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교육 모두실패···이 정도일 줄 생각 못해
조국 사태, 피할 수 있었다···끝까지 간 게 문제
‘조선의 마지막 빨갱이’, 내겐 영광스러운 별명
진보는 집권 위한 이익집단일 뿐···좌파 아니다
좌파는 멸종위기종···기본소득사회 올 것 예상

우석훈 성결대 교수 ©투데이신문
우석훈 성결대 교수 ©투데이신문

“이정도일 줄 정말 몰랐다. 인사(人事)에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다.”

‘진보경제학자’로 불리는 우석훈(54) 성결대 교수가 문재인 정부를 ‘실패한 정권’으로 규정했다. 그는 “부동산 문제나 교육개혁 모두 인사 실패에서 비롯됐다”며 “인사가 90%, 언론 5%, 나머지는 운이 없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교육부장관 임명과 관련해서 그는 “‘교육개혁은 없다’는 시그널이었다”며 “그나마 교육부장관은 그래도 낫다. 다른 인사는 말도 못하다”고 혹평했다. 국토부장관에 대해선 “확인은 어렵지만, 다른 자리 제안이 있었는데 스스로 자원해서 갔다는 얘기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밑그림’을 잘못 그렸다. 임기 중반까지도 인사 혁신을 못하는 바람에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새정치민주연합)였을 때 당내 씽크탱크였던 민주정책연구원의 부원장을 지낸 우석훈은 당시, 대표 직속기구인 ‘유능한 경제정당 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우 교수는 ‘조국 사태’에 대한 의견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그는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비극”이라며 “왜 그 사람(조국 전 법무장관)이 갑자기 장관이 하고 싶어졌는지 모르겠다. 할 생각이 없다고 여러 번 얘기 했었는데, 생각이 바뀐 건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국은) 좀 특별한 존재였다. 다른 사람이면 욕만 하다 말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피하려면 충분이 피할 수 있었다. 임명철회도 가능했고, 중간에 옵션도 많았다. 그런데 ‘끝을 보자’고 결정했고, 그 결정이 지금의 윤석열까지 이어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 ‘조선의 마지막 빨갱이’, 영광스러운 별명

2007년, <88만원 세대>를 통해 우리 사회에 처음 세대론을 불러일으켰던 우석훈이 지난 1월 <슬기로운 좌파생활>을 펴냈다. 책을 통해 ‘한국의 좌파 현실’을 얘기하고 싶었다는 그는 “일반인은 몰라도 학자는 자신의 생각(정치적 신념)을 얘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의 모순을 지적하는 우석훈은 “진보는 한국에서만 쓰는 표현인데, (한국이) 선진국이 되면서 시효가 끝났다”며 “(한국) 진보의 교만은 사회적 논의 프로세스를 생략한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청년정책과 관련해서도 “팬데믹 이전 미국이나 일본은 완전한 청년고용 상태였다”며 “우리나라도 불가능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자체에 권한과 돈을 넉넉히 줘 역할을 강화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슬기로운 좌파생활>을 마흔 한 번째 출간도서로 들고 나온 건,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작가인 이길보라의 첫 사회비평집 <당신을 이어 말한다> 때문이다. 그는 왜 좌파임을 드러내고 싶었을까. ‘조선의 마지막 빨갱이’란 별명을 ‘영광’이라고 얘기하는 그를 여의도에서 만났다.

슬기로운 좌파생활
슬기로운 좌파생활

◆ 진보는 집권을 위한 이익집단일 뿐

좌파(leftist)란, 급진적·혁신적인 정파를 의미한다. 점진적·보수적 정파를 뜻하는 우파의 반대 개념이다. 좌·우파라는 말이 정치적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건 프랑스 혁명기 때부터다. 1789년 혁명 직후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오른쪽에 왕당파가 앉고, 왼쪽에 공화파가 앉은 것을 기원으로 한다.

