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br>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지난달 13일 JTBC 썰전라이브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이하 호칭 생략)가 긴 시간 토론을 했습니다. 탈시설에 대해 토론을 하겠다고 나선 정치인이 탈시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확인하는 참담한 자리였습니다. 모두가 포함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에는 일절 관심이 없고, 다수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떻게 더 많은 표를 확보할 지에만 관심이 있는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그런 정치인이 여당의 대표이고, 그런 정치인의 행보를 지켜보며 이런 글을 쓰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준석이 질문했던 몇 가지 내용에 대해서 답변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이준석의 첫번째 질문인 ‘무연고자들이 갈 곳이 없다’, ‘의사표현도 할 수 없는 최중증장애인들이 갈 곳도 없이 쫓겨나는 셈이다’ 이 두 가지를 묶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의사표현을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일부 중증장애인에게도 최대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의사표현이 음성언어나 글로 전달돼야 한다는 생각은 비장애인 중심적인 생각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도 의사표현은 가능합니다. 듣고자 하는 노력을 얼마나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림으로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 표정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 눈만 깜짝일 수 있는 사람 등 모든 사람에게 최대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시간을 주며 그 뜻을 존중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둘째, ‘후견제도’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후견이란, 친권에 의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미성년자 또는 장애·질병·노령 등으로 인해 사무처리 능력에 도움이 필요한 성인에게 폭넓은 보호와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후견인은 친족 또는 제3자가 할 수 있고 성년후견제도에서는 법인이 후견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재산관리와 신상보호를 할 때 피후견인의 복리에 부합하게 해야 하며(민법 제947조 전문, 제959의6, 제959조의12) 피후견인의 복리에 반하지 아니하면 피후견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민법 제947조 후문, 제959의6, 제959조의12). 이렇게 피후견인의 의사와 복리(행복과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피후견인의 선택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후견인입니다.

셋째, 거의 모든 장애인들이 탈시설해서 살고 있는 노르웨이 등의 유럽의 국가들도 소규모의 중증장애인 지원센터들을 도시에, 마을에, 공동체 속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완전히 모든 시설을 한 번에 다 없애는 게 아니라 작은 지원센터, 지원주택으로 만들어 도시에, 마을에,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도록 만드는 것이 탈시설입니다.

넷째, 이런 주장은 ‘장애인들을 억지로 빼내서 오히려 위험하게 만든다’와 같은 류의 공격이기도 한데요. 절대 억지로 장애인들을 빼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혼자 밖에 살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부담을 지워주려고 하는 방식도 절대 아닙니다. 장애인들의 “자립”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가장 큰 오해는 장애인들을 밖에서 혼자 살게 한다는 생각입니다. 자립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장애인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 돌봄이 필요합니다. 서로 도우면서 의지하면서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게 자립입니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 마을에서 계속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립이고 탈시설입니다.

탈시설 사회는 나에게도 좋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늙습니다. 늙으면 몸과 뇌의 기능이 떨어집니다. 우리는 모두 장애인이 돼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몸이 아프고 뇌의 기능이 떨어지더라도 병원이나 시설에 갇혀 살 필요가 없이 내가 살던 집에서 마을에서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탈시설입니다.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지원체제를 통해서 가족과 장애인과 활동지원사와 함께 마을 공동체에서 모두 모두가 서로 의지하며 자기 생활을 하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탈시설입니다.

이준석의 두 번째 질문은 ‘인권침해문제가 되는 시설은 1% 밖에 안 되는데 왜 나머지 99%의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도 탈시설을 해야 하는가’였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인권침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부터 이야기해봐야 합니다. 아주 심각한 수준의 폭력만 폭력이고 인권침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삶, 그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인권이라는 정의에 의해서 생각해 본다면 인권이라는 그 개념에서 아예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장애인은 차별과 폭력 이전에 애초에 인간이라는, 인권이라는 개념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인권침해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원하지도 않는데 갑자기 단체생활을 해야 되는 것은 인권침해일까요, 아닐까요? 그 문제부터 생각을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준석의 세 번째 질문은 ‘장애인들이 시설을 얼마나 만족하며 살고 있는가’ 라는 전수조사에서 ‘오직 33% 정도에 해당하는 장애인들만 탈시설을 하고 싶다고 했고 50%가 넘는 장애인들이 계속 시설에서 살고 싶다’라고 한 그 조사를 근거로 마치 탈시설이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다수결투표로 해서 결정해야 될 문제인 것처럼 해석했습니다. 누가 그 조사를 그렇게 해석합니까?

33%가 탈시설을 원한다고 했다면 탈시설을 원하는 사람들부터 탈시설을 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원주택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원주택으로 나왔는데 이동을 할 수 없다면 탈시설한 의미가 없겠죠? 이동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학교든 직업학교든 일터든 운동이든 취미생활이든 어디든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도록 이동권이 보장돼야 합니다. 그리고 갈 수 있는 학교도 직업학교도 일터도 충분히 있어야 합니다. 적절한 임금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치료비에 대한 부담 없이 병원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인프라가 비장애인 중심인 것을 장애인을 포함하는 사회로 변화시켜 나갈 때 모두를 포함하는 사회가 가능해집니다. 그렇게 시설 밖에서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이 가능해질 때 ‘나는 시설에 남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생각도 바뀔 수 있습니다.

탈시설은 누군가를 배제함으로써 ‘효율’을 추구하는 ‘자본중심의 삶의 방식’과 결별하고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하게 사람답게 동등한 구성원으로 포함돼 살아가는 ‘사람중심, 생명중심, 돌봄중심의 삶의 방식’의 실현입니다. 탈시설 사회는 장애인들에게 감옥과 같은 시설에서 벗어나게 함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는 승자독식 각개전투의 전쟁과 같은 삶에서 벗어나 ‘함께 사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준석은 ‘최혜영 의원이 만든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은 시설을 10년 이내에 폐쇄하겠다고 한 것이 너무 무리다’라고 얘기하며 ‘10년 이내 폐쇄가 가능한 주장이라고 생각하시냐’며 쏘아붙였습니다. 10년, 15년, 20년, 또는 5년 등 언제까지 어느 수준으로 할 수 있을지 계산하고 정하는 이 모든 것들은 ‘가치’가 반영되는 일입니다.

가치와 방향을 명확히 하고 그에 따라 우선순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10년이라는 수치에 집착한 채에 ‘불가능하다’고 주장만 하면서 왜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언제까지 가능한지는 제시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안은 제시하지 않고 상대방을 비합리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말하기 방식은 너무나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이고 비문명적인 태도입니다. 이런 말하기 방식은 그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말하기일 뿐 토론도 아닙니다.

오는 12일, JTBC ‘썰전라이브’에서 두번째 생방송 토론이 열립니다. 여당의 대표인 이준석은 무지와 무관심에 의한 차별과 억압의 언어를 거두고, 교만함으로 가득 찬 태도를 버리고 토론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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