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공간 절반 포기하고 휴식처 늘린 더현대서울
기둥 없는 개방감에 고객 체류시간도 타 매장 9배
트렌디한 팝업매장으로 자발적 인증샷 극대화해
미래의 유통, ‘리테일테크’로 시그니처 공간 선봬

격변,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면 무섭게 트렌드가 바뀌는 세상이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불러온 비대면화로 인해 오프라인 공간을 찾는 소비자들은 무섭게 줄었다. 기존 상권도 얼어붙어 ‘리테일 아포칼립스(retail apocalypse, 소매의 종말)’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이 같은 전통 공간에 대한 위기의식 가운데 지난 2021년 등장한 ‘더현대서울’은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개장 첫 주말 100만명이 다녀가는가 하면 일매출 102억원을 넘기면서 현대백화점그룹 창립 이후 단일 매장의 하루 최고 매출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에 본지는 팬데믹과 불리한 입지 속에서도 놀라운 모객 효과를 낸 더현대서울만의 공간성과 특징을 통해 유통의 미래 방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더현대서울 전경 ⓒ투데이신문
더현대서울 전경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효인 조유빈 기자】 고객의 눈에 들기 위해 상품 그 자체로만 승부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소비자들은 무엇을 파느냐보다 그곳이 매력적인 장소이냐를 인식하고 방문한다.

전통적인 백화점의 흥행 기준은 어떤 매장의 입점을 따내고 어떤 상품이 입고되는지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고객들의 목적이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팬데믹과 온라인 발달로 인해 오프라인 무대는 더이상 안이한 마케팅으로는 살아남기 치열해졌다. 고객들을 오프라인으로 끌고 나오게 하기 위한 결정적인 힘이 필요하게 된 시점이 온 것이다.

최근 오프라인 리테일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어 하나의 유행처럼 퍼트릴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여념이 없는 추세다.

특히 비대면 온라인이 대세이던 지난해, 오프라인 공략에 나선 더현대서울은 타깃 고객을 MZ세대로 삼아 집중 사격에 나섰다. MZ세대가 SNS 파급력이 강하다는 점을 파악한 더현대서울은 고객들에게 씨앗을 뿌리는 행위, 즉 ‘소스’를 제공해 수많은 리뷰를 유도했다.

다만 이러한 SNS의 파급력은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고객이 좋은 후기를 남기게 되면 사람들의 발길을 모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거센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는 단순히 ‘힙한 장소’로 무작정 관심을 끄는 것이 아닌, 고객을 만족시키는 진정성 있는 소스가 제공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더현대서울은 구체적으로 MZ세대 고객의 흥미를 사로잡기 위해 어떤 소스를 제공했을까.

 더현대서울 ‘사운즈포레스트’ ⓒ투데이신문
 더현대서울 ‘사운즈포레스트’ ⓒ투데이신문

확 트였지만 위험하진 않아…개방감 살린 건축 포인트

더현대서울이 사람들의 이목을 끈 데는 파격적인 공간 구성의 지분이 크다. 더현대서울은 전체 영업면적(8만9100m²) 절반을 과감하게 자연조경과 휴식공간으로 조성했다. 3300㎡ 규모 실내 녹색 공원 ‘사운즈 포레스트’를 비롯해 12m 높이 인공폭포 ‘워터볼 가득’(740㎡, 224평)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 더현대서울에 방문한 고객들은 기존 백화점보다 시원하게 더 확 트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평이다. 더현대서울 측에 따르면 고객이 5층에 있는 실내정원 ‘사운즈포레스트’에 머문 평균 시간은 약 37분으로, 패션 브랜드 평균 체류시간(4분)보다 9배 이상 긴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고객의 발걸음을 잡는 개방감 있는 공간을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더현대서울이 내부 공간의 면적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더현대서울은 1~5층 매장 동선의 경우 타원형 순환구조로 설정했으며, 고객들이 걷는 매장 동선 너비는 최대 8m로 늘려 기존 백화점보다 2~3배 넓게 만들었다.

또한 1층부터 8층까지의 기둥을 전부 없앴고, 공조시스템‧배관‧철골 등을 건물 밖으로 빼놓는 등 시선이 차단되거나 개방감을 저해시킬 만한 요소들을 최소화시켰다.

더현대서울 외벽에서 발견되는 빨간 크레인의 모습 ⓒ투데이신문
더현대서울 외벽에서 발견되는 빨간 크레인의 모습 ⓒ투데이신문

이러한 무주공간(기둥이 없는 공간)의 탄생은 더현대서울의 지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더현대서울의 천장 위에는 철골 트러스 구조의 3개의 방패연이 존재한다. 880t에 달하는 방패연을 잡아주는 것은 8개의 빨간 크레인으로, 이는 장식으로 설치된 것이 아닌 실제 지붕을 들어 올려주고 있는 구조체다.

