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원유가는 8년간 0.75% 상승 그쳐
“가격 인상 수익은 유업체·유통업체로”
정부, 물가 인상 압박에 연내 해결 급급

우유가격 인상의 원인과 해결책을 둘러싼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낙농업계의 내부 속사정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정부는 아랑곳 않고 연내에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못 박은 채 이해당사자들을 닦달하고 있다.

우유의 원유는 젖소라는 생명체에서 얻어지기에 수도꼭지처럼 인위적인 유량조절이 불가능하다. 젖소가 원유를 생산하려면 최소 2년 이상의 준비기간과 웬만하면 수십억대의 시설투자가 동반돼야 한다. 한번 생산기반이 흔들리면 회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낙농업은 장기간의 생산계획이 필요하다. 정부 대책 역시 긴 호흡으로 준비해야 한다.

코로나19 대유행과 물류대란 등으로 전 세계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허약한 자급기반과 몇몇 유가공업체가 독과점한 우유시장이 흔들리는 건 예견된 수순이다. 시간을 재촉해 풀 문제가 아니다. 낙농가, 유업체, 그리고 소비자의 공감대 속에 장기적 안목을 가진 대안을 세워야 한다.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서울우유는 지난달 1일 우유제품 가격을 평균 5.4% 인상했다. 매일유업, 남양유업, 빙그레 등 여러 유업체들도 잇따라 우유가격을 인상했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우유 소비량은 정체됐는데 가격이 오르는 건 맞지 않다고 보고 있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지난해 백색시유(흰 우유) 1인당 소비량은 26.3㎏이다. 2012년 28.1㎏을 기록한 뒤 완만한 하향세를 타고 있다.

우유가격이 왜곡된 원인으로는 유업체와 농가간 거래 가격를 결정하는 원유가격연동제가 지목되고 있다. 이 제도에 따르면 원유가격은 기존 가격에 낙농가의 생산비 증감을 반영해 결정하게 된다. 유업체와 낙농가 간 협상 때마다 심한 갈등을 겪자 아예 산술식(원유가격연동제)을 통해 가격을 도출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원유가격은 지난해 원유가격연동제에 따라 리터당 21원 인상돼 리터당 947원이 됐다. 단,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학교급식으로 공급되는 우유 판로가 막히는 등 어려움이 있었기에 인상 시기는 1년 유예됐다. 그리고 지난 8월 1년 유예가 종료되며 원유가는 리터당 947원이 됐고 10월부터 우유가격이 인상되기 시작했다.

정녕 원유가격연동제는 우유가격 인상의 주범일까? 원유가격연동제는 2011년 도입이 결정됐으며 2013년 8월 첫 시행돼 리터당 940원에 결정됐다. 이후 원유가격은 8년간 등락을 반복했지만 결과적으로는 0.75%(리터당 7원) 오른 셈이다. 원유가격연동제에만 우유가격 인상의 이유를 묻기 힘들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지난 3일 서울시 더케이호텔에서 우유 가격 안정화 방안 마련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선 우유 가격 인상으로 인한 수익이 유업체와 유통업체에 돌아갔다는 진단이 나왔다.

협의회 홍연금 물가감시센터 본부장은 “흰 우유 1리터 가격의 비중을 분석한 결과, 5년(2016~2020)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보면 낙농가에 40.9%, 유업체 23.5%, 유통업체 35.6%로 분석됐다”면서 “같은기간 원유수취가의 비율은 감소하고 유통업체의 비중이 소폭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흰 우유 가격 인상률을 보면 원유수취가는 0%, 츨고가는 4.8%, 소비자가는 6.7% 인상됐다. 가격 인상으로 수익 창출이 일어난 곳은 유업체와 유통업체“라고 밝혔다.

원유가격 연동제만큼 뜨거운 감자로는 원유 쿼터제가 있다. 쿼터제는 유업체별로 원유매입 물량을 정해 이를 계약한 낙농가에 배분한 제도다. 원유 과잉생산으로 인한 수급불안을 막고자 만들었다. 

쿼터제는 원유 생산량을 고정시켜 과잉 공급을 부추긴다는 진단도 있다. 그러나 지금껏 유업체는 자체적으로 쿼터를 늘리거나 줄여왔다. 물론 쿼터 감축에 나설 때엔 낙농가의 반발을 감수해야 한다.

