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출마생각 없어..宋, 차출은 무책임
尹 당선득표율보다 못한 지지율, 불행 시작
재벌저격수, 사립유치원 비리 폭로 인지도↑
부동산정책, 세금문제로 풀려는 건 맞지않아
“문재인과 이재명 지키겠다”는 발언 부적절

박용진 의원 ©투데이신문
박용진 의원 ©투데이신문

역대 가장 치열했던 20대 대선이 끝났다. 집권당은 5년 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며 탄핵으로 무너진 박근혜 정부를 ‘인수위’도 없이 넘겨받았지만, 24만 표를 더 가져간 보수정당에 다시 정권을 내줬다.

‘행정의 달인’이라 불리는 집권당 대선후보 이재명은 끝내 ‘대장동’ 벽을 넘지 못하고 입문 8개월 만에 ‘대권(大權)’을 잡은 ‘정치 신예 윤석열’에 무릎을 꿇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인상 깊은 발언을 남기며 문재인 정부에서 승승장구한 윤석열은, 자신이 구속시킨 두 전직 보수정권 대통령의 소속 정당에 들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5년 만에 정권을 잃은 더불어민주당은 부동산 문제를 비롯한 인사(人事) 실패와 ‘적폐 몰이’, 조국 논란과 불공정 문제까지 그야말로 백가쟁명(百家爭鳴)식 대선 패인을 분석하며 다양한 처방전을 쏟아내고 있다.

당내 대선 경선을 완주하며 이재명과 경쟁했던 재선 국회의원 박용진(51)은 이번 대선 결과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지난해 5월 9일, 국회 잔디광장에서 “정치의 세대교체로 대한민국의 시대교체를 이루겠다”며 여야 대권주자 가운데 가장 먼저 출마선언을 했었다.

“한국 정치에 대(大) 파란을 일으키겠다. 불공정과 불평등에 맞서는 용기 있는 젊은 대통령이 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던 그는 당내에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소신파다. 그를 여의도에서 만났다.

◆ '재벌저격수', 사립유치원 비리 폭로 등으로 인지도 ↑

박용진은 대표적인 ‘97세대(1990년대 학번·1970년대 출생)’ 정치인이다. 지난 17대 국회 당시 한 명(김희정 전 한나라당 의원, 1971년생)에 불과했던 97세대는 횟수를 거듭하며 급증해 현재(21대)는 42명까지 늘었다.

흔히 개인주의, 다양성, 실용성 등의 키워드로 표현되는 97세대는 민주화운동 주역인 86세대와는 다른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때문에 집단주의보다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첫 세대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는 초선 때부터 대기업의 병폐를 파헤치며 ‘재벌 저격수’란 별명을 얻었다. 2018년 교육위원회 활동 당시엔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를 국정감사장에서 폭로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지난해 1월 13일, 이른바 ‘유치원 3법’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지 1년 4개월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 그는 동료 의원들의 축하 속에 교육부장관·교육위원들과 포옹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당연한 법 하나를 통과시키는데, 이렇게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때 대통령이라는 지위와 역할, 권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대권 도전 결심 배경을 밝혔다.

그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에 대해서도 “공급 부족 문제를 세금 문제로 풀려는 방식은 틀렸다”고 지적하며 “민주당의 주거정책은 틀렸고, 부동산정책도 실패를 거듭했다”고 진단했다.

또 최근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박홍근 의원이 취임 일성으로 “이재명과 문재인을 지키겠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제1당의 원내대표면 ‘국민 삶을 지키겠다’고 해야지, 대통령과 전 대선후보를 지키겠다는 게 옳으냐”고 비판했다.

이번 대선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시기는 언제였고, 동기는 뭐였을까.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유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 새 정부 국정운영 전망 등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박용진 의원이 지난 2020년 1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제375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이 통과되자 동료 의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박용진 의원이 지난 2020년 1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제375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이 통과되자 동료 의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은 틀렸다

- 문재인 정부 5년을 평가한다면.

“먼저, 탄핵 사태를 마무리하고 정국을 안정시킨 점은 평가받아야 한다. 또 평창동계올림픽 직전까지 드리워졌던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막아내 안보위기상황도 잘 극복했고, 코로나19 방역 역시 총력을 기울여 막아왔다. 안보 관련해서 ‘속았다, 파탄 났다’고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면 그렇게 말할 문제가 아니다. 2년 이상 계속되는 코로나19도 ‘오미크론 정점이 다른 나라는 다 지나갔는데 우린 왜 이 모양이냐’고 하는데, 이 역시 그렇게 얘기할 게 아니다. 우리는 물론, 전 세계가 전부 처음 경험한 팬데믹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선을 다해 이런 여러 노력들을 해 온 건 인정받아야 한다고 본다.”

