동안 A설계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고 한다.

신입 설계사는 자신이 만나게 될 고객의 성향, 자신이 설계한 보험상품에 대해 선배인 A설계사 앞에서 차분하게 설명했다.

조용히 듣고 있던 A설계사는 마치 자신이 고객이 된 것 마냥 여러 가지 반론을 던졌다. 가령 “돈이 없는데요”, “이 보장은 저한테 필요 없는데요”와 같은 고객들이 자주 하는 표현들 말이다. 그러면서 신입 설계사가 전문 용어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지도 확인했다. 덤으로 숙제까지 내줬다. 다소 벅차 보이는 숙제에도 신입 설계사는 진지하게 선배의 말을 받아 적었다. 신입 설계사는 그 외에도 자신이 고객을 만나면서 힘들었던 부분들, 아직 잘 모르겠는 상품에 대해 계속 질문했다. 교육은 한 시간가량 진행됐다.

두 사람의 모습은 흡사 1:1 과외 선생과 제자 같기도 하고, 함께 상생하기 위한 공동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12:00 드디어 점심시간이다. A설계사와 신입 설계사까지 우리 세 사람은 지점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기자가 신입 설계사에게 7개월이나 버틴 것도 대단하다고 격려하자, “매니저님과 선배들이 잘 챙겨 준 덕분”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우리는 천천히 ‘이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20대의 신입 설계사는 밥벌이로 따지면 여전히 설계사 이전에 했던 직업이 더 낫다고 했다. 건강 악화로 전 직장을 퇴사한 후 보험 설계사인 어머니의 추천으로 이곳에 왔다는 그는 현재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버티는 중이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보험영업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옆에서 묵묵히 식사를 하던 A설계사도 후배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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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사님, 이제 연락하지 마세요” 그렇게 거절을 당한다

13:00 식사를 마친 우리 세 사람은 다시 지점으로 돌아왔다. 한숨 돌리려던 차에 A설계사가 고객으로부터 받은 문자를 슬며시 보여준다. 문자 주인공은 오늘 오후 1시에 만나기로 했던 바로 그 고객이었다.

A설계사는 ‘혹시’ 고객님이 약속을 잊었던 것은 아닌지, ‘혹시’ 고객님이 잠수를 중단하고 마음을 돌려 만나 주지는 않을지 하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오늘 오전에만 두어 번 정도 더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자 내용은 기대와 달리 냉담했다. 고객과 설계사 두 사람 모두의 입장에서 이해가 됐다. 그러면서 감히 보험 영업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사람들은 이제 낯선 번호는 외면하고,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더더욱 원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13:15 설계사는 기계처럼 다시 모니터를 응시한 채 고객 DB를 살폈다. 그러다 정적을 깨고 자신이 약속을 강요해서 잡은 건 아닌 것 같은데 고객이 부담을 느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계속 생각하는 것을 보니 많이 아쉬웠던 모양이다.

지인이 아닌 고객 DB를 활용해 영업을 한다는 A설계사에게 이것이 도움이 되는지 물었다. 

“도움을 많이 받죠. 고객 DB가 없으면 영업이 어렵거든요. DB는 지난달 실적에 따라서(환산기준) 차등 배분해서 줘요. 대면 영업에서 DB가 없으면 힘들기 때문에 설계사들은 DB를 많이 받기 위해서라도 영업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죠.”

A설계사가 말하는 고객 DB란 보험 TM(텔레 마케팅)으로 가입했던 고객들의 정보를 일컫는다. 이 또한 보험사와 지점마다 다르다. 어쨌든 A설계사에게 제공되는 DB는 주로 담당자의 부재로 고아가 되버린 고객이거나 해당 보험사와 계약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한 고객들이다.

1시 만남을 약속했던 고객에게 받은 문자 내용 중 일부 ⓒ투데이신문
오후 1시 만남을 약속했던 고객에게 받은 문자 내용 중 일부 ⓒ투데이신문

우리의 대화는 길어졌다. DB를 통해 만난 고객들에게 굴욕적인 일도 당해봤는지 질문했다.

