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출마 선언···‘맞춤형 교육’ 도입
첫해 아산시 서울대합격 10명 중 9명
4년 만에 ‘실력’ 증명···정관 고쳐 재임
‘삼고초려’, 틀리지않아···명문고 반열↑
교육과정 정상화가 곧 공교육 정상화

[윤철순의 낭중지추-囊中之錐]는 풀이 그대로 ‘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면 삐져나올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자하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주머니 속 송곳은 반드시 주머니를 뚫고 나옵니다. ‘송곳’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박하식 전 삼성고등학교 교장 ⓒ투데이신문
박하식 전 삼성고등학교 교장 ⓒ투데이신문

“전국에서 인재를 모아 가르치겠다는 게 아닙니다. 탕정에서 일하고 있는 평범한 삼성의 생산직원 자녀들을 위해 개교하는 것입니다. 이 학교야말로 교장선생님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실 수 있는 곳이 될 겁니다.”

세 번째 찾아온 삼성그룹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진정한 실력이고 업적이겠냐’며 신경을 자극했다. 설득하러 온 사람이 맞는지 의아스러웠다. 그러나 ‘도발적 설득’ 이면에서 간절함이 읽혔다.

삼성다운 삼고초려(三顧草廬)였다. 진짜 실력인지 의문이라는 도발은 그동안의 삶을 모두 부정당한 것처럼 들렸다. 그래도 나름 혁신교육 선도자란 소릴 제법 들으며 살아왔는데, 진짜 실력인지 모르겠다니. 자괴감마저 들었다.

도발적 제안에 마음이 흔들렸다. 실력을 확인해주고도 싶었다. 2013년 3월. 결국, 4년 연장된 경기외고 교장 직을 반년 만에 던지고 탕정으로 향했다. ‘배신’의 비난을 무릎 쓴 채 삼성고등학교 개교추진단장을 맡았다.

◆ 졸업 첫 해, 아산 전체 서울대 합격생 10명 중 9명 배출

【투데이신문 윤철순 기자】 삼성고는 충남 유일의 광역단위 자율형사립고로, 천안·아산 지역에서 근무하는 삼성 임직원들의 자녀교육 문제 해소 차원에서 설립됐다. 삼성이 학교 설립에 1000억원가량을 투자하고, 민족사관고와 용인·경기 외고의 기틀을 마련한 박하식 교장을 영입하면서 개교 때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 연말, 삼성고를 개교 8년 만에 명문고 반열에 올려놓고 퇴임한 박 전 교장은 교육계에서 ‘글로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로 평가 받는다. 현재 ‘대한민국 교육정상화 네트워크’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교가(校歌)까지 직접 작사할 정도로 삼성고에 대한 애착이 특별했다.

비난을 감수하며 선택한 책임도 그랬지만, 스스로에 대한 역량을 점검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기 때문이었다. 초대 교장 부임 3년 만인 지난 2017년. 그는 첫 졸업식이 있던 그해 9명의 졸업생을 서울대에 보냈다. 당시 아산시 전체 서울대 합격생은 모두 10명이었다.

그렇게 그는 ‘진짜 실력’을 증명해 보이며 4년의 임기를 마쳤다. 학교 측은 정년이 가까워져 연임이 불가능한 그를 정관(定款)까지 뜯어고치며 다시 눌러 앉혔다. 이후 삼성고는 해마다 수십 명의 ‘스카이 합격생’을 배출했다. 지난해엔 ‘수시’로만 13명을 서울대에 보냈다.

끝없는 교육혁신과 글로벌 인재양성에 매진했던 박 전 교장이 41년간 몸담았던 교육현장을 떠나며 새로운 도전을 선언했다. “충남을 혁신교육의 선도지역으로 만들겠다”며 교육감선거에 나선 것이다.

그는 “퇴임 1년여를 앞두고 ‘삼성고를 통해 보여준 교육혁신을 충남지역 전체 학교로 확산시켜 달라’는 많은 사람들의 요청이 있었다”며 “맞춤형 교육시스템을 충남교육에 도입해 한국교육의 선도 지역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그가 꿈꾸는 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19일, 교육계에 혁신을 불러일으키겠다며 충남교육감 직에 도전장을 낸 박하식(66) 전 삼성고등학교 교장을 서울 여의도 투데이신문사에서 만났다.

