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단체 “업무 경계와 기준 없어…법 제정 필수적”
간협, 고령화 시대 전환·의료 패러다임 변화 반영 요구
기존 의료체계 붕괴·범위 무분별 확대 우려 등 반대도
정부 “주요 직역들과 지속 논의 중…적극적 개입 약속”
전문가 “새 정부서 여러 직역 수용해야…법 전면 개정도”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 촉구 전국 간호사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 촉구 전국 간호사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환자가 병원에 가게 되면 제일 먼저 간호사를 만나게 된다. 이들은 진료 수납 업무부터 검사, 주사 치료 등 병원에서 제일 바쁘게 움직이며 환자를 보호하지만, 정작 법 앞에서 이들은 약자가 된다.

바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 이 딱 한 줄만이 현재 의료법 제2조에서 규정한 간호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법 조항으로 업무 범위 등을 정해둔 게 없어 간호사들은 근로를 했을 뿐인데 자신도 모르게 법을 어길 수도, 이후에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의료법의 출발은 지난 1944년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위해 ‘조선의료령’을 제정하며 시작했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지난 1951년 ‘국민 의료법’이 만들어졌다. 국민 의료법에는 간호사를 비롯한 의사, 조산사, 치과의사, 한의사 5대 의료인이 같은 법령에 하나로 묶여 제정됐는데, 71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의료법은 멈춰버린 채 제자리걸음 중이다. 

그러던 지난해 3월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과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이 간호법을, 국민의당 최연숙 의원이 간호‧조산법안을 대표 발의하며 간호법 제정에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발의된 간호법은 △간호사 업무 범위 명확화 △간호종합계획 5년마다 수립·3년마다 실태조사 △환자 안전을 위해 적정 간호사 확보와 배치 △처우개선 기본지침 재정 및 재원 확보 방안 마련 △인권침해 방치 조사 및 교육 의무 부과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에 발맞춰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를 비롯한 여러 간호 단체들은 의료법에 포함된 간호사 규정을 떼어내 독립적인 법 체제 확립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간호법이 제정될 경우 현행 의료체계가 붕괴되고,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무분별하게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가 간호법 제정 촉구 전국 간호사 결의대회에 배치한 현수막. ⓒ투데이신문
대한간호협회가 간호법 제정 촉구 전국 간호사 결의대회에 배치한 현수막. ⓒ투데이신문

과중한 업무·잦은 이직…낡은 의료법이 문제

지난 1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저는 국민 옆에 남고 싶은 간호사입니다. 간호법 제정이 필요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이목을 끌었다. 해당 청원은 마감일인 지난 2월 22일까지 24만 7385명이 동의해 정부의 답변을 받게 됐다.

간호사를 꿈꾸는 대학생이라 소개한 청원인 B씨는 글을 통해 “국내에 간호사 면허 소지자 중 임상 간호사는 절반에 불과하고, 신규 간호사 절반이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꿈을 접고 떠나고 있다”며 “30대 전후로 간호사 대부분이 사직해 숙련된 간호사는 더더욱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동료들과의 계속된 이별 이유는 간호사의 일터에 업무 경계, 역할의 기준이 될 간호법이 없기 때문”이라며 “인생을 사는 동안 단 한번도 간호사의 돌봄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간호사들의 미래는 낡은 의료법 안에 묶여 있다”고 호소했다.

실제 서울시에 위치한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4년 차 간호사 A씨는 “간호법 제정은 간호사라면 모두 관심 있는 주제이지만 긴 시간 동안 말만 나오고 현실적으로 이뤄진 게 없다”며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인원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위기까지 겹쳐 매일이 살얼음판이고 위기다”라고 한탄했다.

