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PPT 문건 작성
장애인 단체 지하철 시위 부정적 여론 조성 의혹
공사, “공식 문건 아닌 개인 의견 담긴 것” 반박

서울교통공사 언론팀 직원이 제작한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라는 제목의 PPT 일부. [사진제공=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서울교통공사 언론팀 직원이 제작한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라는 제목의 PPT 일부. [사진제공=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서울교통공사(이하 공사) 언론팀 직원이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 단체를 상대로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대응 방안 등이 담긴 문서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장애인 단체는 이를 ‘언론공작’ 문건이라고 규정하고 공사 측의 공개 사과와 책임자 사퇴, 이동권 보장 지원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장연 실점·무리수 기다려 홍보”
장애인 부정적 여론 조성 의혹

서울교통공사 언론팀 직원 A씨는 지난 7일 내부 자유게시판에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지하철 시위를 사례로’라는 제목의 문건을 게재했다.

문건에서는 출근길 지하철 시위 중인 전장연을 ‘맞서 싸워야 하는 대상’이라고 표현했으며, ‘지피지기 백전불태’(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해 전장연을 전략적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A씨는 “공사가 여론전에서 기본적으로 불리하다”며 “전장연의 실점 또는 무리수를 둘 때까지 기다리면서 디테일하게 (약점을) 찾고, 필요할 때 상대방의 실점을 소재로 물밑 홍보를 펼쳐야 한다”며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더불어 “‘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하다’는 언더도그마 때문에 이성보다 감성이 더 중시되며 원칙과 절차가 유명무실해진다. 약자는 선하다는 기조의 기성 언론과 장애인 전용 언론 조합과도 싸워야 한다”며 “공사의 교통약자 위한 서비스는 언론 플레이용으로 좋은 소재”라고도 했다.

공사의 구체적인 대응 사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A씨는 “이번 시위에서 공사가 캐치(Catch)한 전장연 측의 미스는 바퀴를 열차와 승강장 틈 사이로 끼워 넣기, 휠체어로 문 가로막기 등이다”며 “해당 사진 확보 후 자연스럽게 알리면서 고의적 열차 운행 방해를 알려야 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지난 2월 지하철에 탑승한 한 시민이 시위를 하는 장애인 단체 관계자에게 할머니 임종을 봐야 하는데 시위 때문에 가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던 사례도 소개했다. 당시 전장연 관계자는 해당 시민에게 “버스 타고 가세요”라고 답하고 사과한 사건이다. 그러나 A씨는 “여론전 위한 보도자료 준비 중 고객안전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해 사실 확인 후, 시민 피해 상황을 알리는 소재로 활용했다”며 “라이브 영상에서 해당 장면을 활용해 보도하니 전장연을 향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당 사례는 지난달 22일 배포된 공사 보도자료에 삽입된 바 있다. 이외에도 시민들이 공사에 시위에 대한 강경대응을 요구하는 민원글과 지하철 이용량 감소 통계 등도 첨부됐다.

서울교통공사가 지난 2월에 배포한 보도자료 일부에 이번 논란이 된 문건에서 여론전에 활용해야 한다고 든 사례가 언급됐다. [사진제공=서울교통공사]
서울교통공사가 지난 2월에 배포한 보도자료 일부에 이번 논란이 된 문건에서 여론전에 활용해야 한다고 든 사례가 언급됐다. [사진제공=서울교통공사]

“공공기관의 장애인 차별 선동, 믿기지 않아”
전장연, 개인 일탈 아닌 조직 책임…사과해야

이에 전장연은 지난 17일 성명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두려움과 서울시 및 서울교통공사에 대한 분노를 금치 못한다”며 “공사는 전장연의 외침을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로 언론공작했으며 언론은 이를 받아서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그로 인해 일부 시민들이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을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붓고, 전장연 홈페이지와 SNS는 악성 댓글이 달렸다고 호소했다.

전장연은 공사 측에 △서울교통공사 사장의 공개 사과 및 사퇴 △전장연 손배소 철회 △오이도역· 발산역 등 리프트 추락참사 공간 추모비 설치 △서울시의 장애인이동권 보장 및 2차례 약속 미이행에 대한 공개사과 △이동권 완전보장 등을 촉구했다.

전장연 박미주 사무국장은 “이동권을 책임·보장해야할 공공기관에서 장애인 차별을 선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슬펐다”며 “해당 문건에서 너무 상세하게 전장연에 대해 짚었을뿐만 아니라 여러 진보 언론까지 겨냥하고, 물밑 홍보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언급한 것은 ‘언론공작’에 가깝다”고 토로했다.

고의로 시위 참여자가 열차와 승강장 사이에 바퀴를 끼워 넣었다는 문건 내용에 대해서는 “장애인들도 지하철 이용자인데 승강장과 열차 사이 틈에 바퀴가 빠지면 안되는 게 일반적으로 맞는 것”이라며 “현재 장애인들은 발판을 사용해 열차를 타고 있으며, 발판이 없을 경우 빈번하게 틈에 바퀴가 빠지기도 하는 것이지 절대 고의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문건에서 언급된 ‘할머니 임종 사건’에 대해서는 “장애인 활동가가 당시 승객에게 ‘버스를 타고 가라’고 말한 뒤, 자신 또한 장애인 이동 수단이 없어 유사한 사례를 겼었다고 말한 부분이 제거된 것”이라며 “뒤이어 사과의 말을 한 부분도 악의적으로 편집됐다”고 털어놨다.

박 사무국장은 “현재 공사는 해당 문건을 개인의 일탈과 잘못 등으로 몰아가고 있다”면서 “이번 일은 조직의 책임이다. 공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어긴 것과 다름없다. 공사 사장은 사과하고 사퇴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겠다고 두 차례 발표했음에도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등 서울시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며 시의 적극적인 정책 이행을 요구했다.

전장연 관계자가 사회적약자와의 여론전맞서기 언론공작 서울교통공사 규탄 기자회견 현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제공=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장연 관계자가 사회적약자와의 여론전맞서기 언론공작 서울교통공사 규탄 기자회견 현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제공=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식 문서 아니다?…‘꼬리 자르기’ 논란
공사, 문서 작성 직원 타 부서로 발령

이번 문건 논란과 관련해 공사 측은 부적절한 내용임을 인정하면서도 개인 의견에 불과하다며 선을 그었다.

공사 언론팀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해당 문건은 언론팀 직원이 작성해 자유게시판에 올린 것으로 공사가 공식적으로 작성하고 활용한 문건은 아니”라며 “현재 문건을 작성했던 A씨를 현재 다른 부서로 발령했다”고 밝혔다.

이어 “장애인 단체의 시위가 장기간 이어지다 보니 내부 직원들의 피로도가 쌓인 상태였고, 직원들을 위로를 하고자 A씨가 개인적으로 문건을 제작했던 것”이라며 “내부에서도 매일 게시판을 확인하지 않다 보니 뒤늦게 언론 취재를 통해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내부적으로 교통 약자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등 재발 방지를 위해 힘쓰겠다”며 “전장연이 주장하는 이동권 보장에 대해 공사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고 2024년까지 역내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끝으로 “이번 일이 부적절했음을 인정한다”며 “상처를 받은 분들에 대해서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