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업계, ‘친환경 기술’에서 찾은 미래 먹거리
간판서 ‘화학’ 떼고 新사업 포트폴리오 본격화
대기오염물질 저감 기술 ‘신기술’ 개발에 앞장
폐플라스틱에서 석유 뽑아내…도시 유전 활발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 인식이 증대되면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국제사회는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의 여건을 고려하면 탄소중립은 매우 도전적인 과제지만 우리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보다 더 강력한 글로벌 차원의 규제로 인해 산업계에서도 탄소중립은 ‘가야만 하는 길’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탄소 배출 분야인 철강‧석유화학‧자동차 업계 등 제조업체와 탄소발자국을 남기는 유통‧관광 등의 산업 분야에서도 탄소 배출량 저감을 위해 ‘ESG 경영’에 힘을 싣는 추세다.

단순히 친환경 사업 위주의 참여가 아닌 기술 개발을 통해 체질개선에 나서는 산업들의 현황과 산업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추진하는 전략,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살펴본다.

LG화학 여수공장. ©뉴시스
LG화학 여수공장. ©뉴시스

【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석유화학은 옷과 신발, 가구, 각종 용기제품 등 생활 전반에 쓰이는 필수 소비재로 인류의 삶 전반에 자리 잡았다. 더군다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여파로 언택트(Untact·비대면) 기조가 확산돼 음식 배달 및 포장 등으로 인한 포장재‧위생장갑‧주사기 수요가 늘면서 석유화학은 팬데믹 기간 최대 수혜 업종 가운데 하나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석유화학은 국내 제조업 중 철강(1억1700만톤)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을 정도(연간 약 7100만톤)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석유화학산업은 원료로 사용하는 납사의 열분해(880℃) 과정에서 나오는 메탄 등 부생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2)가 대량 발생한다.

소각 전 단계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이와 함께 플라스틱 폐기물도 골칫덩어리다. 플라스틱은 대부분 한번 쓰고 버려지지만 자연분해에 50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상반기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 등 주요 화학사들의 실적은 사상 최고 수준을 달성하면서 신증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에 탄소배출량은 불가피하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오면서 석유화학 업계는 환경오염 주범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글로벌 환경 규제가 본격화 되면서 석유화학 기업들도 친환경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탄소중립 기조에 발맞춰 친환경 사업을 발굴해 석유화학 산업의 미래 새로운 먹거리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SK그룹 최태원 회장 ©뉴시스

석화업계, ‘친환경 기술’에서 찾은 탄소중립‧미래 먹거리

석유화학업종을 주력으로 사업을 영위해 온 SK그룹은 2030년 기준 전 세계 탄소 감축 목표량(210억톤)의 1% 정도인 2억톤의 탄소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지난 22일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2021 CEO세미나’ 폐막 스피치를 통해 “SK가 지금까지 발생시킨 누적 탄소량이 개략 4.5억톤에 이르는데 이를 빠른 시일 내에 모두 제거하는 것이 소명”이라며 “미래 저탄소 친환경 사업의 선두를 이끈다는 사명감으로 2035년 전후로 SK의 누적 배출량과 감축량이 상쇄되는 ‘탄소발자국 제로’를 달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 기존 사업에서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방식 등으로 0.5톤을 줄이고 전기차 배터리와 수소를 비롯한 친환경 신사업에 100조 원 이상을 투자하며 협력사 지원을 비롯한 밸류체인을 관리해 나머지 1.5억톤 이상을 추가로 감축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와 함께 SK그룹 대표 석유화학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은 대기오염의 주범인 CO2에서 전기와 수소를 생산해 탄소를 줄이는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기술이 완성되면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탄소는 환경오염이 아닌 새로운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 울산CLX는 UNIST(울산과학기술원)와 공동으로 CO2 저감 시스템 실증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기술은 물에 CO2를 넣으면 전기화학 반응을 통해 기후변화의 주범인 CO2는 제거되고, 전기와 수소가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CO2가 녹은 물에는 수소이온(H+)이 많아져 산성을 띄게 되며, 이때 전자들이 이동하면서 전기가 만들어진다. 또 이 과정에서 수소(H2)도 생산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 시스템을 활용할 경우 CO2의 전환 효율이 약 60%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다.