쿼터는 낙농가 간 매매가 가능하다. 쿼터 감축이 쉽지 않은 이유다. 극소수의 무쿼터 낙농가도 있으나 낙농에 신규 진입해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려면 쿼터를 매입해야 가능하다. 쿼터 밖에서 생산한 원유는 가격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쿼터 감축안에 생산자 반발 심해

농식품부는 16일 충북 청주시 오송컨벤션센터에서 연 낙농산업 발전 위원회(이하 낙발위) 3차 회의를 앞두고 쿼터제와 연동제의 폐단으로 “혁신적인 젊은층이 신규 진입하기 어렵고 원유가격이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결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식품부는 이번에야말로 두 제도를 반드시 손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농식품부는 대안으로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제시하고 있다. 유업체가 구매 의향이 있는 음용유 186만8000톤은 현 가격 수준인 리터당 1100원에 구매하고 가공유 30만7000톤은 리터당 900원에 구매하는 안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유업체가 원유 구매계획을 사전 신고하고 낙농진흥회가 이행실적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원유를 거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결과적으로 농식품부는 쿼터 물량을 감축해 가격을 맞추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리터당 1100원은 현재 책정된 리터당 947원에 농가들이 받는 평균 인센티브를 합친 금액과 비슷하다. 전국 낙농가에 배당된 쿼터는 총 220만톤 정도로 추정된다. 186만톤은 전체 쿼터량의 84% 수준이다.

낙농가들이라고 배정된 쿼터를 100% 생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쿼터를 초과한 원유는 리터당 100원 밖에 받을 수 없어 손해이기 때문이다. 젖소는 매일 생산된 원유를 배출해야 한다. ‘수도꼭지처럼’ 조절할 수 없기에 낙농 현장에선 보통 쿼터의 92% 내외에서 생산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 한지태 본부장은 “농식품부는 낙농가가 현재 쿼터 물량인 220만톤까지 생산한다는 가정 하에 농가소득이 오른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노동자의 임금을 내리되 초과근무로 임금을 유지하라는 얘기나 다를 게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원유 생산량은 계절별 편차가 있는 낙농 특수성을 감안하면 안정된 수급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낙농말살전략을 보인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
한국낙농육우협회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낙농말살전략을 보인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

원유 생산자들은 농식품부가 제시한 방안에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낙농육우협회는 16일 성명에서 “농식품부가 낙발위를 통해 낙농말살전략을 공개했다”며 “낙농산업을 유업체 주도로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전국낙농관련조합장협의회 맹광렬 회장도 이날 낙발위 회의에 참석해 “정부가 낙농기반을 흔들고 있다”면서 “신규 진입이 어려운 건 쿼터가 문제가 아니라 진입하려는 젊은 세대가 없어서다”라고 꼬집었다.

유업체들은 원유가격을 내리고 쿼터물량도 더 변동성을 갖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매일유업 임근생 상무는 이 자리에서 “가공유는 400~500원 정도에 공급돼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가 제안한 리터당 900원도 비싸다는 것이다. 한국유가공협회 이창범 회장은 “시장 수요 변동시 음용유 물량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해 쿼터 물량 변동에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유업체 관계자들은 “아직 논의 중인 사안이라 조심스럽다”면서 구체적인 언급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한 유업체 관계자는 “발효유 등은 소비가 늘고 있지만 흰 우유는 우유를 대체하는 식품이 늘어나고 인구도 줄면서 감소하고 있다. 그리고 낙농선진국과 우리나라는 낙농환경 자체가 다른 면도 있다”며 “낙발위를 계기로 낙농산업이 자체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안이 도출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 조성돼야

생산자와 유업체는 서로 평행선을 그으면서도 사안의 중대성만은 공감하고 있다. 자칫 농식품부가 물가 관리에 쫓긴 나머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처방을 내리면 낙농업계는 또 격랑에 휩쓸릴 수 있다.

농식품부가 8월부터 ‘연말까지’로 시간표를 정하고 논의를 재촉하는 데 우려가 드는 이유다. 농식품부는 2014년 10월엔 별도 보도자료를 내고 원유가격 연동제를 “해묵은 갈등관계를 해결한 상생협력의 성과”라고 높게 평가한 바 있다. 

농식품부는 해당 보도자료에서 “시장 및 수급상황을 고려해 원유가격을 조정하면 생산기반 붕괴 우려가 매우 높다”면서 “원유수급을 전적으로 시장 원리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시장의 약점을 보완하는 게 선진 낙농국이 공통으로 취하는 낙농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와서 연동제와 쿼터제를 시장 왜곡의 주범으로 모는 건 정부의 정책 신뢰도에 스스로 먹칠하는 셈이다. 

배합사료 가격은 뛰고 있고 조사료는 가격도 오른데다 구하기도 쉽지 않다. 국내 사료 공급을 수입에 의존하는 허약한 산업구조 때문이다. 우유 생산마저 손들고 모두 수입에만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비자들의 우려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국여성소비자연합 김천주 이사장은 “우유뿐 아니라 모든 식품에서 유통비가 문제다”라고 걱정했다. 현재 우유시장은 서울우유, 남양유업, 빙그레, 매일유업 4사의 시장점유율이 79.6%에 달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이 유지되도록 견제와 관리가 이뤄져야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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