이어 “대학 병원의 간호사는 하루 평균 8명에서 많게는 13명 이상의 환자를 혼자 수용해야 되고 거기에 더해 신규·퇴원 업무도 봐야 한다. 과중된 업무에 동료들이 하혈, 두통, 탈모 등 건강에 이상을 느끼고 있다”며 “결국 퇴사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간호법 제정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간협은 ‘간호법’ 제정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매일 국회 앞 혹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1인 시위와 릴레이 시위를 전개하고 있으며 매주 수요일마다 국회 앞에서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성명문, 영상 제작 등을 통해 꾸준히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간협에 따르면 국내 간호사들의 이직 경험률은 73%이며, 1년 이내 경력인 신규 간호사의 이직률은 45.5%에 육박한다. 매년 절반 가까운 신규 간호사가 일터를 떠나가는 것이다. 또한 간호사의 평균 근무 연수는 7년 8개월에 불과하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간협은 “간호사의 일터에는 업무 경계와 역할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며 “현행 의료법은 점차 간호사의 업무가 다양화, 세분화, 전문화되고 있는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간호사만 있고 간호법, 간호정책이 없는 나라.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미국, 일본, 아프리카를 포함한 세계 90개국에서는 간호법이 존재하지만,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아시아 유일하게 간호법이 미제정 상태다. 특히 일본과 미국은 간호법을 기본으로 두며 그 외에 추가적으로 법을 제정했다. 일본은 지난 1992년 간호사 등의 인재 확보의 촉진에 관한 법률을, 미국은 지난 2002년 간호사 재투자법을 추가적으로 수립해 간호인력 양성 및 종합대책 수립, 근무환경 개선, 신규 간호사 이직 방지 교육 등을 추진하고 있다.

간협은 간호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초고령화 시대로의 진입’을 꼽는다. UN(국제연합)의 세계 인구 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 비중이 지난 2019년에는 14.9%로 세계 5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오는 2025년에는 20%로 고령화 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하고, 2050년에는 38.1%에 도달하며 세계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간협은 고령화 시대로 전환될 경우 의료인들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전망인 만큼, 관련 법안도 보다 명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간협은 보건의료 패러다임이 변화했기 때문에 간호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간협은 보건의료 시스템이 지역사회 돌봄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으며, 현재 질병 예방과 만성질환 관리 등으로 전문 간호사의 필요성이 증가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짚었다.

더불어 간협은 간호 영역과 전문성이 확대되고 있는 측면에서도 간호법 제정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간호사는 병원뿐 아니라 학교, 산업체, 노인복지시설 등 일상 가까이 시민들 곁에 있는 존재지만 현행 의료법은 다양한 장소와 전문화된 간호업무를 다루지 못하는 한계점이 있다”며 “의료법은 의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에 독립된 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호법으로 업무 등을 법제화한다면 간호사의 업무 안정 및 근무환경이 개선될 수 있고 간호사의 전문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 간협 측 설명이다. 숙련된 경력 간호사의 퇴사나 이직이 많을수록 빈자리를 신입 간호사가 채우게 되는데, 이는 환자 안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며 사회적 비용, 사회적 생산성 손실이 굉장히 크다고도 지적했다.

아울러 간호법으로 노인복지법, 학교보건법 등 90여개로 흩어진 간호법령을 통합 관리하며 국민을 위한 더 안정된 보건의료 서비스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 간협의 입장이다.

간호법 제정을 위해 간협은 지난해부터 국회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는 간협 신경림 회장은 “이미 대선 전 여야 3당 모두가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다”며 “간호법은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된 만큼 간호법 제정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이 국회 앞에서 간호단독법 제정 반대 1인 시위에 참여해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의사협회]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이 국회 앞에서 간호단독법 제정 반대 1인 시위에 참여해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의사협회]

보건의료체계 붕괴 우려의 목소리도

하지만 모든 의료인들이 간호법 제정을 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를 비롯한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등 10개 단체는 간호법이 보건의료체계를 붕괴할 것이라며 상반된 입장을 드러냈다.

간호법 제정에 대해 의협은 “해당 법은 직역 간 갈등 심화를 야기해 보건 의료 체계를 붕괴시킨다”며 “보건의료 각 직역들은 국민건강 수호를 위해 의료법이 정한 업무 범위에 따라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들은 간호법이 특정 직역의 이익 실현을 위한 단독 법률로 보고 재정될 경우 형평성이 위배돼 결국 의료체계 자체를 붕괴시킨다고 주장했다. 

