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물권 논쟁’ 저자 임종식 작가
‘공리주의’ 피터 싱어 vs. ‘의무론’ 탐 레건
‘동물≠물건’ 민법 개정에 정책 뒤따라야
육식 당연히 폐지해야…종차별주의 반대

동물권논쟁 저자 임종식 작가. 사진제공 = 임종식 작가
‘동물권 논쟁’ 저자 임종식 작가. <사진제공 = 임종식 작가>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최근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이 아닌 동물 그 자체로 인정하는 취지의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제출되면서 동물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개식용 금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동물의 법적 권리가 확대될 거라는 기대감을 불러오기도 했다.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IS)이 지난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84%가 ‘개고기를 먹어본 적 없고 앞으로도 먹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별도 질문에서 59%는 개고기 금지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 변화와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는 가운데 동물권단체들은 축산업을 비판하며 육식을 반대하기도 한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 동물의 권리를 짓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논쟁은 있다. 동물권 논쟁에서 대표적 학자인 피터 싱어와 탐 레건은 공통적으로 축산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그러나 싱어는 동물의 고통으로 인해 인간이 얻는 효용이 더욱 크다면 축산을 용인할 수 있지만, 동물이 겪는 고통의 총량이 인간의 이익보다 크기 때문에 육식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공리주의적 입장이다. 반면 레건은 동물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삶의 주체이며 ‘내재적 가지(inherent value)’를 지닌 존재로 보고 인간과 동등한 기본권을 가진 동물을 착취해선 안 된다고 보는 ‘의무론적’ 입장이다. 도덕적으로 마땅히 육식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성균관대 초빙교수 임종식 작가가 동물권 논쟁에 있어 가장 큰 축을 이루고 있는 두 학자의 의견을 정리하고 동물과 인간의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책 <동물권 논쟁>을 펴냈다.

본보는 임 작가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동물권과 축산의 관계, 동물권이 논의돼야 하는 이유와 이 같은 논쟁에서 그의 입장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7월 12일 울산 울주군 두동면의 한 축산 농가에서 소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축사에 들어가 있다. ⓒ뉴시스
지난 7월 12일 울산 울주군 두동면의 한 축산 농가에서 소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축사에 들어가 있다. ⓒ뉴시스

‘인간의 위치’ 자문해볼 때

Q. 이번 책에서 동물권과 관련해 싱어와 레건의 주장을 정리했다. 두 학자의 주장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린다.

싱어가 주장하는 요지는 ‘인간과 동일한 정도의 고통을 느끼는 동물의 경우, 그들의 고통을 인간의 고통과 평등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적 이념에 기반한다. 반면 레건은 칸트(I.Kant)의 의무론에서 해법을 찾는다. 칸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라고 했다. 하지만 레건은 그 목적으로 대해야 할 대상에 동물을 포함시킴으로써 칸트와 달리 동물권 옹호론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한다.

Q. 싱어는 육식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는 반면, 레건은 육식 자체를 비판한다. 이에 대해 설명한다면.

싱어가 육식 자체를 나무랐다면 오히려 얼개가 맞지 않는다. 공리주의자인 싱어에게는 행복 또는 이익의 총량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축산업 관계자들의 ‘쾌락의 총량’이 동물이 겪는 ‘고통의 총량’보다 크다고 가정한다면 그는 오히려 육식이 도덕적 의무라고 말할 것이다. 다만 동물이 겪는 고통의 총량이 축산업 관계자들의 쾌락의 총량보다 크므로 육식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싱어의 입장이다. 반면 레건은 ‘삶의 주체’를 도덕적 고려 대상으로 본다. 그는 삶의 주체 범주에 드는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내재적 가치’를 지녔고, 따라서 인간과 동등한 기본적인 권리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육식 폐지론자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이유다.

