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긍긍 산업계, 안전규정‧특별대책 발표
안전 콘트롤타워 신설…협력사 관리 강화
재계 “처벌 과도” VS 노동계 “더 강화해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째인 29일 경기 양주시 은현면 도하리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석재채취장에서 발생한 토사 붕괴사고 현장에서 소방 구조대원 등이 실종자를 찾기 위해 야간 수색을 하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 8분께 골재채취 작업 중 토사가 무너져내리며 작업자 3명이 매몰됐고 그 중 두명을 구조했으나 사망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째인 지난달 29일 경기 양주시 은현면 도하리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석재채취장에서 발생한 토사 붕괴사고 현장에서 소방 구조대원 등이 실종자를 찾기 위해 야간 수색을 하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 8분께 골재채취 작업 중 토사가 무너져내리며 작업자 3명이 매몰됐고 그 중 두명을 구조했으나 사망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삼표산업이 경기 양주시 골재 채취장 토사 붕괴 사고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첫번째 적용 대상이 되면서 산업계 전반에서는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는 분위기다. 다음은 우리일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업계 특성상 안전사고를 줄이기 쉽지 않은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안전관리체계 구축에 서둘러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전규정‧특별대책 내놓는 기업들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사내 게시판에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한 5대 안전 규정’을 공지했다. 지난달 24일부터 시행된 5대 안전 규정은 ▲보행 중 휴대폰 사용 금지(잠깐 멈춤) ▲보행 중 무단횡단 금지(횡단보도 이용) ▲운전 중 휴대폰 사용 금지(조작 필요시 갓길 정차) ▲운전 중 과속 금지(사내 제한속도 준수) ▲자전거 이용 중 헬멧 착용(미착용 시 도보나 셔틀 이용) 등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부터 사내 안전 캠페인의 일환으로 ‘보행 중 휴대폰 사용 금지’를 권고해 왔지만 이번에는 의무 규정으로 강화했다.

이 5대 안전 규정은 삼성 임직원 뿐 아니라 사업장 방문객에게도 적용되며 안전 규정 위반 시 방문객도 일정 기간 출입 제한 조치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삼성전자는 매달 협력업체 최고경영자(CEO)와 간담회를 열고 환경안전법규 동향을 공유하는 등 협력사 안전관리에도 신경쓰는 모습이다.

하청업체 근로자에게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원청 업체 대표까지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협력업체에 대한 안전관리 지원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5일 경기도 여주시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작업 중 고압전류에 감전되는 사고가 일어났던 한국전력공사의 경우 전기공사현장에서 또 다시 산업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사고 근절을 위한 특별대책을 내놨다.

한전은 해당 사고를 계기로 전기가 흐르는 전력선에 작업자가 직접 접촉하면서 작업하는 공법인 직접활선 작업을 퇴출시켰다. 이와 함께 정전 후 작업과, 감전사고 사례가 없고 직접활선에 비해 안전한 간접활선(전력선비접촉) 작업을 확대 하기로 했다.

또 빈번히 일어났던 추락사고를 근절하기 위해 작업자가 전주에 직접 오르는 작업도 전면 금지할 계획이다. 이에 모든 배전공사 작업은 절연버켓(고소작업차) 사용을 원칙으로 하되, 진입이 어렵거나 전기공사업체의 장비수급 여건이 곤란한 경우에 한해 해당 사업소가 사전 안전조치를 검토·승인 후 제한적으로만 예외를 적용할 예정이다. 전국 4만3695개소 철탑에는 추락방지장치도 설치할 방침이다.

ⓒ뉴시스

안전 관리 조직 개편하고 위상 높여

재계는 안전 규정 의무화 및 특별대책을 발표하는 것 외에도 조직개편을 통해 안전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책임자로 임원급 인사를 앉히는 등 안전관리에 힘을 싣고 있다.

LG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대비해 지난해 8월 ‘주요 리스크 관리 조직(CRO)’을 신설했다. 초대 CRO에 최고재무책임자(CFO) 배두용 부사장을 선임했다. 또 CRO 산하 안전관리 조직인 안전환경담당을 안전환경그룹으로 격상했으며 안전환경보건 방침도 새로 만들었다.

최근 크레인 작업 중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현대중공업은 중대재해처벌법 첫날인 지난달 27일 전사 안전 업무를 총괄하는 최고안전책임자(CSO)에 노진율 사장을 승진 선임했다. 이와 함께 현대중공업은 전사 안전 기능을 총괄할 수 있도록 기존 안전경영실을 안전기획실로 변경했다.