- 호평(好評) 일색이다.

“물론, ‘명과 암’이 있다. 그러나 모두 다 사상 초유의 사건이고, 이런 사태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런 일들은 앞으로도 반복될 거라 생각한다. 사실 임기 내에 제대로 된 성과를 내거나, 좋은 평가를 받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정부는 언제나 5년 임기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를 평가하는 포인트는 이 세 가지가 될 것으로 본다.”

- 부동산과 여러 사회적 갈등을 풀지 못했다는 비판도 많다.

“비정규직 문제와 최저임금, 노동시간 등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풀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 부동산 문제와 권력형 성폭력, 고위공직자 원천배제 원칙 등도 ‘내로남불’로 정당화해 소탐대실한 점이 분명히 있다. 정치개혁도 위성정당으로 빛이 바랬고. 이젠 이런 아쉬움을 보완할 수 있는 방향성을 입법으로, 민생의제 주도로 이끌어야 한다.”

- 부동산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하나.

“부동산은 자산(資産)에 관한 문제다. 국민 개개인의 재산형성과 축적과정을 봐야하는 거다. 그러나 이 문제는 또 주거공간과 편리함 등의 ‘주거권’으로도 봐야 한다.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 하는 국민 욕망을 죄악시하면 안 된다. 집 한 채 마련하려는 걸 나쁘게 보면 안 된다. 특히, 공급 부족 문제를 세금 문제로 풀려는 방식은 틀렸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민주당의 주거정책은 틀렸고, 부동산 자산관리와 관련된 정책도 실패를 거듭했다고 생각한다.”

- 어떤 해법이 있나.

“중요한 건 국민의 안정적 주거를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해법은 임대정책일 수도 있고, 주택공급정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를 위해서든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서든 집을 마련하겠다고 하는 과정을 사다리 걷어차는 시각으로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앞으로는 ‘부동산정책’이냐 ‘주거정책’이냐를 분명히 해야 한다. 부동산정책은 시장과 대결하려고 해선 안 된다. 주거정책은 정부 역할을 망설여선 안 된다.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여러 방면에서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민의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권은 망해도 싸다. 역사가 그렇다. 백성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왕조가 버틴 사례가 있나. 없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지난 경선 때도 ‘시장과 대결하지 않겠다, 싸우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얘기했었는데, 더 크고 좋은 집 마련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을 인정해야 한다. 제 가격 치르고, 세금 제대로 내게 하면 된다. 그래서 공급문제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가치상승 주택을 공급하되, 임대가 아니라 내 집 마련 식 공공주택을 더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다만, 처음 분양받은 사람들이 로또 대박을 얻거나 그다음 수분양자가 가치상승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가 아니라 ‘셰어’해서 나눠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내용의 ‘가치성장 주택’ 모델도 제안했었다.”

가치성장 주택은 건설원가 수준의 공급가격을 책정해 공급가의 103%까지 대출하고, 공공환매·시세차익을 공유하는 한편 환매가격 그대로 재공급한다는 모델이다.

박 의원은 “공공이 환매하기 때문에 투기가 원천 봉쇄되며 주택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은행 입장에서도 부실화 염려가 없다”고 설명한다.

또 “입주자 입장에서는 충분한 대출을 통해 자기 집을 마련해 원하는 기간만큼 살다가 팔고 싶을 때는 언제든 공공이 되사준다”며 “시세차익을 공유하므로 자산 축적도 도모하고, 다음 사람도 저렴한 가격에 입주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한다.

박용진 의원 ©투데이신문
박용진 의원 ©투데이신문

◆ 인사 실책 ‘인수위’ 탓은 그럴싸한 변명

- 부동산 문제는 ‘인사(人事) 실패’와도 연결된다.

“부동산 문제로만 보면, 시장에서 내 집 마련하려는 사람들은 편리하고 필요한 곳에 더 크고 좋은 새 아파트를 원한다. 그런 사람들에겐 공급에 문제가 생긴 거다. 자주 막았으니까. 이걸 임기 내에 해결하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선 인사 실패가 맞다.”

- ‘전문성도 없는데 자리에 앉혔다’는 얘기가 있다.

“맞다. 인사 실패가 반이라고 본다. 김현미(전 국토교통부 장관) 뿐만 아니라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실장도 마찬가지로 실패를 거듭한 인사라고 생각한다.”

