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출범한 여가부, 21년간 폐지 꼬리표 달고 존치
올 들어 尹 대선 공약으로 등장…젠더 갈등 보다 심화돼
“확대 강화해야” vs “완전 폐지”…개편 두고 찬반 갑론을박
독일 성평등 결합 부처·미국 대통령직속위원회 대안 제시도
“2030 세대 중심으로 지금보다 더 세밀한 과제·기능 설정해야”

여성가족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논란과 존폐의 기로에 섰다. 그럼에도 여가부는 ‘평등사회’라는 존재의 목적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 열풍이 거세던 시기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성평등 공약’을 발표하며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며 이에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의 지지를 받았다. 

이렇듯 여가부는 남녀평등이라는 목적보다는 남녀갈등의 본거지이자 정치적 기구로 돼버린 모양새다. <투데이신문>은 여성가족부의 역할과 기능부터 폐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바라볼 수 있는 [존폐 기로에 선 여가부]를 기획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양이현경 공동대표, 오세라비 작가, 정치하는엄마들 박민아 공동대표, 신 남성연대 배인규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성가족부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미래를 직접 들어봤다.

[사진제공=뉴시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지난 2001년 출범 이후 여러 차례 존폐의 기로 앞에 섰다. 그러다 지난 대선에서 ‘여가부 폐지’가 대선 공약으로까지 등장하며 다시 심판대에 올랐다. 자주 논쟁을 펼친 주제였지만, 이번에는 다소 달랐다. 과거에는 단순히 폐지를 두고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면, 이제는 여기에 젠더 갈등까지 더해져 더욱 극단적인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집권한 현재, 여가부는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여가부 폐지에 대한 내용이 남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이며, 여가부 김현숙 장관은 지난 16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여가부의 한계를 고려할 때 폐지는 명확하다”고 언급하는 등 여가부의 폐지는 기정 사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장관마저 찬성한 ‘폐지 카드’를 섣불리 꺼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간 여가부가 성폭력·성매매 방지법 제정, 다문화 가정 지원 등 다양한 업적도 쌓아왔을뿐더러 폐지 반대에 대한 목소리도 거세다 보니, 윤석열 정부가 신속하게 폐지를 단행할 수 없다.

이에 완전 폐지가 아닌 여가부의 여성 관련 업무를 다른 부처로 배분 혹은 격하시키거나 현재보다 인구·가족·아동 분야를 보다 강화하는 부처로 개편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본보가 이번 기획기사를 통해 만난 한국여성단체연합 양이현경 공동대표, 오세라비 작가, 정치하는엄마들 박민아 공동대표, 신 남성연대 배인규 대표는 여가부 폐지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입장으로 극명하게 나뉘었지만, 개편 필요성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냈다. 그간 여가부의 공과 실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었지만, 시대 흐름에 맞춘 여가부 ‘개편’으로 더 나은 정부가 돼야 한다는 의견만은 일치하고 있다.

앞으로 맞이하게 될 여가부의 변화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린 지금, [존폐 기로에 선 여가부] 마지막편에서는 여가부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고자 한다.

여성가족부 김현숙 장관. [사진제공=뉴시스]
여성가족부 김현숙 장관. [사진제공=뉴시스]

여성가족부, 그 존재의 의미

본래 여가부는 △여성정책의 기획·종합 및 여성의 권익증진 △청소년의 육성·복지 및 보호 △가족과 다문화 가족정책의 수립·조정·지원 △여성·아동·청소년에 대한 폭력피해 예방 및 보호 등의 목적을 가지고 지난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 출범했다.

당시 여가부는 고용노동부의 여성 주거, 보건복지부의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 보호, 성매매 방지 등의 업무를 이관받은 뒤 독립했다. 여성의 권익 증진과 열악한 환경에 놓인 가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던 여가부는 출범한 이래 부처의 기능과 목적이 아닌 폐지 여부에만 초점이 쏠린 채 20년이 넘는 시간을 힘겹게 견뎌왔다.

