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인의 발 ⓒ투데이신문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인의 발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노숙인들이 제한된 의료기관만을 이용해야 하는 현행 제도는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지난 9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코로나19로 더욱 취약해진 노숙인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숙인 진료 지정제도를 폐지하고 노숙인이 의료급여 신청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고 밝혔다.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는 노숙인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의료급여기관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돕는 제도다. 현행 의료급여제도는 지정된 노숙인 진료시설을 이용해야 의료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곳은 지난 2021년 4월 기준 286개소다. 이는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거나, 진료과목이 한정돼 있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대부분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감염병 전담병원의 기능을 병행하고 있어 노숙인의 의료 서비스 이용이 제한되고 있다.

인권위는 “지정된 진료시설만 이용해야 하는 일시보호시설 및 자활시설에 거주하는 노숙인은 감염병 이외의 질병에 대해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진료 및 처치를 받을 수 없을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이라고 전했다.

덧붙여 인권위는 일시보호시설·자활시설이 없는 지역에서도 노숙인이 의료급여 신청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노숙인 등의 복지사업 안내’ 등을 통해 보완할 것을 권고했다.

현행 제도상 노숙인이 의료급여 적용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노숙인 일시보호시설, 노숙인 자활시설에 지속해서 3개월 이상 거주한 사실이 확인돼야 한다. 이를 통해 관할 시설장이 노숙인에게 신청서를 제출받아 지자체에 보내게 된다.

다만, 노숙인 일시보호시설 또는 자활시설 설치 현황을 살펴보면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노숙인 일시보호시설이 없는 지자체는 13곳, 노숙인 자활시설이 없는 지자체는 4곳에 이르며, 둘 다 없는 지자체도 4곳에 이른다.

인권위는 “건강권은 모든 사람이 존엄한 삶을 영유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본적 권리”라며 “이번 권고를 통해 코로나19 재난상황에서도 노숙인의 건강권이 위협받지 않도록 더욱 세심한 정책적 방안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이하 보건의료단체연합)은 10일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지난 9일 인권위의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 폐지 권고를 환영한다”며 “정부는 이를 당장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아플 때 가까운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지만, 홈리스에게는 이런 권리가 없다”며 “일부 노숙인 진료시설에서만 치료받을 수 있는 제도는 이 사회가 얼마나 차별적이고 반인권적인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비판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코로나19 재난 상황 속에서 홈리스들이 이용 할 수 있는 응급실이 단 한 곳 밖에 남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코로나19 첫 해인 2020년 말 노숙인 진료시설인 서울시 공공병원 6곳이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면서 홈리스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병원급 의료기간이 사라졌다”며 “팬데믹 속에서 홈리스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한 줌의 의료자원마저 박탈당했다”고 말했다.

끝으로 “복지부는 인권위 권고를 당장 이행해 차별적인 진료시설 지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며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재난 대응은 이제 멈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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