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br>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지난 지선에서 한 지역구의 구청장 후보의 공약을 들으며 나는 귀를 의심했다. “우리 청소년들이 더 이상 위 지역을 빠져나가서는 안됩니다. 강남의 유명학원을 우리 지역에 유치하겠습니다.” 이 공약을 내세웠던 후보는 당선됐다.

대학입시만을 위해 살도록 설계된 교육구조는 12년의 교육과정의 결과를 수능을 중심으로 줄세우기를 하고, 계급장으로 전락해버린 서열화된 대학에 줄지어 들어가도록 만든 지 오래다. 양육자의 경제적 능력 등이 영향을 크게 미치는 수능결과가 계급을 형성하고 계급이 되물림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철저한 개인주의와 시험만능주의가 만연한 현실은 구조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진짜 문제를 발견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승자’가 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노력에 성실함의 대가이며 ‘패자’가 되는 것은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게으름의 결과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오직 수능을 잘 보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듯 살아야 했던 청소년들은 수능의 실패가 예견된 순간 시험장을 빠져나갔고 그중에서 또 많은 청소년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20년 전 수능 날을 기억한다. 이 기억을 공유하는 많은 사람들은 매년 수능소식을 마주할 때마다 트라우마에 눈물을 흘린다. 그때 스러져간 청소년들이 살아있다면 벌써 불혹이 되는 날이 왔지만, 교육의 현실은 왜 아직도 여전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지 못하는가.

‘비정상’을 배제하고 ‘정상’을 기준으로 ‘정답인 삶’만을 강요하며 평가당해야 하는 현실이 반복되는 교육시스템이 여전한 현실은 청소년이 나답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청소년 사망원인의 1위가 자살인 현실은 도대체 언제 바뀔 수 있을까. 앞서 이야기한 한 구청장 후보의 발언은 “우리 청소년들이 더 이상 이 지역을 빠져나가서는 안된다”가 아니라 “청소년들이 더 이상 이 세상을 떠나서는 안된다”로 바뀌어야 한다.

죽고싶은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긍정하고 타인을 존중하며 ‘승자독식’이 아닌 다양성과 포함의 가치가 실현되는 공동체로 변화를 만드는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제공해야만 한다.

학교는 인종, 민족,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장애, 외모, 양육자의 소득수준, 종교 등과 상관없이 모두가 함께 웃고 떠들며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공간이여야 한다. 그러나 대학조차도 취업을 위한 관문으로 전락해 버린지 오래다. 2년 전 한 시장조사전문기업에서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2.1%가 ‘한국사회에서는 4년제 대학의 학사학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슬프다.

‘대학을 안 나온 사람에 대한 차별이 심하기 때문에’, ‘사회 진출을 위한 최소한의 자격이기 때문에’,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사 학위가 필요하다고 했다. 차별을 피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대학을 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학 졸업 여부에 대한 차별만 없애면 대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 여부에 대한 차별은 고용과 임금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더라도 업무에 필요한 기술이나 역량을 가졌다면 고용과 임금에서 차별하지 않으면 된다.

청소년들이 세상을 떠나지 않도록 치열하게 고민해도 부족한 현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놀라운 발언이 있었다.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과 함께 반도체에 관한 특강을 들었다. 특강을 듣고 난 뒤 “교육부는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며 “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는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이다”라고 말했다. 교육이 수행해야 할 본연의 역할을 외면하고, 자본의 논리에 따라 교육을 재구조화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다.

인간 독재개발시대에나 있었던 산업역군 양성정도의 접근방식이며, 교육을 자본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준으로 전락시킨다. 교육의 목표가 산업 발전의 필요한 인재 공급이 되어 버리면 산업 발전과 상관없는 교과목은 쓸모없는 교과목이 된다. ‘정답’이 아닌 사람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며 억압하는 것에 ‘차별할 권리’를 운운하는 현실은 사회의 진보에 발목을 잡을 것이다. 공존을 위한 인권교육, 다양성교육, 성평등교육이 시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윤석열이 내세운 ‘교육부가 경제부처’라는 생각과 ‘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가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이라는 발상은 철저히 인간이 아닌 자본의 관점이며 국가의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셈이다. 자본가들과 국민의 힘 기반의 정권이 그토록 좋아하는 미국은 어떨까? 미국은 지난해 국무부에 다양성책임자를 신설했다. 구글, 러쉬, 피앤지 등 유수한 글로벌기업 등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내세워 다양성과 포함의 가치를 전면에 둔 경영을 하고자 노력한다. 이 사회는 단지 ‘자본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존재들의 조화와 공존을 통해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존재 목적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며, 그렇기 때문에 다양성과 포함, 평등 공존이 국가 교육의 핵심가치가 되어야 한다. 국가가 주도하는 교육은 자본에 ‘질 좋은’ 노동력을 공급을 하는 역할이 아닌 자본을 견제하며 모든 시민이 착취가 아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구조적 역할을 해야 한다. 제도와 교육을 통해 자본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 세금을 통해 부를 재분배 함으로써 분배 정의를 실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국가만이 할 수 있는 국가 고유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자본이 우리를 마음껏 착취할 수 있도록 자본에게 던져주는 셈이다.

● 김지학 소장은? 

-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부이사장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운영위원 

- 대한성학회 이사, 학술위원 

-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사외이사 

- 전) 숭실대학교 외래교수

- 전) 서울예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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