기둥이 없는 구조이다 보니 일부 고객 사이에서는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는 안전상 문제점이 없을 뿐 아니라 이런 구조가 내부 공간에 대한 활용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여영호 교수는 “한국은 대지가 넓지 않다 보니 백화점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 층마다 매장들을 틈틈이 붙여놓는 편이었던 반면 더현대서울은 내부가 많이 오픈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기둥은 없애고 크레인으로 끌어당기는 구조라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안전성에는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의도라는 도심 밀집 특성상에서나 건축학계 측면에서 봤을 때도 획기적이고 예외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도심지 안에서 이렇게 공간을 넓게 한 백화점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없다”고 덧붙였다.

건축 업계 종사자 역시 더현대서울에 대해 “기둥으로 인한 내부 공간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설계한 것으로 보여진다”며 “요즘 도시에 건물들이 많아 외부로 새로 짓는 것이 어려운 환경이기에 기둥을 없애 내부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도 하는 추세”라고 평가했다.

‘케이스티파이’ 팝업매장 [사진제공=더현대서울]<br>
‘케이스티파이’ 팝업매장 [사진제공=더현대서울]

팝업스토어로 시시각각 다른 공간 선봬

더현대서울을 말할 때 팝업스토어(pop-up store), 즉 팝업매장을 빼놓을 수 없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두 달 동안 임시로 운영하는 팝업스토어를 통해 더현대서울은 고객에게 끊임없이 흥밋거리를 던지고 있다.

당초 팝업스토어는 2002년 미국의 할인점 ‘타깃’에서 신규매장에 할애할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설치한 임시매장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급변하는 트렌드에 맞춰 매장 공간을 운영하기 위한 팝업매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추세다.

더현대서울의 팝업스토어 활용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 발빠른 트렌드 반영이다.

더현대서울은 1층 팝업 존에서 80평 규모로 꼼데가르송 영패션 라인을 최초로 진행한 바 있다. 이밖에도 인기 아이돌 그룹 ‘세븐틴’과 ‘BTS’ 관련 굿즈를 판매하는 ‘인더숲’, 소재‧색‧범퍼 등을 골라 원하는 문구를 새겨 자기만의 취향을 표현한 케이스를 제작할 수 있는 ‘케이스티파이’ 등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문화 코드를 반영한 다양한 팝업스토어를 선보였다.

‘88라면스테이지’ 팝업매장 ⓒ투데이신문
‘88라면스테이지’ 팝업매장 ⓒ투데이신문

특히 올해 초에 진행했던 공유주방 스타트업 ‘위쿡’과 함께 기획한 ‘88라면스테이지’ 팝업매장은 국내외 라면 200여 종을 색깔별로 진열해 감각적인 비주얼(visual)을 보여줬고, 라면과 관련된 굿즈 등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 또한 고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이밖에도 힙합 아티스트 박재범이 론칭한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인 ‘원소주’의 팝업스토어를 국내 최초로 선보이거나, 글로벌 영화 제작사 유니버설 픽쳐스 코리아와 손잡고 ‘쥬라기월드 : 도미니언’ 팝업스토어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더현대서울은 매번 새로운 팝업스토어 행사를 1~2주 간격으로 개최하고 있다. 이는 MZ세대 고객의 흥미를 끄는 것이 최대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더현대서울의 전략은 흥행했다. 실제로 더현대서울의 방문한 대부분의 고객이 MZ세대였으며, 2030 고객 중 더현대서울로 원정을 오는 쇼핑객이 많았다. 원정 쇼핑객이 많다는 것은 그곳이 멀더라도 꼭 방문해야만 하는 장소임을 방증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수치다. 실제 더현대서울에 따르면 전체 매출의 54.3%는 10km 이상 떨어진 광역상권에서 온 고객들로부터 나타났다.

더현대서울은 팝업스토어를 통해 다양하고 색다른 즐거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기획들은 일차적으로 고객의 흥미를 유발한다. 이는 자발적인 홍보를 극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SNS에 수많은 인증샷이 게시되는 수순이기도 하다.

언커먼스토어 전경사진 [사진제공=현대백화점]
언커먼스토어 전경사진 [사진제공=현대백화점]

리테일테크로 미래형 공간 방점 찍다

이뿐만 아니라 더현대서울은 매장 곳곳에서 리테일테크(Retail-tech, 소매 유통 사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이 접목된 것)를 활용한 다양한 공간 제시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더현대서울의 시그니처 공간 중 하나인 ‘언커먼스토어’의 경우 한국 백화점 최초의 무인매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해당 매장은 10평 규모 공간에 패션잡화, 생활용품, 식음료, 굿즈 등 200여 상품을 판매하는 라이프스타일숍 형태로 꾸며져 있다.