양측은 향후 SK이노베이션 울산CLX 생산공정 중 발생하는 연도가스의 CO2, 질소산화물(NOx), 황산화물(SOx) 등 대기오염물질 저감 가능성을 테스트한다. 여기서 연속공정 사업화 등 상업성이 확인되면 함께 공동 사업 추진도 검토할 계획이다. 이번 사업이 상업화에 도달하게 되면 전세계적으로 CO2 등 대기오염물질의 획기적인 저감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같은 대기오염물질 저감 기술 등 신기술 개발에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많은 시간이 들기 때문에 당장 석유화학 기업들은 환경오염 사업이라는 이미지 제고를 위해 아예 사명에서 ‘화학’을 빼고 친환경 중심으로의 사업 개편을 선언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플라스틱 재활용 등 친환경 제조기술 개발‧설비 확충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플라스틱 재활용 폐기물. ©뉴시스
플라스틱 재활용 폐기물. ©뉴시스

간판서 ‘화학’ 뗀 석화업, 플라스틱 재활용‧탄소포집 기술에 앞장서

먼저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은 지난 9월 ‘SK지오센트릭’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고 “세계 최대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업으로 재탄생하겠다”고 밝혔다.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기업에서 이제는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다시 석유를 뽑아내는 ‘도시유전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재활용 사업에 5조원을 투자하고 국내 1년 총 플라스틱 생산량 90만톤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할 설비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또한 폐플라스틱 문제해결 방안으로 열분해 기술을 제시했다. 열분해 기술이란 폐플라스틱에 열을 가해 원료를 추출한 뒤 석유화학제품의 원료로 재활용한다.

SK지오센트릭은 올해 초 미국 열분해 전문업체 브라이트마크와 함께 울산에 대형 열분해 공장을 발표했다. 2024년 상업가동을 시작하는 이 공장에선 연간 20만톤 규모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할 예정이다.

한화종합화학은 최근 사명을 ‘한화임팩트’로 변경했다. 한화임팩트는 국내 기업 처음으로 탄소 배출 제로인 수소 발전의 전 단계로 평가 받는 ‘수소 혼소(混燒) 발전’ 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혼소 발전은 두 종류 이상의 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으로, 수소 혼소 발전은 가스터빈에서 수소와 천연가스(LNG)를 함께 태워 전기를 만든다. 기존의 LNG 발전소는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가장 많이 뿜어내는 오염원으로 지적돼왔다.

한화임팩트는 미국 PSM과 네덜란드 토마센(Thomassen) 에너지를 인수하면서 수소혼소 기술을 확보했다.

©한화임팩트

현재 운용되는 화석연료 기반 가스터빈을 교체하지 않고 연소기만 설치해 기존 설비를 통해 에너지를 만들어 내면서 CO2 배출도 줄일 수 있다. 한화임팩트는 현재 한국서부발전과 수소혼소 가스터빈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며 앞으로 탄소배출이 전혀 없는 수소전소 기술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LNG에 50%이상 수소를 혼소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대폭 감축시킬 수 있게 된다.

