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존 역-현석준, 바이런&루스벤 역-손유동 페어[사진제공=쇼노트]
뮤지컬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존 역-현석준, 바이런&루스벤 역-손유동 페어[사진제공=쇼노트]

상상이 이룩한 세계는 놀랍도록 현실과 닮아있다. 마치 이루지 못한 갈망을 성취하려는 듯, 의식은 무의식에 거울처럼 투영돼 주위를 비춘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는 꽤 흥미롭다. 중심 사건을 계기로 인물들이 내면에 품은 욕망과 마주하며 겪는 갈등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나, 불분명한 관계 속에서 서로의 마음이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피는 과정 모두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섬세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쌓여있던 감정만큼이나 길어진 문장들은 과연 현실에서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할 단초가 될 것인가.

뮤지컬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The Tale April Fools)’가 지난 3월 8일 서울 대학로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2관에서 첫 공연을 올렸다. 제작사 ㈜쇼노트의 초연 창작 뮤지컬로, 실존 인물이었던 영국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과 그의 주치의 겸 작가 존 윌리엄 폴리도리 이야기를 바탕에 두고 작가적 상상을 덧입혀 만든 작품이다. 표면적으로는 저작권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주된 내용이지만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드러난 심리 묘사와 시적인 넘버들, 곳곳에 숨겨진 관계의 실마리가 관람 포인트가 된다. 이번 초연은 최석진, 현석준, 홍승안이 존 역을 맡았고, 런던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시인 바이런과 뱀파이어 루스벤 역으로는 주민진, 박정원, 손유동이 캐스팅돼 뜨겁고도 화려한 무대를 완성한다.

1819년 4월 1일, 거짓말처럼 갑작스레 세상에 나타난 소설 ‘뱀파이어 테일’은 바이런과 존의 관계를 극으로 치닫게 한다.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밤, 한 별장에서 시작된 다섯 명의 괴담 내기는 누군가에게 외면할 수 없는 영감을 떠올리게 했다. 작가 지망생이기도 했던 존은 당시 바이런이 썼다 버린 단편 ‘불사의 존재’에 원작자 바이런의 이미지를 덧씌운 캐릭터를 등장시켜 소설을 썼는데, 이 작품이 3년 뒤 문제의 소설 ‘뱀파이어 테일’로 출간된다.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폐기한 소설이 바이런의 이름으로 출간됐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큰 충격을 받는데, 바이런 역시 직접 쓴 적이 없었던 신간이 나왔다는 이야기에 놀라 밤이 깊어지자마자 존을 찾아온다.

뮤지컬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바이런&루스벤 역-손유동 [사진제공=쇼노트]
뮤지컬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바이런&루스벤 역-손유동 [사진제공=쇼노트]

‘뱀파이어 테일’ 속 주인공 루스벤은 오늘날 흡혈귀 전설의 원형으로, 상당히 매혹적이면서도 방탕한 캐릭터였다. 실제 바이런의 삶도 그와 닮은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존이 이 소설을 통해 그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여기에 불쾌감을 느낀 바이런이 존을 찾아와 허락도 없이 책을 낸 연유를 따져 묻고, 그 과정에서 과거 이야기와 두 사람 사이에 얽힌 사연들이 자세하게 펼쳐진다. 재능있고 매력적인 바이런을 동경하면서도 온갖 아름다움을 너무나 쉽게 작품 속에 박제해 버린 그를 원망하고, 가공한 현실에서만큼은 대상을 마음껏 사랑하려 했던 존의 모습은 가엾다 여겨질 만큼 애처롭다. 입가를 맴돌던 진심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 나왔을 때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게 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결말을 향할 무렵까지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관객들은 이 모든 과정을 숨죽인 채 지켜보게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단번에 내용을 이해하기 쉬운 작품은 아니다. 이야기 대부분이 현실과 소설을 오가며 전개되기 때문에 자칫 대사를 놓치거나 집중이 흩어지면 큰 흐름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텍스트 안에 숨겨진 의미가 많고, 실제 ‘뱀파이어 테일’이나 바이런의 시 일부에서 따온 내용도 있어서 장면 전환이 이루어질 때 즉각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추론 과정을 거치면서 봐야 조금 더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이왕이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에 대해 사전지식을 가지고 본다거나, 시놉시스를 미리 챙겨보고 관람하기를 권장한다.

그럼에도 초연 뮤지컬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에 관심이 쏟아지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br>-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br>-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br>-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br>-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개와 흥미로운 설정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쌓였던 감정이 거짓말처럼 풀리는 순간 느껴진 짜릿함은 좀처럼 만나보기 어렵다. 또 치열한 언쟁을 도구 삼아 의식과 무의식을 자유로이 넘나들다 문득 모든 경계가 흐릿해졌을 때, 온갖 감정의 파도가 순간적으로 밀려 들어오는 듯한 기분도 짜릿하다. 이처럼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가 적어 내려간 기록들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 되어 관객들의 마음속에 새롭게 박제되기 충분하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 속에 환상적인 느낌을 더하는 무대와 공들인 소품, 때때로 빛을 내는 일종의 장치들 역시 재미있는 볼거리다. 무대 위에 새롭게 환생한 존과 바이런의 이야기는 오는 5월 22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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