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쥴리 해명’은 인터뷰 중 우연히 나온 것···尹, 출마선언 당일 통화 시도
‘박근혜 탄핵’ 발화점까지 기반 다진 ‘펭귄팀’···국정농단 보도 못 뚫어
‘굵직한 사건’ 앞에선 동물 같은 ‘촉’ 발동···정치도전 실패, 후회 안 해
'대장동 사건'에 등장한 곽상도·이경재 등 관심 가지고 지켜보고 있어

[윤철순의 낭중지추-囊中之錐]는 풀이 그대로 ‘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면 삐져나올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자하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주머니 속 송곳은 반드시 주머니를 뚫고 나옵니다. ‘송곳’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 ⓒ투데이신문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윤철순 기자】 “‘쥴리’를 하고 싶어도 할 시간이 없다. ‘(내가) 쥴리’였으면 본 사람 나올 것.”

◇ ‘쥴리 인터뷰’, 치밀하게 준비한 결과

지난 6월 30일 새벽.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한지 만 하루가 지나지 않은 시간, 신생 인터넷매체 <뉴스버스>는 윤 전 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와의 ‘쥴리 의혹 인터뷰’ 내용을 내보냈다. 이날 아침 출근 시간 포털 뉴스판은 ‘쥴리 기사’로 덮였다.

이 ‘특종’은 어떻게 나왔을까. <뉴스버스> 발행인 이진동 대표(기자)는 “다른 이유 때문에 인터뷰(전화 통화) 했는데, 대화 도중 우연히 나오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씨와의 인터뷰는 윤 전 총장이 대선출마 선언을 막 끝낸 직후 연결돼 약 40분간 이뤄졌다. 통화 시도는 ‘치밀한 계산’에 따라 진행됐다.

<뉴스버스>와의 통화에서 김 씨는 자신의 과거를 둘러싼 ‘접대부설’과 ‘유부남 동거설’ 등의 소문을 전면 부인했다. 쥴리뉴스는 지상파까지 거의 모든 언론이 인용, 보도하며 전국으로 퍼졌다. 윤 전 총장은 이날 국회 소통관을 방문한 뒤 이 같은 김 씨의 인터뷰 보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지만, “아침에 제가 일찍 행사를 나오느라 (못 봤다)”며 “한번 챙겨보겠다”고 말해 부인 김 씨의 인터뷰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였다.

어떻게 이런 특종을 창간(6월 21일) 10일도 채 안 된 신생 인터넷매체가 보도할 수 있었을까. 또 ‘적시 보도 타임’ 뒤엔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behind story)’가 있었을까.

<뉴스버스>는 약 두 달 후인 지난 9월 2일, 또 한 번 ‘대형특종’을 터뜨린다. 윤 전 총장 재직 당시의 검찰이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측에 범여권 측 주요 인물들에 대한 형사고발을 사주했다는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을 보도한 것이다.

현재 이 사건은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수사 중이다. 의혹 보도 하루 뒤, 윤 전 총장은 “(고발 사주 의혹) 근거를 대라”고 반박하며 <뉴스버스> 보도를 ‘정치공작’이라 주장했다. ‘작은 인터넷 언론사가 보도한 기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현재 특검 대상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당시 윤 전 총장의 대응을 두고 <뉴스버스> 이진동 대표는 “사실관계에 대해 반박하지 않고 정치공작 주장을 하며 기존 정치인들의 정치프레임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검찰총장까지 지낸 분의 대응으로 보기엔 모순이 있다”고 비판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다”

대한민국에서 이 선고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최초 발화지점은 어디였을까. 박근혜 정권의 붕괴, 나아가 박정희 체제의 종언이 된 ‘최순실 게이트(국정농단)’ 사건의 문을 연 사람도 ‘이진동 기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2017년 3월 31일 새벽 박 전 대통령을 태운 호송차량이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2017년 3월 31일 새벽 박 전 대통령을 태운 호송차량이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이진동 대표는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1999년)’과 ‘안기부 자금 900억 신한국당 총선 지원(2001년)’, ‘진승현 게이트(2001)’, ‘안기부·국정원 민간인 불법도청(2005)’ 및 ‘변양균·신정아 게이트(2007)’ 등 굵직한 시대적 사건들을 파헤친 TV조선 사회부장 출신으로, 지난 6월 인터넷 신문 <뉴스버스>를 창간했다.

