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스토옙스키 깊이읽기’, 고려대 석영중 교수
탄생 200주년 맞아 연구자로서 의무감 갖고 집필
도스토옙스키 연구 돌아보니 종교와 과학 남아
고전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을 발견하게 돼

“책을 읽는다는 건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데카르트)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도 같다”(키케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안중근)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신용호)

책을 통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위인들의 명언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단돈 만원으로도 인생을 바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2019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 성인 1년 독서량은 6권 정도밖에 안 된다. 두 달에 겨우 1권 읽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는 책을 펼치기도 전에 독서라는 행위는 고루하고 따분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책 내용이 궁금하다면 몇 백 장의 책을 읽는 수고스러움 대신 요약된 내용만 찾아서 보고, 듣고 읽으면 되는 세상이다. 남이 정리해 둔 몇 줄의 서평과 몇 개의 영상이면 마치 책 한 권을 다 읽은 듯한 기분까지 든다. 이렇듯 읽는 행위가 생략된 독서, 저자와의 대화를 막아버리는 독서만을 이어간다면 책이 주는 즐거움을 영영 모르게 될지도 모른다. 

한쪽에서는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독서의 중요성을 모른다고 걱정들 하지만 전자책의 인기가 올라가는 걸 보면 이 시대에 애독가들은 다른 형태, 진화한 독서를 즐기고 있음에 분명하다. 

좋은 책을 읽다보면 밑줄을 수도 없이 긋고, 멋진 글귀가 있는 페이지 모퉁이는 살짝 접어두기도 한다. 책을 덮은 후에는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우리는 이러한 좋은 책을 만나기 위해서 신간 기사를 찾아보기도 하고,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저자와의 인터뷰를 찾아보며 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투데이신문>이 새롭게 선보이는 [Today_Pub](투데이펍) 연재는 대중(Public)을 위한, 출판(Publish)된 책에 대한, 펍(Pub)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콘셉트로 책과 사람을 잇는 콘텐츠다. 책을 만든 저자, 편집자, 기획자 등과의 대화부터 책 한 권이 나오고 읽히기까지의 과정과 남긴 것들에 대한 기록을 시작한다.

석영중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투데이신문
석영중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레프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고 있다. 1821년 11월 11일에 태어난 그는 1846년 <가난한 사람들>로 소설가로 등단했다. 그러나 반체제 사건에 연루돼 1949년 체포된다. 

이 때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으로 끌려가 총살당하기 직전 황제의 특사로 감형되는 일을 겪는다. 황제는 반체제 인사들에게 ‘매운맛’을 보여주려 했다는데 예비 대문호에게 큰 충격을 던진 셈이 됐다. 이후 도스토옙스키는 4년간 시베리아 옴스크에서 유형 생활을 지내게 된다. 

석방 뒤엔 이때의 경험을 특유의 천재성으로 승화시켜 꾸준히 작품을 낸다. 가난한 생활 때문에 작품활동을 쉴 수 없었던 사정도 있었다고 한다. 

11일은 그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날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석영중 교수는 이를 맞아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과 <도스토옙스키 깊이읽기: 종교와 과학의 관점에서>를 연이어 출간했다. 이 중에서 <도스토옙스키 깊이읽기: 종교와 과학의 관점에서>는 석 교수가 그동안 연구해온 성과를 압축해 그의 문학 세계를 심도 깊게 조명하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서울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석 교수를 만나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매력과 영향, 그리고 오늘날 그의 문학이 던지는 의미를 되짚어 봤다. 그리고 인문학자로서의 고민과 앞으로의 계획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깊고 무겁지만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에 위로 받아

Q.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에 매력을 느낀 계기는.

학창 시절에 <죄와 벌>을 읽고 깊이 빠졌다. 대학교 1학년 학생이 그 어려운 책을 뭘 많이 알겠나. 그런데도 직관적으로 이 소설은 다르다는 걸 느꼈다. 내 인생에 많이 등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그의 소설은 깊고 무겁다. 읽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보상은 충분하다. 나는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서사 밑바닥에 깔린 치열함, 그 치열함 속에 배어있는 삶에 대한 사랑, 생명력에 매료됐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생명력에서 위로를 받는다.

Q. 어떤 대목에서 생명력을 느낀건가.

책 전체가 감동으로 다가왔다. <죄와 벌>에서 주인공인 라스콜리니코프의 얘기를 소냐라는 아가씨가 듣고 성경을 읽어준 다음에 ‘대지에 나가서 고백하라’는 그 소설의 전체 내용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속 인물들이 아무리 극단적이어도 거기서 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결론은 희망적이다. 

