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차제연 이종걸 공동대표‧미류 책임집행위원
차제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
15년간 법안 제정 요구했지만 제대로 된 논의 없어
“차기 여당 대표 발언권, 혐오 선동에 쓰이는 것 유감”
전장연 사태서 시민 불만 장애인 향한 것, ‘정치 책임’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왼쪽), 미류 상임집행위원(오른쪽) ⓒ투데이신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왼쪽), 미류 상임집행위원(오른쪽)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유정 기자】대한민국 헌법 제 11조 1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나이, 성적지향성, 출신국가, 인종 등에 따른 차별과 인격보독까지 일삼으며 낙인찍고 차별한다.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 실현을 위한 법안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011년 1월 출범해 여러 활동을 벌이며 11년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급기야 지난 4월 11일 국회 앞에 평등텐트촌을 설치했다. 텐트촌을 방문하는 시민들과 함께 1박2일 릴레이 농성을 진행하며 평등 상징물을 함께 만들고 법사위 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 오전 8시, 점심 12시, 오후 5시에는 1시간씩 피켓팅을 진행하며 저녁 7시에는 평등텐트촌 집회를 여는 등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중이다. 차제연 이종걸 공동대표와 미류 책임집행위원은 무기한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8일 진행한 인터뷰 당일은 이들이 단식농성을 이어온 지 18일차 되는 날이었다. 두 사람은 눈에 띄게 야윈 모습이었지만, 차별금지법에 대해 말할 때만큼은 당찼다.

차제연은 차별금지법을 ‘피해자 혼자 두지 않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약속을 위해 차별금지법이 나중이 아닌 지금, 올봄 안에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차제연의 촉구에 응답한 것인지, 단식농성 16일째 되는 날인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박광온 법사위원장은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에 대한 의견과 차별내용의 범위, 차별 금지 및 예방조치의 내용 등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제정에 속도가 붙을 것을 기대했지만 임기 마지막날까지 공청회 일정을 잡지 않으며 사실상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바통은 윤석열 정부에게 넘겨졌다.

본보는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종걸 공동대표와 미류 책임집행위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쟁과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국회 앞 차별금지법제정 촉구 단식 농성 현장 ⓒ투데이신문
국회 앞 차별금지법제정 촉구 단식 농성 현장 ⓒ투데이신문

■ ‘피해자를 혼자 두지 않는 법’ 알리는 데 힘쓰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Q.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는 전국 168개 단체들이 함께하고 있는 연대체다. 전국 14개 지역에 차제연이 따로 있으며 강원, 제주까지 없는 곳 없이 열심히 활동 중이다. 168개 단체에는 인권단체, 시민단체, 참여연대, 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대학 동아리 등 다양한 단위의 단체들이 같이 활동하고 있다.

Q.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를 위해 평등텐트촌 릴레이 농성, 단식투쟁을 이어온 지 18일차(인터뷰일 기준) 되는 날이다. 현재 연대 내 분위기는 어떠한가.

단식자들이 눈에 띄게 야위어 가고 있다며 많이 안타까워하시고 마음 아파하시기도 한다. 방금 단식자 진료를 봐주고 가셨다. 수치상으로 건강이 많이 나쁘지는 않지만 몸이 지치기도 한다. 다들 마음이 급해지고 있지만 절망의 분위기가 아닌 “웃으면서 기쁘게 함께 만들어가자”라는 분위기다. 단식자 발언 때도 목소리가 커서 단식자 발언 저렇게까지 시켜도 되는 거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단식자들도 씩씩하게 하게 진행 중이다. 연대하는 분들도 씩씩하게 잘 하고 있다.

Q.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그동안 연대가 해온 활동들에 대해 설명 부탁드린다.

차별금지법이 무엇인가 대중적으로 알리는 것에 중점을 두고 활동해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진행했는데, 그때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 법”이라는 슬로건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많은 분들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주셨다. 그리고 이 법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카드뉴스나 기고글 등을 통해 알려왔다. 사회적 합의가 안 됐다는 여론이 있는데 국민동의청원부터 시작해 시민들이 얼마나 이 법을 원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활동들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3월 23일에는 국회 앞에서 집중문화제를 진행했다. 이처럼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할 때는 같이 모이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온라인으로 모이기도 한다. 또한, 국회가 법안 논의를 하지 않으니 국회가 안 하면 우리라도 하겠다는 의미로 지난해에는 전국 각 지역을 돌면서 시민공청회를 직접 주최하기도 했다. 이 법이 어떤 내용인지, 어떤 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법인지 알리고, 각 지역마다 이 지역에는 이러한 인권 이슈가 있으며 이 문제는 차별금지법과 어떻게 만날 수 있다 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했다. 이렇게 연구 자료·토론회 자료를 만드는 작업, 여론 작업, 대중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미류 상임집행위원장 ⓒ투데이신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미류 상임집행위원 ⓒ투데이신문