한국에선 독재정권이 이어지며 좌파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들려는 노력이 있어왔다. 이 과정을 통해 한국의 좌파는 공산주의·사회주의 체제의 신봉자, 우파는 자본주의·민주주의 체제 신봉자로 구분돼 온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좌파가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기보다는 숨어버렸다는 게 옳겠다. 대신 진보(進步)라는 단어가 그 자리를 채웠다. 어느 순간부터는 좌파와 진보가 동일시되기 시작했다.

우석훈은 “원래 진보는 없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진보와 좌파를 구분 짓고자 하는 이유는 철학 없이 보수·우파의 반대 역할만 하는 진보를 비판하기 위해서다. 그는 진보=좌파라는 등식을 부정한다.

한국의 진보에 대해 그는 “집권을 위한 이익집단일 뿐”이라며 “재집권 5년 만에 정책적으로 실패했고, 미학적으로는 파산했고, 사회적으로도 완전 실패했다”고 일갈했다.

우석훈은 자신이 좌파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그동안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았던 건 기회도 없었고, 굳이 누가 묻지도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좌파로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라며 ‘좌(左)밍아웃’했다.

그가 몇 년 전부터 고민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식어다. ‘진보경제학자’라 불리는 타이틀이 불편하다는 거다. 그는 특별히 부탁한 것도 아닌데, 많은 곳에서 그렇게 부르고 있다고 털어놨다.

“솔직히 나는 진보가 뭔지 잘 모르겠다. 누가 ‘진보가 뭐냐’고 물어도 답을 할 수 없다. 좌파경제학이나 비주류, 정치경제학이란 용어는 알겠는데 진보경제학이란 말은 배워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지난해 6월 G7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영국 콘월 뉴키 공항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해 6월 G7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영국 콘월 뉴키 공항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좌파, 자본주의 문제점 얘기하는 사람

- ‘슬기로운 좌파생활’, 제목이 도발적이다.

“코다(CODA-Child of deaf adult의 약자로 부모 중 한명이나 둘 모두 청각장애인이거나 보호자가 청각장애여서 그에 의해 양육된 사람)인 이길보라가 쓴 ‘부모가 농아인 자식의 삶에 관한 책’을 봤다. 읽으면서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좌파라고 말을 못하는 것인지’, ‘남은 생을 누구와 같이 살아가야 하는지’ 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나는 좌파다’라는 얘길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다른 소수자들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애쓰는데, 그들보다 못한 한국 상황의 좌파를 얘기해야겠다 싶었다. 또, 한다면 지금 해야지 환갑 넘어 얘기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이길보라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아시아 8개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 밖 공동체에서 글쓰기, 여행, 영상제작 등을 통해 자기만의 학습을 이어갔다. 2008년, 그 과정을 직접 제작하고 연출한 영화 〈로드스쿨러〉를 만들었다. 2014년엔 농인 부모의 시선으로 본 세상을 담은 장편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2018년에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을 둘러싼 서로 다른 기억을 담은 영화 〈기억의 전쟁〉을 만들었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길은 학교다’, ‘기억의 전쟁’, ‘우리는 코다입니다’ 등의 책을 냈다. 2021년 네덜란드 정부가 전 세계 여성 리더에게 수여하는 젠더 챔피언 상을 받았다.

- 좌파라는 소재는 여전히 무겁게 느껴진다.

“우리도 이젠 선진국이 됐으니, 이런 얘길 해도 자연스러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개도국(개발도상국)시절이면 몰라도, 지금은 3만 달러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맨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다양성이 높아지고, 여러 유형의 생각들이 공존하는 시대다. 그런데 우린 말만 선진국이지 철학적, 사상적으로 아무것도 없다. 좌파라는 건 고전적인 거다. 자본주의가 생기면서 나타난 거다. 좌파 없는 선진국은 없다. 그런데도 말을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좌파, 우파(보수), 진보에 대한 개념을 좀 쉽게 설명한다면.