그는 스스로 삶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50대에 쓴 한 사설에선 “나는 지금도 내가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는지 새로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지 모르겠다. 나에겐 고양이의 생명력이 있다“고 말했다. 서구 문화권에선 고양이는 9번 살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고양이의 생명력이란 우리로 치면 오뚝이의 생명력과 같은 뜻이다.

굴하지 않는 생명력, 죽지 않는 불사조 같은 생명력이 그의 소설에 녹아있다. 한 대목만 끄집어내기보다 소설 전체를 읽다가 그 생명력이 뭉텅이로 와닿을 때 감동이 온다. 

도스토옙스키 깊이읽기: 종교와 과학의 관점에서 ⓒ열린책들
도스토옙스키 깊이읽기: 종교와 과학의 관점에서 ⓒ열린책들

Q. 최근 출간한 <도스토옙스키 깊이읽기>에선 부제를 ‘종교와 과학의 관점에서’로 정했는데 어떤 이유 때문인가.

그동안 썼던 논문을 엄선해 보니 두 가지 주제가 걸러졌다. 하나는 종교고 다른 하나는 과학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독실한 정교 그리스도교 신앙인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소설은 종교의 코드 없이 읽기 어렵다.  그는 유배생활 이후엔 심오한 그리스도인이 된다. 그게 작품에 반영되지 않겠나. 물론 종교적으로만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그것 없이 완벽하게 읽기는 어렵다. 

과학 역시 그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최근에는 도스토옙스키를 과학의 코드로 해석하는 것이 세계적인 연구 추세이기도 하다.  도스토옙스키는 당대 과학의 추세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10여년 전부터 도스토옙스키와 과학은 그의 문학을 연구하는 서브 장르처럼 존재하고 있다.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지는 않지만 조금씩 표면으로 부상하는 추세로 읽고 있다. 

Q. 도스토옙스키가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세기 러시아의 상황이 반영된 것 같다. 특히, 과학분야에서 그의 혜안이 돋보이는 대목을 꼽는다면.

“신사 양반, 내가 아는 한 당신은, 인간의 이익에 관한 당신의 전체 목록을 통계적인 숫자들과 과학·경제 법칙들로부터 얻어낸 평균치에 근거하여 만들었다. 당신에게 이익들이란 행복, 재산, 자유, 평안, 뭐 그리고 그 밖의 것들 등등이겠지.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당신 의견으로는, 그리고 뭐 물론 내 의견으로도 반계몽주의자이거나 혹은 절대적으로 미친 놈이겠지.”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주인공이 하는 말이다. 이 작품은 당대의 합리주의, 실증주의와의 논쟁이다. 19세기 중반은 과학의 시대다. 러시아에서도 다윈의 <종의 기원>같은 서유럽의 대표적인 과학 저술들이 번역이 돼 소개됐다. 

그는 이와 같은 추세를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모든 것을 계량화하는 방법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봤다. 과학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인간에겐 계량화할 수 없는 모순적이고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오늘날에도 해당이 되는 얘기 아니겠나.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시대에 모든 것이 데이터화되는 현실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주인공인 지하생활자가 외치는 이 목소리는 오늘날에도 적용되지 않겠나 싶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1864년 작. 주인공은 20여년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인공은 모든 이들을 혐오하다가 결국 자신도 저주하게 된다.

Q. 당시는 종교의 권위가 과학의 합리성에 큰 도전을 받는 시기였다. 도스토옙스키는 어떤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까.

그는 독실한 그리스도교 집안에서 자랐다. 청년 시절엔 공상적 사회주의에 매료됐는데 일종의 원시 기독교의 박애주의와 비슷한 면이 있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도스토옙스키가 반체제 활동을 한 계기에 원시 기독교의 박애주의가 깔려 있다는 입장이다.

유배 시기 동안에는 죄수에게 허용된 유일한 책인 성경만 읽었다. 4년 동안 유배된 죄수들과 지내면서 일종의 회심을 겪기도 했다. 이후 그는 러시아 정교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며 모든 소설에 깊은 그리스도교적인 세계관을 반영한다.