A설계사는 망설임 없이 “너무 많아서 어떤 것부터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다”라며 자신의 한 맺힌 경험담을 쏟아냈다. “어느 날 고객의 집 앞에서 한 시간을 기다린 적이 있어요. 고객님이 직접 자신의 집 앞으로 오라고 해서 갔는데 끝내 만나 주지 않더라고요. 뒤늦게 연락을 주긴 하셨는데, 자신의 집으로 오는 버스를 잘못 타셨대요. 그때가 딱 슬럼프가 찾아왔던 시점이라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그는 또 보험 담당자를 확인했으니까 쫓아내듯 바로 가라고 하는 고객은 부지기수라고도 했다. 다만 그렇게 대하는 고객들의 입장도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설계사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방치된 고객들을 직접 찾아가서 그들의 보험에 대해 한 번 더 설명해 주고, 그 사이 보완하면 좋을 보장들을 소개하면서 계약까지 성사시키면 가장 좋죠. 하지만 고객 입장에선 설계사 만나는 일이 귀찮을 수 있고, 부담이 되겠죠. 이제는 낯선 설계사에게 전화를 받거나 만나는 것을 꺼려 하는 분들이 더 많아질 것 같아요.”

A설계사는 특히 직업의 귀천이 없음에도 자신을 보자마자 하대하는 고객들은 감당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보자마자 욕을 하거나 면박을 주는 고객을 만나면 너무 힘들어요. 어떤 고객님은 저를 보시자마자 ‘그 젊은 나이에 왜 보험설계사를 하고 있냐’라는 말까지 하시더라고요. 보험설계사가 죄인이 아니잖아요. 또 계약을 해놓고선 거짓된 내용으로 민원을 넣거나 갑자기 연락을 끊고 계약을 해지하는 고객도 있어요. 처음에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상처도 많이 받고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어요. 예전에는 스스로에게 일일이 원인을 찾다보니 위축이 되더라고요. 이제는 설계사로서 제가 해야 될 일만 정확하게 하려고 해요.”

사실 A설계사가 얘기해 준 굴욕적인 경험담은 이보다 더 자극적이고 다양하고 방대했다. 대부분 그가 보험설계사라는 이유로 받은 인신공격들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반대로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고객도 있지 않겠냐고 묻자 A설계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정말 드물긴 하지만 10명의 고객 중 1~2명은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고객들은 계약과 상관없이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줬거나 정중하게 거절해 준 사람들이라고 한다. A설계사의 말에 기자는 살짝 충격을 받았다. 기본적인 예의만 지켜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고 하니 대면 영업 현장의 가혹한 민낯을 보는 것 같았다.

“그중에 제 또래의 간호사 고객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실손의료보험밖에 없었던 고객이라서 직접 만나서 솔직하게 보험 가입을 권유했어요. 의료계 쪽에 있으니 보험의 중요성을 잘 알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거든요.”

A설계사는 그 고객과의 첫 만남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고객에게서 “먼저 찾아와줘서 고맙다”라는 인사를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흔치 않은데 얼떨떨하기도 하고 그런 말을 해줘서 오히려 제가 더 고맙더라고요. 그 고객은 제가 설계해 간 보험 상품에 바로 가입하고, 심지어 이런 보험을 가입하게 해줘서 고맙다며 커피 쿠폰을 보내 주시기도 했어요. 지금은 계약 이후로 한 달에 한 번씩 꼭 안부 인사를 건네는 사이가 됐는데 고객님은 여전히 항상 고맙다고 해주십니다.”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신입 설계사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까지 고객에게 문전 박대만 당해봐서 이런 훈훈한 일화가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신입 설계사가 들려준 이야기 역시 A설계사의 경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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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의 선순환 구조, 현장 속 설계사부터 키워야 한다 

14:20 졸음을 못 이기고 잠시 외출을 하고 돌아온 A설계사는 또 “지점에 있으면 안 되는데” 라며 아까와 같은 혼잣말을 했다. 다른 설계사들이 고객 미팅을 위해 자리를 비우면서 사무실은 더욱 조용해졌다.