이 대표에게 특종 보도의 ‘막전막후’를 들어봤다. 지난 15일, 마포에서 그를 만났다.

◇ 탐사보도의 ‘대가(大家)’

대다수 국민들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얘기할 때 한겨레의 K스포츠재단 기사나 JTBC가 보도한 태블릿 PC 뉴스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이런 뉴스들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엔 이 대표의 취재력과, 그가 이끌던 TV조선 기획취재부 ‘펭귄팀’의 ‘기반다지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탄핵 사건을 발단부터 전개, 위기, 절정, 결말 순으로 정리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이 중 ‘절정’과 ‘결말’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의 절정과 결말은 당연히 JTBC의 ‘태블릿PC’ 보도나 ‘최순실(국정농단 사태 이후 최서원으로 개명) 이름’을 끄집어낸 한겨레의 역할이다.

그러나 시작은 결말보다 중요하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가 ‘왜 그렇게 끝났는지’를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9월 20일 한겨레는 재벌들 출연으로 만들어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최순실이 관여했다고 보도했다. 약 한달 후인 10월 24일엔 JTBC 뉴스룸이 최순실이 버리고 간 태블릿 PC자료를 근거로 44개의 대통령 연설문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최순실이 먼저 받았다고 단독 보도했다. 박근혜 정권의 붕괴가 본격화한 시점이다.

하지만, TV조선 이진동 기획취재부장은 ‘(퍼스트) 펭귄팀’을 지휘하며 한겨레의 최순실 관련 보도 두 달여 전인 7월 26일과 8월 2일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모금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고 보도했다. 폭파 직전 기폭제와 와이어 설치까지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던 것이다.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 ⓒ투데이신문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 ⓒ투데이신문

그런데, 이 보도 이후 갑자기 TV조선에서 후속기사가 끊겼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국정농단이 갖는 사건의 성격과 회사가 지향하는 정치적 성향이 크게 엇나가는 부분이 있었다. 한겨레 보도 나오기 전까지 내부서 제동이 걸린 건 사실이고, 그걸 뚫어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세간에선 국정농단 사건을 ‘이진동 기자가 묵혔다 터뜨린 것’이라 얘기한다. TV조선이 보도를 안 해 ‘검찰 관계자’가 한겨레에 제보했다는 설도 있다.

“그건 잘못된 정보다. 일부 보수 우파 태극기세력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주장을 대변하는 극우 논객들이 그런 쪽으로 많이 몰고 간다. 보도라는 게 타이밍이 있는 건데. 결과를 두고 역으로 거슬러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건은 매일 진행되는 상황이고 과정이 있는 거다. 당시엔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보도를 안 한 것이다.”

-한겨레나 JTBC 보도 훨씬 전부터 최순실 존재를 알고 취재자료도 확보해놓고 있었지 않았나.

“‘최순실 의상실 장면 CCTV’를 가지고 있었다한들 단순히 그것만 보도한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나. 그런 화면이 나와도 청와대에서 ‘최순실과 가까운 사이라 옷도 챙겨주고 했다’고 했을 거다. 영상에 등장하는 이영선, 윤전추 등도 ‘어, 보통사이가 아니네?’라는 정도였을 테고. 이 정도 먼저 드러나는 건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뒤에 최순실이 비선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걸 다 드러낼 수 없는 거다. 그래서 보도할 수 없었다. CCTV가 즉시 보도해야 할 재료가 아니라, 그 지점을 ‘취재의 시작점’으로 봤다. 재단 모금 관련 청와대 개입설 기사도 보도 시기는 그때지만 이전부터 혼자 계속 취재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팀 구성해서 단기간 취재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사전작업이 없었다면 취재가 그렇게 빨리 될 수 없는 거다.”