Q. 육식 자체에 대한 임 작가의 견해는 어떤가.

인간과 동물의 권리에 차등을 둘 수 없다. 육식은 당연히 폐지해야 한다. 우리의 의무가 동물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종차별주의자라 부른다. 인종차별주의자나 성차별주의자 만큼 고약한 사람들이다. 환경을 생각한다면 더욱 육식을 멀리해야 한다.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차량 전체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양보다 가축에서 나오는 양이 많다. 가축이 열대우림과 표토층(토층의 가장 윗부분)을 파괴하고 수질을 오염시키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암세포 말고는 어떤 것도 숙주와 공멸하는 어리석음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HIV(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도 생존을 위해 맹독성을 약화시키는 생존경로를 택했다. 인간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Q.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고 증진시켜야 한다는 취지에서 ‘보유자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이 권리의 기능’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개념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린다.

권리는 ‘보유자에게 유익한 무엇을 제공한다는 것’이 도덕철학자와 법철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하지만 그 ‘무엇’이 무엇인지를 놓고 크게 두 이론이 대립한다. ‘권리의 기능은 보유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데 있다’는 의지 권리론과 ‘보유자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데 있다’는 이익 권리론이 그것이다.

이익 권리론에 따르면 어떤 대상에게 고통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면,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이 그 대상에게 이익이다.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권리를 가진 존재다. 이익 권리론은 책에서 제시한 제3의 해법인 ‘이익에 기반한 동물권옹호론’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Q. 동물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사람과 동물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한 의견은.

동물은 고차원의 정신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동물권 부정론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동물의 차등적 권리만을 인정하는 동물권 옹호론자도 같은 주장을 한다. 고통을 당하지 않을 권리는 인정하지만 죽임을 당하지 않을 권리는 부정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하지만 그와 같이 주장해서는 인간 사이의 평등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중증의 치매환자와 같이 고차원의 정신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을 닮아 착취 성향이 강한 외계종이 지구를 정복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그들이 가진 고차원의 정신능력을 갖지 못했다. 따라서 위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도 외계종의 손에 기꺼이 사육당하고 그들의 식탁에도 올라가야 한다.

Q. 최근 동물을 물건이 아닌 동물 자체로 규정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제출됐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동물이 합당한 법적 지위를 찾을 것 같다. 물론 환영하는 입장이다. 다만 법 개정이 실천적인 의의를 갖기 위해서는 개정을 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짚어봐야 한다. 법을 개정해야 하는 이유는 외투나 김치와 달리 동물은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물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이 따라야 비로소 법 개정이 실천적인 의의를 가질 수 있다. 정책 마련에 앞서 동물에게 법적인 권리 부여가 선행돼야 한다. 아이를 소유물로 취급할 수 없는 이유는 아이에게 법적인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동물이 명실상부하게 소유물의 지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법적 권리를 가져야 한다.

‘비건(Vegan)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 회원들이 지난 2020년 5월 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육식중단, 동물해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비건(Vegan)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 회원들이 지난 2020년 5월 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육식중단, 동물해방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개는 안 되고 소·돼지는 되나…“허수아비 때리기의 전형”

Q.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개식용 금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식약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와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지.

지시가 아닌 검토 의견이었다. 게다가 의견을 내놓기가 무섭게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오랫동안 차분히 국민 정서와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고려해 국회가 법률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루 평균 5500마리의 개가 처참하게 도살당하는데 뭘 더 준비하라는 건지,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누군가의 고통을 놓고 주판알을 튕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는데, 관련종사자들의 생계대책은 정치권이 풀어야 할 숙제다. 한정애 환경부장관이 발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 내용대로 식용견 업자가 자가 폐업을 하거나 업종전환을 할 때 지원을 해주는 방안을 서둘러 검토해야 한다. 국민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설문조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HIS가 2020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83.8%가 개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고 향후에도 소비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개식용 금지를 지지한다는 응답자도 58.6%에 달했다. 더 이상 국민정서 운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물론 개식용 금지는 법률로 추진해야 한다. 개식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아 동물보호법을 개정해야 할지, 축산물위생관리법이나 식품위생법에 금지조항을 넣어야 할지, 아니면 한시적으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빨리 시행할 수 있는 방안을 택해야 한다.