고객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보험설계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하기로 했다. 우선, 그가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를 듣고 싶었다.

“20대 때 재테크에 관심이 생기니까 돈을 어떻게 벌고 모아야 할지, 또 어떻게 지킬지 고민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학력과 상관없이 내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직종을 찾게 됐고 여러 가지 선택지 중 보험설계사를 선택한 거죠. 실제로도 정말 열심히 일했고, 일한 만큼 벌었어요. 다만 매달 안정적인 고정 소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영업실적에 대한 압박을 늘 안고 가야 하는 게 어려웠어요.”

A설계사는 자신의 직업 만족도 점수를 100점 만점에 50점을 줬다. 영업이 마치 ‘양날의 검’ 같다는 이유다. 그의 말대로 일한 만큼 벌 수 있지만 당장 다음 달을 보장할 수 없고, 스케줄을 자유롭게 관리할 수 있지만 그것 또한 나태함과 슬럼프를 가져올 수 있는 함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득 각종 SNS에서 자신을 ‘재무 설계사’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이들과 보험 설계사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보험설계사는 보험 협회를 통해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서, 고객에게 보험 상품을 소개하고 설계를 도와주는 전문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재무 설계사는 고객의 생애 주기에 따라 주식 투자 포트폴리오, 보험까지 함께 취급하며 재무 설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에요.”

A설계사는 기자가 질문한 것 처럼 요즘 SNS에서 일부 보험설계사들이 자신을 재무 설계사라고 칭하기도 한다며, 고객에게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자신이 국제 공인재무 설계사 자격증(CFP)을 보유한 재무 설계사임을 인증하고, 고객들도 이 부분을 꼭 확인하고 상담받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고 전했다.

어쨋든 기자의 입장에서 볼 때 보험사에게 설계사는 굉장히 중요한 존재 같은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지 궁금했다.

“절대 아니죠(웃음).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설계사를 지원하는 사람은 많고 어차피 실적이 안 좋은 설계사들은 버티지 못하고 짧은 기간에 퇴사하니까요. 이런 구조가 계속 반복되고 있는데 회사 입장에서도 굳이 설계사들에게 많은 공을 들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아마 사내 불만을 말하라고 한다면 설계사인 제가 말하는 것보다 본사 인턴이 말하는 게 더 효과적일걸요.”

14:45 민감하지만 한 번쯤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이야기도 꺼냈다. 설계사들이 직면한 숙제와 문제들 말이다. A설계사는 자신이 보험영업을 선택할 때 부모님이 가장 먼저 반대했고 지인들과의 관계도 멀어졌다고 했다. 자신이 단지 ‘보험설계사’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주변인들과 크고 작은 마찰과 오해가 생긴 것이다. 물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단지 그들에게 ‘보험설계사’가 주는 이미지가 불호에 가까웠기 때문일 터.

기자는 보험설계사에 대한 ‘비호감’ 이미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하게 물었다. 

“너무 오래전부터 굳혀진 이미지라서 긍정적으로 바뀌려면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요(웃음).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험업계가 대대적으로 설계사 수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도한 경쟁이 불러온 부작용 같거든요. 이제는 보험사가 금융은 물론 보험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설계사를 구별해 채용해야 할 시대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기대는 하고 있어요”

A설계사는 영업 현장에서 자신이 마주한 잘못된 영업 실태들에 대해 적나라하게 꼬집었다. “보험에 대한 전문지식 없이 무작정 설계사 입장에서만 좋은(수수료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상품을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가입시키는 사람들이 있어요. 상품에 대한 이해도도 낮은데 사명감은 없고, 무작정 돈만 많이 벌고 싶은 설계사들이 하는 짓이죠”

“결국 피해는 오롯이 고객들의 몫이에요. 솔직히 고객 스스로도 자신이 가입한 상품을 꾸준히 확인하고 공부해야 하는데 설계사를 믿고 맡겨버리잖아요. 자신의 통장에서 월마다 빠져나가는 목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제대로 알아야 되는데도요”

A설계사는 그렇게 잘못된 보험 상품에 가입한 고객을 만나면 솔직하게 말씀드린다고 한다. “이 상품은 설계사를 위한 상품이지 고객님을 위한 게 아니다”라고. 