도스토옙스키는 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그리스도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만약 그리스도가 진리가 아니라면 나는 진리 대신 그리스도를 선택하겠다’고도 얘기했다.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열린책들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열린책들

‘지옥을 보고 돌아온 단테’

Q. 유형생활을 겪다보면 인간에 대한 회의를 느껴 염세주의로 흐를 수도 있지 않았나.

직후에 쓴 <죽음의 집의 기록>이라는 소설을 읽으면 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유형생활을 잘 견디지 못했다. 노역이나 부자유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흉악한 범죄자들과 같이 생활하는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을 다른 눈으로 보는 시각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형 선고를 받고 사형대 앞에 선 적도 있다. 황제의 특사로 사형에서 유배형으로 바뀐거다. 형에게 쓴 편지를 보면 ‘나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다시 태어났다. 삶은 선물이다. 일분을 한 세기처럼 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유형을 갔더니 그 곳 죄수들이 자신을 미워했다. 대부분의 죄수들이 하층민인데 그는 지식인이고 정치범이니 미워했던 것이다. 반체제 활동을 한 이유가 그들을 위해서였는데 정작 그들은 자신을 죽일 듯이 미워하니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도스토옙스키가 갈림길에 놓였다. 유배 후 세상으로 복귀할 것이냐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 것이냐. 다시 말해 견뎌낼 것이냐, 여전히 삶을 사랑할 것이냐. 

그는 후자를 선택하고 흉측하고 혐오가 일어나는 대상을 다르게 보는 시각 연습을 한다. 이는 <죽음의 집의 기록>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데 그는 온갖 범죄자들이 모인 유형지에서도 사람다운 사람을 발견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지옥을 보고 돌아온 단테다’라고 표현한다.

<죽음의 집의 기록>

1861~1862년  잡지 ‘브레미야’에 발표.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유형생활을 하면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Q. 작가가 겪은 고난은 그의 작품세계에 나오는 인간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가. 또, 도스토옙스키 이후의 문학과 사상은 어떻게 연결돼 있나.

그의 인간관은 한마디로 비극적인 인간이라 요약된다. 그 비극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고통, 인간의 이중성, 그리고 죽음이다. 고통은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는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 질병, 빈곤, 불안, 분열, 죽음 등을 샅샅이 파헤쳤고 그 고통에 대응하는 개인의 방식을 입체적으로 성찰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리스도교, 종교적인 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저는 드릴로 인간 심연의 밑바닥까지 파고든다라고 표현하는데 그는 인간 내면의 끝까지 갔다. 그래서 심리학, 정신분석학에도 영향을 많이 끼쳤다. 프로이트도 그의 소설을 많이 연구했다.

그리고 그는 시각적인 이미지, 구체적인 이미지를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 상징주의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줬다. 러시아에 상징주의 시대가 오자 도스토옙스키 연구가 굉장히 활발해졌다. 

Q. 한편으로 그는 많은 고난을 겪으며 생계를 위해 소설을 쓰는 생계형 작가였다. 교수님은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란 책에서 이런 면모를 재해석하기도 했는데 어떤 면을 전달하려 했나.

도스토옙스키의 삶과 소설은 돈과 아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돈을 위해서 썼고 돈에 관해서 썼다. 당시에 돈에 관해 쓴다는 것은 진지한 작가로서는 파격이었다. 그는 그만큼 현실 밀착형 작가였다. 그리고 인간의 조건을 가감없이 소설에 투영시켰다.

그는 늘 빚에 쫓기고 돈이 없었다. 그리고 도박 중독에 걸려 돈을 많이 낭비했다. 돈 개념이 없이 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모든 소설에 돈이 들어가 있다.

정말 재미있는 게 액수가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언급되는 소설이 없다. 가령 살인범이 살인을 하려고 칼을 샀는데 그 칼이 몇 루블짜리 칼이다라는 등 이러한 디테일은 소설에 잘 들어가지 않는데 그의 소설엔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누구를 소개하면 그 사람은 월급이 얼마다, 푸시킨 전집을 사는데 그 전집이 얼마인데 얼마를 깎아서 샀다 이런 것까지 나온다. 아주 리얼하고 디테일하다.

그만큼 앞서 갔다는 뜻이다. 당시만 해도 돈 문제를 소설에 쓰는 진지한 작가가 없었다. 톨스토이는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내용을 많이 쓴 반면 그는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썼다. 얼마나 정곡을 찌르는 말인가. 돈이 다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또 다른 게 필요한 것 아닌가. 그래서 유명한 말을 한다. ‘돈은 주조된 자유다.’ 동전화된, 물화된 자유란 것이다. 돈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고 봤다. ‘자유로운 인간이란 누구냐? 100만 프랑을 가진 사람이다’라는 얘기도 했다.

대문호라면 책상물림이라 생각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죽을뻔하다 살아나서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니 그 문제를 좀 파헤쳐봤다.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와 어떻게 알게 되냐면 소냐의 아버지에게 돈을 줘서 연결된다. 그의 소설에선 많은 인물들이 돈으로 연결된다. 돈을 꾸어줘서 알게 되고 떼어 먹어서, 또는 돈을 구걸해서 알게 된다.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 돈으로 연결된다. 이런 면에서 그가 한 세기를 앞서 간 작가라고 본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에서 이 얘기를 자세히 했다.