“다 아는 얘길 텐데, 프랑스혁명 이후 지금의 국회 같은 ‘삼부회(중세부터 근대까지 존재했던 프랑스의 신분제 의회)’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왼쪽에 앉았던 사람들을 좌파라 했고 오른쪽에 앉았던 자코뱅 등을 우파라 했다. 우파는 보수로 통칭하기도 했다. 그런데, 진보라는 건 없다.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말이다. 미국식으론 리버럴(liberal)이라 표현한다. 우리나라 진보는 과거 6·25전쟁 이후 이승만 독재 때 생겨났는데, 사실 진보라고 얘긴 하지만 외국에선 뜻도 안 통한다. 무슨 말인지도 모른다.”

- 그런데도 적지 않은 한국 사람들은 진보를 좌파라고 인식한다.

“참 문제다. 이건 사실 욕할 때 쓰는 표현이다.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에 그렇게 된 건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좌파는 자본주의 문제점을 얘기하는 사람이고, 우파는 자본주의가 좋다고 얘기하는 사람이다. 아주 단순한 거다. 헷갈릴 수가 없는 문제다. 진보는 어려운 개념이기도하지만, 21세기엔 맞지 않다. 진보를 말하려면 ‘더 좋은 상태’가 설정돼야 한다. 근데, 이건 알 수가 없다. 더 좋은 상태라는 걸 누가 설정할 수 있나. 그건 안 맞는 얘기다.”

- 지금보다 더 ‘진보하자’는 것 아닌가.

“그런 게 어디 있나. ‘선진국으로 가는 게 발전’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는데, 그게 없어졌다. 우린 이미 선진국에 와 있다. 그러면 이제 어딜 가야하나. 이미 왔는데. 진보라는 말은 선진국이 되면서 시효가 끝났다. 더 이상 합의할 수가 없는 거다. 보수와 진보만 합의할 수 없는 게 아니고, 더 좋은 상태라는 게 알 수 없는 거란 얘기다.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 이런 용어를 안 쓰는 이유도 그래서다. 그 자체가 갖고 있는 함의가 없어져버렸다.”

◆ 좌파경제학자 선언, 커밍아웃과도 같아

- ‘진보경제학자’로 불린다.

“개인적으로 한 번도 그렇게 불러달라고 한 적이 없다. 누가 ‘진보가 뭐냐’고 물으면 사실 답도 못한다. 언론이나 여러 군데서 나름 배려한다고 그렇게 불러주는 것 같다. 그런 배려는 안 해도 되는데. 하하. 살아온 인생이나 앞으로의 삶도 그냥 ‘좌파경제학자’라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그러고 보니, 스스로 좌파경제학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살기 힘들어 그런 거다. 불편하니까. ‘나는 좌파경제학잡니다’라고 외치는 건 마치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하지 않으면 병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는데, 선진국이 된다는 건 좀 더 많은 것들이 명확해지는 거다. 돈 안 되고 폼은 좀 덜 나겠지만, 속은 편하다. 하하.”

- 그렇다고 굳이 ‘나는 좌파다’라고 할 필요까진 없지 않나.

“일반인은 그렇게 안 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학자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반인 중에도 좌파는 많다. 스스로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데, 표현을 안 하면 그냥 소수자인 거다. 밥만 먹고 살 거면 정치, 사상 얘기 할 필요 없다. 하지만, 할 거면 정확히 해야 한다. 공공성이라는 게 분명히 있고, 그것에 대한 정확한 규정도 있으니까. 속된말로 ‘빨갱이’라 불리면 좀 어떤가. ‘그래 나 빨갱이야’ 그런다고 무슨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학생 우석훈은 스스로를 좌파라 생각하며 살았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우파는 뭔가 열심히 해서 이루고 성취해야 하지만, 좌파는 대충 개기고 아닌 건 아니라 말하고 살아도 되는 삶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 사명감이나 성취의식 없이 살아도 되는 좌파의 삶이 그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

‘강남좌파’라는 말도 있다. 흔히 ‘조국’을 의미하는 통칭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조차도 공식적으론 자신을 좌파라 하지 않는다. 그냥 진보라 칭한다. 좌파는 죄 지은 사람이고, 세련되고 넉넉하고 힘쓰는 사람들은 진보라 한다. ‘좌파딱지’가 붙으면, 불이익을 받지만 진보라하면 리스크가 없기 때문이다.

