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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썸씽로튼’ 공연 장면 ⓒ엠씨어터

‘내 그대를 여름날에 비하랴. 그대는 여름보다 더 사랑스럽고 온화하여라’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번은 무더운 계절이면 문득 떠오르던 명작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뜨거운 환호 속에 좌중을 휘어잡으며 이 구절을 읊는 ‘록스타’ 셰익스피어가 자연스레 겹친다. 시간을 거슬러 온 뮤지컬 속 셰익스피어는 과장된 목깃이 달린 가죽 재킷을 입고 한껏 리듬을 타며 소네트를 노래한다. 만약 셰익스피어가 이런 모습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이렇게 유쾌한 상상이 꼬리를 물수록 기발함이 더욱 빛난다.

뮤지컬 ‘썸씽로튼(Something Rotten!)’이 또 한 번 르네상스 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썸씽로튼’은 변함없이 사랑스러운 무대로 웃음꽃을 피워냈다. 특히 이번엔 2020년 한국어 초연보다 좀 더 친근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모습으로 돌아와 눈길을 끈다. 자연히 전체적인 분위기도 더 밝아졌다. 공연은 오는 4월 10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제목만 보면 어떤 내용일지 좀처럼 예측하기 어렵지만, 작품은 인류 최초로 뮤지컬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 바텀 형제가 있었다는 상상에 기반해 전개된다. 뮤지컬의 기원을 뮤지컬로 풀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로운데 르네상스 시대 실존했던 작가 셰익스피어와 그의 희극 속 캐릭터, 그리고 새로운 인물들이 어울려 완성한 무대가 매우 참신하게 다가온다.

뚜렷한 서사에 적절한 비틀기, 패러디가 가미된 점 또한 뮤지컬 ‘썸씽로튼’이 가진 매력이다. 작품에는 뮤지컬을 즐겨 봐온 관객이라면 금세 발견할 수 있는 명작 뮤지컬들이 다양한 형태로 숨어있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인 ‘햄릿’ 명대사가 인용된 대목이나 ‘베니스의 상인’ 속 포샤, 샤일록이 원작과 완전히 다르게 등장하는 부분도 재미있다. 이렇게 뮤지컬 ‘썸씽로튼’은 마치 재미난 동화를 눈으로 ‘보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한다.

작품 배경이 된 1595년 영국은 많은 이들이 시와 노래를 향유하고 일상의 새로운 발견을 이어가던 시기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무대 위로 유랑 악사가 등장해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면 곧장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펼쳐진다.

극단을 운영하던 닉 바텀과 나이젤 바텀 형제는 극심한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는다. 한솥밥을 먹던 셰익스피어가 이제는 당대 최고 스타라 추앙받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바닥에서 위로 힘차게 솟아오를 언젠가를 꿈꾼다. 그러나 눈앞에 닥친 위기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후원마저 끊긴 데다 빚 독촉에 시달리기까지 하자, 결국 닉은 아내 비아가 숨겨둔 비상금을 가지고 점을 치러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조카 토마스 노스트라다무스를 만나 성공을 가져올 열쇠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러다 그는 엉성한 듯 묘하게 들어맞는 예언을 바탕으로 인류 최초의 ‘뮤지컬’ 제작에 돌입한다.

하지만 낯선 장르가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리 없었다. 뮤지컬을 올리는 일이 난관에 부딪히자 닉은 또다시 노스트라다무스를 찾아가 셰익스피어가 만들 미래의 역작을 엿봐달라고 부탁한다. 한동안 헤매던 노스트라다무스는 ‘햄릿(Hamlet)’을 ‘오믈렛(Omelet)’으로 잘못 보고, 급기야 닉은 이 어설픈 예언에 푹 빠져 달걀부터 시작해 온갖 작품이 뒤섞여 나오는 뮤지컬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그런 가운데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던 셰익스피어는 오히려 반대로 바텀 형제가 가진 아이디어를 얻고자 몰래 극단에 잠입한다. 여기에 청교도인 아버지 제레마이어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이젤과 사랑을 이어가려는 포샤와,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삶의 태도로 위기를 극복하는 비아 이야기가 어우러지면서 작품은 흥미를 더해간다. 뮤지컬 ‘오믈렛’의 성공 여부를 지켜보는 동안 관객들은 문득 ‘진짜 썩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2020년 초연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진 점은 없지만, 확실히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춰 변화를 시도한 부분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실제로 지난 1월 5일 오후 진행된 ‘썸씽로튼’ 프레스콜에서 이지나 연출은 초연 준비과정을 돌이켜보며 “워낙 독특하고 발상이 좋은 작품이라 굳이 고치려 하기보다 원작에 충실하게 가려고 했다”라고 밝혔다. 라이선스 작품이다 보니 수정에 제약이 있을 법도 한데, ‘썸씽로튼’ 프로덕션의 경우 변경에 유연했다고도 전했다. 덕분에 한국인의 정서와 취향에 조금 더 가깝게 바꾼 지금의 ‘썸씽로튼’이 탄생할 수 있었고, 또 배우들이 가진 장점을 확실하게 부각할 수 있었다. 이런 연출상 의도는 무대에서도 확연히 돋보였다.

신구 조화가 두드러진 캐스트도 주목해 볼 만 하다. 강한 책임감을 지닌 극단 리더 닉 바텀 역은 강필석과 이충주, 양요섭, 김동완이 맡았다. 그리고 그의 경쟁자로서 시대를 뛰어넘은 대작가 셰익스피어로는 최재림, 서경수, 윤지성이 함께 한다. 이 중 강필석과 서경수는 지난 한국어 초연 무대에 먼저 올라 각각 자신만의 캐릭터 구축을 탄탄히 해낸 바 있다.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극 중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노스트라다무스 역은 남경주와 정원영이 맡았다. 두 사람 모두 처음 합류했지만 엉뚱한 듯 나름대로 탁월한 예지력을 지닌 배역에 잘 어울리는 무대를 선보인다. 여기에 임규형, 황순종, 이영미, 안유진, 이채민, 이지수, 이아진, 장민제, 이한밀, 육현욱 등이 같이 무대에 오른다.

중독성 있는 넘버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뮤지컬 애호가라면 듣자마자 흠뻑 빠져들 ‘A Musical’에는 ‘오페라의 유령’, ‘노트르담 드 파리’, ‘렌트’, ‘캣츠’ 등 제목만으로도 설렐 작품들이 가득 담겼다. 특히 이번 재연에서는 오직 한국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작품 멜로디가 포함돼 더욱 특별하다. 또 매력적인 셰익스피어 캐릭터를 잘 드러내는 넘버 ‘Will Power’와 ‘Hard to Be the Bard’, 밝고 사랑스러운 느낌의 ‘We See the Light’도 오랜 잔상을 남긴다.

이처럼 재미뿐만 아니라 의미와 감동까지 모두 잡은 뮤지컬 ‘썸씽로튼’은 좀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의 완벽한 어울림으로 만족감을 극대화한다. 밝은 분위기를 지닌 작품을 보고 싶다거나, 침체한 일상에 활기를 되찾고 싶다면 뮤지컬 ‘썸씽로튼’이 적격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누구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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