또한 의협은 간호단독법은 간호사가 의사의 고유 업무영역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함에 따라 현행 면허체계를 와해시킬 수 있고,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의협은 간호사의 업무를 의사 등의 ‘지도’, ‘처방’ 하에 이뤄지는 내용이 담긴 현행 의료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간호사들이 독립적 의료행위를 시도할 수 있으며 단독 개원도 가능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지난 2월에 개최된 ‘간호단독법 저지 10개 단체 공동 비상대책위원회’ 발대식을 통해 “간호법안은 의료법 체계보다 내용을 우선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며 “즉 간호행위나 간호정책이 의사의 의료행위나 의료정책보다 더 우선하도록 해 보건의료 정책의 근간을 붕괴시키는 비상식적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지난 1월 24일부터 현재까지 국회 앞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며 간호단독법 철회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의협은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를 야기하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간호법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며 “1인 시위는 10개의 단체에서 돌아가며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향후 여러 운동을 통해 촉구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간호법이 단순히 간호사에게만 제한적으로 효력을 미치는 제정법이 아닌 모든 보건의료인을 비롯한 요양보호사 직종에까지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어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간호법 제정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내놨다. 의협은 “현재 우리나라는 감염병 비상사태로, 보건의료인들이 총력을 다해 사투를 벌이는 어려운 상황이다”며 “이러한 와중에 일부 간호사 단체들의 간호단독법안 제정 시도는 모든 국민과 의료인들의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의협은 “현재 이어가고 있는 시위를 지속해 간호법 제정을 반대할 것”이라며 “대한간호협회는 지금이라도 보건의료계의 업무범위 침해로 직역 간 갈등을 유발하고 극심한 혼란을 초래하는 간호단독법 제정 추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간호법 내 조항인 ‘무면허 간호 업무 금지’에 대해 의사계는 간호사의 분절적 행위를 허용해 의사가 수술 등 환자 치료를 위해 시급하게 행할 의료행위라도 간호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 그들은 국회 앞에서 전개된 ‘간호법 제정 촉구 전국 간호사 결의대회’에서 불과 50m도 안되는 거리에서 1인 피켓 시위 진행하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것은 의사 단체뿐만이 아니다. 간호법에는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에 대한 내용도 포함돼 있어 해당 직역들의 반발도 거세다.

이에 따라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 단체들은 간호사들이 간호법을 통해 지휘·감독체계를 강화해 종속적인 관계로 만들고, 더 나아가 간호사들이 요양보호사들도 지도·감독 하에 두려고 한다고 해석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간호법의 법안소위 심의가 무산된 이유도 해당 단체들의 거센 반대 때문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말, 지난달 10일 두 차례 법안 소위가 열렸으나 아직 직역 간의 이견이 있어 현재 의원회 측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조율을 요청한 상황”이라며 “현재 관련 단체의 쟁점에 대해 협의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수렴이 완료되면 보건의료발전협의체 회의를 다시 주관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다른 직역도 반영해야 결실 맺는다

보건복지부 류근혁 제2차관은 지난달 25일 간호사들이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청원글이 20만명이 넘자 정부 측의 답변을 내놨다. 

그는 “간호법을 두고 주요 직역 간 의견 차이가 있는 만큼 간호계와 의료계 참여하는 보건의료발전협의체에서 해당 법 제정에 대해 수차례 논의했다”며 “또한 법안의 주요 내용에 대해서는 관련 단체와 개별 면담, 간담회 등을 통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제정이 논의되고 있는 새로운 입법인만큼 의료서비스 관련된 주요 주체들과 충분히 조율해 합리적인 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며 “국회 차원 논의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류 제2차관은 올해 상반기 내 ‘교대제 개선 시범 사업’과 국공립 의료기관에만 적용되던 ‘교육전담간호사’를 민간으로 확대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10일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소위원회에서 간호법 관련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다. 이날 회의에서 위원들은 간호법안 내 요양보호사 포함을 삭제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또한 타법에 우선 적용 규정에 대해서도 간호조무사협회에서 우려하는 점이 해소되도록 업무를 배치하고 현실을 고려해 법안을 수정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특히 의료계가 반대하는 처방에 관련해 위원들은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에 따르는 행위를 하는 것뿐이지 단독 개원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복지부도 현행법 상 간호사가 단독 개원하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업무 영역 설정과 관련해서 복지부는 진료지원인력시범사업(PA) 시범사업이 진행 중인 만큼 두 영역 모두를 검토해 진행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처럼 여러 직역 간의 소통을 통해 이견을 좁혀 간다면, 충분히 모두가 만족스러운 간호법 제정에 한 걸음 더 나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김진현 교수는 “윤석열 당선인이 공약으로 간호법 제정을 내세운 만큼 여러 직역들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거나 직군 경력이 있는 등 다양한 정책 집행자들을 영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렇게 나온 이들이 여러 직역들을 대변하며 협의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지금은 의료법에서 간호사만 독립해 법을 만든다는 개념보다는 의료법을 전체적으로 개정해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 전반을 다듬어야 할 시점”이라며 “더불어 실제 현장 속에서 간호사들의 역할과 업무 범위를 정확히 파악해 간호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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