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경제개혁연대‧연구소 김우찬 소장
‘교수‧관료‧법조인’ 3대 업종에 집중된 사외이사
견제의 부재, 편법상속 및 경영세습으로 이어져
“경영진의 역할은 회사와 주주에 충성하는 것”
좋은 지배구조는 자본 효율적 재배분의 토대
“복수의결권 허용되면 재벌 권한 영속화 가능”

고려대 김우찬 교수 ⓒ투데이신문
고려대 김우찬 교수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한국 주식시장의 역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1956년 3월 3일이다. 이날 서울 명동에서 대한증권거래소가 출범했고 조흥은행, 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경성방직 등 12개 회사가 상장했다. 당시 시가총액은 150억원 수준이었다.

그로부터 어느덧 66년이 지났다.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인 코스피에 상장된 기업은 모두 820곳(5월 2일 기준)이다. 시가총액만 2114조4420억원에 달하는 수준이다. 장외증권시장인 코스닥에도 1554개 기업이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시가총액은 399조9220억원으로 집계됐다. 

증권시장의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기업의 최대주주나 특수관계인이 아닌 주주들도 늘어났다. 특히 최근에는 글로벌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투자처를 찾는 소액주주들의 발걸음이 주식시장으로 쏠리는 모습을 보였다. 

주주 권리에 대한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는 분위기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통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설 것을 천명했으며 주주행동주의 펀드들도 최대주주의 전횡을 지적, 경영권 참여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사회는 여전히 주주의 권리나 이익을 온전히 지켜내기 어려운, 기업 지배구조 후진국으로 분류된다. 창업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최대주주 집단이 오너십을 형성하고 사회 전체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 주주가 주인인 회사로 거듭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지난해 발표한 ‘CG Watch 2020’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 점수는 52.9점으로 1위인 호주(74.7)보다 21.8점이나 뒤떨어졌으며 홍콩(63.5), 싱가포르(63.2), 대만(62.2), 말레이시아(59.5), 일본(59.3), 인도(58.2), 태국(56.6)에 이어 9위에 머무는 수준에 그쳤다. 한국은 특히 ▲상장회사 ▲투자자 ▲시민사회 및 언론 부문에서 각각 48점, 44점, 36점을 기록하며 낮은 점수를 보였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20여년 간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권리 강화에 대한 목소리를 내왔으며 현재 경제개혁연대와 경제개혁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고려대 경영학과 김우찬 교수를 만나, 국내 기업들이 가진 문제점과 편법상속 및 경영세습의 폐단, 그리고 좋은 기업의 지배구조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고려대 김우찬 교수 ⓒ투데이신문
고려대 김우찬 교수 ⓒ투데이신문

◎ 견제 받지 않는 최대주주

Q. 올해 주총에서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의 독립성 문제가 가장 많이 지적됐다.  

경영자들은 방해받지 않고 경영을 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반대 의견을 듣는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거수기 역할로 모셔오는 분들도 있고 내부 어려움을 해결해줄 로비스트로 오는 분들도 있다. 아무런 견제 역할을 못하는 거다.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의 견제는 사익편취를 막고 무모한 투자를 못하도록 하는 건데 이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기업과 주주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 

우리나라 사외이사 제도는 굉장히 이상한 것 같다. 다른 나라에 비해 일단 교수가 굉장히 많고 전직 관료와 법관, 변호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교수들은 연구자이긴 하지만 실무 경험이 없고 판검사들도 경영을 안다고 할 수 없다. 해외 기업의 사외이사는 대부분 기업인들이다. 현재 경영을 하고 있거나 과거에 경험이 있는 분들, 금융 전문성을 가진 분들이 참여한다. 한국과 같이 3대 직종에 집중된 나라는 없다. 

Q. 견제의 부재는 편법상속이나 경영세습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경영세습은 세습 과정과 이후에서 모두 문제를 드러낸다. 세습과정에서는 불법합병이 있을 수 있고 소액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증권의 발행도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결국은 승계를 하더라도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경영을 맡는 것은 아니니까 회사의 경쟁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역시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이사회가 역할을 하려면 주주가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데 권한이 없으니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결국 이사들도 주주가 아닌 경영자의 편을 드는 상황이 된다. 

그렇다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춘 기업이 잘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는 CEO가 주변사람을 포섭한다. 금융지주사 같은 경우에는 문책경고를 받았음에도 (대표들이)물러나지 않고 행정소송이나 가처분 신청을 통해 연명하고 있다. 굉장히 보기 좋지 않은 모습이다. 회사에 분명히 손해를 끼쳤는데 쫓아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도 이사회는 작동을 안 하고 주주들도 결집이 안 되고 있다.