식약처의 입장도 실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는 사안과 그렇지 않은 사안도 분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채식을 반대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고 싶다. 사회적 합의가 있으면 인육섭취를 용인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고 싶다. 사회적 합의가 채식과 인육섭취를 그르거나 옳게 만들지 못하듯이, 개식용도 그르거나 옳게 만들지 못한다. 정부기관이 ‘믿음(belief)’과 ‘진리(truth)’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다니 믿기지 않는다. 개식용 문제의 본질은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개의 권리다.

Q. ‘문화상대주의’를 이유로 개고기를 합리화하는 주장도 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답부터 말하자면 문화상대주의 울타리 안에서 개고기를 즐기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1999년 김홍신 의원이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에게 “문화상대주의를 이해 못하는 건 야만이다”라는 공개서한을 보낸 적이 있다. 한국의 개식용 문화를 건드리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던 셈이다. 그 때부터 문화상대주의가 개식용 찬성 논거로서 입지를 굳힌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가감 없이 표현하면 소가 웃을 일이다.

먼저 용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문화상대주의는 ‘프랑스 사람은 개고기를 먹지 않고 한국 사람은 개고기를 먹는다’와 같이 단순히 사실을 기술하는 데서 그치는 ‘기술적인(descriptive)’ 의미의 상대주의다. 문화상대주의를 운운하며 공개서한을 보낸 건 한 편의 코미디였다는 뜻이다. 상대주의로 개식용을 옹호하고자 한다면 타문화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도덕상대주의(또는 규범상대주의)에 의존해야 한다.

도덕상대주의를 상대주의라고 부르기로 한다면, 외형적으로는 상대주가 개식용 옹호 논거로서 그럴듯해 보인다. 거기에 ‘한국사람이 개고기를 먹는 것은 그르지 않고, 프랑스 사람이 먹는 것은 그르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주의가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게 문제다. 제가 2002년도에 발간한 <개고기를 먹든 말든? – 상대주의의 오류>에서 상대주의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친 바 있다.

Q. 상대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가장 간단한 문제점 하나를 소개하자면, 상대주의는 ‘모든 사회(집단)에 대해 구속력을 가진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데서 출발한다. 김홍신 의원이 브리지트 바르도를 향해 한국의 문화에 대해 침묵하라는 경고장을 던진 이유다. 문제는 모든 사회가 타 사회의 문화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모든 사회에 구속력을 가진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데서 출발했지만, ‘타 사회의 문화에 대해 침묵하라’는 규칙은 모든 사회에 구속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명백한 자기모순이다. 자기모순인 이론을 방패막이로 삼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Q. 개식용을 찬성하는 이들은 ‘개는 안 되고 닭, 돼지, 소는 되는 것이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작가님의 견해는 어떤지.

보신탕 말고도 개식용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단골메뉴가 또 있다. 다름 아닌 “개는 되고 돼지는 안 되느냐”라는 반박이다. 하지만 그 반박 자체가 오류다다. 오래전 네 살 박이 딸을 데리고 친척집을 방문했을 때, 새 신발이 마음에 들었는지 딸이 신발을 신고 실내로 들어갔다. 민망했던 아내가 야단을 치자 딸이 “엄마는 왜 신발을 싫어하느냐”고 반박했다. 딸이 오류를 범한 것이다. 정확히는 아내의 주장을 다른 내용으로 대체하고(허수아비를 세우고) 그 내용이 마치 아내의 주장인양 반박하는(허수아비를 때리는)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straw man fallacy)’를 범한 것이다. “개는 되고 돼지는 안 되느냐”는 반박도 다르지 않다. 개식용 금지론자를 대표해 말하자면, 개는 되고 돼지는 안 된다는 게 아니다. 돼지도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용이한 개식용부터 금지하자는 거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장을 ‘개는 되고 되지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슬쩍 대체하고 그 대체된 주장을 마치 개식용 금지론자들의 주장인양 공격하는 것이다.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의 전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동물의 권리’에 상응하는 의무 이행해야