그는 이 밖에 다른 문제들도 지적했다. “이런 식으로 영업을 한 보험설계사들이 고객을 많이 확보하면 보험회사에도 결코 좋은 게 아니에요. 현장에서 전문성 저하, 불완전판매 등으로 인한 부작용이 개선되지 않은 채 보험 가입이 이뤄지면 결국 고객들은 보험사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인식하죠. 보험사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방치한다면 설계사 스스로 전문성을 기르려 노력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인맥에 의존하거나 상품설명도 가벼운 거짓말을 섞어가며 애매한 표현들을 늘어놓게 되는 거예요. 영업이 아니라 교묘하게 사기 아닌 사기를 치는 것과 다름없죠”

그러면서도 A설계사는 다행히 최근 전 세대적으로 금융에 대한 관심이 높고, 고객들 스스로도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많이 흡수하고 있기 때문에 점점 이런 위험에 노출될 일은 낮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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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되는지 기자의 질문에 A설계사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계속 말하지만 보험설계사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아져야 해요” 

A설계사와 기자의 오고 가는 대화에 근처에 있던 팀 매니저가 다가와 의견을 보탰다. 그 또한 A설계사의 의견에 동의했다.

두 사람은 “선진국들은 보험설계사를 전문직으로서 좋은 직업이라고 인정하고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비난을 받거나 심지어 조롱까지 당하니 안타깝다”라고 입을 모았다. 매니저는 “오죽하면 업계에서 보험설계사는 팔다리만 있어도 뽑는다는 말을 할까요. 회계사나 세무사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보험설계사 자격증 취득 수준을 끌어올려서 진입장벽이 높아졌으면 좋겠어요”라고 강조했다.

15:00 A설계사는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그는 다시 한번 보통 사무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이 없는데 하필 오늘이 참 여유롭다고 강조했다. 이 말이 그의 단골 멘트가 된 듯 했다.

A설계사는 오전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DB 700개 중(1년 기준) 자신이 만나야 될 고객 30명을 골라낸 상태였다.  

16:16 여유가 지루함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기자에게도 고비가 찾아온 것을 느꼈다. 사무실에는 10명도 채 되지 않은 인원이 남았다. 지점에 남아있는 설계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영업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고민 상담을 하고 있었다.

보험설계사들은 자신의 연차와 상관없이 모두 똑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동료가 도움을 요청하면 흔쾌히 도와주는 일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한다. 워낙 영업 현장이 냉혹한지라 오로지 서로를 의지하며 버티는 것이다.

A설계사는 설계사들끼리 시기, 질투를 느끼냐는 질문에 대해 그런 걸 느낀다면 ‘덜 바쁘거나, 덜 간절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에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고 있는 것 같은데, 한 가지 예로 올해 부터 시행된 보험설계사 고용보험 가입에 대해서 만족하는지 물었다. A설계사는 고용보험 가입을 한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측면이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고용보험에 대해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현실에서 이 보험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그리고 보장을 받을 수 있기나 할지 반신반의한다고 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보험사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고용보험 가입에 대해 보험 설계사들이 대대적으로 환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보험사들의 제판분리(제조·판매 분리)로 인한 GA설립에 대해서도 큰 체감을 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아직 제가 속한 회사가 GA를 설립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결국 업계의 많은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반응이 제각각이거든요. ‘이동해서 더 좋아졌다’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닌 사람도 있어요. 이런 변화에 대해 판단하기는 시기상조 같아요. 다만 GA에선 다른 보험사의 상품도 취급할 수 있기 때문에 설계사 입장에서는 수수료가 더 많이 나오는 상품을 고객에게 제안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 봐요. 그렇게 되면 불완전판매도 여전할 테고”

기자와 A설계사, 신입 설계사는 이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잡힌 고객과의 약속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기자와 A설계사, 신입 설계사는 이 날 처음이자 마지막인 고객 미팅을 위해 약속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영업이란 ‘그런 날’과 ‘이런 날’의 연속 

16:30 A설계사는 오늘 유일하게 남은 고객과의 만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미 해당 고객에 대한 정보나 상품 공부는 마쳤지만 미팅 전 한 번 더 점검한다는 것이다.