지난 2014년 2월, 당시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과 박하식 교장 등 관계자들이 삼성고등학교 준공식 당일 학교 내 시설물들을 둘러보고 있다. ⓒ박하식 제공
지난 2014년 2월, 당시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과 박하식 교장 등이 삼성고등학교 준공식 당일 학교 내 시설물들을 둘러보고 있다. ⓒ박하식 제공

◆ ‘맞춤형 교육’으로 충남교육 혁신 일으킬 것

- 쉽지 않은 도전에 나섰습니다.

“퇴임 1년 전부터, ‘혁신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충남교육을 바꿔야한다’며 출마를 권유하는 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긴 시간 고민 끝에 그동안의 노하우를 충남교육에 접목시켜 국내 최고의 혁신교육 선도 지역으로 만들어보자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꼭 이뤄낼 것입니다.”

- 왜, ‘충남교육감은 박하식’이어야 하나요?

“저는 41년간 단 한순간도 교육현장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현장에서 연구하며, 끝없는 혁신을 통해 많은 변화와 성공을 이뤄냈고요. 특히 ‘학생을 위한 선택 진로별 교육과정(맞춤형 교육)’은 저의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장경험과 이론적 바탕에 근거한 전문가는 아마 저밖에 없을 겁니다. 하하.”

- 교직생활 41년이면 지칠 만도 할 텐데요.

“사실 처음엔 출마 권유를 한귀로 흘렸어요. 삼성고도 궤도에 올라섰고, 교단생활도 40년 넘고 해서 명예롭게 퇴임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해했었거든요. (교육감이) 성향과 잘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그런데, 충남 교육에 혁신을 일으켜 달라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 사람과 의논 끝에 마지막 열정을 태워보자고 결심하게 됐죠.”

- 충남에 어떤 교육을 도입하겠다는 건가요.

“‘맞춤형 교육’입니다. 3~18세까지가 교육청 소관 교육인데요, 개별 학생에 대한 맞춤식 교육시스템으로 책임교육을 구현해야 합니다. 삼성고를 이끌며 느낀 건데, 자신감과 목표의식을 분명하게 제시해주면 얼마든지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거든요. 이 지역 학생들 능력도 충분하고요. 저는 이걸 실행해봤기 때문에 충남교육 전반에 적용하면 혁신이 일어날 거라 확신합니다.”

- 맞춤형 교육이 뭔가요.

“입시·진학교육 전에 인·적성과 창의성 교육을 먼저 해야 해요. 이를 통해 학생별 눈높이에 맞는 교육프로그램을 짜야하고요. 학력·진학·취업 등을 위한 교육은 이후에 하면 됩니다. 삼성고에 적용했던 MSMP라는 프로그램인데, 이런 교육방식을 통해 학력, 진학률, 취업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거든요.”

삼성고는 ‘66일, 기적의 용광로’라는 MSMP(Miracle of Sixty-six days Melting Pot) 프로그램을 신입생 초기에 운영한다. 2월말 입교부터 5월초까지 고교과정에 필요한 인·적성과 창의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 ‘혁신교육 프로그램’을 말하는 건가요.

“사실 혁신교육이란 게 별거 아니에요. 저는 원칙을 지키는 게 혁신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걸 했다기보다 해야 할 것을 하는 게 혁신이란 거죠. 교육과정이나 IB(국제 바칼로레아)교육 등으로 전국에서 삼성고 견학을 많이 오시는데, 국내에 없는 걸 연구해서 만들거나 한 게 없거든요. 그냥 현행 교육법에 나와 있는 과정과 원칙을 제대로 지킨 것뿐입니다.”

박 전 교장은 영락중·현대고를 거쳐 국내 1호 ‘글로벌 고등학교’라 할 수 있는 민족사관고와 외대부속외고, 경기외고, 삼성고 교장으로 재직하며 국내 처음 국제인증 교육프로그램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를 도입하는 등 가는 곳마다 혁신을 시도했다. 민사고와 외대부속·경기외고에서 글로벌 고등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립해 글로벌 인재를 양성했고, ‘세계적인 학교 만들기’에 주력하고자 노력했다. 경기외고와 삼성고를 IB인증 1~2호 학교로 만든 것도 그에 따른 일환이었다.

현재 국내 교육현장에 널리 도입되고 있는 IB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비영리교육기관인 IBO(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가 1968년부터 운영하는 국제인증 교육프로그램이다. 교육계에선 ‘학습자의 자기 주도적 성장을 추구하는 교육체계’로 정의한다. 미국, 일본 등은 공교육 발전을 위해 IB를 도입했다. 2021년 3월 기준 160여 개국에서 적용, 운영 중이다.