Q. 동물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건강하게 키워 도축하는 ‘동물복지’ 축산에 대한 의견은.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면 동물을 이용하거나 착취하는 것도 용인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동물복지 지지자’라고 부른다. 그들은 고통을 줄이는 만큼 그른 정도도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물권 옹호론자’로서 제 생각은 다르다. 부도덕한 일을 인간적으로 한다고 해서 그른 정도가 줄어들지 않는다. ‘큰 우리’가 아닌, ‘빈 우리’가 정답이다. 하지만 우리를 비우는 방법을 놓고 동물권 옹호론자들 사이에 마찰음을 빚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당장 우리를 비우라는 진영과 우리를 넓혀 나가야 한다는 진영의 마찰이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를 넓혀 나가는 ‘우보천리(牛步千里)’식의 점진적 운동이 우리를 비울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Q. 공장식 축산과 비교할 때 동물복지 축산의 정당성이 용인된다고 보는지.

동물복지 축산도 비윤리적이다. 무고한 사람을 편한 곳에 가두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목숨을 빼앗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불의를 개선하겠다는 건 불의를 지속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레건의 언명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공장식 농장을 고복지 농장으로 대체하는 것도 안 된다는 식의 동물권 운동은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전부를 주장하지만 결과는 전무일 것이다. 중요한 건 소비자의 의지다.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한 고복지 농장으로의 전환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소비를 줄여 고복지 농장으로의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

Q. 동물권 논쟁과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비건(채식주의)’에 관한 논의가 이어진다. 동물권을 옹호한다면 비건을 해야 하는 것인가.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인 비거니즘(veganism)은 ‘동물을 착취하는 관행 일체를 막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정의될 수 있다. 비건은 그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가를 뜻한다. 동물권 옹호론자라면 마땅히 비건이 돼야 한다. 동물의 권리에는 동물을 착취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함축돼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지다. 비건이 된다는 것은 고기, 생선, 유제품, 계란은 물론 꿀조차도 식물성 감미료로 대체하고 가죽 벨트 등 동물로부터 나오는 제품도 일체 거부하겠다는 의미다. 비건이 되는 게 최선이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레건처럼 낮은 단계의 채식주의로 시작하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 그것도 어렵다면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육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꼼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지만, 고기를 덜 소비하면 그 만큼 동물의 고통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Q. 최근 반려동물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반려동물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인간의 선택으로 인간과 살게 되는데, 반려동물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야생에 적응해 살아가도록 진화한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을 구분해야 한다. 개와 고양이가 대표적으로 그렇지 않은 동물이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걸 비난할 수 없는 이유이자 버려진 개체를 입양해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조류, 어류, 파충류, 절지동물과 같이 야생에 적응해 살아가도록 진화된 동물이다. 그들을 반려동물로 키우는 건 자연으로부터 납치, 감금해 불편감과 고통을 달고 살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항이나 케이지에서 태어난 개체는 괜찮지 않느냐는 질문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감금방에서 아기를 분만해 평생을 가둬두는 것과 차이가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Q. ‘동물권’이 논의돼야 하는 이유를 말한다면.

아이를 굶겨 죽인 부모가 비난과 처벌의 대상인 이유는 아이에게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아이의 권리에 상응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동물에게 권리가 있다면, 그 권리에 상응하는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물론 권리에 상응하는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 궁극적인 답변은 될 수 없다. 왜 그래야 하느냐는 물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깊은 철학적 문제인 만큼 간단하게 답변하기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떤 해답을 찾아도 그 해답이 동물에게 적용되지 않는 이유를 찾기 어려울 거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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