■ “하고싶은 말 하는 것“을 빙자한 혐오발언 제동 필요

Q. 연대가 규정하는 ‘차이’와 ‘차별’의 다른점은 무엇인가.

차이는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다. 차별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차이를 구별짓고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존재들이고, 모두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평등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가 존엄을 누릴 권리는 모두에게 동등하게 있고 각자 다르게 가지고 태어난 내 모습은 존중받아야 한다.

Q. 현재 우리나라의 차별과 혐오의 수위는 어느 정도 된다고 보시나. 

차별과 혐오 수위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만연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소위 말해 “문명인이 저런 말을 하면 안 되지” 하던 것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국민의힘에서 그것을 무너뜨리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사태와 관련해 아무렇지 않게 차별과 혐오의 발언을 하고 있다. 전장연 박경석 대표도 현재 일상에서 많은 위협들을 받고 있다. 전장연은 항상 똑같은 방법으로 싸워왔는데 이제 와서 많은 시위를 이유로 위험에 노출됐다는 것은 “그렇게 해도 돼”라는 신호를 주는 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거 혐오 아니야. 나는 그냥 하고 싶은 말 하는 것뿐이야”라는 것을 빙자한 발언을 하고 그것에 제동 장치가 없는 것이 현재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차별과 혐오들을 계속해서 경계해야 하는 것이 필요한 정도의 수위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Q. 최근 서울교통공사는 故변희수 하사 광고를 불승인하고 전장연 지하철 시위에 부정적 여론을 조성해 논란이 됐으며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전장연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故변희수 하사 광고를 서울교통공사에서 불승인 결정한 것을 듣고 굉장히 분노했다. 서울교통공사는 변 하사 광고를 두 번 불승인 한 바 있다. 첫 번째는 변희수 하사 선고 나기 전, 이런 재판이 있으니 관심을 가져달라는 내용으로 광고를 걸려고 했으나 불승인 결정이 났다. 이의신청을 하다 보니 재판이 끝나버렸다. 두 번째는 변희수 하사 사망 1주기를 앞두고 추모 광고를 걸려고 했을 때에도 불승인 결정이 났다. 여기서 일관되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성소수자 얘기하는 것 불편하다”라는 정서였다. 교통공사라는 공공기관에서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굉장히 문제라고 생각한다. 전장연 시위에서도 “장애인들이 차별받는다는 거 알겠다. 당신들도 돌아다니고 싶은 거 알겠는데 왜 꼭 출근시간에 나타나야 되냐”이런 생각들이 만연한 것 같다. 시민들이 얼마나 불편을 겪고 있는지 잘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상황에서 우리가 누구를 규탄해야 하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정확히 주지 못하고 있는 정치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불만이 누구에게 향해야 하는가 방향을 제시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그 불만이 장애인 당사자를 향하도록 한 것은 큰 문제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핵심에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있다. 이 대표가 보여주는 것은 ”당신들이 겪고 있는 이 불편들 저 장애인들 때문이에요”라는 것이다. 시위에 대한 분노로 전장연에 악플 달고 손가락질하고 항의 전화하게 하도록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차기 여당 대표의 발언권이라는 것은 엄청난 스피커인데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을 혐오 선동에 쓰고 있는 것이 굉장히 유감스럽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 ⓒ투데이신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 ⓒ투데이신문

■ 차별금지법 제정은 차별과 혐오 중단시키겠다는 시그널 역할

Q. 차별금지법이란 무엇이고, 이 제도의 필요성은 무엇인가.

차별금지법은 고용, 교육, 재화, 용역 등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규정하고 이를 금지하는 법이다. 차별금지 사유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 법안 23가지, 민주당 의원들 법안 21가지로 규정 돼있다. 여기에 하나도 포함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지금은 청년으로서 수당을 받는 등 혜택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나중에는 나이가 든다. 연령에서의 차별을 받을 수도 있고, 우리가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영역에서 차별을 받을 수 있다. 얼마 전 문화재청이 어린이날에 무료입장 조건에서 외국인 어린이를 제외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뜬금없이 차별과 혐오가 튀어나오기 때문에 누가 언제 어떻게 차별받을지 알 수 없다. 또한 정치인들이 자신의 입으로 선언하지 않고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는 것만으로도 “성소수자 시민도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야하는 존엄한 시민이다”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이 될 수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차별과 혐오를 중단시켜야하는 시그널 역할을 할 수 있다.

