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억에 새로운 색을 입힌 ‘뉴트로’가 대세입니다. 소비자에게 오랜 기간 사랑받아 온 기업들은 촌스러움을 훈장처럼 장식한 한정판 레트로 제품들을 앞다퉈 내놓고 있습니다. 비단 물건 뿐 아니라 옛 세탁소나 공장 간판을 그대로 살린 카페 등 힙한 과거를 그려낸 공간 또한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래된 기록이 담긴 물건과 공간들은 추억을 다시 마주한 중년에게는 반가움을, 새로운 세대에게는 신선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기자는 켜켜이 쌓인 시간을 들춰, 거창하지 않은 일상 속 ‘추억템’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삼양라면 광고와 60년대 삼양라면 제품 사진 ⓒ삼양식품
삼양라면 광고와 1960년대 삼양라면 제품 사진 ⓒ삼양식품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 좋은 라면”

인기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라면송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힘들었던 1960년대에 태어나, 누구나 사 먹을 수 있는 저렴한 가격으로 배고픔을 달래주던 라면은 명실상부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라면 먹고 갈래?”라는 유행어에서도 한국인의 라면 사랑을 엿볼 수 있는데요.

라면은 1000원 한 장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음식일 만큼 가성비도 훌륭하죠. 파 송송 썰어넣고 계란까지 탁 풀어 넣어 끓인다면 그 순간 부러울 게 없습니다.

이런 K-라면에 대한 사랑은 비단 국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라면 수출액은 지난 2018년 4억1310만달러(한화 4930억3485만원)에서 2019년 4억6700만달러(한화 5573억6450만원)로, 2020년에는 6억357만달러(한화 7203억6079만원)로 껑충 뛰었습니다.

이렇게 인기 고공행진 중인 라면의 원조 국가는 사실 일본입니다. 면을 기름에 튀겨 건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인스턴트 라면은 일본 닛신식품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의 첫 라면은 삼양라면의 창업주인 고 전중윤 회장의 집념으로 탄생했습니다. 1950년대 말 경영 연수를 위해 일본에 갔던 그는 생전 처음 접한 인스턴트 라면 맛에 놀라 귀국 후 곧바로 1961년 삼양식품을 창업했죠.

왼쪽부터 1960년대 삼양라면 광고, 제품 하역장 광경 ⓒ삼양식품

라면이 당시 한국의 빈곤 상황을 타개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그는 한국산 라면의 개발에 돌입해 2년 후인 1963년 한국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을 출시했습니다.

60여년간 소비자 곁을 지켜 온 기호식품이자 배고픔을 달래 줄 구호식품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죠.

그러나 처음부터 라면이 뜨겁게 사랑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시 당시에는 ‘라면’이라는 이름부터가 생소했고, 쌀을 주식으로 먹어 온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이에 삼양식품은 직접 거리로 나가 무료배식을 하는 등의 홍보전략을 펼쳤고, 정부의 혼분식 운동 장려에 힘입어 제 2의 주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1960년대 매출 신장률 추이가 해마다 최저 36%에서 최고 254%까지 폭발적인 증가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던 삼양라면은 1993년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됩니다. 

사건은 우지(牛脂)라고 불리는 기름이 식용이 아니라 공업용 기름이라는 검찰의 수사로 시작됐는데요. 

매출에 큰 타격을 입고 법정관리까지 갔으며 소송만 6년을 끌었던 해당 사건에서 삼양식품은 결국 대법원 무죄판결을 받고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40%를 넘겼던 시장 점유율은 5%대로 떨어진 뒤였습니다. 

왼쪽부터 삼양라면 60주년 에디션 제품, 삼양라면 캐릭터 산양의 수트입은 모습 ⓒ삼양식품

그렇게 적자를 내며 위기에 내몰렸던 삼양라면은 2012년 출시한 불닭볶음면의 성공으로 재기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올해로 출시 10주년을 맞은 불닭볶음면은 ‘중독성 있는 매운맛’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견인하며 지난해엔 누적판매 30억개를 넘겼죠.

60여년 역사 ‘라면의 원조’ 이미지를 넘어 젊고 세련된 회사로 거듭나려는 홍보·마케팅 활동도 눈길을 끕니다.

특히 지난해 10월 유튜브에서 공개한 창사 60주년 기념 광고 프로젝트는 신선한 방식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삼양라면을 평범한 주인공 ‘산양’으로, 불닭볶음면을 신흥 세력 ‘암탉’으로 의인화해 묘사한 뮤지컬 애니메이션 형식의 광고는 1편 조회수가 900만회를 넘길 정도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배불리 먹이겠다는 꿈에서 시작된 삼양식품, 이제는 배고픔뿐 아니라 보는 재미까지 충족시키고 있는데요. MZ세대를 사로잡은 삼양식품이 앞으로는 어떤 신선한 마케팅을 펼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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