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막스 리히터 스페셜’로 클래식계 새바람 주도하는 지휘자 아드리엘 김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OTO) 예술감독 맡아
발레 음악 ‘코레아의 신부’ 세계 최초 공연
익숙한 음악도 더 새롭게 전달하고 싶어
대중과 친숙하게 소통하는 오케스트라 될 것

지휘자 아드리엘 김 ⓒ투데이신문
지휘자 아드리엘 김 ⓒ투데이신문

2020년 초, 코로나19의 확산은 해외에서 활약하던 음악가들의 발목을 기약 없이 붙잡았다. 독일을 기반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던 젊은 지휘자 아드리엘 김(Adriel Kim, 한국명 김동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짧은 방문을 예정하고 들어왔던 고국에 예상보다 긴 시간 동안 머무르게 되면서 자신이 또 다른 꿈을 꾸게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같은 상황에 놓인 연주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이들과 같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결심이 섰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음악가로서 그만큼 확실한 비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아드리엘 김은 그렇게 한국에서의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오케스트라 창단이다.

지휘자 아드리엘 김이 오는 7월 10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과 함께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의 ‘막스 리히터 스페셜(Max Richter Special)’>을 선보인다.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은 그가 직접 꾸린 오케스트라로, 2021년 정식 창단된 이후 ‘더 콘서트 : 코레아의 신부’, ‘비엔나 익센트릭’, ‘KBS 오페라 갈라랜드’ 등 특색있는 공연을 선보이며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차별화된 음악을 좀 더 가까이에서 전하고 싶다”라던 아드리엘 김의 바람과도 같은 움직임이다.

이번에는 막스 리히터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곧 있을 연주회를 앞두고 공연 준비에 한창인 지휘자 아드리엘 김과 6월의 마지막 날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Q. 간단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지휘자 아드리엘 김입니다. 현재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고요. 서울예고 재학 중 유학을 결심해 진학한 오스트리아 빈 국립 음대에서 바이올린과 지휘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주로 유럽에서 활약하다 최근에는 중국, 일본 무대에도 데뷔했는데요. 앞으로 다양한 무대에서 클래식이 가진 정통성을 살리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더한 음악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Q. 이번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Orchestra the Original)의 ‘막스 리히터 스페셜’> 공연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막스 리히터는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 굉장히 부합하는 음악을 하고 있어 좋아합니다. 예전부터 정말 하고 싶었던 공연인데 이번에 드디어 하게 됐습니다. 저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내는 일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데요. 막스 리히터는 잘 알려진 명곡을 새롭게 만들어 냄으로써 현대인들에게 익숙함이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막스 리히터가 작곡한 영화 <셔터 아일랜드> 속 음악을 보면 단순하면서도 호소력이 있거든요.

이번 공연의 콘셉트는 ‘시대적 하이브리드의 미학’이라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과 장 필리프 라모(Jean-Philippe Rameau)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융합을 선보일 예정인데, 막스 리히터의 ‘비발디 사계 리컴포즈드’가 그 둘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면요.

먼저 요제프 하이든의 ‘무인도 서곡’과 장 필리프 라모의 오페라 ‘레 보레아드’ 모음곡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막스 리히터의 ‘On The Nature Of Daylight’,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The New Four Seasons, Vivaldi Recomposed)’가 이어집니다. ‘On The Nature Of Daylight’의 경우 국내 정식 초연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2006년 영국 가디언지가 21세기 최고의 클래식 앨범으로 선정한 <막스 리히터: 블루 노트북 (The Blue Notebooks)>에 수록된 곡이죠.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씨와 함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분명 풍성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에 빠져드실 수 있는 시간이 될 겁니다.

Q.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씨와의 협연은 어떻게 성사된 건가요?

