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살균제 필요 없다는 천연 ‘돌’ 가습기
제습·탈취제로 등록해 ‘가습기’ 표기 판매
환경과학원 “불법 행위…안전성 보장 안돼”
전문가 “노골적 상술…‘천연’ 환상 벗어나야”

기사 내용과 무관한 자료사진 [사진 제공=게티이미지뱅크]
기사 내용과 무관한 자료사진 [사진 제공=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천연 자연 제품이기에 화학물질이 하나도 없고 무엇보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안심이 됩니다”

실내 공기에서 건조함을 느낀 30대 남성 박모씨는 얼마 전 천연 광물로서 제습과 탈취는 물론 깨끗한 수증기만 내뿜는다고 광고하는 ‘천연 가습기’를 구입했다. 

제올라이트와 정화석, 화공석 등 다양한 이름으로 판매되는 해당 제품은 완벽한 자연식 가습기로 소개되고 있었다. 평범한 돌처럼 생긴 단일 제형의 제품이지만 그냥 두면 제습과 탈취를, 물을 부으면 세균 걱정 없는 안전한 가습기로 활용 가능하다는 설명이 따라 붙는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천연 가습기가 광고처럼 반드시 안전성과 효과를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해당 제품에 대한 분류가 명확치 않은데다 실제로 환경부에서 허가를 받은 천연 가습기 제품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또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언급하며 해당 제품은 안전하다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데도 판단은 오로지 소비자의 몫으로만 남겨진다는 점에서 관계 당국의 미진한 대응도 문제로 지적된다. 

가습기살균제 대신 내미는 ‘돌’?…상술에 ‘아차’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인해 실내 생활과 건강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쾌적한 실내 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 함께 높아졌다.

특히 겨울철 실내환경이 건조할 경우 호흡기에 영향을 미쳐 바이러스와 세균 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습기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습기의 연관 검색어로 함께 하는 단어는 단연 ‘가습기살균제’다. 지난 2011년 4월부터 수면 위로 떠오른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살균 물질이 포함된 물이 가습기를 통해 기화돼 지속적으로 흡입되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로 인한 폐손상 등으로 산모, 영유아 등이 사망하거나 폐질환에 걸리는 등 수천명의 피해자를 양산했다.

원인으로 지목된 살균 물질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PGH(염화올리고에톡시에틸구아니딘)는 호흡기를 통해 흡입했을 때 유해하다는 경고가 있어 왔지만 기업이 은폐하고 정부는 방관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돌로 만들어진 일부 천연 가습기는 바로 이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공포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네이버 쇼핑에서 ‘천연 가습기’를 검색하면 5만여건의 상품이 쏟아진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대목은 평범한 돌로 보이지만 제습과 탈취, 가습 등 만능 역할을 한다는 제품 광고다. 

제올라이트와 화공석, 정화석, 천연석 등 각각 제품 이름은 다르지만 이들 제품들은 ‘천연’ 제품이라는 것과 자연식 가습이 가능하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제품이 ‘탈취제’와 ‘습기 제거제’로 신고됐다는 점이다.

제품탈취제와 습기 제거제로 제품항목을 신고한 천연 가습기, 각종 시험성적서는 대부분 해당 내용과 관련된 내용. 일부 업체는 가습력 인증 결과를 첨부했지만 가습제로서의 정식 허가를 받지 않은 만큼 이를 명시해 판매할 경우 위법 소지가 있다. [사진 출처 = 각 사 홈페이지] 
제품탈취제와 습기 제거제로 제품항목을 신고한 천연 가습기, 각종 시험성적서는 대부분 해당 내용과 관련된 내용. 일부 업체는 가습력 인증 결과를 첨부했지만 가습제로서의 정식 허가를 받지 않은 만큼 이를 명시해 판매할 경우 위법 소지가 있다. [사진 출처 = 각 사 홈페이지] 

탈취제와 습기 제거제의 경우 현행법상 안전확인대상 생활화학제품에 속한다. 이는 즉 가정이나 사무실, 다중이용시설 등 일상 생활공간에서 탈취와 제습을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화학제품이다.

함량제한물질에는 납과 카드뮴, 비소, 수은, 6가 크롬, 다이메틸푸마레이트 등이 있으며, 이를 지정 시험 검사기관으로부터 검사한 후 안전기준 적합 확인 결과서를 발급받게 된다. 이후 화학제품관리시스템의 신고를 통해 신고증명서를 받으면 유통이 가능하다.

실제로 여러 시험성적서들이 존재했지만 대부분 탈취제와 습기 제거제 신고를 위한 절차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탈취제와 습기 제거제로만 사용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임의로 가습기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 이는 물질의 노출 경로와도 무관하지 않다. 물에 용출된 물질이 호흡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천연 가습기’라는 항목으로 유통되려면 신고가 아닌 환경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의 경우 가습력을 인증받았다는 결과를 제시하며 마케팅에 나서고 있지만, 애초에 가습기 사용 허가가 없는 상태에서 이를 광고에 활용하는 행위는 위법 소지가 있다.