-사람들은 국정농단 사건을 JTBC와 한겨레가 터뜨린 걸로 알고 있다.

“그럴 것이다. 왜 나라고 그런 생각을 안 했겠나. 내 노력보다 그쪽이 더 빛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런 건 기사로 드러내야 할 부분이지 이름을 날리기 위해 한 건 아니니까. 그런 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 ⓒ투데이신문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 ⓒ투데이신문

-그래도 그동안의 노력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컸을 것 같다.

“국정농단사건을 두고 추후 ‘탐사보도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학계 등의 외부 평가가 많았다. ‘기레기’란 말이 널리 퍼지던 때였는데, 한겨레 등의 국정농단 보도 출발선이 몇 단계 빨랐던 것도 우리 팀이 그동안 그런 토양을 다져놨기 때문이다. 그런 게 없었다면 JTBC나 한겨레 보도가 나오기 어려웠을 거다. ‘미르케이재단’ 등의 내막을 우리가 먼저 끌어냈기 때문에.”

박근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행정관이었던 박관천은 나중에 “박근혜정권의 둑이 무너지는 소리를 처음 들은 건 JTBC의 태블릿PC 보도 3~4개월 전 TV조선의 미르·K스포츠 보도를 접할 때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아쉬운 건 없다. 할 일 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스스로 만족을 느끼면 되는 거 아닌가. 저널리즘이란 게 결국 국민 알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건데. 그걸로 만족해야지 알아달라고 할 필요는 없는 거다. 결과적으로 국정농단 사건의 문을 열었고,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그런 자부심이 있다. 어차피 누구든 발화점에 불만 붙일 수 있게끔 돼 있던 차에 다른 언론들이 그걸 대신한 것뿐이란 얘기다. 일반 독자나 대중들은 ‘불타는 장면’만 볼 수 있고, 물밑에서 준비되는 과정이나 작업들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했어’라고 자랑할 필요는 없는 거다. 저널리즘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닌가.”

-보수언론에서 박근혜 정부에 ‘치명타’가 될 기사가 보도된 건 의외였다.

“회사가 그렇다고 내부 기자들 모두가 보수성향이냐, 꼭 그렇진 않다. 다만, 개인적 지향점과 회사가 지향하는 정치적 성향이 부딪히면서 ‘공존이 힘들겠구나’하는 부분을 나중엔 느꼈다. 더 계속할 수 없다는...”

당시 TV조선의 국정농단 관련 보도는 8월 말 이후 끊겨버린다. ‘청와대 압박’이 보도를 멈추게 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TV조선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진동 부장’의 ‘펭귄팀’은 JTBC가 10월 17일 보도한 ‘최순실의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회유’도 이미 8월 22일에 인지하고 있었고, 미르·K스포츠 재단의 실질적 주인이 박근혜와 최순실이라는 정황도 파악하고 있었다. 박관천을 통해 최순실이 가지고 있던 문건이 청와대 것이라는 사실도 확인해둔 터였다. 의상실 CCTV영상도 확보하고 있었지만, 결국 보도하지 못했다.

이 대표는 여러 관련취재를 통해 2014년 말부터 이미 최순실의 실체를 인지하고 있었다. 이 시기는 박근혜 정권 출범 2년도 채 안 되던 때였다.

◇ ‘쥴리 해명’ 보도 내막

-‘쥴리 해명’ 보도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

“이 건은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된 윤 전 총장의 장모 최은순씨의 사기사건과 관련해서 부인 김 씨가 사건에 등장하는 증인에게 ‘위증’을 요구했던 과거 내용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나왔다. 윤 후보가 부인 김씨를 만나기도 전인 2006년 일인데, 이익배분 문제로 장모 최씨와 20년 가까이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는 정대택씨라는 사람이 당시 서류뭉치를 들고 찾아와 억울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때 증인이었던 법무사 백모씨(사망)가 1~2심 과정에서 증언을 번복하는 바람에 최씨의 딸인 김씨가 ‘현금 1억을 들고 백씨를 찾아가 위증할 것을 요구했다’는 내용을 취재했었는데, 이걸 확인하는 도중에 나왔다.”