삼성고등학교 전경 ⓒ박하식 제공
삼성고등학교 전경 ⓒ박하식 제공

- ‘원칙을 지키는 게 혁신’이란, 어떤 건가요?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초·중학교까지는 공통 교육이고 고등학교는 선택교육이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이걸 직접 선택합니다. 관행적으로. 원래는 학생한테 선택권을 줘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고1 수업시간표는 학생 의사가 반영된 게 아니잖아요. 학교 운영방식과 선생님이 편의적으로 만든 거죠. 이런 선택권을 학생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원래 학생들이 선택하게 돼 있으니까. 삼성고는 개교 때부터 ‘학생 선택 진로별 교육 과정’이라는 커리큘럼을 만들었는데, 이게 새로운 게 아니에요. 원래 교육과정 정신에 있는 겁니다.”

- 그럼, 왜 다른 학교들은 이걸 안 하는 건가요?

“고정관념 때문에 그래요. 반별로 수업을 해야 한다는 그런. 삼성고는 개교 때부터 무학년 무계열 수강신청을 하도록 했는데, 이게 원래 그렇게 하도록 우리 교육과정에 돼 있어요. 현 정부가 고교학점제를 실시한다고 하잖아요. 3년 후부터 전면 실시되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에요. 새로운 게 아니라 원래하기로 돼 있던 걸 제대로 하자는 겁니다. 그 바람에 삼성고가 고교학점제 모델학교가 됐죠. 원래 있던 제도를 원칙대로 실천하는 게 혁신이 되는 겁니다. 하하.”

고교학점제는 고등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 이수하고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다. 대학교육과정과 같은 개념이다. 서구권에선 보편화돼 있지만, 국내에선 박 전 교장이 재임했던 민사고 등 일부에서만 운영하고 있다. 내년부터 고1 학생을 시작으로 순차 시행에 들어가 오는 2025년엔 모든 고등학교가 고교학점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 교육감 직은 교장 업무와 많이 다를 텐데요.

“물론이죠. 하지만, 현장실무 경험이 얼마나 되고 또 어떤 혁신적 성과를 냈느냐 하는 부분은 교육감 직무수행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교육감 권한 중에 가장 큰 게 재정과 인사(人事)인데, 충남교육 예산이 3조7000억 가량 되거든요. 그 금액을 충남 전체 학생 수로 나눠봤는데, 삼성고에서 했던 예산과 차이가 없더라고요. 즉, 이 돈만 잘 쓰면 삼성고와 같은 교육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지금 예산만으로도 혁신교육, 양질의 교육이 충분합니다.”

- 행정이나 인사(人事)도 중요하고요.

“그렇죠. 특히, 인사는 효율적으로 조정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학연, 지연, 또는 교원단체 영향 등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저는 이 지역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이게 가능하죠. 또 ‘삼성’에서 오래했기 때문에 상당한 노하우가 있고요. 삼성의 행정 능력을 충남교육에 적용하면 효율성도 크게 올릴 수 있습니다.”

- 충남이 넓은 지역인데, 정책도 맞춤형이 필요하겠어요.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사회 모두가 함께 하는 교육정책이 필요해요. 충남이 15개 시군인데, 남쪽지역과 북쪽의 문제가 다릅니다. 서울과 가까운 북쪽은 소득이나 교육수준이 높고, 남쪽은 학생이 너무 없어 문제죠. 그러다보니 지역에 따른 맞춤 행정이 필요한데, 북쪽은 서울 학원으로 가는 걸 막기 위한 강남 수준의 교육환경 제공이 필요합니다. 또 남쪽은 기숙형 학교를 만들어서 교육 때문에 지역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 되고요. 섬이나 낙도지역은 지역 어른들과 의논해 낙후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박하식 전 삼성고등학교 교장이 펴낸 도서 ‘K-세계인으로 키워라’ 표지 ⓒ박하식 제공
K-세계인으로 키워라 ⓒ투데이신문

◆ K-EDU도 K-문화처럼 수출해야 할 때

- ‘K-세계인으로 키워라’는 책도 내셨어요.

