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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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과 품목농협 등을 회원으로 하고 있다.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에 명시된 농협중앙회의 목적은 회원의 공동이익 증진과 그 발전을 도모하는 데 있다. 그리고 회원조합은 조합원인 농민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향상을 증대하는 걸 목적으로 한다. 궁극적으로 농협은 농민을 위해 나아가 국가와 사회 전체를 위해 복무해야 하는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못지않은 공익성을 지니고 있다.

농협의 지난 행보는 목적에 부합해 왔다고 말하기 힘들다는 게 농업계의 평가다. 특히 지난 2012년부터 추진한 사업구조 개편 이후의 농협은 오히려 조직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농업과의 거리가 더 멀어지고 있다.

당장 2021년, 지난해를 돌아보자. 전국민의 공분을 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 사건의 자금은 상당 부문 인근 지역농협 대출을 통해 조성됐다. 이를 조사하던 중 일부 지역농협 직원들이 가족 명의로 ‘셀프대출’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대출일 수 있으나 지역농협이 농지 투기의 자금줄이 된 점은 오늘날 농협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사회적 이슈가 됐던 군 부실급식 역시 농협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농협이 군 급식 식재료 공급을 거의 독점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군 급식에 수입농산물 비중이 늘어난다면 농협이 어떻게 책임질건가.

10년째를 맞이한 사업구조 개편은 참담한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승남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한 사업구조 개편의 실패가 농협중앙회의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에 의하면 사업구조 개편 이후 경제사업 실적(2020년 기준)은 목표대비 62.2%에 그쳤다.

농협은 사업구조 개편 목표로 2020년까지 중앙회 판매비중 51%, 산지유통점유비율 62%, 경제사업물량 46조8000억원, 농협중앙회 당기순이익 3조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중앙회 판매비중은 목표 대비 18.2%p 미달했고 산지유통점유율은 목표 대비 13.2%p 미치지 못했다. 경제사업물량은 2012년 24조3000억원에서 2020년 29조1000억원으로 약 5조원 올리는데 그쳤고 농협중앙회 당기순이익은 9657억원에 머물렀다.

목표만 거창하게 잡아 사업구조 개편을 강행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업구조 개편의 핵심은 농협중앙회가 지주회사를 출범시켜 금융사업과 경제사업을 전문화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중앙회 조직은 더 비대해졌지만 농협의 공익성과 이에 따르는 책임은 줄어들게 됐다.

사업구조 개편으로 지주회사가 출범하면서 회원농협들 사이에선 농협중앙회의 근본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농협중앙회 사업과 회원농협 사업이 전국 각지에서 충돌하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거라 봤기 때문이다. 

농촌지역일수록 시가지는 한정돼있고 여기에 농협은행과 지역농협이 가까이 붙어 영업하고 있다. 고객층이 겹칠 수밖에 없다. 경제사업으로 가면 더 심각하다. 농협경제지주가 농산물 판매사업과 농기자재 구매사업의 큰 흐름을 쥐고 있기에 회원조합으로선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협동조합을 NH주식회사에 헌납했다’는 탄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가운데, 지난해 12월 27일 국회엔 또 농협중앙회장 연임을 허용하자는 농협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윤재갑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번 개정안은 현 4년의 임기로는 중장기적 업무 추진이 부족하며 회원들의 임원 선택권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1차에 한해 연임을 허용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앙회장직은 2009년 연임제에서 단임제로 바뀌었으며 선출방식도 조합장 직선제에서 대의원 간선제로 변경됐다. 민선 1대부터 3대까지 연임했던 중앙회장들이 줄줄이 비자금 조성이나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자 자체개혁안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도 최원병 전 회장(민선 4대)은 구속을 피했지만 2015년 검찰의 농협 비리 수사로 최측근들이 구속됐으며 김병원 전 회장(민선 5대)은 중앙회장 선거 당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임제로 복귀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직전 20대 국회에서도 중앙회장 연임 허용을 골자로 한 농협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이번 개정안 역시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찬성하지 않는다면 통과가 어렵다는 전망이다.

농협중앙회 안팎에선 이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한 관계자는 “이성희 현 회장의 레임덕 방지 차원의 대응일 수 있다”라며 “굳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성희 회장은 지난해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그럼에도 농협중앙회 내부에선 ‘농협경영 정상화에 기여했다’는 평도 있다. 이 관계자는 “농협중앙회 부채를 늘리지 않고 갚은 첫 회장이 아닌가 한다”라며 “농협법이 명시된 권한을 잘 지키고 있다고 본다. 비상근 회장으로서의 역할은 잘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달리 해석하면 자리유지에만 급급하다는 평도 가능하다. 비록 대의원 간선제지만 회원농협이 선출한 대표로서 제 역할을 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한 조합장모임의 관계자는 “조합장들의 생각이 제각각이다. 회원조합 입장에선 중앙회장에 힘을 실어야 한다. 회원조합이 뽑은 중앙회장이 연임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고 전했다. 점차 ‘중앙회를 위한 중앙회’, ‘직원들을 위한 중앙회’로 변질되는 농협을 되돌리려면 농협중앙회장의 권한을 강화하는게 낫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이는 이 회장의 연임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이 관계자는 “중앙회장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냐가 중요한데 이성희 회장이 회원조합의 이익을 중시하는 행보는 보인 적이 없다. 최근 쌀 시장격리 문제에서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다”고 평했다. 중앙회장 연임이 허용될 전제조건부터 갖춰져야 한다는 진단이다.

농협법이 개정되면 차기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다시 조합장 직선제로 치러질 예정이다. 중앙회장 8년 연임은 거듭 개정안을 발의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없다. 이성희 회장은 자리보전에 급급할 게 아니라 농협 60년, 사업구조 개편 10년을 되돌아보고 농협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명확한 비전부터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앙회장 연임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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