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창신동 모자 숨진 채 발견…생활고 겪어
오래된 목조 주택…기초생활 수급자 선정 ‘걸림돌’
종로구 “창신동 모자 기초생활 수급 대상 아니다”
‘방배동 모자 사건’과 유사…복지 사각지대 여전해

창신동 모자가 지낸 오래된 목조 주택. 여기저기 금이 가있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하다. ⓒ투데이신문
창신동 모자가 지낸 오래된 목조 주택. 여기저기 금이 가있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하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서울 종로구 창신동 낡은 목조 주택에서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생활고로 나란히 숨진 채 발견된 ‘창신동 모자 사망사건’에서 국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90년 된 목조 주택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은  지난 4월 20일, 사망한 지 한 달 후에야 겨우 발견됐다. 이마저도 과하게 측정된 수도요금을 보고 누수를 의심해 방문한 수도사업소 직원에 의해서다. 이런 상황속에서 모자가 오랜 시간 의지하며 지낸 낡은 주택은 그들의 기초생활보장에 발목을 잡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실제 창신동 모자가 살았던 단독주택의 매매 계약서 ⓒ투데이신문
실제 창신동 모자가 살았던 단독주택의 매매 계약서 ⓒ투데이신문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주택의 가격 ‘1억7000만원’

본보가 입수한 모자의 단독주택 매매 계약서에 따르면, 노모의 명의로 된 목조주택은 2020년 2월 12일 2억5000만원에 계약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계약은 불발됐다. 인감도장을 찾기 위해 영등포에 위치한 친척 집에 다녀온 아들이 돌연 마음을 바꿨기 때문이다.

모자의 집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A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아들이 ‘개포동 15평 주공아파트가 15억~17억이니, 10억 이상 주지 않으면 팔지 않겠다’며 마음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A씨는 “차마 매수인에게 10억으로 올려 달라 전달하기가 난처해 ‘매도인이 마음을 바꿔 거래를 하지 못하게 됐다’고 둘러댔다”고 설명했다. 

A씨에 따르면 당시 2억5000만원 수준이던 해당 목조주택은 재개발 이슈로 인해 현재 4억5000만원에서 5억원까지 뛴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이 살 수 있다고는 보기 힘든 오래된 집의 공시 가격은 1억7000만원. 서울 창신동 일대는 재개발 소식으로 지난 8년간 공시 가격이 27%나 상승했다. 그럼에도 정작 모자는 수개월 전기 요금이 밀릴 만큼 경제적으로 상황이 궁핍했다.

노모는 심근경색을 앓고 있어 거동이 어려웠고, 아들 역시 고혈압 등 지병으로 직업을 갖기 힘든 처지였다. 그럼에도 다 쓰러져가는 목조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는 까닭으로 기초생활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창신동 모자의 집 우편함. 우편물이 쌓여있다. ⓒ투데이신문
창신동 모자의 집 우편함. 우편물이 쌓여있다. ⓒ투데이신문

일자리도, 수입도 없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아니다

앞서 창신동 모자를 발견할 수 있었던 기회는 충분히 존재했다. 아들은 지난해 12월 종로구청을 찾아가 긴급 상담을 요청했다. 일자리가 없어 생활고를 겪고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상담 후 두 달 만인 지난 2월, 모자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수급자로 지정되기 위해선 2인 가족 기준 월 소득이 97만원을 넘어선 안되지만, 정부가 모자의 재산을 환산해 산정한 월 소득은 310만원 대였다. 현행 복지 제도에선 실소득이 없더라도 자택을 소유하고 있으면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욱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구청의 방문 조사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복지 사각지대가 여실히 드러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존재한다.

이에 종로구청 관계자는 “창신동 모자의 경우 기초생활 수급자 대상이 아니기에 가정방문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분들의 집 상태나 거주 환경이 열악하긴 했지만, 집이라는 재산이 있다. 그것조차 없는 분들도 많기에 구청 입장에서는 그분들을 우선적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빈곤사회연대는 얄팍하게 작동하고 있는 복지 제도 전체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창신동 모자 사건의 경우 소득 절벽 문제도 있지만 돌봄 위기 가구이기도 했다. 질병을 가진 아들이 하반신 마비인 어머니를 보살펴야 되는 상황에서 아들이 사망하니 홀로 남은 어머니가 혼자 계시다가 사망했다”며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지 못하면 요양 서비스를 받더라도 비용이 상당해진다. 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여러 복지 서비스의 총체적인 실패가 바로 창신동 모자 죽음에 맺혀있다”며 “한국 사회에서 복지 제도는 허점이 너무 많다. 집의 공시지가가 높아진 것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할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빠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창신동 모자의 집으로 향하는 가파른 오르막길 ⓒ투데이신문

창신동 일대 ‘비슷한 사례’ 많아 이웃 근심 깊어

주변 이웃들은 이번 창신동 모자 사망사건을 바라보며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웃 주민 C씨는 “이곳은 서울에서 낙후된 지역으로 유명하다. 모자와 같은 상황에 처한 주민들이 대다수”라며 “사망한 모자와 같이 수급을 받아야 살 수 있음에도 정부 정책으로 인해 수급을 받지 못한다면, 결국 국가가 가난한 자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 아닌가”라고 호소했다. 이어 “사실상 근로능력이 없는 모자를 방치해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며 현행 제도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곳에서 20년간 살았다는 D씨는 “여기가 지금 재개발이 된다는 소문 때문에 집값이 많이 올랐다”며 “이 동네 돌아다녀보셨으면 알 것 아닌가. 다들 가난하고 힘들다. 근로능력조차 없는 이들도 대다순데 무너져 갈 것 같은 집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을 못 받는 게 복지 사각지대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오며 가며 아들을 자주 목격했다는 E씨는 “체격도 좋고 겉으로 봤을 때는 멀쩡해 보여도 정신적으로는 뭔가 문제가 있는 듯 보였다”며 노모의 아들을 기억했다. 이어 “집 안에 들어가 보면 정말 엉망이다. 저게 어떻게 월 280만원을 버는 집안인가. 가당치도 않다”며 “이 동네에 고독사는 흔하다. 얼마 전에도 아래층에서 냄새가 나서 신고하니 아저씨 혼자 엎어져서 죽어있는 경우도 봤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기준 현재 종로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현황에 따르면 일반 수급자는 총 4203세대, 4998명이다. 시설수급 550세대와 시설수급 인원 550명을 합하면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현황은 총 4753세대, 554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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