“우리나라가 공식적인 선진국이 됐잖아요. K 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고요. 그런데 교육은 아직 ‘K-교육’이 없어요. 해서 ‘K-EDU’ 시대를 열어가야겠다, ‘K-에듀’를 수출할 때가 됐다, 그런 생각으로 출간하게 됐습니다.”

- 어떤 내용인가요.

“우리가 고쳐야 될 교육문제와 ‘K세계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갖춰야 할 역량이 뭔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40년간 학생들을 가르쳐 왔는데, 세계적 인물로 성장해나가는 걸 보며 인성교육과 신뢰를 얻는 방법 등 K-세계인이 되기 위한 속성을 열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더라고요. 또 그러기 위해 학생 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열두 가지로 풀었고요.”

- 제자들 얘기가 많겠네요.

“맞아요. 여러 학교를 거쳤고 시간도 꽤 흐르다보니, 이젠 50대 제자도 많거든요. 그중엔 정치인도 있고, 사업가도 많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돼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들이 학교생활 땐 어떤 모습이었는지, 여러 사례의 특성을 정리한 내용 등이 있죠. 읽는 독자 모두가 세계인이 돼 K-에듀 시대를 열었으면 좋겠다는 의도로 냈습니다.”

- 학생보다는 학부모들이 읽어야겠네요.

“그렇습니다. 정말 그런 마음으로 썼어요. 읽어보면, ‘세계인으로 키우려면 내 아이를 이렇게 가르쳐야 겠구나’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학부모님과 선생님들께서 읽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자신합니다. 하하.”

- ‘정치적 의미’가 담긴 책은 아니죠?

“전혀요. 우리나라 교육이 정말 발전가능성이 큰데, 자꾸 늦어지고 정체되는 이유가 정치가 개입되기 때문이거든요. 교육은 교육논리로만 봐야 합니다. 그래야 K-에듀를 이뤄낼 수 있거든요. 이 책은 ‘K-에듀를 선도하는 충남’을 기본으로 생각하면서 집필한 겁니다.”

‘K-세계인으로 키워라’는 41년간의 혁신교육으로 ‘세계인’을 키워낸 박 전 교장의 ‘퇴임작’으로, 그의 교육철학과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현장을 통해 얻은 값진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미래인재의 역량을 10C라는 핵심 키워드로 나열했고, K-세계인으로 성장한 공통 특징도 12가지로 요약, 정리돼 있다.

박 전 교장은 책을 통해 K-POP과 K-드라마, K-영화 등 문화예술 분야의 K-트렌드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선진국 단계로 높였지만, 교육 분야만큼은 여전히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서술한다. 그는 “과거 교육방식은 이제 세계무대서 통하지 않는다”며 “우리 아이들이 변화와 혁신의 파도에 올라타고 즐기기 위해선 글로벌 미래역량을 탄탄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성적과 좋은 대학만이 확실하고 안전한 성공공식이라 믿으며 ‘내 아이를 엉뚱한 길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 늦기 전에 점검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투데이신문
박하식 전 삼성고등학교 교장 ⓒ투데이신문

◆ 공교육 정상화는 곧, ‘교육과정’의 정상화

- ‘공교육정상화’ 활동도 하고 계시죠.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교육정상화 네트워크’ 공동대표도 맡고 있습니다.”

- 구체적으로 공교육을 어떻게 정상화해야 된다는 건가요?

“공교육 정상화의 기본은 교육과정의 정상화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교육에 대한 국가영향력과 강제력이 강한데, 그 강제력을 집행할 만한 교육 상부구조가 굉장히 잘 돼 있어요. 무슨 얘기냐 하면, 학교교육 관련법이 정말 잘 돼 있는데 이걸 안 지키는 겁니다. 헌법 31조에 보면,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돼 있거든요. 교육기본법 아래 유초중등교육법도 있고요. 이걸 지키기만 해도 공교육은 정상화 됩니다.”

- 좀 더 쉽게 설명해 주셔야할 거 같네요.

“예를 들면, ‘평등교육’ 때문에 자사·특목고를 없앤다 그러잖아요. 그런데 이건 헌법을 잘못 이해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해요. 분명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라고 돼 있는데 이건 차별이 아니라 차이, 즉 능력에 맞게 교육을 하라는 겁니다. 다문화 학생이나 장애학생들은 일반학생들과 차이가 있으니, 그 아이들 능력에 맞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얘기죠. 당연히 평균학생들보다 뛰어난 학생들은 그에 맞게 교육해야 하고요.”