지난 7월 서울 종로의 한 골목 담장에 당시 대선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아내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 옆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지난 7월 서울 종로의 한 골목 담장에 당시 대선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아내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 옆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처음부터 ‘쥴리’ 관련 건으로 취재한 게 아니다?

“처음엔 윤 후보가 대선출마 선언도 하고 김씨는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예비 후보의 부인이기도 하니, 그러면 그때 당시의 위증 요구 건에 대해 ‘한 번 검증해보자’고 해서 진행하게 된 거다. 그래서 후배기자를 통해 김 씨에게 전화한 거였다. 해명을 듣기 위해. 과거 취재수첩도 남아 있고 해서.”

-묻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직접 ‘해명’했다는 얘긴가?

“사실 우린 위증 관련 해명을 듣고 싶었던 건데, 당시 쥴리 관련 소문이 상당히 퍼져 있었기도 했고 ‘윤석열 엑스파일’도 돌고 있어서 그랬는지 김 씨가 좀 격앙돼 있었다. 그러다보니, 억울한 부분이 있었는지 본인이 하소연하듯 길게 말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난 쥴리가 아니고 동거할 시간도 없다’는 얘길 했던 거다. 해서 위증 건 보다 쥴리 해명이 ‘타이밍 상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핫(Hot)’ 할 때고. 또 본인이 직접 한 얘기고 해서 그걸 먼저 보도한 거다.”

-보도는 윤 후보 출마선언 다음날 나왔던데.

“‘대선후보 급 배우자’쯤 되면 보통 직접 전화를 안 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김 씨가 직접 받을 수 있는 시간을 골라 전화연결을 시도했다. 그렇게 날짜를 고른 게 출마선언한 날이다. 출마선언을 하게 되면 캠프 사람들도 모두 그곳에 갈 테니, 김 씨가 혼자 있을 거라 판단했다. 해서 출마선언 끝난 후 약 5~10분 후 전화하면 받을 것 같아서 걸었더니 진짜 받았다. 기사는 그날 다 썼지만, 보도는 다음날 냈다. 출마선언 하는 날 보도하면 그 뉴스에 다 묻힌다. 그래서 다음날 조간 나온 다음에 내 보냈다.”

일부에선 <뉴스버스>라는 인터넷 신생매체가 ‘윤 후보 측과 사전협의를 통해 쥴리 소문을 잠재우기 위한 ‘해소’ 차원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 주장까지 나온다. 그러나 이는 틀린 얘기였다. 이 대표와의 인터뷰는 왜 이런 주장이 터무니없는 ‘소설’인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 대표도 이런 소문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주 단편적인 생각이라 거론할 가치도 없다. 우린 ‘나중에 결과를 보면 알 것’이라 믿고 우리 페이스대로 갔다. 지금은 그런 얘기 하는 사람 없지 않나. 결국 시간이 해결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고발사주’ 건도 국민 입장에선 ‘왜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나. 뻔한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물리적 장애’도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 부분도 결국 해결될 것”이라 자신했다.

◇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은 국기문란

-‘고발 사주’ 건이 수사 중인데,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생각하나.

“결국엔 드러나게 돼 있다. 국정농단 사건만 봐도 그렇다. 권력으로 막아도 안 된다는 것을 우리 눈으로 보지 않았나. 시간이 문제지 결국엔 드러난다. ‘다스는 누구 것이냐’는 ‘BBK 사건’도 MB(이명박)정권 끝나고 다 사법처리 됐다. 한 순간은 권력으로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실은 시간을 따라가면 결국 언젠가는 모습을 드러내게 돼 있다. 윤 후보가 대선후보가 아니거나 지지율이 현저히 낮았다면 아마 쉽게 밝혀졌을 것이다. 지금은 진실이 밝혀져도 지지자들이 믿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요즘은 검은색을 희다 해도 믿지 않나.”