진보경제학자란 수식어 말고도 우석훈에게 따라 붙는 별칭은 또 있다. 그가 꽤 좋아하는 ‘조선의 마지막 빨갱이’란 표현이다. 이는 어쩌면 그가 만족해하는 몇 안 되는 수식어 중 하나일지 모른다. 그도 이를 “영광”이라며 자랑스러워한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요즘 빨간 경차에 붉은 점퍼를 즐겨 입고 다닌다.

- 좌파라고 공개했으니, 하나의 ‘좌표’가 된 셈이다.

“하하. 좌표까진 아니더라도 사유(思惟)하는 입장에서 점이 없는 것과 하나라도 있을 때 숨는 건 다른 거다.”

우석훈이 볼 때, 한국의 좌파는 ‘멸종 위기종’이다. 향후 20대 좌파는 줄어들 것이고, 혹시 등장한다 해도 또래 집단에서 무시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해 생각을 바꾸거나 말수를 줄일 것이다. 10대의 보수화와 여성 혐오는 더 심각하다. 그는 “교육 제도를 개편하고 청년 일자리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해야 보수화와 여혐 문제가 완화될 텐데, 지금까지 관련 정책이 없었다”고 했다.

- ‘좌파는 이래야 한다’고 했던 사람 모두 진보가 됐다.

“지켜야 할 신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좌파는 좌파로서의 일관성이 있다. 다는 못 지키더라도 지켜야할 게 있다. 하지만, 진보는 그 자체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지켜야할 게 별로 없다. 이게 청년들이 보는 민주당의 현실이다. 진보는 원래 그런 게 없다. 그냥 보수와 대척할 뿐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문제를 계속 제기하면 풀어야할 문제들이 있는데, 민주당엔 그런 게 없다.”

그는 진보가 현실에 맞는 정책 제시에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또 저성장으로 인한 치열한 경쟁 때문에 젊을수록 보수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특히, 다수의 보통 남자들은 ‘젠더’라는 매개를 통해 극우의 길로 갈 것이라 전망했다. 그리고 이런 퇴행은 향후 10년 간 진행될 것으로 예측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4일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4일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진보가 힘 있다고 과정 생략하는 건 교만

- 진보가 ‘과정’을 생략하려는 건 교만이라고 했다.

“지금 시대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오랜 논쟁과 합의 과정이 필요한 때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는 사안을 상황적으로 판단하고 사회적 논의 프로세스를 생략하려고 한다. 이건 교만이다. 유럽 좌파들이 전체 다수가 된 적이 없는데, 이건 보수 쪽과도 합의를 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석탄을 줄이겠다’는 구호는 아무 의미가 없다. 과정이 문제일 뿐. 좌, 우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이 사회화되는 과정에선 지난할 정도의 논쟁이 필요하다는 거다. 진보는 힘이 있다 생각하고 그걸 생략했다.”

- 원전 같은 경우, ‘숙의민주주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나.

“숙의민주주의가 말이 좋지 다수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으니 문제가 생긴 거다. 1~2년 지루할 정도로 논의해서 서로의 문제점이 뭔지, 사회적으로 인식한 후에 결정했어야 했다. 지금은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이 어떠냐가 중요한 시대다. 이걸 위해 사회가, 정치가 필요한 거다. 과정 없이 결과만 내는 ‘통치시대’는 끝났다.”

- 그렇게 보면, ‘균형발전’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것 같다.