무인매장인 만큼 자유로운 쇼핑 경험이 가능하다. 현대식품관 앱에 결제수단을 미리 등록하고 QR코드를 스캔하면 입장할 수 있으며, 원하는 상품을 들고 출구로 나오면 전자 영수증과 결제 알림이 스마트폰에 뜬다.

해당 매장에는 40여 대의 AI카메라와 150여 개의 무게 감지 센서가 설치돼 카메라 기술과 무게 변화로 고객 구매 행동을 읽어내고 고객 동선과 상품 이동을 추적한다.

이밖에도 더현대서울 안에서는 AI로봇들이 활약하고 있다. 안내 로봇, 안전관리 로봇, 쓰레기통 로봇, 미디어 로봇 등이 매장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좌측부터) 쓰레기통 로봇, 안내로봇 ⓒ투데이신문
(좌측부터) 더현대서울의 쓰레기통 로봇, 안내 로봇 ⓒ투데이신문

로봇들에게는 각각 눈이 달려져 있어 윙크를 하는 등 소통이 가능하다. 화면에는 로봇마다 띄우는 내용이 다르다. 대표적으로 쓰레기통 로봇은 쓰레기를 버려달라는 안내문이 나온다. 이러한 AI 로봇들도 더현대서울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다.

이밖에도 더현대서울에서는 앱을 통해 입차부터 출차를 관리하는 ‘VIP 스마트 발렛 서비스’,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예약‧주문‧배달‧픽업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스마트 오더 시스템’, 고객의 얼굴을 확인해 문을 여는 ‘VIP 라운지 얼굴인식 출입시스템’ 등도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더현대서울은 최신 기술 도입 등으로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며 미래형 백화점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더현대서울은 리테일테크가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한 미래 유통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언커먼스토어 기술 구현을 총괄한 현대 IT&E 김석훈 상무는 고객 스스로 첨단 리테일테크를 경험함으로써 SNS에 공유할 만한 소재를 제공하는 상징적 공간을 만들었다.

김 상무는 “언커먼스토어는 다른 무인매장처럼 단순히 비용 절감 차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라며 “MZ세대를 타깃으로 설정해 그 어디에도 없는 감성적이고 독특한 콘텐츠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래를 향해 울리다…전문가들이 바라본 더현대서울은

더현대서울은 소위 리테일 아포칼립스 시대에서 팬데믹 사태와 부적절한 입지의 약점을 딛고, 성공을 거뒀다.

이러한 더현대서울의 사례는 트렌드가 격변하는 뉴리테일 시대에서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업계의 지향점을 제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현대서울의 슬로건은 ‘미래를 향한 울림’이다. 더 행복한 내일을 위한 비전을 제시한다는 뜻이 담겼다. 결국 더현대서울은 매출과 성공을 보장해 줄 기존 비즈니스 철칙을 버리고 혁신적인 공간과 기술을 통해 ‘미래형 백화점’의 모델을 창출했다고 볼 수 있다.  

더현대서울의 틀을 깬 전략과 방향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건국대학교 소비자학과 김시월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건강‧환경‧안전 등에 대한 가치들이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더현대의 사운즈 포레스트 등과 같은 구매촉구보다 환경을 향유하려는 가치 지향적인 면면이 앞으로도 부각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요즘 MZ세대들은 SNS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며, 이들은 직접적인 경험에 더 충실하다. 그러니 결정적으로 더현대서울의 경험을 앞세운 전략이 주효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최지혜 연구위원 또한 “이제 코로나19 이후의 오프라인 공간은 누가 더 기획력을 발휘해 그 안에 콘텐츠를 잘 넣느냐에 대한 싸움이다”라며 “더현대 공간 역시 멋지고 화려한 공간 때문에 초반에 시선을 끌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서 결국 콘텐츠를 계속 바꿔나가야 된다. 지난달의 더현대서울과 이번달 더현대서울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과 서용구 교수는 “MZ세대는 한국 소비시장에서 2020년 이후 최강의 구매력을 보유한 소비자로 자리 잡았으며, 이들을 놓친다면 시장 구매력의 절반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MZ세대는 특히 경험의 가치를 중시하는 세대로, 멋진 장소나 맛있는 식당에 방문하게 되면 즉시 그 경험을 SNS에 공유한다. 이는 세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 잡은 추세”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SNS를 통해 지인들과 실시간 연결돼 있는 ‘초연결시대’의 주인공이기도 한 MZ세대의 또 다른 특징은 ‘플렉스(성공이나 부를 과시하는 행위)’다”라며 “더현대서울의 마케팅은 이같은 MZ세대의 강한 소비열망과 행동력을 정확히 파악해 집중 공략한 성공 사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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