Q. 아직 차별금지법에 포함되는 차별이 정확히 어디까지인지 모르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차별금지법에 포함되는 차별이 어디까지인가. 

이 법에 포함되는 차별이 어디까지인지 모른다는 말이 있기에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부당한 차별을 규정해 줄 수 있는 법이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보니 시민들이 “너무 모호한 법 아닌가. 차별 당했다고 주장하면 다 차별금지법에 저촉한 것인가“라는 우려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이 법을 만들어 무엇이 차별인지 사회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국가가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구제할 수 있는 차별들을 발견하고 구제 해내기 시작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이 법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라고 말하는데 맞는 말이다. 모든법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성폭력 사건에서 적극적 합의, 적극적 동의란 무엇인가 살펴보면 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일 수밖에 없다. 그것을 면밀히 살피면서 억울한 일, 부당한 일 없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그 역할을 하라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다. 지금 시민들이 일상에서 내가 겪는 이 부당함이 내가 잘못해서 인지, 저 사람이 잘못한 것인지, 뭐가 문제인지, 어떤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혼자 고민하고 있을 때, 국가가 “네가 겪고 있는 일을 같이 고민해 보자. 부당한 차별인지 같이 살펴보고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네 곁에서 해볼게“ 라고 해줄 수 있는 것이 차별금지법인 것이다.

Q.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바뀔 것이라고 보시나.

차별금지법은 법 자체가 할 수 있는 역할보다도,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혹은 차별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볼 것인가의 척도가 됐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이전에는 계속해서 밀려났던 성소수자의 존재들이 좀 더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될 것이다. 이 법이 그렇게 많은 것을 해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성소수자들이 기댈 수 있는 법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큰 기대와 역할이 주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 법이 제정되게 된다면 이후 더 많은, 더 필요한 법들에 대해 제대로 된 논의가 시작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차별금지법이 어떤 발언을 특정하게 규정할 수 있다거나 처벌할 수 있는 법은 아니다. 그럼에도 차별과 혐오 문제가 나올 때마다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연결된다. 그 이유는 한국 사회의 정치가 보여줬던 역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늘 차별하자는 목소리가 이겨왔기 때문에 이 법이 이렇게까지 유예됐다. 한국 사회에서 제일 힘 있는 집단은 정치권이다. 지금까지 정치권은 평등하자는 말보다 차별하자는 말에 더 편을 들고 있구나하는 분위기가 계속돼왔지만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우리 사회가, 정치권이 적어도 차별보다는 평등의 편에 서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Q.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 성차별금지법(남녀고용평등법), 연령차별금지법, 비정규직 차별금지법 등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있는데 차별금지법을 따로 제정해야 하느냐라는 의견들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법은 차별 시정을 위해 만든 법이 아닌,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 설립의 근거가 되는 법이다. 그렇다보니 차별 시정을 전문으로 하는 법이 없어 비어있는 구멍들이 많다. 인권위 법에는 간접 차별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부터 시작해, 괴롭힘을 규정하고 있는 조문도 따로 없다. 그래서 괴롭힘만 나타나는 사례는 인권위법만으로 구제받을 수 없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괴롭힘도 차별 유형의 하나로 규정하기 때문에 구제받을 여지가 더 넓어진다. 예를 들면,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쿠팡 물류센터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례도 단순한 괴롭힘 사건이기 때문에 현행 인권위법에서는 피해자가 소송 지원을 받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사건이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당한 괴롭힘이라는 것을 차별금지법을 통해 확인받으면, 소송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현재 어떤 법에도 면접 과정에 대한 규정이 들어가 있지 않다. 면접 자리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적인 질문부터 시작해 압박면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욕적인 발언들, 괴롭힘 등이 다 법적인 규제 밖에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에는 면접 과정이 명확하게 들어가 있다.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Q. 차별 범위가 명확하지 않으니 개별법 개정으로 만족하자는 의견도 있다.