- 인사 실패 이유가 ‘인수위원회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인사 실책을 인수위 탓으로 돌리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건 그냥 그럴싸한 변명일 뿐이다. 왜냐하면,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시간은 ‘섀도우캐비닛’을 준비할 수 있는 과정이라 봐야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그런 걸 준비할 수 있는 예열기간이 있었다고 보기 때문에 인수위가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 전 정부 인사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는 바람에 문제가 됐다는 주장이다.

“그건 별로 납득이 안 되는, 설득력 떨어지는 ‘핑계’라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 탄핵으로 치러진 19대 대선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꾸릴 시간이 없었다. 인수위 과정이 없었던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인사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인사 실패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번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캠프의 정치개혁특보단장을 맡았던 박상철 경기대부총장은 인사 실패와 관련해 “인수위가 생략된 영향이 컸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 중앙인사위원회를 없애면서 대통령비서실장이 인사위원장직을 겸하도록 했는데, 대법관조차 청와대에 줄을 댈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이 시스템을 그대로 넘겨받았는데,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금도 인사위원장직을 겸하고 있다. 이러면 자기사람들만 쓸 수밖에 없다”고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 곧 새 정부가 출범한다. 국정운영 전망을 어떻게 보나.

“지금 일부 여론조사 지표를 보면, 가장 인기 높고 국민 기대가 넘칠 시기에 당선 득표율만큼의 지지율도 안 되는 것으로 나온다. ‘불행한 시작’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잘해야 야당도 혁신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야당도 ‘대충해도 되겠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상호 견제를 통해 함께 발전하고 혁신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까봐 걱정이다. 이러면 정치는 물론, 국민에게도 불행한 일이 된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될까 우려된다.”

-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취임 일성이 ‘문재인과 이재명을 지키겠다’였다.

“취임 일성으론 적절치 않았다고 본다. 제1당의 원내대표면 ‘국민 삶을 지키겠다’고 얘길 해야지, 대통령과 전 대선후보를 지키겠다고 하는 게 옳으냐. 물론, (정권교체로 인한) ‘정치보복’이 시도된다면 그걸 막고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알겠지만 ‘구체적인 법안개정은 이렇게 할 것’이라고 했어야 했다.”

- ‘입법’을 얘기했어야 했다?

“그렇다. 우린 그냥 야당이 아니라 국회 수권 야당, 입법 여당이다. 국회 권한은 우리가 갖고 있기 때문에 책임 있게 정책적 제안도 내고 법안도 발의하고 해야지, 의석수 적은 소수 야당처럼 센 말만 하려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본다.”

- 당을 쇄신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연하다. 5년 만에 선거를 졌다. 쇄신은 당장의 이익과 상황 논리에 연연하며 내로남불을 정당화해온 소탐대실 정치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강성지지층 얘기만 들어서도 안 되고,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당내 구조와 제도도 개혁해야 한다.”

지난달 24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선출된 박홍근(53. 3선) 의원은 당선 인사를 통해 “어떤 정치적 보복, 검찰 전횡이 현실화 되면 모든 걸 걸고 싸우겠다”며 “반드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상임고문을 지켜내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박홍근 의원이 지난달 24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기념촬영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박홍근 의원이 지난달 24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기념촬영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정치할 생각, “군대 가서 결심했다”

- ‘정치를 해야겠다’ 마음먹은 때는 언제였나.

“구체적으로 고민한 건 군대 가서였다.”

- 상당히 의외다.

“군에서 5년의 학생운동 과정 전체를 복기해봤다. 1992년 대선 때 백기완 후보를 도왔었는데, 당시 득표율이 1%였다. ‘왜, 우린 이것밖에 못 얻을까. 이렇게 옳은 생각을 실천하는데. 세상을 바꾸려고 했는데, 왜 안 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선 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대하고 1997년 대선 때 민주노총 등과 결합해 민주노동당을 만들었다. 당 만들고 나서 처음 총선도 나갔었다.”

1990년 성균관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박용진은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2학년 때이던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의 죽음을 계기로 시작된 5월 정국 말미에 그의 대학 선배인 ‘김귀정’이 시위 도중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는 당시 경험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김귀정의 장례식장을 지켰던 그는 당시를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 인생에 큰 방향을 결정하게 한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회고했다.

1994년 총학생회장이 된 그는 전국 철도·지하철노조 연대 파업 지원 도중 구속됐다 풀려나면서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민주노총 주도로 결성된 ‘국민승리21’에서 언론부장을 맡아 15대 대선후보로 나선 권영길을 지원하며 정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국민승리21이 민주노동당으로 재 창당되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고, 2000년 4월 서울 강북(을)에서 16대 총선에 출마해 13.3%를 득표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그의 나이 28세 때였다. 그때 그가 얻은 득표율은 민주노동당 서울 지역구 출마자 중 최고 기록이었다.