이 고객이 오늘 계약을 할 것 같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A설계사는 고개를 저었다. 첫 만남이기도 하고, 전화 통화를 했을 때 고객 반응이 상담 시간 30분을 예상하게 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10분 안에 끝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설계사의 말을 들으니 알 수 없는 이유로 조금 허무하고, 하루가 통째로 날아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기자가 마치 보험설계사로 빙의된 듯 말이다.  

17:20 곧 있으면 퇴근시간과 겹치기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서 지점을 나왔다. 고객과의 만남은 오후 6시 30분,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서울 소재의 한 카페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신입 설계사도 교육 차원에서 함께했다. 선배의 영업 현장에 직접 가서 노하우를 귀동냥으로나마 배우려는 것이다.

A설계사의 차 안에서 신입 설계사는 내일 만나게 될 자신의 고객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다시 정리해서 설명했다. 설계사들에게 영업실적은 생계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고객을 한 번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18:00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가려던 카페가 내부 공사 중이어서 주변의 다른 카페로 다시 이동했다. 고객과 만나려고 했던 장소에 예기치 못한 변수는 종종 발생한다. A설계사는 이러한 이유로 보통 고객과 약속한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고객이 자신에게 잘 집중할 수 있는 자리를 찾는다고 했다.

18:10 자리를 잡은 설계사가 한 번 더 고객의 정보와 자신이 설계한 상품을 확인한다. 애초에 30분 컷을 예상했지만 그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베테랑 설계사도 처음 만나는 고객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기자와 신입 설계사는 옆 테이블에서 그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A설계사가 고객을 만나기 전 자신이 소개할 보험 상품을 공부하고 있는 모습 ⓒ투데이신문
A설계사가 고객을 만나기 전 자신이 소개할 보험 상품을 공부하고 있는 모습 ⓒ투데이신문

18:30 드디어 고객과의 만남이 성사됐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간간이 고객의 얼굴에 미소가 스쳤다. 설계사는 고객에게 집중하며 성심성의껏 설명하기 시작했다.

18:58 두 사람의 대화가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아서 내심 기대가 됐다. 오늘 처음 만난 고객이지만 계약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내심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바랐다. 고객도 이참에 자신에게 필요한 보험을 가입하고, 설계사도 실적을 올리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마무리가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19:00 A설계사가 예상한 30분이 지나자 두 사람은 거짓말처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혼란스러웠다. 1분 전까지만 해도 분명 희극이었는데!

A설계사의 업무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그래도 다음 주에 이 고객과 한 번 더 만남을 약속했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될까. 우리 세 사람은 퇴근하기 전 자연스럽게 요즘 고객들의 성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A설계사는 2030세대 고객들에게 보험에 대한 필요성을 설명하면, 요즘 들어 부쩍 “아프면 죽으면 되죠”라는 말이 가볍게 돌아오는 경우가 늘었다고 했다. 그 반응이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진지해서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설계사와의 대화를 거부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정말 요즘 2030세대들이 삶에 대한 의지가 많이 약해져서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라며 안타깝고 허탈하다고 했다. 놀랍게도 옆에 있던 신입 설계사 역시 자신이 만난 젊은 고객들도 그렇다며 증언했다.

A설계사는 어쩌면 오늘 같은 날이 인위적이지 않은 현실적인 설계사들의 모습일 것이라며 되레 기자를 위로했다. 영업이 잘 되는 날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날도 있는데 오늘이 그렇지 못한 날이었다면서 말이다.

다행히 A설계사의 휴대폰 캘린더에는 다음 주 일정이 빼곡했다. 이 중에 어느 고객은 ‘잠수’를 탈 것이고, 어느 고객은 문전 박대를 할 것이며, 또 어느 고객은 선뜻 계약을 할 것이다.

멀어져 가는 A설계사를 바라보며 우리 사회의 보험의 의미와 보험설계사들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헤아려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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