Q. 작가의 경험이 작품이 투영됐기 때문일까.

경험과 함께 플러스 알파가 있는 것이다. 타고난 천재성이 없으면 그런 소설은 쓰기 어렵다. 당시 도스토옙스키처럼 유형지에 있던 정치범들이 얼마나 많았겠나. 그런데 갔다와서 그처럼 글을 쓴 사람은 없다.

Q. 도스토옙스키의 삶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낭비벽이 심하다는 점을 야단치고 싶다거나.

낭비벽은 인간적인 약점인데 사실 도스토옙스키가 돈에 쪼들린 이유는 착해서였다는 생각도 한다. 형과 함께 잡지사를 경영했는데 형이 많은 빚을 지고 죽었다. 본인은 법적으로 그 빚에 책임은 없었다. 그런데 그 빚을 다 갚았다.

이유는 형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형이 빚을 안 갚고 죽은 사람이 되는 게 싫었던 것이다. 그런 부분은 숭고하게 느껴지고 인간적으로도 매력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사람은 싫은데 그의 작품은 좋다는 식의 태도는 견지하기 어렵다.

Q. 11월 11일은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이다. 200주년을 맞아 기념판도 나오고 전시전과 작품 연극도 진행되고 있는데 오늘날에 그의 문학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모든 고전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에서 시작 해야겠다. 바로 성찰할 수 있는 힘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역시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서사가 있고 그 힘이 강렬하다. 그래서 읽다보면 독자는 반드시 어느 순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도스토옙스키가 보편적인 고전의 힘 이상으로 현대의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용기와 희망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통의 맨 밑바닥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만 인정해도 우리는 위로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어두운 것처럼 보이지만 책장을 딱 덮으면 희망이 남는다.

Q. 200주년을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고생을 좀 많이 했다. 그럼에도 내가 도스토옙스키를 40여년 간 공부했는데 200주년 기념일에 해놓은 게 있어야 하지 않나. 이건 의무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Q. 도스토옙스키와 비견되는 작가로 같은 러시아 문학가인 톨스토이가 거론된다. 톨스토이 문학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나.

톨스토이는 넓고 도스토옙스키는 깊다. 

미묘한 점인데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심연으로 깊이 들어간다. 그래서 ‘영혼을 바라보는 사람’이란 별명이 붙어있다. 그만큼 인간 정신의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사람이다.

톨스토이는 ‘인간의 물적인 면을 보는 작가’라는 별명이 있다. 육체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형이하학적인 삶을 포괄적으로 보는 사람이 톨스토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배경이 대개 한 도시에서 몇 주 이내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10년, 20년도 지나간다. 그리고 배경도 광활하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작가의 성향이 영혼을 바라보든 육체를 바라보든 각기 달라도 두 작가는 위대한 대문호다. 그러면 두 사람은 반드시 심연에서 만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각각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가운데에서 만난다고 본다.

Q. 두 작가 모두 영혼을 구원하는데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맞다. 우회로가 다른 것이지 종착점이나 그 취지나 목표는 같다고 본다. 그리고 인류에 전달하는 메시지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도스토옙스키 200주년 기념판 전집 ⓒ열린책들
도스토옙스키 200주년 기념판 전집 ⓒ열린책들

인간 본연에 대한 사색 언제나 필요해

Q. 200주년을 맞아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접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망설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어떻게 그의 작품을 읽어보라고 권유하겠는가.

일단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 거라는 각오가 우선되면 좋겠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조금씩 조금씩 해설서를 참고하면서 읽기를 추천한다. 반드시 보상이 있다. 그러니까 여전히 매니아들이 있는 것이다.

Q. 고전은 읽기 어렵다는 사람도 있다. 원작과 해설서 중 무엇을 먼저 읽어야 한다고 보는가. 최근엔 원작을 다 읽기보다 해설서만 보고 이해하려는 경향도 있는데.

막연히 혼자 읽기에는 벅찰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설서만 읽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어려운 대목, 의미심장한 대목은 해설서의 도움을 받으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문학 속 인물들의 대사, 인물 사이에 얽힌 구조, 진행 방식, 에피소드의 순서 등이 다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점을 제쳐두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만 걸러내는 건 문학 작품을 읽는데 90%를 잃어버리는 셈이다.