2011년 ‘진보대통합’ 논의가 시작될 때까지 그는 대변인과 부대표 등을 맡으며 진보정당 핵심 역할로 활동했다. 그러나 진보진영 분열과정에서 이탈했고, 그해 말 야권 대통합으로 창당된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에 합류했다. 이후 지난 2016년 20대부터 서울 강북(을)에서 재선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진보진영서 민주당으로 넘어온 후엔 욕 좀 먹었을 것 같다.

“평생 들을 욕을 그때 다 들었다. 하하. 그러나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박용진이 민주당에 와서 의원이 됐으니 유치원 3법을 한 거다.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과정 불법성 다 파헤치고 법적 대가 치르도록 한 거고. 이건희 차명계좌 세금도 1200억 환수했고, 현대자동차 리콜과 무상수리 조치 등의 소비자보호 행동도 나설 수 있었던 거다. 계속 진보정당에 있었다면 주장과 시위, 폭로만 하다 끝났을 거다.”

- 그런데, 일부 지지자들은 ‘결기 찼던 모습이 안 보인다고 한다.

“아무 때나 열정적일 순 없지 않나. 대선 경선 출마하면서 대한민국 현실에 대한 진단과 변화시킬 대안을 많이 얘기했다. ‘바이미식스’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었다. 경제문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심지어는 민주당이 꺼리는 감세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얘기했고, 법인세와 소득세를 더 감세해 코로나 시기 경제활력을 만들어내자는 주장도 했다. 대안이 뭔지를 얘기한 거다. 당 대표 선거가 아니니까.”

바이미식스란 바이오산업과 이차전지, 미래자동차, 6G 등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신조어로, 한국의 향후 30년을 이끌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산업들을 말한다. 지난해 8월 박 의원의 대선 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거론되며 주목받았다.

- 전혀 변한 게 없다?

“당연하다. 국회의원으로서 부정과 부조리와 맞서 싸우는 것과 대통령이 되겠다는 입장에서 대한민국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내겠다 얘기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본다. 이 사람 변한 것 아닌가, 이렇게 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 대통령이 되고자 생각했던 시기와 이유가 궁금하다.

“유치원 3법 본회의 통과 때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저 사진(통과 직후 기념 셀카 찍는 모습)이 법안 통과되던 날 찍은 건데, 1년 4개월 걸렸다. 당연한 법 하나 통과시키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수 있냐는 생각에 충격을 느꼈다.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 센 게 아니라, 작은 이익집단 하나라도 제대로 넘으려면, 큰 권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유치원 3법(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의 핵심은 형사처벌 조항의 신설이다. 과거엔 사립유치원 설립자나 원장이 유치원 교비 회계를 목적 외로 사용하다 교육청 감사에 적발돼도 시정명령 등 행정처분에 그쳤다. 법 통과 이후엔 모든 사립유치원이 국공립유치원과 마찬가지로 국가관리회계시스템(에듀파인)을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교비를 부정하게 사용하다 적발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요구해온 임대료 개념의 ‘시설사용료’도 인정되지 않는다.

- 국회의원 권한으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나.

“국회의원으로 해온 하나하나가 상당히 힘들었던 내용들이다. 삼성 이건희 차명계좌 건, 삼성 불법 경영권 승계 건, 현대자동차 건 등 전부 대한민국에서 제일 센 세력들하고 붙었던 거다. 이런 일들을 마주하면서 대통령이라는 지위와 역할, 권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틀 자체를 바꿔내기 위해서도 그랬고, 그럴 때도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박용진 의원 ©투데이신문
박용진 의원 ©투데이신문

◆ 서울시장 출마 생각 없어...송영길 차출론 무책임

- 서울시장 출마 생각은.

“정치는 누가 불러서 나가는 사람이 제일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다. 대선 출마 때도 그랬지만, 출마 생각이 있었으면 벌써 한다고 했을 거다. 대선 출마 때 ‘서울시장 출마용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었는데, ‘모욕적인 질문’이라고 되물었었다. 그렇게 잔 수 부리며 정치하지 않는다.”

- 그럼 누가 나올 거라고 보나.

