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개인과 사회구조의 관계

우리는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구조가 우리를 어떻게 행동하게끔 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그 속에서 다른 사람들 그리고 사회구조와 어떻게 관계 맺을지 결정하며 나아가는 모든 순간이 사회구조와 문화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다양성은 사회구조와 개인의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모든 사람은 사회구조 속에 존재합니다. 자본주의, 남성중심주의, 비장애인중심주의 등의 사회구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이런 사회구조들은 우리들의 삶의 방식 그리고 사고의 방향에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회구조를 잘 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놓여 있는 사회구조가 우리에게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사회구조는 마치 모든 것이 ‘원래 그랬던 것’으로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그저 당연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개인과 사회구조의 관계 중 한 쪽 방향은 우리 개인들이 만든다는 것입니다.

개인과 사회구조 사이의 관계와 역동에 의해 우리의 삶과 사회의 모습은 계속 변화하고 새롭게 만들어집니다. 이 사회가 어떻게 조직돼있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할 때, 사회의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고민과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사회는 많은 사람이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을 선택하도록 만들고 있지만, 다른 길을 선택해 가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사회를 바꾸는 사회운동들

1960년 Greensboro(그린스보로)에서 흑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지 않는 식당에 흑인 학생들 네 명이 일부러 들어가서 메뉴판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가장 저항을 적게 받는 길’에서 벗어나서 저항을 심하게 받기를 “선택”하고 더 나아가 영원히 그 길을 바꾸려는 시도를 한 것입니다. 이들은 경찰에게 두들겨 맞으며 끌려 나가기도 하는 등 엄청난 폭력과 협박을 당했으나 계속 그 자리를 지키며 저항했습니다. 이 때 다른 학생들이 소식을 듣고 식당으로 찾아와 식당을 가득 매웠습니다. 이 운동은 ‘싯인(sit-in)’ (들어가서 앉기) 시위라고 불렸습니다. 비슷한 행동들이 내쉬빌, 테네시 등 남쪽 지역의 도시들에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여섯 달 내로 26개 도시에서 식당뿐만 아니라 수영장, 도서관, 극장 등의 공공시설에서 인종분리/인종차별 정책을 철폐시켰습니다.

한국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굉장히 ‘강력한 투쟁’ 혹은 ‘극단적인 운동’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휠체어 이용인들이 철로에 들어가서 서로의 목을 사다리로 연결한 후 쇠사슬로 감고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전철을 가로막기도 하고 명절에 ‘장애인도 버스타고 고향가고 싶다’며 고속버스, 시외버스 아래로 기어들어가 버스 바퀴에 몸을 쇠사슬로 묶기도 합니다.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할까요? 첫째로 이동권은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에게 교육권, 노동권, 성과 재생산권 등 모든 권리가 중요하지만 이동을 할 수 없다면 그 어떤 권리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강력한 방식의 운동을 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말로 글로 이야기하면 국가는 물론 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철을 막아서고 버스를 떠나지 못하게 하면서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끼치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서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철역들에 엘리베이터가 생기기 시작하고 있고 저상버스 도입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퀴어문화축제는 어떤 의미일까요? 서울에서는 20년, 대구에서는 1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제는 전국 여러 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들이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시화 운동이자 정상/비정상 프레임에 갇혀 억압적으로 살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살겠다’는 저항 운동이자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확인하고 커뮤니티로 부터 자긍심을 느끼며 삶을 지속하고 즐길 수 있는 힘을 얻는 축제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비하적·차별적인 혐오표현이 사회 곳곳에서 들려오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퀴어문화축제를 비롯해서 영화, 드라마, 웹툰 등 각종 문화 콘텐츠와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향상되고 있습니다.

개인, 문화, 제도의 역할

퍼포먼스 아티스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의 리듬 0(Rhythm Zero, 1974)는 사람들이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회자되곤 하는 사례입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미술관 한편에 서있었습니다. 마리나의 앞에는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었고 그 테이블 위에는 72개의 물건이 놓여있었습니다. 그 앞에는 “테이블에는 72가지의 물건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것들로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나 역시 물건(Object)입니다. 이 시간에 일어나는 일은 전적으로 내가 책임집니다”라는 안내문이 있었습니다. 마리나는 사람들이 퍼포머인 자신을 마음대로 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두었던 것입니다. 테이블 위에 물건들은 장미꽃, 깃털, 꿀 등의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혹은 해롭지 않은) 물건도 있었고 채찍, 칼, 총과 같이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일 수도 있는 물건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퍼포먼스는 6시간 동안 진행됐는데 사람들은 처음에는 마리나에게 장미꽃을 건네거나 깃털로 마리나를 간지럽혀 보는 정도의 행동을 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마리나의 옷을 찢는다든지 장미의 가시를 마리나의 몸에 꽂는 등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칼로 마리나의 피부를 베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심지어 총을 마리나의 머리에 겨누는 사람이 생기며 마리나를 보호하려는 사람들과 가학적인 행동을 지속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퍼포먼스에서 일어난 일은 “인간 내면에 ‘선천적인 폭력성’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와 같은 주장 혹은 체념으로 이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퍼포먼스에 대한 해석과 적용이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이 퍼포먼스를 통해 발견한 인간의 폭력성과 가학성이 문제로 보였다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방법은 무엇일지 고찰해야 합니다.

여섯 시간의 퍼포먼스가 끝난 후 마리나가 자신에게 가학적인 행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다가가자 그들은 도망갔다고 합니다. 자신에 행동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못하는) 대상(Object)이 자신의 행동에 반응하는 사람으로 변한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게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반응(문제제기)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쉽게 하게 됩니다. 나의 폭력적인 행동은 상대방과 주변사람들로부터 문제제기를 받을 것이고 나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명확히 알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나 역시 물건(Object)입니다. 이 시간에 일어나는 일은 전적으로 내가 책임집니다”라는 안내문이 “나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나에게 하는 모든 행동은 당신의 책임입니다”라고 돼 있다면 어떨까요? 다른 사람을 온전히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는 태도를 익힐 수 있는 사회, 그게 가능하도록 하는 교육, 제도, 문화의 필요성이 강조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물건/대상/도구로 대할 수 없는 사회를 교육을 통해서, 사회적인 규칙(제도, 문화)을 통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장 저항을 적게 받는 길’ 자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서로 영향을 미치는 쌍방향의 관계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조직 하나를 떠올려 주세요. 대학 같은 학교도 좋고 직장 같은 일터도 좋습니다. 대학이라면 학생, 교수, 교직원 그리고 일터라면 여러 부서, 각 직책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그 조직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 조직의 시스템이 작동하게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결국 사람들이 그 조직 속에서 일어나는 역동을 다르게 만들 수 있고 결국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 역동과 구조를 다르게 만들 수 있을 때 그에 따라 일어나는 결과 또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계속 그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길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만들고 새로운 길을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선택이 너무 큰 희생이나 용기를 요구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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