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정비사업, 개발이익만 쫓으며 세입자 내몰아
서울 뉴타운 26곳 조사하니 인구·세대 되레 감소
사업 추진 따른 주택멸실로 인근 전세값 급등세
“정부가 임대주택 공공재로 인식하고 직접 지어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산성재개발사업지구 내 다세대주택들 너머로 고층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산성재개발지구는 연말까지 철거가 예정돼 있다. ⓒ투데이신문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산성재개발사업지구 내 다세대주택들 너머로 고층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산성재개발지구는 연말까지 철거가 예정돼 있다. ⓒ투데이신문

유례를 찾기 힘든 가파른 집값 상승은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정부는 온갖 부동산정책을 쏟아냈지만 아파트 가격 상승이 주도한 집값 앞에선 ‘백약이 무효’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만연해 있던 땅 투기가 성난 민심에 불을 당겼다.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신도시 개발 지역의 토지를 사전에 매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어 ‘대장동 게이트’ 사건이 터지며 부동산개발 사업이 어떤 방식으로 막대한 차익을 실현하는지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투데이신문>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월 24일부터 26일까지 전국 만 18세 성인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에서 응답자의 68.9%가 우리나라의 집값이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답했다. ‘약간 높은 수준’(21.4%)이라고 답한 응답자를 합하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9명(90.2%)은 현재의 집값이 높다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렇다보니 새정부의 핵심 과제는 부동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정부는 주택 250만호+a 공급정책을 내세우며 막대한 주택물량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주택 보급률 100%를 초과한지 오래인 현재를 감안하면 과연 공급만으로 충분할지 의문이 떠오른다. 부동산 문제의 심화는 수도권 집중화와 함께 진행된 사안이다. 수도권에 밀집된 공급이 오히려 집중화를 부채질한다면 부동산 시장 안정은 더 멀어질 수도 있다. 본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부동산 문제와 사회 각 분야는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살펴 근원적인 부동산 정책을 수립하는데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한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박준경씨는 어머니와 함께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의 한 주택에서 살다 3차례의 강제집행을 겪었다. 아현2구역 주택재건축 정비사업을 추진하려면 그가 살고 있는 보증금 300만원, 월세 25만원인 집을 헐어야 했다. 3번째 강제집행으로 빈집에서마저 쫓겨난 그는 사흘을 꼬박 길거리에서 보내다 끝내 한강에 몸을 던졌다.

박씨는 지난 2018년 12월 4일 한강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고인은 유서에서 “한겨울에 갈 곳도 없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한다”라며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려서 저와 같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박준경씨의 죽음은 앞서 2010년 1월 일어난 용산참사에 이어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쫓겨나는 원주민들을 다시금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법적·제도적 개선대책을 모색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2022년 현재에도 신축 아파트를 짓기 위해 세입자들을 내쫓는 강제집행은 계속되고 있다.

새정부는 주택공급대책의 일환으로 재개발·재건축사업을 활성화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세부적인 대책을 수립 중이다. 문제는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려면 기존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보금자리부터 헐어야 한다는 점이다.

윤석열정부는 이들은 어디로 가게 되는지, 그리고 정비사업이 끝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인지 이전과 다른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용산참사’, ‘제2의 박준경’을 만드는 비극을 초래할 것인가. 

개발이익에만 매몰되는 재개발·재건축이 되풀이된다면 비극은 예정된 셈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수도권지역의 주택정비사업들은 세입자들에게 주거난을 더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각종 정비사업이 주택시장 안정에 부담이 되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기 어려울 터다.

성남 산성 재개발, 5000세대 헐고 3000세대 짓는다

지난 5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산성동 일대는 지난 2019년 4월 주택재개발사업 시행계획 인가가 이뤄졌다. 15만여㎡의 면적에 3000여 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는 구상이다.

이 지역에서 살던 5000여 세대의 주민들은 하나둘 동네를 떠났다. 지난해 11월 이주기간이 끝났을 때 즈음엔 100여명 정도만 남았다. 산성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겨울철인 12월에서 다음해 2월까지를 강제집행 기간으로 삼았다.

지난 5일 만난 정은하(61)씨는 남은 주민 중 한명으로 10여년 동안 산성동에서 살면서 네 자녀를 키웠다고 한다. 정씨는 “민영사업이란 이유로 세입자들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다. 개발기간 동안 임시로 거주할 집과 이후 다시 산성동에서 살 수 있도록 세입자들에게 임대주택이 지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끝까지 버티던 정씨는 그해 12월 출근하던 길에 강제집행을 맞았다. 그는 “독촉장이 3~4번은 더 올 줄 알았다. 30분간 버텼는데 결국 재개발조합 여성조합원들에게 끌려 나왔다”라며 “조합원인 가옥주가 주민등록도 말소했다. 집주인은 ‘주민등록이 말소돼도 생활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더라”며 기막혀 했다.