여가부는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폐지론이 등장해 지금까지 이어진 상태이며, 이름마저 ‘여성부’ 등으로 여러 차례 바뀌며 정체성에 혼란을 얻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일 못하는 부처’, ‘편향된 정책을 펼치는 부처’ 등으로 평가되며 국민들의 왜곡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여가부는 그동안 청소년 행복도 조사 발표 왜곡,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교육 시행, 여성친화도시 등 여성 편향 정책 및 예산, 권력형 성범죄에 미온적인 태도 등을 지적받았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루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과자 죠리퐁이 여성의 성기를 연상하게 하니 생산중지를 명령했다는 루머, 성인지 예산으로 35조원을 사용했다는 가짜 뉴스 등에 시달리기도 했다.

연일 화제의 중심에 섰던 여가부는 올해 더 뜨거운 감자가 됐다.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의 대표 공약으로 ‘여가부 폐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가부 폐지 공약은 단순한 찬반의 의견 대립이 아닌 ‘젠더 갈등’으로 전개됐다. 2030 세대 남녀는 일명 ‘이대남’, ‘이대녀’로 갈려져 각각 여가부 폐지를 찬성, 반대했으며 이에 더해 서로를 비난하고 혐오하기까지 하며 극명하게 부딪혔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달 공개한 집단별 갈등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18~29세와 30대는 남녀 갈등이 핵심 이슈인 것으로 나타났다. 18~29세 응답자의 57%가 남녀 갈등이 ‘아주 크다’고 답변했는데, 이는 전체 평균인 27% 대비 두 배 이상 높다. 또한 30대의 36%도 남녀 갈등이 아주 크다고 응답했는데, 해당 결과 역시 전체 평균보다 높다.

지난 4월 한국리서치의 젠더갈등지표에서도 ‘우리 사회 젠더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변한 응답자 비율은 71%로 집계되기도 했다. 특히 20대 응답을 살펴보면 젠더 갈등 수준이 더욱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20대(만 18∼29세)의 90%는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변했다.

한국리서치가 KBS 의뢰로 지난 2월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사회 현안 등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의 여가부 폐지 공약과 관련해 응답자 47.5%는 ‘찬성한다’, 42.1%는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성별에 따라 본다면, 남성은 찬성이 58%, 여성은 반대가 51.2%다. 이처럼 페미니즘 열풍, 미투 운동 등을 통해 점화된 남녀 간의 갈등에 ‘여가부 폐지’라는 기름까지 부어져 더욱 심각해진 상황이다.

지난 4월 진행된 ‘여성가족부 폐지, 그 대안은’이라는 제목의 토론회에서는 여가부를 해체하고 분산 운영하거나 새로운 통합 부처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등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의견이 오고 가기도 했다. 

이날 국민대학교 홍성걸 행정학과 교수는 여가부의 업무를 보건복지부로 이관하고 여성과 성평등 정책은 대통령실 민관협력위원회 내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경기대학교 이수정 교수는 인구정책과 자살방지 등 미래를 위한 다양한 문제까지 다룰 수 있는 부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반면 국회여성가족위원회 차인선 전 수석전문위원은 여가부의 업무를 보건복지부 이관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차 위원은 “보건복지부의 업무가 비대해 성평등 정책 등이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통합 부처를 신설할 경우, 기존 여성 업무 중심이 아닌 성평등 일자리 정책과 젠더 갈등 해소, 돌봄 정책 등을 강화하는 것을 중점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모두’를 위한 부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렇다면 다른 국가들은 ‘여성 기구’를 어떤 형태로 운영하고 있을까. 지난해 12월 국회입법조사처 ‘성평등 추진체계의 국내외 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국가들 중 160개국이 여성정책 전담 국가기구를 운영 중이다.