“어떤 문제든 지루한 과정을 밟을 각오를 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수도권 문제를 부처 간에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일차적으로, 지방교부금은 늘려야 한다. 제주도는 환경영향평가도 도지사가 직접 한다. 토건 위주 우려가 있지만, 거기도 시민사회가 있다. 서로 부딪히며 성숙해가는 거다. 통제하려 하지 말고, 돈과 권한을 주면 된다. 공항을 지을지, 복지를 위해 나눠가질지는 그들의 선택이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거다. 비효율 운운하며 돈과 권한으로 통제하려는 건 철저한 기재부(기획재정부) 시각이다. 과정을 못 믿는 거다. 조건 없이 주고 경쟁을 유도하면 훨씬 더 좋아질 거라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하지 않았다.”

- 팬데믹 등 이젠 글로벌 경쟁시대다. 이번 대선을 어떻게 보나.

“누가 되든 차기정부 각료들은 젊어질 것 같다. 공공기관이나 정부출연기관장도 젊고 현장경험 있는 인재 위주로 기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또 선진국다운 나라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이젠 경제도 세계 사이클과 연동돼 있기 때문에, 누가 되더라도 단기간에 크게 바뀌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한국경제 규모가 커져서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국가운영방식이 크게 바뀌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지난 2019년 9월 6일 오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속개된 법사위 인사청문회에서 답변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019년 9월 6일 오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속개된 법사위 인사청문회에서 답변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조국 사태는 한국 정치사의 비극···피할 기회 많았지만, 끝까지 간 게 문제

- ‘조국 사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왜 그 사람이 갑자기 장관이 하고 싶어졌는지 모르겠다. 할 생각이 없다고 여러 번 얘길 했었다. 대통령이 부탁했다고 해도 평소처럼 똑 부러지게 얘기했으면 됐을 텐데, 못 하겠다 하면 그만이지 않나. 장관을 억지로 시킨다고 되는 나라도 아니고. 자신이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간 거지.”

- ‘신원 문제’는 없을 거라고 판단하지 않았겠나.

“개인적으론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쨌건,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 사람의 꿈은 그게 아니었다. 근데, 왜 갑자기 하고 싶었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왜, 생각이 바뀐 건지..”

- 한 ‘가문’이 몰락 수준까지 간 비극적 사건이란 주장이 많다.

“비극이다. 비극적 사건이다. 벌어지지 말았어야 할 일이 벌어진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중에 당시의 한국 정치사를 기록할 때 청년의 보수화, 극우화란 챕터(chapter)를 달면 한 항목에 들어갈 사건이라 생각한다. 피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못했다.”

- 조국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도 같은 결과이지 않았을까.

“조국이었기 때문에 그랬다고 본다. 그 사람은 좀 특별한 존재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욕만 좀 하다 말았을 거다. 불행한 사건인데, 사실 피하려면 충분이 피할 수도 있었다. 임명철회도 가능했고, 중간에 옵션이 너무 많았다. 근데, ‘끝을 보자’고 결정했고, 그게 지금의 윤석열까지 온 거라고 본다.”

◆ 이정도일 줄 몰랐다···인사 실패에서 끝난 것

- 문재인 정부를 평가한다면.

“이렇게 못할 줄 몰랐다. 첨엔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인사에서 실패한 것 같다. 생명체가 목숨 걸고 유성생식을 한 건 그렇게 해야 시스템이 안정적이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종교배를 너무 많이 했다. 인사에서. 그러다보니 더 실력 있거나 다양한 견해,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데 실패한 거다. ‘586 너희들끼리 다 해먹은 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혹자는 ‘인수위’가 생략돼 그런 것이라 주장한다.