가습기는 실내 밀폐된 공간에서 물을 매개로 용출된 물질을 흡입할 수 있는 만큼, 유해성에 대한 승인 절차가 요구된다. 같은 물질이라도 호흡을 통한 흡입을 특히 경계해야 하는데, 가습기살균제 참사 또한 일반적인 살균제 성분을 밀폐된 실내에 장시간 분무시켰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에 여러 가지 독성과 물리학 성질을 제반으로 한 자료 및 시험성적서를 통해 인체에 대한 연구가 수반돼야 한다.

그러나 본보가 환경부에 확인해 본 결과 아직 국내에서 허가를 받은 천연가습기 제품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천연광물을 물에 담가 가습기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 신고가 아닌 환경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와 관련 허가 받은 제품은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며 “가습 효과가 있다면 실험 데이터로 증빙돼야 하고 안전성도 보장돼야 한다. 돌에 있던 물이 휘발되는 과정에서 중금속이나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천연 돌에 케미컬(화학)물질을 첨가한 것이 아니라 해도 해당 성분에 실리카 등 중금속 물질이 첨부돼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업체들은 가습 기능은 그저 ‘보조 기능’일 뿐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제품명에 천연 가습기임을 명시하고 광고에 나서고 있는 ‘ㄱ’ 업체 관계자는 “해당 제품은 제습과 탈취 기능이 주를 이루며 가습 기능은 고객의 요청이 있어 안내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제품을 물에 담그면 습기가 충전된다고 적극 광고한 ‘ㄴ’업체 관계자 또한 “천연 가습기라는 것은 자연에서 온 돌이기에 물기를 뿜어서 이해를 돕기 위해 쓴 것이고 원래 목적은 제습제”라고 일축했다.

한편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위해성 평가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광고는 명백한 위법 사항이지만 관련 당국의 적극적인 제재는 없는 상태다.

이와 관련 환경부 관계자는 “가습기 기능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에 천연 가습기라는 제품명과 광고를 시행하는 것은 위법”이라면서도 “화학안전관리단 등이 꾸준히 업체를 대상으로 계도에 나서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불안감을 활용한 천연 가습기 광고 내용 [사진 출처=각 사 홈페이지 캡처]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불안감을 활용한 천연 가습기 광고 내용 [사진 출처=각 사 홈페이지 캡처]

‘천연’ 함정 빠져선 안돼…정부 차원에서도 막아야

천연 가습기의 경우 제품의 곰팡이와 세균 발생 우려, 미미한 성능도 문제점으로 떠오른다. 

실제로 천연 가습기 제품의 여러 후기에는 제품에 곰팡이가 피었다, 가습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등의 항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천연 가습기 제품들은 전기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함과 안전함을 강조하며 물건을 판매하는데, 정작 편리하지도 않고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데다 효과도 미미하다는 평가다.

제품이 편리하지 않은 이유는 해당 제품이 물에 담가 사용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어떤 제품이든 물이 닿으면 곰팡이가 생길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돌의 물기를 완전히 말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애초에 가습기살균제가 생겨난 배경은 곰팡이와 세균을 막기 위해서다. 그만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생긴 곰팡이와 세균이 생긴 물을 그대로 흡입한다면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가습기처럼 전기를 사용해 수분을 분사하지 않기에 가습 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천연 가습기는 돌 표면에 있는 기공을 통해 자연적으로 습기를 뿜는 제재 특성에만 기대고 있다.  

이와 관련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명예교수는 천연 가습기라는 제품 자체가 검증이 되지 않은 노골적인 상술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예전에 유행하던 관상용 숯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노골적이고 전형적인 상술로서 같은 원리의 물건이 다른 말로 바뀌어 끊임없이 소비자들을 현혹시키는 것”이라며 “심지어 화초나 어항에서도 그 정도 미량의 물은 뿜어낸다. 천연 광물이라고 강조하는데 그렇기에 어떤 성분이 들었을지도 모르고, 물에 담가놓는 것은 더욱 위험한 행위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소비자들이 스스로 ‘천연’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인공적으로 합성한 물질은 인체에 유해하고, 자연에 존재하는 ‘천연’ 물질은 안전하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숲속 공기를 맑게 해주는 ‘피톤치드’도 사실은 식물이 만들어내는 ‘식물성 살생물질’이고 인공적으로 합성한 비타민C도 과일이나 야채에 들어있는 천연물과 화학적으로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연한 이야기지만 산에서 채취한 돌이라고 해서 우리 몸에 반드시 좋으리란 법이 없으며 이는 소비자들이 먼저 가장 깨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정부 기관에서도 이런 제품에 대한 제재와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교수는 “정부와 전문가들이 나서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계속해서 잘못된 정보를 접하고 필요 없는 물건을 구입해 위험에 빠질 수 있기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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