Q. 편법상속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가.

예를 들어 요즘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건 CJ다. CJ는 지주회사를 지배하면 지배권을 갖게 되는 구조인데 거기에 전환우선주를 발행했고 자녀들이 이걸 매수했다. 전환우선주는 10년 후에 보통주로 전환된다. 대게 유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잘 매수하지 않는데 CJ 자녀들이 샀고 이는 나중에 지배권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내부거래 문제도 있는데 CJ네트웍스는 올리브영과 합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했다. 다시 인적분할을 한 후에 기업공개(IPO)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상당한 현금확보가 가능하고 그걸로 또 CJ 지주회사의 지분을 살 수 있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 같은 경우도 2015년이니 벌써 7년이 지났다. 이 부회장은 부당한 합병비율을 통해 본인이 더 많은 지배권을 가지려 했다.  

Q. 경영세습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을 끊어낼 수 있을까.

오너일가가 주식을 계속 갖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것을 더 불리기 위해, 그리고 자기가 투입한 돈 보다 더 많은 지배권을 가지려고 하는 건 막아야 한다. 합병비율이 잘못된 것 같으면 주주들도 적극적으로 반대를 해줘야 한다. 

일감몰아주기 같은 경우도 문제인데 2013년 공정거래법이 개정되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2020년 말에 강화됐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열심히 해보려는 것 같다. 생각만큼 규제가 잘 안되는 이유는 기업들이 회피전략을 쓰기 때문이다.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업이 되려면 오너가족 지분 20% 이상, 자회사는 50% 이상 등의 기준이 있는데 지분율을 낮춰 회피하면 어려워진다. 

때문에 행정규제 외에 주주에 의한 사전적, 사후적 규율도 중요한 것 같다. 이게 우리나라가 약한 부분인데 특수관계인 간 거래를 한다고 하면 이해관계가 없는 일반주주에 의해서만 승인을 받도록 한다든지 사전에 공정한 거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사후적으로 문제가 생겨 피해가 발생하면 효과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주주대표 소송제도가 좀 더 활발하게 활용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Q. 일각에서는 편법상속을 막기 위해 세율을 낮춰 기업들에게 탈출구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는데.

그들의 논리는 세율이 높기 때문에 상속증여세를 다 내면 지배권을 잃으니, 편법으로 일감을 몰아주고 합병비율을 조작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가족 승계를 꼭 해야 한다는 관념부터 깨야 한다. 승계를 해야한다는 것을 불변의 진리로 놓으면 당연히 그런 얘기도 나오겠지만 그 생각을 고쳐야 한다. 세금은 내야하는 거고 편법 행위는 당연히 하면 안 되는 거다. 상속증여세라는 건 다양한 목적을 갖고 있다. 기업경영을 떠나서 부의 대물림을 막고 사회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등의 목적이 있는데 사익편취를 줄이기 위해 상속세를 낮춘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처방이다. 

세율에 대해서는 지배구조를 연구하는 분들 중에서도 의견이 갈리긴 한다. 주로 시장 편에 있는 분들, 주식 투자를 해서 수익을 벌어야 하는 분들이 상속세를 낮추자고 얘기한다. 하지만 국가 전체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승계를 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회사를 지배하면 월급과 배당만 받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을 사적으로 편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득은 다 없어져야 한다. 자기가 갖고 있는 지분만큼만 목소리를 내는 거고 그만큼만 배당을 받으면 된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훌륭하고 깨끗한 경영자라고 할 수 있다. 또 그렇게 되면 자녀들이 굳이 승계를 해야 한다는 마음도 안 생길 거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그렇게 가야한다.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올해 초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연금의 소극적 주주권 행사를 비판했다. [사진제공=뉴시스]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올해 초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연금의 소극적 주주권 행사를 비판했다. [사진제공=뉴시스]

◎ 아쉬움 남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Q.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생각보다 잘 못했다. 2018년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것은 다행이었지만 그것도 굉장히 늦었다. 이후에도 여러 가지 활동을 기대했는데 사실 의결권 행사 외에는 하는 게 별로 없다. 재계에서는 주주대표소송도 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반대하고 윤석열 정부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은 재벌들의 힘이 세기 때문에 국민연금에게 희망을 걸었다. 국민연금이 제 힘을 발휘한다면 재벌만큼 영향력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수탁자전문위원회에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위원회에는 노동자단체와 지역단체도 있지만 사용자단체도 포함됐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해야 하는데 이를 반대하는 사람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주주행동주의와 관련해 그나마 주목할 만한 것은 이번 주총에서도 나타났듯, 행동주의 펀드들이 더 많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진칼을 상대로 했던 KCGI가 두드러졌는데 지금은 차파트너스, 얼라인파트너스 등이 주주행동주의를 이어가고 나름대로 성과를 보이고 있다. 