“그건 말도 안 된다. 시스템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 권한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인사시스템은 측근들이 국가에 충성할 사람, 대통령에 충성할 사람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걸로 자신들한테 충성하고 뒷자리 봐줄 사람을 뽑았다. 이건 대통령도, 비서실장도 모른다. 그렇게 적당히 나눠서하고, 상대편 견제하고 이런 정치밖에 없었다. 인사를 젊은 사람들한테 맞추고, 더 넓게 구하고 했어야 했다. 원래 그렇게 한다고 했는데, 한 순간 모두 걸어 잠갔다. ‘광화문시대’ 불이행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다.”

- 부동산 정책은 최대의 패착이다. 국토부장관 인사도 실패라 보나.

“그렇다. 당시, ‘비서실장’이 천거한 걸로 알고 있는데, 원래 다른 자리 제안이 있었지만 스스로 자원했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확인은 어렵다.”

- 직을 잘 수행할지는 모르는 것 아닌가.

“김현미는 경제를 모르는 사람이다. 인사(人事) ‘피어리뷰’라는 게 있는데, 잘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오히려 잘 수행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이상한 거다. 그런 식이면 어떤 자리든 아무나 앉히면 되지 않겠나.”

- 교육부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다행’이란 말까지 나온다.

“들리는 얘기로는 교육개혁은 안 하기로 한 걸로 안다. 개인적으로 그 순간(임명) 상황은 잘 모르지만, ‘교육개혁은 없다’는 게 그 당시 인사의 ‘시그널’이란 얘기가 있다. 김상곤이 맞든 틀리든 뭔가 바꾸길 희망했다면, 유은혜 이후엔 그런 게 없었다. 그나마 교육부장관 인사는 그래도 낫다는 생각이다. 다른 인사는 말도 못할 정도다.”

- 통합정부 공약도 지키지 못했다.

“꼭 통합정부가 아니더라도 폭넓게 인재를 구하면 됐었는데, 자기들한테 충성할 사람만 앉히니까 문제가 많았던 거다. 말도 안 되는 인사였다. 조금만 낮춰서 현장위주로 찾았으면 인재가 넘치는데, 자꾸 586에 맞추고 큰소리 안 날 사람 찾고. 그런 인물은 없다. 문재인 정부의 90%는 인사 실패였고, 5%는 언론관리 실패, 나머지는 운이라고 생각한다. 인사 실패에서 다 끝난 거였다.”

- 출범 초기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보나.

“아예 처음부터 잘못 그렸고, 그걸 중간에 혁신하거나 괜찮은 사람으로 바꾸는 개혁을 못했다. 그러다 보니, 수렁에서 못 빠져 나온 거다.”

- 문 대통령은 ‘신뢰하면 끝까지 믿는’ 인사스타일 아닌가.

“그런 얘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통령 뜻이었다고 둘러대는 거다. 이건 그냥 뒤집어 쓴 거다. 대통령이 사람들을 어떻게 전부 다 아나. 참모들이 추천하면 그냥 쓰는 거지. 그건 좀 대통령이 억울한 면이 있다고 본다.”

- 문재인 정부로부터 공직 제안 받은 적은 없나.

“초창기에 좀 있었다. 청와대는 아니었지만. 몇 번 고민하긴 했는데, 사양했다. 아이들 때문에라도 할 수 없었다. 가족과 함께 하는 그런 작은 행복을 깨기 싫었다. 하하.”

그에겐 느지막이 본 초등학교 입학 전후의 아들 둘이 있다. 문재인이 대통령 후보이던 시절, 둘이서 소주 한 잔 마신 적이 있다. 그날 경제를 총괄해달라고 부탁받았을 때, 그는 여러 이유를 들며 거절했다. 우석훈은 “친한 걸로 치면 나보다 문재인과 친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회상한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 ©투데이신문
우석훈 성결대 교수 ©투데이신문

◆ 청년에게 믿음 주는 경제구조 만들어야

- 이번 대선은 어느 때보다 청년 정책 관련 공약이 많은 것 같다.