김다미 씨와는 독일에서 같이 연주해 본 적이 있습니다. 만하임 챔버 오케스트라 연주였는데, 연주를 보고 반해서 언젠가 공연을 꼭 같이해보고 싶었습니다. 김다미 씨는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하셨고 파가니니 카프리스 특별상을 받았죠.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독보적 콩쿠르인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고, 그 밖에 무수한 이력들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분입니다. 기회를 보다가 이번 공연 콘셉트와도 아주 잘 맞을 것 같아서 제안하게 됐습니다.

Q. 요즘 특히 김다미 연주자 뿐만 아니라 조성진(피아니스트), 임윤찬(피아니스트), 양인모(바이올리니스트) 등 한국 클래식 연주자들이 해외에서 크게 주목받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보시나요?

정말 대단한 일이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영화 ‘기생충’을 비롯해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성공한 것처럼요.

클래식 분야 연주자들의 연이은 수상 소식은 그동안 내공이 쌓여온 것이 드러난 결과라 생각합니다. 한국 연주자들은 꼭 유학을 가지 않더라도 세계 최고의 레벨이 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요. 그만큼 뛰어난 분들이 참 많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가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이유와도 연결된다고 볼 수 있겠네요.

Q. 이번 공연에서 직접 창단한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의 지휘자로 무대에 서는데요.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당시 코로나19가 한창일 때였고 미래가 불투명했을 시기였습니다. 해외에서 유학하던 우리나라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 대부분 한국에 들어와 있었어요. 사실 보통 연주가 끝나면 따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은데요.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세계 최고의 수준까지 올라왔는데, 이분들을 모아서 오케스트라를 만들면 참 좋겠다’라고 말이죠. 워낙 잘하는 분들이 많아서 한국 연주자만으로도 국제적 벨류를 지닌 연주가 충분히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연계가 최근 몇 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모두 잘 아실 겁니다. 그래서 더 해야만 했어요. 이런 어려운 시기에 오케스트라를 만들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Q.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섭외가 쉬웠습니다. 신뢰로 함께 하게 된 관계라고 해야 할까요. 처음에는 제가 연주 실력을 잘 알고 있는 분들로 구성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물론 주변에서 추천해주시거나 새로운 분들을 소개해 주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희 오케스트라는 오로지 실력을 보고 영입합니다. 다행히 정말 좋은 분들이 와주셔서 오케스트라가 구성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기술적 측면에서 추려가는 단계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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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아드리엘 김

Q. 지난 2021년에는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세계 최초로 발레 음악 ‘코레아의 신부’를 연주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하게 된 연주였나요?

2012년 신문 기사를 보다가 이런 발레극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박희석 교수님께서 악보를 발굴해내셨는데, 마침 그 악보가 당시 제가 살고 있던 프랑크푸르트에 있었습니다. 그때 ‘코레아의 신부’ 악보를 보자마자 연주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국립 발레단 공연이 이뤄질 뻔했다가 무산된 적도 있는데요. 안무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공연을 올리기 어려웠고, 다시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안무가 없더라도 음악은 완벽하게 들릴 수 있죠. 원본 악보이다 보니 연주를 위해 디지털화해야만 했는데, 그 작업이 꽤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주오스트리아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복원된 악보를 만들 수 있게 됐고, 덕분에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124년 만에 전 세계 최초로 ‘코레아의 신부’를 연주하게 된 겁니다.

이 연주는 네이버 공연TV를 통해서 실시간 중계가 됐었는데요. 코로나19의 확산이 심각했던 시기여서 공개 공연이 어려웠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꼭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연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지금은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일부만 볼 수 있도록 해 두었습니다.