-윤 후보 말대로 ‘정치공작’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 않나.

“그건 말이 안 된다. 그런 주장은 그냥 정치프레임일 뿐이다. 의혹보도 다음날 ‘증거를 대라’고 하더니 곧 ‘정치공작’이라 하고, 다음엔 ‘조성은 인터뷰’ 때문에 ‘제보사주’라 공격했다. 검찰총장까지 지낸 분이, 기자세계처럼 팩트를 다루는 일을 평생 동안 하신 분이 사실관계로 대응해야지 정치프레임을 들고 나오니 참 안타까웠다.”

지난 9월,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고발 사주’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9월,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고발 사주’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사실관계?

“언론에 기사화된 사실관계를 말하는 거다. 다 나와 있지 않나. 예를 들면,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움직였다는 것 등..”

-인정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게 웃기는 거다. 왜냐하면, 관련이 없으면 윤 후보의 캠프에서 대응할 이유가 없는 거다. ‘우리와 관련 없다’ 하고 끊어야 하는데, 대응은 자기들이 다 하면서 관련이 없다하지 않는가. 관련 없으면 누가 대응해야 하나. 당사자들인 손준성, 김웅 등이 직접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윤 캠프에서 전부 대응했다.”

-모순이다?

“당연하다. 관련 없는데 거기서 왜 방어를 하나. 한마디로 ‘우린 관련 없다. 그건 개인이 알아서 할 문제다’라고 하면 되는데, 최종 후보되기 전까지는 손 검사나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조용히 있었다. 윤 캠프에서 대응을 다했다. 그런데 후보 된 다음엔 이제 반대로 하고 있다. ‘캠프’에선 조용하고 대신 손 검사나 이런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최종 후보로 선출 된 다음에. 그전까지는 안 그랬다. 이건 무슨 말이냐, 관련 없는데 왜 자기들이 직접 나서느냐 이 얘기다. 심지어 언론사까지 공격하고.”

-고발 사주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기문란 사건 아닌가.

“맞다. 개인적으론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한다. 다만, 수사 중이이라 더 말 할 수 없지만 윤 후보가 어느 정도 개입 됐느냐 하는 문제가 남았을 뿐이다. 입증자료나 증거가 제시 돼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검찰의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움직였다는 부분들은 어느 정도 드러나지 않았나. 조직이 움직였다는 것. 과거 정보기관이 하던 ‘못된 짓’을 검찰이 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건 국기문란 사건이다. 더구나 검찰은 정치 중립을 지켜야 되고. 수사권을 갖고 있는 집단이다. 이런 기관이 야당에 ‘여당의원들을 고발해 달라’ 사주한 게 국기문란 아니고 뭔가.”

이 대표의 상기된 표정은 ‘울산’을 향했다.

“검찰은 불과 두 달 전에 ‘2018년 지방선거 때 청와대가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수사를 하면서, 국기문란 사건이라고 했다. 물론 당사자들은 반발하고 있고, 현재 재판 진행중이긴 하지만 당시 윤석열 검찰이 했던 사건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국기 문란’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선거 코 앞에 두고 ‘출마한 사람을 고발해 달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해 달라, 처리는 우리가 하겠다’는 게 고발 사주 의혹인데, 이게 검찰의 선거 개입이고, 국기 문란이 아니면 뭔가.”

BBK 주가 조작 사건은 1999년에 설립된 투자자문회사 BBK가 ‘옵셔널벤처스’라는 회사의 주가를 조작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주가조작보다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개입됐는지 여부가 더 큰 논란이 됐다. 당시 정호영 특검은 김경준만 기소하고 이명박은 무혐의 처분했다.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 ⓒ투데이신문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 ⓒ투데이신문

-최순실(최서원)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의 ‘대장동 화천대유 고문 활동’ 관련 시기가 국정농단 사건 전후와 겹친다는 얘기가 나온다. 취재 중인 게 있나.