국내 대표 화학 기업 LG화학은 사명을 바꾸지 않고 전지 소재, 친환경 소재, 글로벌 혁신 신약을 3대 신성장동력으로 정해 2025년까지 1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에 LG화학은 지난달 13일 글로벌 4대 메이저 곡물 가공 기업인 미국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와 옥수수를 원료로 한 바이오 플라스틱 합작공장 설립을 위한 주요조건합의서(HOA)를 체결했다. 양사는 내년 1분기에 이 계약을 체결하고 2025년까지 미국에 연간 7만5000톤 규모의 폴리젖산(PLA·Poly Lactic Acid) 공장 및 이를 위한 젖산(LA·Lactic Acid)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PLA는 일정 조건에서 미생물 등에 의해 수개월 내 자연 분해되는 친환경 플라스틱이다. 옥수수에서 추출한 포도당을 발효·정제해 가공한 LA를 원료로 만든다. 100% 바이오 원료로 생산된 PLA는 주로 식품포장 용기, 식기류 등에 사용된다. 이는 일정조건에서 미생물 등에 의해 수개월 내 자연 분해되는 친환경 소재이기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과 폐플라스틱 등 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여수1공장 CCUS 실증설비 제어실(왼쪽 녹색)과 전처리, 분리 설비(오른쪽 회색)
여수1공장 CCUS 실증설비 제어실(왼쪽 녹색)과 전처리, 분리 설비(오른쪽 회색) ©뉴시스

또한 SK이노베이션과 롯데케미칼, 현대오일뱅크, 한화솔루션 등은 탄소 배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CCUS는 석탄발전소 등에서 방출된 탄소를 포집해 재사용하거나 저장함으로써 대기 중 유입되지 않도록 처리하는 기술이다. CCUS는 탄소를 포집하고 저장하는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포집한 탄소를 활용해 다른 제품을 제조하는 CCU(Carbon Capture Utilization) 기술로 나뉜다.

SK이노베이션, 롯데케미칼 등 유화업체들은 CCS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으며 현대오일뱅크, 한화솔루션이 CCU 기술에 매진하고 있다.

이 중 롯데케미칼은 이산화탄소 포집 설비를 여수 공장에 설치해 연간 6만톤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있으며, 2023년까지 상용화 설비를 추가 완공해 연간 20만톤을 포집, 드라이아이스나 반도체 세정액 원료 등으로 이산화탄소를 가공할 계획이다.

현대오일뱅크는 내년에 충남 서산시에 위치한 대산공장 내 연간 10만톤의 탄산화제품 생산 공장 건설을 시작으로 최대 60만톤까지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정유 부산물인 탈황석고를 연간 50만톤 가량을 재활용할 수 있다. 탄산화제품 1톤당 이산화탄소 0.2톤을 포집·활용할 수 있어 연간 12만톤의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을 전망이다. 이는 소나무 1000만 그루를 심는 효과와 맞먹는 양으로, CCU 설비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CCU 시설에서 생산된 탄산화제품은 시멘트, 콘크리트, 경량 블록 등 건축 자재의 대체 원료로 공급한다. 해당 기술을 적용한 제품은 내년 하반기 상용화할 예정이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온실가스 저감, 자원 재활용, 환경 보존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향후 기존 탄산화제품을 건축 자재 원료인 무수석고와 종이, 벽지 등 제지산업의 원료로도 사용되는 고순도 탄산칼슘으로 분리 생산할 수 있도록 공정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석유화학업계는 변신 중이다. 석유화학 기업들은 친환경 전략 수립 및 운영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이고, 플라스틱 재활용 등 기계·화학적 재활용 기술 확보를 통해 화석 원료 소비를 줄이는데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기술 상용화 시점은 불투명하다. 때문에 석유화학업계 앞에 놓인 과제의 무게도 만만치 않아 정부의 제도적인 뒷받침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산업연구원 조용원 연구위원은 “석유화학업계에서 온실가스 배출 저감 기술 개발을 하고 있지만 개발이 완료 되더라도 기술을 적용하는데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 위원은 “기술이 실제 적용되는 데까지 들어가는 시간을 고려해 앞당기면 정부가 목표로 하는 시점까지 맞출 수 있겠지만 비용이 증가해서 소비가 가격이 오를 수 있다”며 “정부가 공공조달 부문에서 친환경 제품을 먼저 구매해서 초기 수요를 확보해주는 등 전폭적인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