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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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최근 온라인상에서 ‘설거지론’이 이슈가 됐습니다. 설거지론은 연애경험이 적거나 없는 사람이 젊은 시절 ‘문란한’ 생활을 한 상대와 결혼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설거지론은 지난달 말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여성 캐릭터를 비판한 게시글이 퍼지면서 회자됐습니다. 이 게시글을 두고 설거지론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온라인상에서 확산되며 큰 호응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설거지론의 비판 대상은 주로 여성입니다. 사회통념상 남성은 고백을 하는 쪽이고, 여성은 고백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쪽이기에 여성이 연애상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연애경험이 많은 여성은 젊은 시절 마음에 드는 남성과 마음껏 관계를 맺다가 결국 결혼할 때는 돈만 보고 배우자를 선택한다는 인식은 이전부터 팽배해 있었습니다. 이런 여성과 결혼한 연애경험이 없거나 적은 ‘순진한’ 남성은 배우자를 ‘내무부장관’으로 모시며 돈만 갖다 바치는 ‘호구’ 역할을 하며 평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죠.

‘설거지론’이라는 이름이 붙어서 그렇지, 사실 이 같은 시각은 한국 사회에 많이 퍼져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소득이 높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과 결혼한 전업주부를 두고 ‘취집’이라고 표현하며 비난하는 인식입니다.

설거지론이 이슈가 되면서 미혼 남성들이 기혼 남성들을 조롱하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배우자에게 돈만 가져다주면서 ‘설거지’를 하느니 미혼으로 사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설거지론에는 여성혐오가 담겨 있습니다. 여성을 ‘그릇’에 비유하며 설거지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론(論)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주장입니다.

연애경험이 많은 여성은 ‘문란한’ 여성이고, 연애경험도 없이 순진하게 상대를 사랑해서 결혼한 남성은 피해자라는 인식이죠. 반면 연애경험이 많은 남성에 대해서는 이 같은 비난이 크지 않습니다.

‘여성은 외모, 남성은 능력’이라는 말은 연애, 결혼시장에서 공식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외모를 여성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것이죠.

젊은 여성이 많은 남성의 관심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연애경험이 많은 것은 안 된다는 것, 연애경험이 많으면 ‘문란한’ 여성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진 인식입니다.

설거지론이 이슈가 된 이후 연애경험이 많은 여성과 결혼해 ‘설거지’를 하게 된 남성을 ‘퐁퐁남’이라고 부르며 조롱하는 분위기도 생겨났습니다. 젊은 시절 연애도 하지 못하고 열심히 노력해 높은 소득수준을 갖추고도 잘못된 결혼으로 돈만 벌어다 주는 기계로 전락했다며 조롱하는 것이죠.

퐁퐁남이라고 불리거나 스스로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주장은 연애, 결혼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을 확산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가치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반면, 배우자에 대해서는 하는 것 없이 돈만 받아쓰는 사람이라고 인식합니다.

스스로를 ‘스펙’이 좋고 가치가 높은 사람으로 여기며 배우자보다 조건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며 상대에게 속아 잘못 결혼한 피해자라고 보는 것은 애초에 상대를 사람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스펙 등의 조건으로 평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꼴입니다.

또 연애경험을 근거로 ‘문란하다’는 프레임을 씌워 비난하는 것 역시 부당합니다. 시대에 뒤쳐졌을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문제적인 혼전순결 프레임을 여성에게 강요하는 것이죠. 더 큰 문제는, 이를 근거로 전업주부를 비난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부부마다 가진 특수한 상황을 간과한 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상대의 경제력을 보고 결혼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결혼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기는 어렵고,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하기는 더욱 적절하지 않습니다.

설거지론 자체도 문제지만, 이같이 가치 없는 주장이 주목을 받는 현상은 더욱 큰 문제입니다. 그만큼 이런 인식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한국 사회에 여성혐오가 만연하다는 것이죠.

설거지론은 여성혐오에 더해 사람을 소득수준, 스펙 등으로 가치를 매기는 시선이 뒤섞인 주장입니다. ‘설거지론’과 같은 주장은 론(論)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는 주장에 불과합니다.

설거지론에 대해 보도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모순입니다만, 설거지론에 대응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무대응 또는 무관심입니다. 남성이 여성을, 남성이 남성을 공격하도록 만드는 무가치한 주장에 주목하지 않고, 여성혐오를 철폐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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