“사건은 생물이다. 있다 없다 말할 순 없지만, 관심 가지고 보고 있다. 어떤 사건이든 단정적으로 ‘설마 그럴 리가’, 이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취재해봐야 알겠지만, 곽상도나 이경재 등이 겹치는 부분이 있는 듯하다. 취재 묘미도 그런데 있다.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드러날 때. 그걸 특종이라 하기도하고. 생물이니까. 어디에 뭐가 숨어있는지 모른다. 당사자들이 직접 말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기자들이 그런 걸 찾아내는 거 아닌가. 그랬을 때 자부심과 직업적 만족감, 그런 게 있는 거 같다. 관심 갖고 보고 있다.”

-취재하다보면 ‘특종’이란 ‘촉’이 오나.

“기자라면 다 아는 거 아닌가. 하하. 물론, 타이밍이나 이런 건 있을 수 있지만 ‘쥴리’ 건도 윤 후보 출마선언 당일에 취재가 끝났다. 하지만, 보도는 다음날 내는 그런 게 촉이라면 촉이라 할 수 있다. 출마선언 당일은 말 그대로 ‘윤석열의 날’이다. 그날 보도하면 출마선언 뉴스에 다 묻힌다. 그래서 다음날 조간 나온 다음에 낸 거다. 새로운 하루 뉴스가 시작되는 거니까. 그날 쓸 것이나 다음날 쓸 것이냐 하는 판단은 좀 다를 수 있겠지만. 그런 정도의 판단은 하게 된다.”

-국민들은 ‘고발사주’ 건보다 ‘대장동’ 건에 더 화가 나는 것 같다.

“부동산이나 돈이 연관되는 ‘부패범죄’에 더 분노하기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심각한 건 고발사주 같은 범죄인데, 대장동 건은 이재명과 관련이 있든 없든 부패범죄라는 거다. 돈과 관련된. 즉, 고발사주는 권력범죄 유형으로 국민들 마음에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는 면이 있지만 대장동은 부동산, 돈, 이런 것들이 연관돼 있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도 느끼고 해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 본다. 1999년에 취재했던 ‘조폐공사 파업 유도사건’도 ‘옷로비 사건’과 묶여 ‘쌍끌이 특검’으로 갔었는데, 당시에도 국민들은 권력범죄인 파업유도보다 옷로비에 훨씬 더 큰 관심을 보였었다. 이런 것과 마찬가지인 거다.”

◇ 외도, 국회의원 선거 도전했지만 두 번 모두 낙선

-정치에 도전했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탐사보도를 오래 해오면서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많이 부딪혔는데, 이런 모순을 드러내려 많이 노력했지만 금방 잊혀졌다. 결국 똑같은 문제들이 반복되면서 직접 ‘선수’로 뛰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모순을 들춰내는 과정에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해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었다. 그러던 차에 국회의원 공천을 받아 도전했었다. 한 번 떨어지고, 그 이듬해 재선거가 열렸을 땐 공천을 받지 못했다. 계파 정치의 ‘벽’도 확인했고, 정치가 스타일과 맞지 않아 그러고 나서 바로 돌아서 나왔다.”

-다시 해 볼 생각은?

“없다. 기자란 직업은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일인데, 정치는 옳고 그름의 우선이라는 게 없고 대중 여론에 반응해야만 하는 업이다. 대중이 항상 오른 것도 아닌데. 이런 갈등이 생길 때도 있었고, 그런 스타일도 아니기 때문에 정치와는 맞지 않다고 판단하게 됐다.”

-낙선했으니까.

“물론, 그런 영향도 크다. 하지만, 선거운동 과정에서 느낀, 소신과 다른 걸 주장해야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기자는 아닌 걸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직업인데. ‘기득권 벽’을 실감하고 넘을 수 있겠다 생각해서 도전해봤는데 결국 실패했다.”

