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데스노트’ 홍광호(야가미 라이토) [사진제공=오디컴퍼니(주)] 
뮤지컬 ‘데스노트’ 홍광호(야가미 라이토) [사진제공=오디컴퍼니(주)] 

보이지 않는 힘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평범하게 흘러간다 여겼던 일상이 실제론 누군가에 의해 조종을 당하고 있었다거나, 앞으로 마주할 미래가 나도 모르는 새 이미 정해져 있다는 등의 다소 운명론적인 상상은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되어 발걸음을 붙든다. 대응할 수 없는 힘 앞에 놓인 인간은 한없이 무력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데스노트’는 일종의 경고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초월적인 힘에 의지해 세상을 바꾸려는 자와 그릇된 정의를 저지하려는 자 사이에 벌어진 접전은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서늘하다. 우리가 현실에서 접했던 여러 가지 사건들 역시 일종의 ‘데스노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작품이 새삼 달리 보인다.

라이선스 뮤지컬 ‘데스노트(Death Note)’가 새로운 옷을 입고 돌아왔다. 지난 4월 1일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데스노트’는 작품 고유의 감성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이전에 비해 훨씬 다채로워진 모습이다. 소재 자체가 독특한 데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될 만큼 인기를 끈 ‘데스노트’라 5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소식은 안팎으로 지대한 관심을 불러 모았다. 또 뮤지컬 ‘데스노트’ 한국 초연 멤버였던 홍광호와 김준수, 강홍석을 포함해 김성철, 고은성, 서경수, 김선영, 장은아, 케이, 장민제 등이 함께 캐스팅되면서 기대감은 더욱 상승했다. 이를 증명하듯,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관객이 몰려 기대작다운 면모를 확실하게 드러냈다.

이번 삼연은 새 프로덕션인 제작사 오디컴퍼니를 통해 논 레플리카로 재창작되면서 전개에 탄력을 더했다. 이뿐만 아니라 군더더기 없는 공간 활용과 의상, 소품 구성 등 세세한 부분까지도 상당히 공을 들였다. 더불어 시공간을 초월한 느낌이 들 만큼 더 화려해진 영상미와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출 역시 눈에 띈다. 전 시즌 공연을 봤거나 원작 만화 혹은 동명 영화를 본 적이 있는 관객이라면 아마도 완전히 색다른 ‘데스노트’와 만나는 기분이 들 것이다. 공연은 오는 6월 19일까지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한 뒤, 오는 7월 1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으로 자리를 옮겨 6주간 놀라운 흥행을 이어갈 예정이다.

뮤지컬 ‘데스노트’ 김성철(엘) [사진제공=오디컴퍼니(주)]&nbsp;<br>
뮤지컬 ‘데스노트’ 김성철(엘) [사진제공=오디컴퍼니(주)] 

뮤지컬 ‘데스노트’는 의문의 노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두 천재 간 두뇌 대결을 다룬다. 경찰 간부로 활약하는 야가미 소이치로의 아들이자 법학도로서 사회 정의 실현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던 야가미 라이토(이하 라이토)는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검은 노트 하나를 줍는다. ‘이 노트에 이름이 적히면 죽는다’라고 적힌 데스노트 속 경고는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데스노트가 가진 위력을 알게 되자, 라이토는 범죄자들의 이름을 노트에 적어 내려가며 현실에서 법이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직접 수행한다. 사람들은 베일에 싸인 채 악인들을 처단하는 그를 ‘키라’라 칭하며 신격화하고, 라이토 역시 이 노트로 지옥 같았던 세상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러나 비뚤어진 정의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사람들도 키라에 맞서기 시작한다. 경찰은 명석한 두뇌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명탐정’ 엘(L)을 앞세워 점점 키라의 실체에 다가서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 교묘해질 뿐이다. 여기에 제2의 데스노트를 지닌 아마네 미사까지 등장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사신(死神) 류크와 렘이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가운데, 뮤지컬은 게임의 승자를 가리기 위한 여정을 이어가며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원작 만화보다는 영화에 더 가깝지만, 영화와도 조금 다른 노선을 택한 뮤지컬은 전개 속도에 중점을 뒀다. 무대에 알맞게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일부 등장인물이 빠지고 내용 역시 상당 부분 각색됐는데, 워낙 빈틈없이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아쉬울 새가 없다. 반대로 만화 장면을 구도부터 비슷하게 구성해 그대로 무대에 올린 장면들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순식간에 초대형 LED 화면으로 전환되는 장면들은 마치 미디어아트를 보는 듯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에서는 ‘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어둡고 텅 빈 무대 위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선들이 공간을 비추면서 대결 구도를 가시화하는 연출이 자주 나타난다. 특히 도오대학에서 벌어진 테니스 시합과 키라들의 첫 만남이 이뤄지는 시부야 교차로 신은 실감 나는 영상미로 박진감을 더하는 명장면 중 하나다. 또 다이코쿠 부두 창고에서 벌어진 마지막 대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굳은 신념을 바탕으로 직접 지옥 같은 세상을 심판하고 구원할 수 있으리라 믿는 라이토의 모습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더 극적인 변화가 느껴져 긴장감을 더한다. 이를 막아서려는 엘 역시 마찬가지다. 정의답지 않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 애쓰지만, 사실 그 또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란 점에서 절대 선이라고 보기 어렵다. 엘이 라이토를 막기 위해 중대한 결심을 내리는 과정도 인물이 겪은 고뇌의 결과이자 변화다.

이처럼 입체적이면서도 다양한 면모를 지닌 캐릭터와 흥미로운 스토리는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 덕분에 더욱 빛난다. 기록적인 유튜브 클립 조회수로 주목받았던 ‘데스노트’ 뿐만 아니라 ‘정의는 어디에’와 ‘놈의 마음속으로’, ‘죽음의 게임’은 작품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넘버들이다. 또 미사가 부른 ‘사랑할 각오’와 ‘비밀의 메시지’는 헌신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인물의 의지를 돋보이게 하며 분위기 전환을 톡톡히 한다.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인간의 욕심이 불러온 결과는 결국 예상대로 흘러간다. 개인이 가질 수도 없고, 또 가져서도 안 될 무형의 힘이 ‘데스노트’를 통해 발현되는 순간, 정의라 여겼던 행위는 한 발자국 더 멀어질 뿐이었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여러 가지 사회 현상과 더불어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탐구를 포괄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매력을 지녔다. 이번 시즌 ‘데스노트’ 티켓을 꼭 확보해야만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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