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시장 진출 시동 거는 완성차 업계
중고차 업계 “대규모 실직 현실화 우려”

 경기 고양시 내 중고자동차 매매단지. ⓒ뉴시스<br>
 경기 고양시 내 중고자동차 매매단지. ⓒ뉴시스

【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국내 완성차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 논란이 벌써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중고차업계는 대기업이 진출할 경우 소상공인 생계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고 완성차업계는 중고차 시장의 투명성 제고와 소비자 후생을 위해 진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양측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상생을 위해 열린 협상도 타결되지 않았다. 때문에 지지부진한 ‘중고차 시장 개방’ 논란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오는 14일 열리는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소비자 등에 업은 대기업

카카오가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헤어샵 등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일으키면서 거센 비판을 받은 것과 같이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은 사회 문제로 부각됐다. 하지만 이와 달리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이 환영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소비자 10명 중 8명은 중고차 매매시장이 불투명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 11월9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시장조사기관인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중고차 매매시장에 대한 소비자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비자들의 80.5%는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하면서 혼탁하고 낙후돼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가격산정 불신(31.3%), 허위·미끼 매물(31.1%) 주행거리 조작, 사고이력 등에 따른 피해(25.3%) 등을 문제로 꼽았다.

전경련은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누적된 소비자들의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눈여겨 볼 것은 중고차 매매시장에 완성차 제조 국내 대기업이 진입하는 데 찬성하는 소비자(63.4%)가 반대하는 소비자(14.6%) 보다 4배 이상 많았다.

완성차 제조 국내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시장 참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물어본 결과, 성능·품질 안전 및 구매후 관리 양호(41.6%)와 허위매물 등 기존 문제점 해결 기대(41.4%) 등에 대한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대기업에 대한 신뢰(7.4%), 제조사 인증 중고차 이용 가능(6.6%), 합리적인 중고차 가격(3.0%) 등의 순서로 조사됐다.

소비자가 오히려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바라면서 완성차업체는 이를 명분으로 삼았다.

현대차, 기아 등 완성차업체가 소속된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의 정만기 회장은 지난달 23일 산업발전포럼 행사에서 “완성차업계는 소비자들의 요구 등을 고려해 더 이상 중고차 시장 진출을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서 “국내 완성차업계는 내년 1월부터 사업자 등록과 물리적 공간 확보 등 중고차 사업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며 중고차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가 지난 2020년9월9일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현대·기아차 본사 사옥 앞에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결사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뉴시스<br>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가 지난 2020년9월9일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현대·기아차 본사 사옥 앞에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결사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뉴시스

반발하는 중고차업계

반면 중고차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허위매물 등으로 사기를 벌이는 이들은 일부 업체라는 것이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자동차관리사업등록증을 보유하지 않은 일부 업체가 사기를 치는 것인데 중고차업체라고 표현하는 것은 과하다”라면서 “소비자 보호를 위해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허위매물 등의 사기 행위가 근절된다는 보장은 없다. 대기업은 수사권이 없는데 어떻게 근절된다는 것인가. 이들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정부가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고차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신차 가격을 유지하거나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중고차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관리하거나 판매 물량을 조절하는 전략을 통해 중고차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관계자는 “자사 브랜드 가치 하락 방어를 위해 중고차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게 책정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중고차 판매시장에 대한 가격‧물량 통제의 위험이 훨씬 커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부담은 온전히 소비자가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중고차업계의 대규모 실직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세차‧정비‧광택‧인테리어‧탁송업 등 중고차업계와 관련한 주변 연관 산업의 생태계가 파괴돼 대량의 실직과 실업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처럼 대기업, 소비자, 중고차업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만큼 중고차 시장 개방 여부가 결론이 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충북 청주시 미평중고차매매단지. ⓒ뉴시스<br>
충북 청주시 미평중고차매매단지. ⓒ뉴시스

대기업 중고차 진출, 올해 결론 날까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가 열리지만 완성차업계는 이와 상관없이 이달부터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채비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중고차판매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2019년 2월 만료되면서 완성차업체들의 중고차 시장 진입에는 법적 제한이 없는 만큼 정부의 결정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보다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 작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 진출 강행 의지를 보이면서 중고차업계와의 갈등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고차업계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태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지난 3일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막기 위해 중소기업중앙회에 ‘중고차 판매업’ 사업조정을 신청했고 지난 7일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가 공동참여했다.

중소기업 사업조정제도는 대기업의 사업진출로 중소기업의 경영피해가 우려될 경우 대기업에게 사업의 인수‧개시‧확장을 연기하거나 축소하도록 권고하는 제도로 2009년부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운영되고 있다.

사업조정은 당사자 간 협의를 통해 상생방안을 찾는 과정이 핵심이며, 합의가 원만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비자 및 중소기업단체, 관련 전문가 등 13명으로 구성된 ‘사업조정심의회’를 통해 강제조정하고 이를 피신청인에게 이행하도록 권고한다.

만일 피신청인이 중소벤처기업부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미이행 사실을 공표하고 이행명령을 내리며, 위반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한 중기부가 긴급성을 요한다고 판단할 때는 사업 개시를 일시 정지시킬 수 있다.

중기중앙회는 신청을 받은 날부터 45일 이내에 사실조사 후 사업조정에 관한 의견서를 작성해 중기부에 보내야 한다. 조정심의회는 사업조정 신청일 이후 1년 이내에 해당 사업조정 안건에 대해 심의를 완료해야 한다. 다만, 중기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그 기간을 1년 이내의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다. 때문에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여부는 올해 안에 마무리 짓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우리는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와 사업조정권 이 두 개의 카드를 갖고 있다”며 “완성차업계의 진출을 반대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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