“추미애, 박영선도 있고. 송영길 전 대표도 하고 싶어 하는 거 같고. 이재명은 좀 그렇고. 그런 정도 선에서 정리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달 남짓 남았는데, 아직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게 이상하다. 정치는 겸손, 겸양도 필요하지만, ‘시켜주면 하겠다’는 사람은 절대 믿으면 안 되겠더라.”

그는 지난 인터뷰 직후 한 라디오방송에서 송 전 대표의 서울시장 후보 차출론에 대해 “차출이라는 형식으로 다시 복귀하는 건 별로 책임 있는 모습 같아 보이지 않는다”며 “송 대표가 져야 할 (대선 패배) 책임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쉽게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다”는 입장을 밝혔다.

- ‘흥행’ 차원의 경선 참여는 할 수 있지 않나.

“물론, 당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경선국면을 만들어 보자’고 한다면 당의 책임 있는 국회의원으로서 적극적 고민을 해야할 것이다.”

- ‘한국에는 진보가 없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나.

“사회과학이나 학술적으로 좌파와 진보를 구분하는 것보다는 ‘변화가 필요한 지점에 누가 더 용기를 내느냐’로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학술적 규정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나는 좌파 경제학자”라고 선언한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진보는 한국에서만 쓰는 표현으로, (한국이) 선진국이 되면서 시효가 끝났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원래 진보는 없는 말”이라며 진보=좌파라는 등식을 부정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진보를 ‘집권을 위한 이익집단일 뿐’이라 규정하며 “재집권 5년 만에 정책적으로 실패했고, 미학적으로 파산했고, 사회적으로 완전 실패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 ‘기본소득’에 대해 비판적인데, 이것도 하나의 복지제도 아닌가.

“기본소득은 실험적, 점진적, 임시적, 단계적으로 가야한다. 이재명 후보의 가장 큰 실책은 성남시와 경기도에서의 현금정책을 기본소득이라고 생각한 거다. 기본소득도 우파, 좌파가 있다. 시장주의자들의 기본소득과 평등주의자들의 기본소득이 있다. 정책이 다르다. 접근 방법이 다르다. 작은 정부를 하려고 기본소득 하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두가 평등하게 소비력을 가져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자들 것 많이 거둬서 가난한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주자는 사람들도 있는 거다. 또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건 작은 정부와는 또 다른 거다. 로봇이 물건을 구매하지 못하니까 소비력을 가져야 시장이 돌아간다. 완전히 자본주의적인 거다.”

- 이번 대선에서 기본소득이 제시됐고, 기본소득 명칭을 쓰는 정당까지 있다.

“돈 나눠주는 게 기본소득이 아니다.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니라, 기본소득 정책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냐가 중요하다. 좌파로 시작했는데, 우파로 끝내겠다는 건 아니지 않나. 기본소득이란 건 평등주의 정책이다. 시장이 이걸 유지하는 것처럼 섞어서 얘기하면 안 된다. 단계적으로 실험해보고 임시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하후상박’ 식 기본소득 정책부터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재명의 기본소득’은 문제가 있다?

“지난 경선 토론 때 이 후보에게 ‘집권 2년 차부터 20조씩, 마지막 해엔 60조라 해서 120조 맞냐’고 물었더니, 그렇다 해서 ‘그 돈 어디서 나오냐’ 되물었는데 모른다고 하더라. 현금 많이 모아서 나눠주는 게 기본소득이 아니라, 기본소득 정책은 중요한 미래의 대안 정책이다. 당장 현금살포 식으로 접근하기보다 단계적 실험적으로 진행하는 게 맞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해 10월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해 10월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5년 후에 대권 재도전 하나.

“마지막 서울경선 합동유세 때 이미 밝혔다. ‘오늘 민주당 경선은 끝나지만, 박용진에겐 새로운 시작의 날이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당시 방송을 본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안다. 거기에 박용진의 평가가 담겨있다.”

그는 지난 2020년 6월 13일 전북 고창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앞에서 혼자 대선 출정식을 가졌다. 그곳은 1894년 봉기한 동학농민혁명의 발화지점이다.

16개월간의 대장정이 끝나던 지난해 10월 10일 서울경선 때 그는 “우리의 적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변하지 않으려는 민주당 내부의 게으름과 안일함”이라며 “민주당의 변화를 이끌어 당의 미래와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연설했다.

이날, 산재로 죽어간 청년노동자들을 일일이 거명하며 울먹이던 그는 “어떻게 청년들의 목숨 값이 변론요지서에 이름만 올리고 몇 억씩 받아가는 전관예우 법조인들의 ‘뇌물액수’보다도 못하냐”며 “세상을 바꾸겠다”고 ‘사자후’를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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