Q. 국민연금이 제 역할을 했다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었을까. 

우선 의결권 행사를 훨씬 더 엄격하게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의결권 행사에 일관성이 생기면 당연히 주주대표 소송도 몇 년 전부터 했을 거고. 그럼 기업들이 사후적으로 손해배상을 물어야 하니까 나쁜 행위를 덜하게 된다. 

제가 계속 주장했던 건 책임투자형 펀드다. 자금을 위탁해서 펀드로 하여금 주주행동주의를 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걸 잘 활용하면 KCGI 같은 곳이 몇 개는 더 생기도록 할 수 있는데 원천 차단시켰다. 사외이사 후보 추천도 한다고 했지만 전혀 없었다. 많은 걸 할 수 있었다. 다음 정부에서는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주주권 행사마저 하지 말라고 할까봐 염려된다. 

Q. 한국사회의 기업 지배구조가 왜곡된 원인은 무엇인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재벌의 힘이 워낙 강한 것 같다. 다른 나라에도 기업인은 있지만 한국은 창업자와 그 이후 세대, 가족들의 힘이 세다.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해도 영향력이 없고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지 않는다. 본인을 오너라고 생각하면 나머지는 다 머슴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견제와 감시는 어려운 일이다. 사고방식과 역학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 충성 대상은 오너 아닌 회사와 주주

Q. 좋은 기업지배구조를 위해선 어떤 요소를 갖춰야 하는가.

좋은 기업 지배구조의 핵심은 경영자가 본인이 아닌 회사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대주주 외에 다른 많은 주주들도 회사의 주인이다. 충성의 대상이 회사이고 주주라면 좋은 기업 지배구조를 갖출 수 있다. 오너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을 위한 경영이 나쁜 기업 지배구조를 만든다. 

경영자가 회사에 충성을 하면 운영이 잘 된다. 회사가 잘 되면 기업가치가 올라가고 자본 조달 비용도 낮아진다. 거기에 사익편취를 하지 않으니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이익이 온전하고 공정하게 배분될 수 있다.  

사외이사 제도가 거수기와 로비스트로 변질되고 내부 지배구조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면 외부 지배구조를 끌어들일 수도 있다. 주주의 목소리를 강화시키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래서 지난 10년간 감사위원 분리선임도 계속 주장해 왔다.  

예를 들어 사조오양의 경우 차파트너스가 추천한 경북대학교 이상훈 교수가 감사위원 분리선임으로 들어갔다. SM은 감사위원이 아닌 감사이긴 하지만 얼라인파트너스에서 한명을 통과시켰다. 이런 분들은 이미 전쟁을 치르고 들어간 경우기 때문에 포섭당하지 않고 견제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문제가 있는 부분에 목소리를 내고 제 역할도 할 수 있다. 

Q. 좋은 기업 지배구조는 한국경제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나.  

기업지배구조가 좋으면 자본 배분의 효율성이 올라간다. 한국에서는 잘 이해를 못하는 부분인데 미국의 헤지펀드(Hedge fund)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은 타깃이 된 회사의 부실한 사업부문을 포기시키는 일이다. 매각한 사업부문을 사들인 기업은 기존의 기업보다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해당 기업 자체는 쪼그라들고 고용도 줄겠지만 자본의 효율적인 재배분이 이뤄지고 경제 전체적으로는 효율성이 올라간다.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낮다고 얘기하는데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또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은 아니니까 자본의 투자 효율성도 줄어든다. 결국 생산성을 올려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자본을 적재적소에 재배분 하는 것이다. 좋은 기업 지배구조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가령 회사를 설립하고 처음에는 돈을 많이 벌던 기업도 산업이 성숙하면 더 이상 투자할 곳이 없어진다. 근데 한국 회사들은 이걸 현금으로 계속 쌓아두거나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만약 이익을 배당으로 돌려준다면 주주가 알아서 더 좋은 곳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돈이 흘러야 한다. 

기업 지배구조가 좋다는 것은 부실한 사업부문을 빨리 팔고 현금이 쌓이면 배당을 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헤지펀드가 뭘 한다고 하면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얘기하는데, 한심하다. 또 주주행동주의의 대상이 된 회사들은 기업 규모가 작아지고 고용이 줄고 투자가 감소한다고 얘기하는데 당연한 일이다. 그 사업부서가 다른 기업으로 가서 생산성이 올라간 것은 분석을 하지 않는다. 