- 자칫, ‘차별교육’으로 들릴 수도 있겠는데요.

“차별과 차이는 엄연히 다른 문제잖아요. 교육기본법 2조에,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얘기가 나옵니다. 근데, 아이들의 성적관리를 상대평가 내신으로 경쟁시키는 건 홍익인간 이념에 맞지 않죠. 이런 게 차별이죠. 또 인격을 도야(陶冶)한다 그러는데, 현장에선 인권 얘기만 나오고요. 인권 얘기도 있긴 하지만, 그건 학습윤리가 전제돼야하는 것이거든요. 다시 말해 헌법과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누리교육과정 등에 나와 있는 교육과정만 제대로 구현해도 우리나라 교육은 바꿀 수 있습니다.”

- 요즘은 ‘맞춤교육’이 가능한 다양한 기술적 환경도 좋아지긴 했죠.

“그럼요. 소위 에듀테크(Edutech)라 그러죠. AI교육로봇 등이 나오면, 개별 학생의 학력을 정확하게 진단해주는 것까지 가능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진단에 맞게 과제를 주고 지도하면 다양한 학생들이 함께 공부한다고 해도 개별 맞춤형 교육환경이 충분히 조성된다고 봐요.”

- 결국, 원칙에 얼마나 충실하냐 하는 문제와 더불어 기술적 환경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거네요.

“맞아요. 원 정신을 무시하고 오로지 대학진학을 위한 수능점수에만 매달리는 이런 행태부터 빨리 고쳐야 돼요. 이런 교육관련 법들을 제대로 알고, 교육과정을 제대로 실천하는 게 곧 공교육의 정상화를 앞당기는 길인 셈이죠.”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는,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다.

민족사관고등학교 교감 ⓒ박하식 제공
민족사관고등학교 교감 ⓒ박하식 제공

◆ 폐교위기에서 ‘아이비리그 최다 배출학교’로

- 40대 초반에 민족사관고등학교 교감도 지내셨어요.

“처음부터 교감을 한 건 아니고요. 평교사로 있다 교감이 됐죠. 민사고가 1996년에 개교했는데, 현대고등학교서 함께 근무하던 동료 선생님이 그 학교 개교 멤버로 참여해 먼저 교감이 됐는데, 그 분 권유로 인연이 됐었죠.”

- 서울에서 강원도 ‘산골학교’로 가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말 그랬어요. 근데, 가보니까 완전히 새로운 교육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더라고요. 그 시대에. 대학처럼 선생님 연구실도 개별로 다 있고. 학생들도 선생님 연구실 가서 수업 듣고 그런 식으로요. 거기다 그런 고품질 교육을 전액 무료로 한다는 거예요. 당시 ‘파스퇴르유업’ 창업주가 학교재단을 설립해서 아주 야심차고 파격적으로 운영하는 걸 보고 참여하게 됐던 거죠.”

- 파스퇴르유업은 어려운 과정을 겪지 않았나요?

“그랬죠. 개교 1년쯤 후에 갔는데, 가고난 후 1년 정도 지나서 파스퇴르가 부도났거든요. 1998년 1월경에요. 정말 어렵게 결정하고 내려간 건데. 그땐 참 막막하더라고요. 충격도 컸고요.”

- 그래서 학교를 떠나셨나요?

“아뇨. 당시, 선생님들이 20여명가량 됐는데, 모두 ‘이렇게 좋은 뜻으로 만들어진 학교를 우리사회가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 같은 걸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비대위’를 꾸려 학교정상화에 매달렸죠. 모든 선생님들이 ‘무보수 결의’까지 하면서요. 그때 제가 비대위원장을 맡았었고요.”

- 힘든 과정이었겠네요.

“간절한 마음으로 학교 살리기에 전력을 쏟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이렇게 하니까 학생들도 동요하지 않고, 학부모님들은 오히려 광화문까지 휘장 두르고 나가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사정을 알리고 호소하고 그러셨어요.”

- 그래도 재단 기업이 부도났으니 학교정상화도 쉽지 않았겠어요.

“모두가 한 마음으로 매달린 때문인지, 채권단 마음이 움직이더라고요. 회사가 부실하게 운영해 부도난 게 아니란 걸 안 거죠. 수익을 전부 교육에 쏟아 부어 발생한 사태라는 걸요. 또 채권회수를 하려면 기업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아니까, 나중에 파스퇴르 최명재 회장을 복귀시키면서 학교도 정상화 됐어요.”