국가 기구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성평등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부처가 있고 이와 함께 평등과 성차별을 감시·구제하는 기구 등이 공존하고 있는 형태다. 이러한 국가는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이다. 그 다음으로 실 혹은 국 형태로 운영되지만 입법권, 발의권 등 권한이나 사무 등을 주요 부처와 같은 수준으로 진행하고 있는 형태로 독일, 일본, 네덜란드 등이 이에 속한다. 마지막으로는 미국은 성평등 부처가 아닌 자문기구, 성평등의회위원회 등으로 관련 정책을 다루고 있다.

그 중 독일식 모델이 여가부 폐지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독일 정부는 성평등 정책만을 다루는 독립 부처가 아닌 가족, 노인, 평등, 청소년 정책과 함께 성평등 문제를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독일의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는 양성평등 정책 형성과 집행에 대해 독립적인 관할권과 책임을 갖고 여러 정책을 실행 중이다. 실제로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도 해당 모델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제안하기도 했다.

또 다른 경우로는 미국이 있다. 미국은 대통령 직속 ‘백악관 성평등정책위원회’를 두는 체계를 택했다. 위원회는 국무부, 재무부, 상무부 등 주요 정부 기관 등과 정책을 조율하며 여러 양성평등 업무를 다룬다. 기존 국내 위원회 사례보다 더 확대된 사례로, 백악관 성평등정책위원회 공동의장들은 성별에 대한 사안을 다루기 위해 전략과 프로그램 및 예산 계획, 진행 상황을 담은 연례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해야 한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운영을 통해 위원회가 별도 기관은 아닐지라도, 대통령이 적극 개입, 관리하며 성평등 국가로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형태다.

전문가들은 이에 더해 여가부로 촉발된 세대 및 젠더갈등 해결을 위해 2030세대를 중심으로한 기능 설정과 국민 간 소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사회갈등연구소 김경숙 이사는 “여가부는 20년 전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보고, 그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정부 기구다 보니 현재 2030 세대 여성들과의 삶 의식 등과 맞지 않아 갈등이 야기된 것”이라며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지금보다 더 세밀하게 과제, 기능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한 부처의 존폐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반영하는 정치적 기능과 국가 운영의 행정적 기능이 있는데, 두 가지 기능을 잃지 않는 중립적 조정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며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분명 반대의 입장이 있음을 알고 이를 수용하는 것이 먼저”라고 짚었다.

또한 김 이사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폐지를 주장하지 말고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그 속에서 반대자들을 화합시킬 논의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더불어 부처와 공공기관도 사회적 수용성에 대한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경희대 송재룡 사회학과 교수는 “여가부 폐지론이 남녀 갈등을 더욱 부추긴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여가부의 기능, 역할 등을 원색적으로 비난해 무조건 폐지하는 것보다 여가부의 설립 목적, 취지와 정당성 등을 고려한 뒤 공백을 채워줄 대안책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다”고 밝혔다.

이어 “새롭게 시작한 정부의 구조적인 측면을 위해 폐지를 추진할 경우에는 공백 등 문제를 메꿀만한 지원 제도, 기존 여가부 업무 전담 기구 등이 완벽하게 준비돼야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첨언했다.

송 교수는 젠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송 교수는 “남성 우월주의 등 집단적 경향성을 통찰하고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제도적인 교육이 마련돼야 한다”며 “또한 가정에서도 내부에 알게 모르게 잔재된 남녀차별 문제를 구성원끼리 개방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개개인, 가족, 또래집단 등 미시적인 차원에서 젠더 갈등에 대한 자유로운 대화가 출발점이 돼야 한다”며 “이후 한국 사회에 내면화된 남녀 차별을 솔직하게 밝히고, 그것을 공론화해 정부와 국민들이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앞으로 여가부가 기능 및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완전한 해체 후 새로운 부처로 재탄생할지는 정부와 국민 간 소통과 공감에 달렸다. 길고 길었던 진통 끝에 여가부가 여러 세대, 성별 등을 넘어 화합의 기구로서의 새 역할을 하게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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