러시아 문학을 바로 읽는 데엔 어려운 점도 있다. 그리고 초반부엔 예열하는 대목들이 있다. 러시아 문화가 원래 그렇다. 마음을 다 잡고 옆에 좋은 해설서를 두고 간간히 보면서 이런 대목은 무슨 의미인지 읽어나가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좀 시간을 길게 잡는 게 필요할 것 같다. 한 권을 골라서 통독하기로 하고 해설서를 참고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Q. 도스토옙스키 입문서로 추천하는 작품이 있다면.

해설서로는 제 책을 꼽겠다. (웃음) 그리고 도스토옙스키 소설 중에선 <농부 마레이>라는 책을 권하고 싶다. 짧은 단편이고 번역도 나와 있다.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책만 읽고 도스토옙스키의 세계를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흥미를 갖게 되면 첫 번째 장편인  <가난한 사람들>도 추천한다. 

<농부 마레이>가 조금 심심하다면 <죄와 벌>을 읽는 게 낫지 않을까 한다. 구조가 잘 잡혀 있고 마치 추리소설 같다.

<가난한 형제들>

1846년 작. 도스토옙스키의 데뷔작으로 가난한 하급관리와 불행한 소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Q. <죄와 벌>의 어떤 대목을 추천하는건가.

일단 범인이 앞에 등장한다. 주인공인 라스콜리니코프가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앞에 나온다. 그리고 범인을 잡는 과정이 나오는 방식이다. 어떤 점이 우리를 잡아 끌게 하냐면 이 사람이 잡힐 것인가 잡힌다면 어떻게 잡힐 것인가 그리고 누가 잡을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나게 된다. 

포르피리라는 형사가 등장하는데 주인공이 범인일 것 같다는 심증을 갖고 있다. 그때부터 주인공과 형사 간의 심리전이 벌어진다. 그러면서 독자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게 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에 포르피리가 물증은 없지만 주인공을 압도한다.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고백을 종용하는데 포르피리는 고백이 아니라 경찰서에 가서 자수를 하라고 얘기한다. 자수와 고백은 다르다. 자수는 법적인 얘기이고 고백은 종교적인 얘기다. 주인공에게 필요한 건 둘 다인 것이다. 자수해서 벌을 받고 고백해서 용서를 받아야 한다. 벌을 받는 게 용서를 받는 게 아니니까.

그러면서 스토리가 굉장히 깊어진다. 지금 자수와 고백이란 두 층만 얘기했는데 이외에도 층층이 겹겹이 의미들이 쌓여 있다. 매번 읽을 때마다 이런 의미도 여기에 깔려 있구나 느끼게 되니까 사람을 잡아 끄는거다.

Q. 현재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장을 맡고 있는데 역점을 두는 사업이 있다면.

도서관장을 맡은지 3년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학 교육에 맞추어 도서관의 개념을 유연성 있게 조율하면서 동시에 도서관 본연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려 하고 있다. 일단 도서관 리모델링이 잘 돼 학생들도 좋아하는 것 같다.

최근에 프랑스 생트 쥬느비에브 도서관과의 협업을 통해 양 도서관을 함께 소개하는 영상도 제작했다. 작년에 우리 도서관에서 펴낸 귀중서 도록인 <카이로스의 서고>를 생트 쥬느비에브 도서관에도 보냈는데 이 책이 씨앗이 돼서 협업이 가능했다.

도서관 홈페이지에 ‘코로나 시대 고대인의 독서’라는 코너를 만들었다. 단순 추천 도서 목록보다 가독성을 높이려고 영상으로 만들었다. 고전 소설 30선과 고전 사상 20선을 선정해 50권 전부 작품과 작가를 소개하고 대표적인 구절을 따서 제작했다. 이 50선에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도 들어가 있다.

Q. 인문학은 돈이 안되는 학문, 비인기학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자들에게 러시아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모든 인문학자들이 고민하는 문제다. 러시아문학만이 아니라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 모두 비인기 학문이 됐다. 그런데 만약 모두가 이른바 인기학문만 공부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대학은 반드시 실용적 학문과 사유하는 학문 둘 다 가르쳐야 한다. 

인간 본연의 문제에 대한 깊은 사색은 언제나 요구될 것이다. 지금은 인공지능과 인간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질문을 던지는 세상 아닌가. 그래서 인문학의 용도 폐기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고 그 용도가 남은 한 공부할 사람은 하는 것이다. 

꼭 많은 사람이 러시아문학을 해야 될 필요도 없고 그래야만 되는 것도 아니다. 노어노문학과를 나와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학연구에 헌신하고 싶은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에게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러시아문학 전공자로서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도스토옙스키와 신경과학을 접목시킨 책을 집필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톨스토이에 관한 책을 집필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도스토옙스키 다음으로 좋아하는 작가다. 최근에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읽었는데 너무 좋았다. 그래서 톨스토이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책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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