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의 고질적 병폐 ‘폐쇄적 지배구조’
CGCG, 92개 기업 주주총회 안건 중 279건 반대
사외이사‧감사위원 반대 가장 많아 “독립성 우려”
사내이사들 ‘기업가치 훼손’ 이력에도 재선임 돼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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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올해 주총은 각 기업들의 신사업 확대 움직임이 두드러진 가운데 큰 이변 없이 종결됐다. 현대중공업 같은 전통적인 제조기업은 신약개발이나 디지털 헬스케어 진출 계획을 밝히기도 했으며 이외에 다양한 기업들이 인공지능 서비스, 모빌리티, 글로벌 사업 진출 등을 언급하며 어느 때보다도 구체적인 변화에 대한 계획이 강조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국사회 기업들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온 폐쇄적인 지배구조는 올해 주총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특히 최대주주나 경영진의 독주를 막기 위한 감사위원 및 사외이사 선임에 있어 독립성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잇달았으며 대표이사의 과다 겸직이나 자의적인 이사보수한도 증액 이슈도 여전히 반복됐다.  

279건 반대의견, 주요 금융지주사들에만 26건 몰려

2일 <투데이신문>이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의 2022년 주주총회 리포트들을 분석한 결과 올해 국내 92개 주요 기업들의 주총에는 총 735건의 안건이 상정된 것으로 집계됐다. 전자투표를 도입한 기업은 79곳으로 86%를 차지했으며 온라인 중계를 활용한 기업은 9곳으로 10%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735건의 안건 중 CGCG가 반대 의사를 표명한 안건은 모두 279건으로 10건 중 4건 정도가 해당됐다. 특히 하나금융지주 11건, 신한금융지주 9건, 우리금융지주 6건 등 주요 금융지주사들에게만 26건의 반대 의견이 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밖에 롯데케미칼(6건), 영풍정밀(6건), SK렌터카(6건), DB하이텍(5건), 넷마블(5건), 팬오션(5건), 현대백화점(5건), 금호석유화학(5건), 셀트리온헬스케어(5건) 등도 반대 의견이 많은 기업군에 속했다. 

하나‧신한‧우리 등 금융지주 주총 안건에 많은 반대가 집중된 것은 해당 기업들의 감사위원 및 사외이사 후보들이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등 금융사고와 관련해 경영진에 대한 감독의무와 선관주의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판단에서다. 

CGCG는 금융지주사들의 불완전판매 등 경영상의 책임이 당시 경영진들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위원 및 사외이사 후보들이 감독 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이들을 대표이사 등의 사내이사 후보로 추전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CGCG의 반대 안건 빈도 그래프 [정부 비정형 데이터 분석 및 시각화 툴 활용]
CGCG의 국내 기업 주주총회 주요 반대 안건 [정부 비정형 데이터 분석 및 시각화 툴 활용]

사외이사 선임 반대의 70% “독립성 우려”

이와 함께 안건 유형별 반대 항목을 살펴보면 사외이사 선임에 대한 반대가 78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사보수한도 66건 ▲감사 및 감사위원 선임 58건 ▲사내이사 선임 52건 ▲정관 변경 7건 ▲주식매수선택권 5건 ▲특별공로금 4건 ▲기타비상무이사 선임 4건 ▲분할계획서 승인 1건의 순으로 이어졌다.   

다수의 반대 의견이 몰린 사외이사 선임의 경우 독립성 훼손 및 침해가 우려되는 사례가 55건으로 전체의 70%나 차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독립성 훼손이 우려되는 요인에는 ▲거래관계에 있는 법무법인 또는 회계법인 소속 ▲계열학교 법인 교수 ▲계열사 임원 경력 ▲학연 등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독립성 외의 요인으로는 경영진에 대한 감독 의무 소홀, 기업가치 훼손에 따른 선관주의의무 이행 우려, 이사회 출석률 저조, 법령위반 가능성, 동종업계 겸직에 따른 이해상충 우려 등이 거론됐다 

감사 및 감사위원 선임에 대한 반대 역시 동일한 양상을 보였는데 전체 반대의견 58건 중 58%에 해당하는 34건이 독립성 훼손 및 침해 우려에 따른 것이었다. 해당 사례들 역시 거래 관계에 있는 법무법인 소속이나 계열사 임원 경력, 학연 등이 문제가 됐다. 