-그런 거 보면, 기자 경험이 정치에선 단점인 것 같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사람마다 다를 텐데, 변신과 적응을 잘 하는 분도 있으니까. 개인적으론 정치영역하고 저널리즘 영역하고 달라 적응을 잘 못한 것 같다. 기질적으로 그렇고.”

지난2009년 10월 경기 안산 ‘상록 을’ 재선거에 출마했던 이진동 대표가 선거 두 달여 전 지역 내에서 김치담그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2009년 10월 경기 안산 ‘상록 을’ 재선거에 출마했던 이진동 대표가 선거 두 달여 전 지역 내에서 김치담그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뉴시스

-다시 기자로 돌아왔을 땐 ‘정치경험’이 도움 됐을 수도 있었겠다.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선거비용도 많이 깨졌고, 수업료를 지불한 만큼 얻은 것도 있긴 하다. 하하. 그런 과정들이 아마도 몸에 체화돼 쌓였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 한다.”

-어떤 걸 얻었나.

“세상 보는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 같다. 사회부기자 때는 그냥 ‘칼 같았다’고 한다면, 이후엔 굳이 그럴 필요를 좀 덜 느끼게 된다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본질이니까. 사소한 것에 좀 두루뭉술해진다 할까 뭐 그런 게 달라진 거 같다. ‘꼬장꼬장’ 했었던 게 포용적으로 변하지 않았나 싶다. 하하.”

-‘기레기’란 단어가 고유명사처럼 회자된다.

“클릭수가 돈으로 연결되다 보니 인터넷에는 대중이 반응하는 가십성 기사나 선정적인 연예기사, ‘낚시성 제목’ 같은 게 많은 데 안타깝고 언론 스스로도 자정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민 불신은 점점 더 가중되는 것 같고.”

◇ 다시 ‘기자(記者)’...새로운 도전

-<뉴스버스>는 다른가.

“우린 정통 저널리즘을 지향한다. 땅에 떨어진 언론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는 ‘밀알 같은 역할을 한 번 해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다. 국정농단사건 때도 확인됐지만 언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 기여하는 바가 작지 않은데 일거에 매도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특히 자기정파에 유리한 기사를 쓰는 사람은 기자고, 반대쪽은 기레기라고 단정하는 이런 정치 환경이 아쉽다. 한 번 믿어보는 거다. 정파적으로 나눠져 있는 언론 환경에서 선호 매체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지만, 정통 저널리즘으로 가다 보면 거기에 대한 욕구도 분명 있다고 본다.”

-미디어 환경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바닥에 떨어진 저널리즘 신뢰를 먼저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클릭 수 높이려고 남의 기사 위에 팩트 하나 슬쩍 얹어 ‘단독’이라 내 보낸다거나, 윤 후보가 광주에 갔을 때 ‘무지개가 떴다’는 기사가 나온 경우도 있는데 이건 아무런 상관성이 없지 않나.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기 위한 것 같은데, 신뢰를 깎아먹는 고쳐야 할 행태라고 본다.”

-어떤 방법이 있나.

“그런 걸 없애려면, 기사의 저작권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포털의 블로그나 카페 같은데서 기사를 베끼지 못하게 해야 한다. 기사로만 검색 되도록. 블로그나 카페는 ‘링크’만 달아주는 방식으로 하고. 기사를 보려면 그 링크 타고 해당 언론사를 직접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거다. 그러면 독자들이 쉽게 기사를 비교할 수 있다. ‘이 기사는 어느 기사를 카피해서 단독을 붙였구나’ 하는 걸 쉽게 알 수 있도록. 또 언론사끼리도 저작권을 지켜줘야 한다. 다른 기사를 인용했으면 링크를 걸어주고, 출처 밝혀주고 그래야만 기자와 기사의 신뢰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책임도 져야하고. 그렇게 되면 기자들이 기사 하나하나를 신경 써서 쓸 수밖에 없다. 바이라인(기사 첫머리나 말미의 기자 이름)을 온전히 책임지는 것.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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