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킬앤하이드’가 시즌 2차 캐스트를 앞세워 흥행 열풍을 이어간다. 지난 2월 26일부터 시작된 올 시즌 ‘지킬앤하이드’ 2차 공연에는 박은태와 전동석이 다시 ‘지킬’과 ‘하이드’ 역을 맡아 돌아왔고, 새롭게 카이가 합류 소식을 알려 기대를 모았다. 여기에 선민, 해나, 정유지, 조정은, 최수진, 이지혜, 김봉환, 윤영석 등도 함께 무대에 오른다.
영국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작)’을 바탕에 두고 제작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인간의 심리 변화를 극적이면서도 생생하게 표현해 인기를 끌었다. 당시 런던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며 인간 본성이 가진 한계를 간파하는 과정이 담겼는데, 그런 가운데 단계적으로 변화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특히 명망 높은 의사 헨리 지킬이 금지된 실험을 계속해 끝내 파국에 이르는 결말은 꽤 충격적인 전개로 다가온다.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첫 공연을 올렸던 작품은 의외로 한국에서만큼 커다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제작사 오디컴퍼니가 논 레플리카(Non-Replica) 방식으로 작품을 들여와 국내 관객 정서에 맞게 줄거리를 수정하고, 음악에도 변화를 주면서 2004년부터 ‘한국형 지킬앤하이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후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평소 뮤지컬을 즐겨보지 않던 관객들마저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할 만큼 인기작으로서 탄탄한 입지를 굳혔다. 덕분에 ‘지킬앤하이드’는 이중인격자를 뜻하는 관용어처럼 쓰이게 됐고, ‘지금 이 순간’은 어디에서든 한 번쯤은 꼭 들어 봤을 법한 넘버가 됐다.
이렇게 한국 뮤지컬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배우의 해석이 감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작품이어서 꽤 흥미롭다. 그동안 수많은 대세 배우들이 각각 비슷한 듯 확연히 다른 매력을 지닌 무대를 완성해왔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18년에 이어 다시 작품과 인연을 맺은 ‘동지킬’ 전동석의 무대는 한층 더 무르익은 느낌이 든다. 한없이 다정하고 신사다웠던 헨리 지킬이 거칠고 난폭한 에드워드 하이드로 변해가는 과정은 곳곳에 숨겨진 전동석만의 세심한 디테일로 더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신념으로 가득 찼던 그의 얼굴에 경멸이 스친 순간, 자연스레 느껴진 긴장감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주위를 에워쌌다. 돋보이는 음색과 더불어 기복 없이 탄탄한 가창력 또한 몰입감을 높이는 데 크게 일조했다. 특히 내면에 숨겨진 악을 깨운 뒤 점차 하이드에게 잠식되며 그토록 증오했던 위선자들과 닮아가는 모습 역시 이질감 없이 표현해 눈길을 끈다.
레드랫(Red Rat) 클럽 무용수 ‘루시’ 역 선민은 노련하면서도 신선한 무대를 선보였다. ‘지킬앤하이드’로 뮤지컬 데뷔를 했던 그였기에 작품이 가진 의미는 더 특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킬이 건넨 따뜻한 손길에 이끌린 ‘루시’가 질투에 사로잡힌 하이드의 희생양이 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은 배우가 설정한 방향대로 유연하게 흘러간다. 여기에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을 활용해 인물이 가진 양면적 매력을 톡톡히 살리고, 깔끔한 대사 처리와 여유로운 무대 매너를 보여줌으로써 캐릭터가 가진 서사를 좀 더 부각했다.
7년 만에 다시 '엠마' 역을 맡아 ‘지킬앤하이드’로 돌아온 이지혜의 무대도 빼놓을 수 없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는 불확실한 운명의 파도에 맞설 용기와 확신이 담겼다. 덕분에 이지혜의 ‘엠마’는 전통적 여성상을 떠올리는 수동형 캐릭터가 아니라 주도적이면서도 자발적인 ‘엠마’로 각인한다. 그래서 그가 끝까지 연인의 곁을 지키겠다 마음먹는 과정이나 결단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질 만큼 새롭다. 그만큼 그간 배우가 쌓아온 내공과 경험, 캐릭터를 대상으로 한 고민의 결과가 이번 ‘엠마’ 역에 오롯이 담긴 느낌이다.
이처럼 배우들의 눈부신 도전과 해석, 신구 캐스트 조화가 돋보인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오는 5월 8일까지 공연한 뒤 약 7개월에 걸친 샤롯데씨어터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운명을 따라 완성된 로맨스 스릴러 드라마, 화려한 넘버들, 넘치는 에너지로 가득한 무대가 보고 싶다면 정답은 하나,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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