- 평교사였는데도 비대위원장을 맡아 위기를 잘 넘겼네요.

“그땐 모두에게 간절함이 있었으니까요. 나중에 상황이 정리되면서 이런 내용을 접한 최명재 이사장이 저를 교감으로 발령 내더라고요. 그때가 1999년이었어요. 평교사로 갔다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교감이 된 겁니다. 하하.”

- 정상화 됐어도 워낙 충격이 커 신입생 모집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 것도 있었지만, 당시 고교 내신등급제 인정이 안 된다는 것 때문에 학생들이 떠나는 일이 발생했어요. 그래서 목표를 수정했죠. ‘서울대가 아니라 세계 유수의 대학으로 갈 학생들만 와라’ 이렇게 홍보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때 국제교육프로그램도 만들고 그러면서 첫 해부터 미국의 스텐포드, MIT, 하버드 등 아이비리그 입학생을 배출했습니다. 전화위복이 된 거죠. 하하.”

박 전 교장은 고려대학교 대학원 과정을 통해 교육학박사를 취득한 인물로, 철저한 현장전문가다. 민사고 평교사 당시의 재단 기업이었던 파스퇴르유업 부도로 폐교 위기와 비대위원장, 교감 발탁, 세계로 시야를 돌린 ‘글로벌 고등학교’로의 승부수 등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민사고를 일약 국내 최고의 ‘영재고’로 만들었다.

강원도 횡성군 내에 소재한 민족사관고등학교(KMLA)는 전국단위 자사고로 대원외고와 대일외고, 서울과학고, 경기과학고 등과 함께 대표적인 1세대 ‘특목자사고’다. 국제반이 있는 고등학교 중에 가장 먼저 국제반을 신설했다.

민사고는 파스퇴르유업 창업자인 최명재 회장이 한국의 ‘이튼 칼리지’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설립, 지난 1996년에 개교했다. 정원은 학년 당 165명꼴로, 한 반에 15~16명씩 10학급 소수정예로 운영된다. 전교생 모두 100% 기숙사생활을 한다. 설립 취지는 ‘민족정신으로 무장한 세계적 지도자 양성’이다.

7년 동안 민사고 혁신에 매달렸던 그는 이후 용인외고(용인외국어대학교부속고등학교)와 경기외고를 거치며 가는 곳마다 혁신교육을 도입, 전국적인 주목을 끌었다. 그에겐 ‘공교육계의 마이더스 손’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투데이신문
박하식 전 삼성고등학교 교장 ⓒ투데이신문

◆ 중도보수 후보 단일화기구, 공신력 높여야

- ‘교육감 선거를 위한 단일화기구’는 무슨 얘긴가요?

“‘충남교육혁신포럼’이라는 기구인데요. 회원이 2만 명이 넘어요. 그만큼 충남교육을 걱정하는 많은 분들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통의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거죠. 그래서 중도보수 교육감후보를 단일화해서 본선에 내보내자, 그래야 승산이 있고 충남교육을 바로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모여 단일화기구를 띄운 겁니다.”

- 단일화에 참여하시나요?

“그럼요. 대선 끝나면, 회원이 더 늘어날 것 같은데요. 이정도면 공신력도 있고, 이런 기구를 통해 단일화가 되면 명분도 있고 승리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해요. 물론, 단일화에 패한 분이 나올 수도 있지만요. 단일화에 참여하는 분 모두 교육자들이니,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행동은 안 하시겠죠 뭐. 하하. 불복 출마하면 낙선운동도 한다고 하니, 단일화를 주도하는 분들을 믿어봐야죠.”

- 퇴임식은 하셨죠?

“지난 연말에 교내행사로 간단하게 치렀습니다. 코로나19도 여전하고 해서.”

- 41년 교직생활을 마감한 행사였으니, 감회가 깊었겠어요.

“1981년부터 교사생활을 했는데, 한 우물만 팠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더라고요. 아마, 주변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특히, 개교준비부터 교직생활 마지막까지 보낸 9년간의 삼성고 시간은 더욱 특별한 시간이었어요.”

-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교직생활 1/4을 충절과 예절의 고장에서 보낼 수 있어 정말 뜻 깊었습니다. 삼성고를 통해 보여드린 것처럼 충남교육을 위해 남은 열정을 태우고 싶습니다. 충남교육이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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