현재 개별법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들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어쩔 수 없이 비어있는 부분들이 있다. 차별금지법은 기본적으로 더 넓은 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를 주된 이유로 겪는 일만 포함된다. 장애인이 겪는 차별 문제가 장애 때문인지 아닌지 불분명하다 싶으면 해당 사건은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다룰 수 없다. 장애가 있는 20대 청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직장에서 임금 차별을 겪는다고 했을 때, 이것을 문제 제기하려면 비정규직 노동자 관련한 파견법인지, 장애인차별법인지 남녀고용평등법인지 무엇으로 다퉈야 하는지 피해자가 고민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각자 다양한 정체성이 있기 때문에 복합적인 사유로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이다. 개별법이 쪼개져 있어 각자가 규정하는 구제 절차가 다르고, 이 법을 다루는 기관들이 다르다 보니 “그거 저희 관할 아닙니다“라는 얘기를 굉장히 많이 듣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피해자가 지쳐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차별금지법은 피해자가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게 아닌, “일단 가지고 와 봐. 뭐 때문인지는 우리가 고민할게”라고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 그리고 개별법으로 규제되지 않는 사유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인종차별 금지법이다. 며칠 전 발생한 문화재청의 외국인 어린이 제외 사건처럼 부당한 차별들을 다투기 어려운 상황들을 이제 바꿔나가야 하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Q. 차별금지법에서 트랜스젠더, 전과범을 제외하는 등 일부 내용을 수정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여성 안전 담론이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차제연은 이 부분에 대해 당연히 트랜스젠더도 같이 안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트랜스젠더 관련해서는 화장실 불법 촬영 문제가 같이 언급된다. 여성이 안전할 수 없는 세상이 문제인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없는 지금도 이미 여성들이 화장실에서 겪고 있는 안전 문제, 성폭력 문제는 심각하다. 이것은 모두가 안전한 세상이 올 때 타파될 수 있는 두려움이고 그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이지, 누군가를 어떤 공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며칠 전 불법 촬영물을 신고하면 그 영상을 수사관과 함께 봐야 한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불법 촬영물에 대한 인식이 겨우 그 정도다. 아직도 많은 남성들이 불법 촬영물을 야한 동영상처럼 생각하고 있는 세상에서 트랜스젠더를 화장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여성 안전을 담보할 수 있나. 절대 그렇지 않다. 트랜스젠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성 화장실에 침범할 수 있다는 우려들도 있는데, 이런 것은 성폭력법으로 처벌하면 되는 거다. 성적인 수치심을 느꼈으면 가해자를 고발하면 된다. 차별금지법의 어떤 항목이나 성별 정체성에 의한 차별이 없어야 된다는 것이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하는 모든 범죄 행위를 옹호해 주거나 무력화시켜주는 것이 절대 아니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모든 성폭력에 대해 엄중히 처벌하면 되는 일이고, 그것은 가해자의 성별이 무엇이냐 성별 정체성이 무엇이냐 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또한, 현재 성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을 아동 교육 기관에 몇 년 동안 취업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있다. 이것은 취업 금지 기간까지가 형인 것이다. 아직 형이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취업 금지는 합리적인 차별인 것이고 전과 차별이 아니다. 이처럼 기존 규정들이 차별금지법 때문에 삭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말씀드린다.

Q.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안철수 후보 등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에게서 누군가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발언이 나오지 않는 날이 와야 한다. 차별금지법 찬반 토론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데 언제든지 찬반 토론해도 된다. 이 법은 생각보다 쟁점이 많은 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 국회 수준이 성소수자 존재를 인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 정도 담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성소수자의 존재를 비하하고, 차별금지법에 대해 ‘동성애 조장법이다’, ‘에이즈 확산시킨다’ 이런 말들을 의견이라고 이름 붙이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그냥 혐오 발언이고 어떤 존재의 존엄을 깎아내리는 말일뿐이다. 반대 ‘의견’이라고 치켜세우며 이 이야기와 찬반의 이름으로 동등하게 올려놓았기 때문에 지금 이 모든 문제들이 발생하는 거다. 우리 사회에서 없던 제도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과 어떤 방법으로 차별을 구제할 것인가 등의 논의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아직 국회는 그런 논의를 할 수준이 안 된다. 여전히 성소수자 문제를 회피하려고 매도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면 안 된다.

