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수많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형태를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갖는 사람들은 ‘공인’으로 호명된다. 공인에게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요한 사회적 책무가 주어진다. 그 중에서도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개인들을 만나며, 개인들의 사회화와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유명연예인일수록 그 책무는 크다. 공인의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우리 사회는 공인의 문제적 행위나 발언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공인이 문제적인 행위나 발언을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이를 문제로 여기지 못하거나 혹은 묵인하며 방조할 경우 이는 ‘개그’, ‘농담’, ‘장난’으로 쉽게 포장돼 지속적으로 미디어에서 노출이 되며 이 역시 많은 사람의 부정적 사회화에 영향을 준다.

‘2021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한국소비자포럼), ‘2021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시사IN) 2위에 유재석이 이름을 올렸다. 유재석은 오랫동안 성실함과 겸손함을 바탕으로 방송계에서 호감을 쌓아왔다. 체력관리를 위해 담배를 끊고 운동을 하고 대화진행을 위해서 책도 열심히 읽으며 여러 방면으로 공부를 한다고 전해진다. 또한 유재석은 세금탈루, 음주운전, 마약, 성폭행, 학교폭력 등 연예계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부정적인 이슈에서 언급되지 않으며 방송활동 중단 없이 꾸준하게 미디어를 통해 시민들을 만나왔다. 다만 ‘유재석 시대’가 도래한 배경에는 유재석 개인의 능력과 노력 뿐 아니라, 철저하게 수익보장을 우선하는 자본주의적 방송구조가 있었다. 시청률이 곧 수익과 연결되는 방송환경에서 PD들은 다양한 방송인을 발굴하기 보다는 높은 시청률을 보장하는 방송인을 우선 섭외하게 되면서 유재석의 활동은 지속될 수 있었다. 가장 영향력이 있으며 신뢰를 받는 사람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무게감은 충분히 클것이라고 짐작한다. 다양성과 포함의 시대로 나아가는 오늘날, 긍정적인 영향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지침이 필요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가지고 있지만, 잘 드러나지 않고 있었던 점을 구체적으로 제안할 때 공인의 변화로 하여금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현재의 유재석은 대표적으로 세 개의 영역에서 씁쓸함을 남기고 있다. 우선 ‘러브라인’이다. 유재석의 프로그램들에서는 러브라인이 등장한다. 2000년대 초반에 방영한 ‘X맨’처럼 대놓고 짝짓기 프로그램에서만이 아니라 설정상 한 가족이었던 ‘패밀리가 떴다’에서도 그랬다. 지금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 ‘런닝맨’에서도 러브라인은 계속된다. 런닝맨에서는 최근 김종국과 송지효의 러브라인이 만들어졌는데, 유재석은 김종국을 놀린다며 윤은혜의 이름을 매주 언급하고 있다. 유재석은 자신의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진들끼리 뿐만 아니라 게스트로 나오는 사람들과도 여성 출연자와 남성 출연자를 연애감정으로 엮으려는 시도들을 한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들이 발생한다. ‘런닝맨’에서 이광수, 양세찬 등의 남성 출연자들의 적극적인 구애 장면이 웃음 포인트가 되는데, 여성 출연자들의 거절을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피 투게더3’에서는 재차 거절하는 엄현경에게 지속적으로 들이대는 기안84를 유재석은 부추기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한다. 재차 거절의 의사를 표시한 엄현경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이는 여성의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적 문제를 재생산하며, 이러한 묘사를 통해 여성을 ‘동료’로, ‘친구’로, ‘사람 대 사람’으로 여기지 못하게 하고 ‘연애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하는 ‘여성 대상화’로 이어진다.

예능에서 ‘러브라인’은 대개 이성애자 커플로만 만들어지면서 이성애만 ‘정상’이라고 여기는 ‘이성애 중심주의’를 강화한다. 또한 모든 사람을 외부성기 모양에 따라 성별을 정해주고 ‘여성’과 ‘남성’ 두 성별 중 하나로 살게 하는 ‘성별이분법’과 각 성별마다 그에 맞는 성격과 행동이 있다고 믿게 하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재생산한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철저하게 외면할 뿐만 아니라 성별이분법과 성역할고정관념으로 하여금 여자는 ‘여자답게’ 남자는 ‘남자답게’라는 작은 박스에 우리를 가두는 ‘젠더박스’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방향으로 사회화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유재석은 이런 모습을 철저히 따른다. 따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는 성별이분법, 성역할 고정관념, 이성애 중심주의가 지속되는데 기여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외모 평가’다. 누군가는 외모평가 문화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이런 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라고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에서 성형외과 광고, 다이어트 광고, 지방흡입 광고를 보면서 살고,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만나면 서로 외모 칭찬 혹은 걱정부터 하면서 일상을 시작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여겨지는 문화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여겨진다고 해서 괜찮은 게 아니다. 유재석은 맴버들이 촬영장소에 도착하면 의상에 대한 평가로 오프닝을 시작할 때가 많다. ‘외모 비하’ 뿐만 아니라 ‘외모 칭찬’도 우리 모두를 획일적인 미적 기준에 맞춰 살게 하는 “평가”로 작동하기 때문에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도 일상적인 것은 우리 모두에게 억압이 된다. 특히 유재석의 영향력과 신뢰도를 생각하면 많은 이들에게 그가 하는 말은 해도 되는 말, 그가 하는 행동은 해도 되는 행동이 된다.

마지막으로 ‘놀리기’다. 다른 멤버들도 유재석을 놀리기도 하고 서로 놀리는 게 코미디 프로그램의 ‘재미’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무한도전’에서도, ‘놀면 뭐하니’에서도 정준하를 놀리는 모습은 ‘괴롭힘’으로 보이기도 한다. 괴롭힘으로 인지되는 ‘놀리기’가 누군가의 ‘재미’가 된다는 것은 폭력의 모습과 닮아있으며 그의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에는 더욱 위험한 일이다. 방송 콘셉트이며, 둘 사이에 용인/합의가 돼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정준하는 놀림을 당하고 억울해해야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은, ‘사람들이 많이 웃고 시청률이 잘 나오면 계속 해도 될까?’이다. 콩트와 버라이어티의 경계를 넘나드는 최근의 예능의 형태에서는 연출과 실제를 구분하기 더욱더 어려워진다. 기존의 폭력의 문법과 공식을 답습하면서, 그것을 사회적으로 재생산하더라도 ‘시청률’과 ‘수익’만 잘 나오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유재석이 아닌 다른 방송인들에게는 훨씬 더 불편하고 심각한 모습들을 많이 발견하곤 한다. ‘왕좌’의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가장 영향력이 큰 유재석의 변화는 그래서 중요하다. 유재석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른 방송인들에게 주는 시사점은 클 것이다. 물론 유재석이 변하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이미 변하고 있다. 유재석이 변화를 이끌어 주길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유재석이 우리와 함께 다음 세상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란다.

●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학술위원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전) 숭실대학교 외래교수
- 전)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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