Q. 연주를 놓친 관객들이 다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없나요?

이번에 세종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광복 77주년 기념 공연에 초청받았고, 그때 ‘코레아의 신부’ 전곡을 연주하기로 했습니다. 공연은 8월 20일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Q. 클래식의 현대화나 장르의 융합에도 관심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2020년 11월에는 직접 작곡한 곡인 ‘영웅의 라멘트’를 최초로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네, 맞습니다. 저는 클래식이 그들만의 리그처럼 여겨진다거나 독립된 분야로 느껴지는 인식을 불식시키고 싶습니다. 사실 클래식이라는 게 옛날 음악이고 또 어려운 음악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서 옛 작품을 연주하거나 음악으로 역사를 이야기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 역할은 ‘과거의 음악을 현재로 가져와서 동시대인들에게 어떻게 선보일 것이냐’를 고민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생각했습니다. 막스 리히터도 마찬가지죠. 비발디의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거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음악적으로 높은 수준을 가지면서 대중적으로도 많은 공감을 이끌 수 있을지를 늘 고민했는데, 그 지점에서 가장 첫 번째로 해보겠다고 결심한 일이 바로 작곡이었습니다. ‘영웅의 라멘트’는 악보를 조금 더 손보고 다시 공개할 계획이고요. 언젠가는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의 연주로 다시 들어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 밖에도 클래식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좋은 제의가 들어와서 곧 촬영을 진행할 예정인데, 머지않아 첨단 기술과 클래식의 만남이 성사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저희의 첫 번째 시도입니다.

Q. 얼마 전에는 일본 무대 데뷔를 하고 오셨죠. 소감이 궁금합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음악 앞에서는 일본 사람들이나 한국 사람들이나 똑같잖아요. 음악은 세계 만국의 공통어니까요.

우선 여러모로 준비가 잘 되어있었습니다. 일본 오이타현 다케타시에 있는 ‘다케타시 종합문화홀’에서 공연한 건데요. 공연장이 새로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주 좋았습니다. 들어보니 오이타현 벳부 아르헤리치 뮤직 페스티벌이 개최된 곳이기도 하더라고요. 지방의 작은 도시지만, 문화에 관심이 많고 문화를 부흥시키려는 노력이 두드러졌습니다. 그리고 일본 연주자들은 곡에 학구적으로 다가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단원들이 연습 끝나고 와서 악보를 가져와서 물어보기도 하고요.

클래식을 향한 대중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가곡(‘하코네 80리(箱根八里)’을 편곡했는데, 굉장히 좋게 봐주시더라고요. 따뜻한 환대였습니다.

지휘자 아드리엘 김 ⓒ투데이신문
지휘자 아드리엘 김 ⓒ투데이신문

Q. 앞서 유튜브 채널도 만들었다 말씀해주셨습니다. 오케스트라가 가진 앞으로의 비전 및 계획이 있다면요.

네, 최근에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 공식 유튜브 채널을 열었습니다. 오케스트라들이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은 대중과 가깝게 같이 호흡하는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이 목표거든요.

오케스트라의 비전은 단순합니다. ‘과감하게, 독창적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자’가 저희의 목표죠. 그래서 최근에는 용인세브란스병원과 MOU를 맺고 음악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얼마 전 첫 공연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또 ‘어반 라이프, 어반 클래식(Urban Life, Urban Classic)’을 꿈꾸며 대중과의 접촉을 넓힐 수 있는 방향을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통 코어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정기 공연과 더불어 다양한 공연을 선보일 계획이고요. 곧 2022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수상자인 첼리스트 최하영 씨와의 공연도 예정돼 있습니다.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수상자와의 협연은 작년에 이어 진행하는 공연이에요. 앞으로도 좋은 무대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지휘자 개인의 목표나 계획도 소개해 주세요.

이제 일상으로 많이 돌아온 상황이기 때문에 국제적 활동을 조금 더 할 예정이고. 한국에서는 저희 오케스트라를 더 많은 분이 알 수 있게끔 예술감독으로서 역할을 잘 수행하려고 합니다. 오케스트라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더 잘 알려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클래식 안에서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저변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또 지금 세종문화회관에서 ‘2022 오케스트라 지휘 과정’도 맡고 있는데요. 이 교육 역시 잘 진행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잘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드리엘 김의 모습은 앞으로 그와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보여줄 행보에 더욱더 기대를 갖게 했다. 음악을 기반으로 예술의 외연을 확장하고 싶다던 아드리엘 김의 바람과 포부가 더 많은 이들의 마음에 진솔하게 닿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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