Q. 보수단체나 기독교계에서는 역차별 문제, 동성애 조장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이신가.

기독교계, 천주교계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를 만들어 화요일과 수요일 1박2일 농성장 지킴이를 하고 있다. 저녁에는 기도회를 하고, 아침에는 미사를 한다. 그때마다 방문하는 목사님, 여성 신학회 교수님, 신부님 등이 일관되게 하시는 말씀이 그리스도의 원래 가르침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서 “너의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게 가장 중요한데 그것을 호도하면서 잊어버리고, 어떤 사람의 존재를 깎아내리는 말이 마치 교회의 언어인 것처럼 이야기 되는 것이 굉장히 유감이다. 우리는 그게 결코 예수님의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활동을 해나가자고 이야기한다. 그냥 교계라는 탈을 쓴 반동성(反同性) 세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든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성소수자도 똑같이 존엄한 사람이다'라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하는 피켓 ⓒ투데이신문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하는 피켓 ⓒ투데이신문

■ 정치인들의 비겁함으로 많은 시민들이 혐오와 차별에 무방비로 노출

Q. 문재인 정부 임기 말이 돼서야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나중에‘ 발언으로 시작했던 문재인 정권에서 임기 말이 돼서야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문재인 대통령의 가장 중요했던 이력 중 하나가 ‘인권 변호사’라는 것이었다. 임기 말에 보여주는 의지처럼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는 분이 아닌데 열심히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부분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있어 제정하지 못한다“라는 얘기를 지금도 듣고 있는데, 선거는 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가 없는 때가 언제 있나. 대선 지나면 총선, 총선 지나면 지선 무한 반복이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 지지율이 80%가 넘었던 때에 충분히 사회적인 법들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역할을 하다가 못한 게 아닌, 전혀 안 한 것으로 보이는 이 점은 안타깝고, 실망스럽다.

Q. 단식농성을 통해 정부가 반응을 보이고 있는 부분이 있나.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나 법사위원장을 통해 공개 면담도 요청했고 공개서한을 보내며 차별금지법이 지금 당장 제정돼야 하는 이유를 알리기도 했다. 그 사이에 많은 국회의원들이 농성장을 방문하기도 했고, 원내대표도 다녀갔다. 그러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왜 지금 시급한지를 명확하게 알렸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제정의 의지를 개인적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당내 의견을 모아야 한다는 자기 책임을 보여줬다. 우리가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정치가 차별과 혐오를 계속해서 조장하고 있는 가운데,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검찰공화국이 아닌 혐오공화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안전장치 없이 무방비 상태로 새 정부를 맞이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지금 바로 제정해야 된다는 것이다.

Q. 현재 정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에는 속도가 부진하지만, 검수완박 입법 처리는 빠르게 진행됐다. 이는 어떻게 생각하나.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다. 법 내용 등에 대한 논의가 중요하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결정하는 것을 보며 왜 차별금지법은 제정이 되지 않는지 다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15년 동안 계속해서 논의를 요청하고 제정을 요구했음에도 아직 제대로 된 논의를 한 번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것을 느꼈다. 많은 시민들이 계속해서 이 법의 필요성에 대해 말해왔기 때문에 할 수 있다면 지금 바로 제정을 하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Q. 차별금지법이 긴 시간동안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물론 일부 보수 개신교의 반대가 있기도 했지만 그러한 반대 주장을 의견처럼 받아들인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이 가장 크다. 또한, 정치인들의 비겁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차별하면 안 된다는 법을 단식투쟁하면서 만들겠나. 반대한다는 의견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이 법의 필요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필요하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 비겁함 때문에 너무 많은 시민들이 혐오와 차별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다.

Q.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한 채 정권교체가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시나.

대통령 당선인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라는 발언이라든지, 차기 여당 대표의 혐오 발언 등을 봤을 때, 한국 사회에 혐오와 차별이 심각해진지는 좀 됐지만, 그게 훨씬 더 가파르게 심각해질 것이라고 본다. 차별받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데, 차별받고 있는 우리가 여기 있다. 어쨌든 이번 봄에는 차별금지법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시민들에게 더 이상 차별을 참고 넘기지 않겠다는 것과 우리가 평등한 시민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를 많이 알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법을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이 법을 제정하는 데 동의하는 시민들이 꼭 어떤 집단에서 소수자 이거나, 특정한 정체성을 갖고 있어서 지지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차별을 경험을 했음에도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현실들이 계속돼왔기 때문에, 차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조금 더 힘을 모아야 하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우리가 활동을 통해 지금 현실화 단계까지 이뤄왔는데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연대해 주셨으면 좋겠다. 꼭 단식만이 아니라 싸우고 있는 수많은 이들을 주변에 더 알려주시고 이야기해 주시면 큰 힘이 된다. 우리가 지금의 정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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