“문제는 출산율이다. 지금 청년들은 한국사회를 불신의 경제사회로 인식한다. 한국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하고 믿을 수 있는 그런 경제구조가 돼야 한다. 버림받지 않을 거란 믿음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결혼도하고 애도 낳고 그럴 거니까. 살만한 나라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국가운영도 맞춰야하는데, 그건 노력하면 가능하다.”

- <88만원 세대> 출간 15년이 됐다. 그때와 지금의 청년 문제를 비교한다면.

“내용상으론 좋아진 게 없다고 본다. 출산율도 더 떨어졌고. 대결 시대를 극복하고 평등, 협력경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능력주의라는 게 승자독식처럼 경쟁을 강조하는 건데, 이런 식으론 국가경쟁에 필요한 힘을 얻을 수 없다. 경쟁에서 밀리면 밥은 먹을 수 있도록 한다는 약간의 복지제도만 늘었을 뿐이다. 협력경제 체제로 바꿔야 혁신이 일어난다. 혁신경제라는 것도 대부분 협력경제다. 공유만하는 게 아니고. 그때보다 확실히 안 좋아진 건 맞다.”

- 차기정부의 청년정책은 어때야 하나.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전 연령 완전고용은 어렵지만, 청년 완전고용은 불가능한 게 아니다. 팬데믹 전 미국, 일본은 청년 완전고용상태였다. 독일도 실업률이 5%정도인데, 통독 이후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완전고용이라 할 수 있다. 우리도 사실 더 할 수 있는데, 하다가 만 것 같다. 지방자치단체에 권한을 주고 일자리를 만들게 하면 된다. 현재는 지자체에 가는 예산이 너무 약하다. 청년고용과 관련한 지자체 역할을 강화해서 완전고용을 만든 다음 질적 향상은 좀 나중에 해도 된다.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일단은 완전고용 상태로 하고 고도화하면 된다. 미국, 일본처럼 덩치가 큰 나라들도 그렇게 했다.”

- 기본소득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시간은 필요하겠지만, 기본소득사회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넘어야 할 벽은 높겠지만. 문제는 돈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다. 사실 지금도 기본소득은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노령연금이나 아동수당 같은 건 기본소득이나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많은 분야에서 시행될 텐데, 보편성이 충분해지면 나중엔 안 된 분야만 메우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사회가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일시적으론 어렵다고 본다.”

◆ 현재 한국의 20대 극우, 유럽과 비슷해

- 한국사회의 보수화가 빨라지는 것 같다.

“한국은 앞으로 보수화될 거다. 10~20대는 진보를 싫어한다. 자본주의가 일정규모화 되면, 민족주의 극우파들이 등장한다. 그게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지금 EU의회 제1당이 극우파정당이다. 우린 아직 시작단계도 아니다. 극우파가 분화하고 권력을 가질 것이다. 거기서 진보는 뭘 할 수가 없다.”

- 세계적 현상으로 보인다.

“한국만 다른 것도 이상한 거다. 우리도 인종주의가 더 강해지고, 남성주의가 강해질 것이다. 지금 20대 극우는 유럽과 비슷하다. 평등을 얘기할 땐 좌파가 강화되는 거고, 룰만 잘 지키면 된다는 건 보수 우파 쪽 생각이다. 거대한 우파블록이 생긴 거다. 지금은 젠더 문제로 가 있지만, 실상은 민족주의에서 인종주의로 변화되는 전환점에 있는 거다.”

우석훈에 따르면, 한국 좌파는 실체가 불분명하다. 기원파악조차 어렵다. 족보도, 조직도 없다. 좌파 하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그가 속했던 시민단체나 학회, 정당에서조차 좌파 하라는 데는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좌파가 좋았고 양심에 의해 좌파를 선언하고 소개한다 밝힌다.

그는 우리의 정치현실을 두고 “보수는 한국 청년들이 겪고 있는 젠더 전쟁에 별 관심이 없다. 다만, 그렇게 하면 청년의 절반인 남성 표라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서 “진보는 보수에 대한 안티테제(반대 주장)로만 존재하게 됐다”고 탄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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