고려대 김우찬 교수 ⓒ투데이신문
고려대 김우찬 교수 ⓒ투데이신문

◎ 오너 권한 영속화 하는 복수의결권 도입 막아야

Q. 해외의 기업 지배구조는 어떠한가.  

미국은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회사들 보다 나은 것 같다. 아직 창업자가 있는 플랫폼 기업을 제외하면 전문경영인은 그야말로 매니저 역할을 한다. 그러다보니 이사회의 힘이 세다. 또 헤지펀드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회사들이 굉장히 많아 외부의 목소리가 크다. 여차하면 외부에서 사외이사를 집어넣겠다고 할 수도 있으니 항상 밸런스가 맞는다.

특히 기업을 경영하다가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 형사처벌보다는 주로 민사소송이 제기되는데 그 금액이 상당히 크다. 우리나라는 주주대표소송이 잘 이뤄지지도 않고 법정에서도 봐주기 일쑤다. SK 최태원 회장 같은 경우 사업기회 제공 때문에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SK실트론이라는 회사 주식을 SK가 전량 다 인수해야 하는데 30% 정도를 최 회장이 가져갔다. 이 지분의 가치가 엄청나게 높아져 거의 2000억원 정도의 이익이 발생했지만 과징금은 8억원에 그쳤다. 이건 나쁜 짓을 계속 하라는 얘기다.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가 있는데 이곳의 평가에 따르면 아시아 12개 국가 중에 한국이 9위 수준이다. 우리나라보다 뒤떨어진 곳은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정도다. 태국도 잘하고 대만도 잘하고 말레이시아도 잘한다. 일본은 월등히 좋고 호주, 홍콩, 싱가폴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다. 

Q. 한때 지배구조가 열악했던 일본은 어떻게 개선을 이뤄냈나.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지배구조에 있어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시기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뿐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일본 밑으로 내려갔고 지금은 한참 아래다.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가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많이 이끌어 냈다.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출한 기술이 있던 것은 아니고 일본은 재벌이 이미 해체됐기 때문에 변화가 가능했다. 힘이 강한 재벌이 있으면 지배구조에 대한 논의 자체가 어렵다. 일본 기업들은 또 정부의 말을 잘 따르는 경향이 있다.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면 기업들이 알아서 움직인다.

실제 지금 우리나라는 쪼개기 상장 때문에 주주들이 상당히 화가 나 있는데 일본은 거꾸로 물적분할 했던 상장 회사를 다시 폐지시키고 있다. 모회사와 자회사 둘 다 상장돼 있으면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같은 경우도 그룹을 이루고 있으면 한 회사만 상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Q. 한국 사회 기업 지배구조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 

재벌구조가 지금 체제로 이어진다면 30년 이내에는 없어질 것으로 본다. 신생 재벌이 나오면 또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르겠지만 삼성이나 현대, LG 같은 곳들은 승계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사실상 지금의 재벌 체제는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그럼 뭐가 문제냐. 지금 가장 주목해야할 것은 복수의결권이다. 복수의결권 주식이 도입되는 순간 재벌은 영생을 살게 된다. 주요 오너일가가 지배하는 계급사회가 되는 것이다. 지금 위험한 것은 복수의결권 주식을 벤처에만 허용하기 때문에 괜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 공약에도 벤처에 한해서 복수의결권 주식을 준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복수의결권 주식만큼 손쉽게 지배권을 강화하고 영속화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저 발행만 하면 되니 돈이 안 든다. 의결권 10개, 1개, 0개 등으로 정하면 된다.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한 벤처가 상장하면 일몰조항에 따라 3년 후 보통주로 전환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일몰조항이 지켜진 역사가 없다. 자연스럽게 연장되다가 일몰조항이 없어지고 그럼 평등을 주장하는 헌법소원이 제기되고 복수의결권 주식이 모두에게 허용되는 방향으로 가는 거다. 그렇게 되면 지배구조 문제를 따질 수도 없는 상황이 된다. 

Q. 향후 활동 계획이 있다면.

개별 기업에 대한 논평을 쓰고 법 개정 운동도 하면서 그동안 해왔던 것들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다만 그동안은 주로 G(지배구조) 영역에 초점을 맞췄다면 몇 년 전부터는 E(환경)와 S(사회)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E와 S도 주주가 주도를 해야 한다. 경영자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경영자에게 모든 권한을 주는 순간, 환경을 위하는 척하면서 자기 배를 불리고 노동자를 위하는 척하면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4월 주총 진행도 유도해왔다. 주주명부 폐쇄일이나 배당기일도 12월 말이 아니라 그 이후로 할 수 있게끔 해서 4월 주총을 이끌어 내려 한다. 4월에 주총을 하게 되면 개최도 분산이 이뤄지고 감사보고서와 사업보고서도 제대로 읽고 분석을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4월도 아니고 5월에 모든 정보가 공개된 상황에서 주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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