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사회적 특권과 억압은 사회적 정체성에 의해서 발생하는 일이지만 결국 그것이 작동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다. 즉, 우리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할 때 무언가를 ‘하는가’ 또는 ‘하지 않는가’가 사회적 특권과 억압을 발생시킨다. 바꿔 말하면, 사회적 정체성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특권과 억압을 멈출 수 있는 것도 우리다. 누군가를 대할 때 나의 언행은 의식적이기도 하지만 무의식 역시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것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지만, 가능하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에 의해서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것이 ‘차별’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차별 그리고 사회적 특권과 억압의 사회구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누군가에게 가해지는 차별적인 언행은 그런 언행을 경험할 필요가 없는 특권그룹의 특권을 강화시킨다.

차별이 언행으로 드러나는 결과라면 차별적인 언행을 만드는 것은 생각과 감정이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라는 생각 등의 내가 믿지 않아도 사회 속에 퍼져있는 어떤 그룹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고정관념이라고 한다. 이런 고정관념이 내 안에 들어와서 ‘대학도 안나왔는데 뭘 할 수 있겠어’, ’신뢰할 수 없어’와 같이 내가 그 생각을 믿고 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긴 것을 편견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과 감정에 기반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사람임에도 고용을 하지 않았다면 이를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 고용시 업무와 상관도 없는 대학교 졸업 여부나 학벌을 따진다면 이것은 직무에 필요한 역량과 상관없는 대학 졸업 여부를 평가 항목에 넣는 것이 차별이 일어나게 만드는 ‘무언가 하는 행동’이며, 학력/학벌중심주의 사회가 유지되게끔 하는 역할이 된다.

장애인마다 장애 유형과 정도 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은 아무 것도 혼자서 할 수 없는 사람이야’라는 생각, ‘장애인이 오지는 않겠지’, ‘장애인은 늘 도움이 필요해’라는 생각이 사회에 퍼져 있다면 이를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내 안에 들어와서 ‘장애인을 마주치게 되면 늘 도와주어야 할 것 같아서 부담스러워’, ‘나도 힘든데 장애인을 위해 배려와 양보를 해야 한다니 억울하네’와 같은 감정이 생겼다면 이를 편견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과 감정에 기반해서 사적인 생활에서 장애인과의 만남을 최대한 피한다든가, 회사에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다면 이를 차별이라고 한다. 행사를 준비할 때 장애인이 행사에 올 일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휠체어 접근성이나 문자통역이나 수어통역을 고려하지 않게 되고 장애인이 배제되는 행사를 기획할 수 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비장애인중심주의 사회가 유지되게끔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차별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비장애인 중심적으로 사회가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장애인이 배제되고 있는 사회구조를 보지 못한 채 차별의 이유를 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 개인의 탓(결핍, 부족, 장애를 극복하지 못함 등)으로 돌리는 현상 그리고 철저히 자본의 관점에 의해서 인간을 평가하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잣대를 직시해야 한다.

이를 나이에 대입해서 생각해 봐도 좋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에 대해서 적어놓은 직무기술서를 보면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데 지원자격요건을 보면 나이 제한이 있어서 지원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제는 무언가를 적시 해두면 ‘차별이라고 할까봐’ 정확히 적어두지는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명확히 나이를 제한해 두지는 않았지만 암암리에 적용되는 나이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신입사원 나이 제한’ 같은 것은 왜 존재하는 걸까? ‘나이가 많은 사람을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으로 뽑으면 기존의 직원들이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 ‘회사의 질서나 분위기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등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나이권력에 대해서 사고하고 회사의 문화를 나이, 성별 등 그 어떤 정체성과도 상관없이 평등한 문화로 만들어 가려는 노력없이 그저 기존에 “질서”로 여겨지는 획일적이고 억압적인 인습에 여전히 우리 모두를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한국인들이 이주민들보다 똑똑하고 성실하지’, ‘한국인들이 세계적으로 봐도 우월해’와 같은 생각은 특별히 어떤 근거 자료가 있는 게 아니다. 신념이거나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거나 개인의 한정적인 체험을 기반으로 한다. 구조적인 차별과 억압적인 상황 속에 놓여있는 이주민의 모습에 대표성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생각을 기반으로 ‘이주민들이 범죄를 저지를까봐 무서워’, ‘가뜩이나 일자리도 없는데 이주민들이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뺏어 간다고 하니 억울해’와 같은 감정이 생긴다. 이는 이주민들이 실제로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 알아가지 못하게 하는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하게 된다. 사회 속에 떠돌아 다니는 고정관념이 나에게 어떠한 감정을 주는 편견으로 자리 잡았다면 그 감정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내 감정은 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부정적인 감정을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든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차별적인 언행이 튀어나오게 된다. 편견의 힘은 매우 강하다. 편견은 차별을 조장하고 심화시키며 정당화하고 합리화한다.

차별금지법이 금지하고 있는 영역이 1)고용, 2)재화/서비스, 3)교육/직업훈련, 4)행정 네 가지 라는 것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면 이 법에 의해서 가장 크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정체성이 위에서 예로 들어 설명한 나이, 학력, 장애, 인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이, 학력, 장애, 인종에 의해 고용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학력이 어떻든 고용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 장애와 인종도 마찬가지다. 직무기술서에 적혀있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은 차별 없이 평가받고 고용될 수 있게 되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차별금지법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곳은 재계라고 할 수 있다. 재계는 이런 점을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크게 반발하거나 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성소수자를 전면에 내세워 싸우고 있는 극우개신교계가 마치 차별금지법을 막는 것이 개신교의 마지막 사명인 것처럼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기 때문에 재계는 그저 대신 싸워주는 극우개신교에게 ‘고마워’하며 그 뒤에 숨어있는 듯하다. 성소수자들은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이 네 가지 영역(고용, 재화/서비스, 교육/직업훈련, 행정)에서의 차별을 피하는 방법을 택하며 살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들이 조금 더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내면서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법이지 기존에 성소수자들이 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법이 아닌 셈이다.

차별금지법은 ‘시험주의’ 수준에 갇혀버린 ‘공정 담론’을 구할 수 있다. 공정, 공존, 평등이 무엇인지 깊게 이야기 나눌 수 있게 할 것이다. ‘무엇이 차별인지’ 그리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 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게 할 것이다. “나”를 넘어 “우리”를 상상하게 할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내가 목소리 내야 하는 이유를 알게 해줄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차별받는 모든 존재들을 위한 평등의 바람이 될 것이다.

●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학술위원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전) 숭실대학교 외래교수

- 전)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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