포스코는 최근 현장 생산과 안전의 중요성을 고려해 상무보급 전체 승진 인원의 약 40%는 현장 출신으로 이뤄졌고, 제철소 현장 과장급 이상 직원의 승진 규모를 전년대비 10% 이상 대폭 확대했다.

현대차그룹도 산업재해가 상대적으로 많이 일어나는 건설‧철강 분야의 경우 안전관리 조직을 확대 개편하거나 안전분야 컨트롤타워 역할에 부사장급을 총괄로 선임하는 등 사고 예방 중심의 사업 수행 체계로 조직을 정비했다. 특히 건설·철강 분야 협력업체의 안전관리를 위해 총 870억원을 지원했다. 이는 지난해 집행비용인 450억원보다 두 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구체적으로는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제철은 대표이사 직속으로 안전관리 조직을 확대 개편했다.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은 실급 조직을 본부급으로 격상하고 현대제철은 안전분야 컨트롤타워 역할에 부사장급을 총괄로 선임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부터 공사금액 100억원 이상 협력업체의 안전관리자 선임 인건비를 추가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동식 CCTV 설치를 늘려 건설 현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강화한다.

현대건설은 시설 및 장비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행한 건설장비 신호수 배치비용은 물론 건설장비 근로자 협착방지 영상인식시스템 등 스마트 안전장치 지원도 지속한다.

현대제철은 현재 안전인력보다 1.5배 증가한 인원을 채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협력업체 안전지킴이도 지난해에 이어 170여 명 규모로 운영할 예정이다. 발주하는 공사 관련 협력업체에도 법으로 정한 안전관리비 요율 대비 약 50%의 비용을 추가로 지급한다.

이밖에 대한항공도 최근 안전‧보건 관련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안전보안실 산하 산업안전보건팀을 산업안전보건실로 격상했다. 더불어 항공기 안전운항 계획 수립과 조사를 맡는 안전보안실은 항공안전보안실로 명칭을 변경했다. 산업안전보건실과 항공안전보안실은 새로 신설된 최고안전관리책임자(CSO) 직속 기구가 됐으며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이수근 부사장이 CSO를 겸직한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맞춰 안전경영본부를 ‘안전총괄본부’로 개편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컨트롤타워로서 철도안전과 보건 업무를 총괄하도록 했다. 본부 산하에 중대시민재해를 담당하는 ‘시민안전처’와 중대산업재해를 담당하는 ‘산업안전처’로 전담기능을 나누고 인력을 증원하는 등 선제적 안전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또 철도 이용객 안전과 직결되는 인프라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안전설비를 보강하고 첨단 유지보수기술을 도입하며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인력과 예산 등 주요 정책결정은 ‘철도안전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기로 했다. 연구원을 ‘철도안전연구원’으로 개편하고 안전기술 및 정책, 제도 등 철도사고 예방을 위한 연구를 확대한다.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중대재해처벌법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뉴시스

중대재해처벌법 두고 재계·노동계 엇갈린 반응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으로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비하기 위해 기업마다 이같이 조직 개편, 대책 수립 등 안전 관리에 신경 쓰는 모습이지만 처벌 조항이 모호하고 강도가 과도하다면서 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특히 안전관리를 강화해도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업계에서는 강한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이에 기업의 권익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지난달 27일 “적용대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의무 규정이 모호하다”며 “법 시행 과정에서 경영자에게 명백한 고의 과실이 없는 한 과잉수사, 과잉처벌이 이뤄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제도 개선 논의를 본격화해 사후처벌보다 사전예방 위주로 안전보건 체계를 확립하고 기업경영 위축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같은날 “과도한 처벌 수준과 법률 규정의 불명확성으로 의무준수에 노력하는 기업도 처벌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라며 “해당 법률에 대한 경영책임자 정의 규정 및 의무내용의 명확화, 면책규정 마련을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 정치권 및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후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예고됐음에도 불구하고 올해만 5번의 중대재해 사고가 일어나면서 노동 현장의 안전불감증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실제 지난달에만 ▲11일 HDC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공사현장 붕괴 사고 ▲19일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 현대삼호중공업 사업장 협력업체 노동자 추락사고 ▲20일 포스코 용역 직원 업무 도중 사망 ▲24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근로자 사망 ▲29일 삼표산업 경기 양주시 골재 채취장 토사 붕괴 사고 등이 잇달아 발생했다. 

이에 정치권은 중대처벌법을 강화하는 개정법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정의당 광주시당은 지난달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하루를 앞둔 어제 강은미 의원 발의로 법을 강화하는 개정법을 국회에 제출했다”며 ”21대 국회가 제2의 학동 참사, 제2의 홍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 심사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살인기업 처벌 강화!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촉구! 건설노동자 결의대회’를 열고 중대재해법 강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