경제개혁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등은&nbsp;감사위원 전원 분리선출을 촉구해왔지만&nbsp;1명 이상만 일반 이사와 분리하도록 법제화 됐다. [사진제공=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등은 감사위원 전원 분리선출을 촉구해왔지만 1명 이상만 일반 이사와 분리하도록 법제화 됐다. [사진제공=참여연대]

오너일가‧경영진 견제 취약한 구조

사외이사와 감사 및 감사위원의 독립성 우려에 따른 반대 의견을 모두 합하면 89건으로 전체의 32%를 차지했다. 이는 국내 주요 기업들이 오너 또는 경영진에 대한 견제 부문에서 취약점을 보이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사외이사는 경영진에 속하지 않는 이사로서 독단경영과 전횡을 차단하는 역할을 맡기기 위해 도입됐다. 감사위원제도는 명목상으로 기업 지배구조 정비를 위해 마련됐으며 영업에 대한 보고를 요구하거나 회사의 업무 및 재산상태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한국사회처럼 오너일가의 지배력이 강한 구조에서는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1명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지난 2020년에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도입됐지만 1명 이상만 일반 이사와 분리하면 된다는 조항이 포함되면서 반쪽짜리 정책이 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상법상 감사위원회는 최소 3명 이상의 이사로 구성 되는데 다수의 기업들이 그 중 1명만 분리선출한다면 위원회 차원에서 최대주주를 견제하기 위한 의견을 내놓기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밖에 사외이사들이 경영진 견제라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례는 최근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경우를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한 후보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을 맡으면서 에쓰오일의 사외이사로도 선임이 됐다. 

하지만 당시 에쓰오일의 사외이사 6명 중 3명이 같은 법률사무소 고문이라는 지적과 함께 이해상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에 따르면 한 후보자는 총 6회의 이사회에 참석하는 동안 어떤 안건에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롯데지주를 비롯해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대표이사와 에프알엘코리아 기타비상무이사, 캐논코리아 사내이사 등을 맡고 있어 과다 겸직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롯데지주를 비롯해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대표이사와 에프알엘코리아 기타비상무이사, 캐논코리아 사내이사 등을 맡고 있어 과다 겸직 비판을 받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사내이사 과다겸직‧보수증액 등도 개선 권고

사내이사의 선임이나 재선임에 대한 반대 의견도 총 52건으로 적지 않은 수준이었다. 주요 반대 요인으로는 법령 위반 등을 통한 기업가치 훼손 이력이 22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과다 겸직 14건, 일감몰아주기 7건, 법령위반 이사 재선임 찬성 5건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과다 겸직 지적을 받은 기업들에는 기아, DB, 롯데지주, 롯데제과, 사람인에이치알, 삼양통상, 팬오션, 하림, 한국앤컴퍼니, 한화, 한화솔루션, 현대백화점, 현대자동차 등이 포함됐다. CGCG는 최고경영자의 경우 비상근 이사보다 높은 책임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겸직을 엄격하게 제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충분한 검토 없이 이사보수한도를 늘리려는 기업들의 행태에 대해서도 66건이나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반대 의견 중 79%에 해당하는 52건은 독립적 보수심의기구가 부재한 상황에서 한도를 증액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과도한 보수 총액 증가나 심의의 충실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밖에 정관변경과 관련해서는 서면투표를 폐지하거나 이사의 책임을 제한할 수 있는 조항들에 대한 신설 안건이 지적대상이 됐으며 두산, 두산밥캣, 두산퓨얼셀 등은 특별공로금에 해당하는 임원 퇴직금 지급 규정 제정 안건을 상정해, 특정인에게 과도한 금액이 지급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제 같은 규정에 의거해 특별공로금을 지급해온 하나금융지주는 퇴임하는 김정태 회장에게 50억원 수준의 퇴직금을 주는 안건을 상정,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로부터 과다 지급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지난달 25일 주총에서 원안대로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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