보금자리가 사라지자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 정씨는 직장 사무실에 짐을 옮기고 대책위 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정당한 세입자의 권리를 찾기 전에는 포기할 수 없다”며 “해결이 되면 살 집을 알아보려 한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지역은 거주민들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겨울철 강제집행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와 성남시는 이 같은 조례가 없는 상황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3월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인한 강제퇴거 및 철거 시 거주민 인권보호를 위해 행정대집행법과 민사집행법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는 퇴거 예정 시기에 대한 사전 통지, 정부 관계자 또는 대표자의 퇴거 현장 입회, 적절한 구제조치 제공과 아울러 동절기, 악천후 시 강제퇴거 집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추가해야 한다고 짚었다.

성남산성구역 대책위원회가 지난 5일 성남시 수정구에 위치한 산성구역재개발정비사업조합 사무실 앞에서 이주대책 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성남산성구역 대책위원회가 지난 5일 성남시 수정구에 위치한 산성구역재개발정비사업조합 사무실 앞에서 이주대책 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 지역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던 김정태 관장은 산성구역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돼 앞장서 이주대책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재개발로 문을 닫게 된 태권도 도장은 언제 열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김 위원장은 “상가는 동네를 벗어나 큰 길만 건너면 억대 보증금에 월세도 250만원, 300만원씩 한다. 권리금도 최하 5000만원은 되더라”라며 혀를 찼다. 그러면서 “수입은 없이 지출만 하고 있으니 대출 6000만원 받아서 쓰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재개발로 이사가는 집이 한두집이 아니다보니 인근 전세값도 7000만원 이상 올랐다. 재개발조합이 내놓은 이주비로는 감당이 안 된다”라며 “성남에서는 집을 구하기 어렵다. 집 면적을 줄여서 찾거나 아니면 광주시까지 가야 구할 수 있다”고 사정을 전했다. 그는 “조합원인 가옥주들은 재개발로 수억원씩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지만 세입자들은 그런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거주대책을 제대로 만들지 않고 개발만 급급한 게 문제”라면서 “주택공급정책으로 재개발을 활성화한다는데 3000여 세대 아파트를 짓느라 5000여 세대를 헐었다”고 손을 내젓기도 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성남시가 한두차례 중재에 나섰지만 재개발조합과 기싸움만 했다. 재개발조합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적절한 이주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라며 “이제 곧 건물철거에 들어갈텐데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과 함께 몸으로 막으며 싸우려 한다”고 말했다. 재개발사업이 태권도도장 관장을 철거민 대표가 돼 온몸으로 싸우는 투사로 만든 셈이다.

산성동 재개발조합이 내놓은 주거이전비 등 세입자 지원안은 2013년 12월 26일 이전에 3개월이상 거주한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 이후 세입자들은 주거면적에 따라 약 70만원 또는 108만원으로 책정된 이사비용만 받을 수 있다.

2013년 12월 26일은 산성동 재개발사업 공람공고일이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은 이 날을 기준으로 주거이전비를 지급받는 세입자를 분류하고 있다. 보통 전월세 계약을 2년 단위로 맺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사이에 적잖은 세입자들이 산성동을 떠났을 것으로 보인다.

산성구역재개발정비사업조합 관계자는 “공람공고일 이전에 거주한 세입자는 주거대책비로 1인당 950만원 가량 보상한다. 세입자를 대상으로 임대주택 421세대(총 3487세대)에 대한 공급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겨울철 강제집행을 한 이유에 대해 “안 나가니까 할 수 없었다. 성남시와 법원도 여기에 이의가 없으니 집행한 것”이라며 “연말 즈음엔 건물철거작업이 끝나고 내년 봄 무렵에 일반분양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윤석열정부는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공급을 늘리겠다며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위한 군불을 떼고 있다. 서울시 역시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이라는 오세훈표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주택정비사업을 보면 꼭 주택공급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참여연대는 지난 4월 11일 과거 뉴타운 사업의 문제점을 분석한 이슈리포트를 발표했다. 참여연대가 지난 2002년부터 추진한 서울지역 뉴타운 사업을 조사한 결과, 뉴타운 사업지구 26곳은 사업 이전보다 인구는 3%, 세대 수는 10%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소현민 실행위원은 “길음 뉴타운 2구역은 1997년 조합 설립인가 당시 거주민 798명 중 2005년 4월 입주한 주민은 82명에 불과했다”라며 “개발지역에 거주하는 영세한 가옥주와 세입자들의 능력과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고가의 중대형 아파트 건설 위주의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투기수요만 자극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개발·재건축으로 주택멸실이 발생하자 이주 수요가 급증하고 전세값이 폭등했다. 왕십리 뉴타운지역은 전세값은 이주 전 평균 4353만원에서 이주 후 평균 7176만원으로 63% 폭등한 것으로 확인됐다”라며 “전세값 폭등을 막으려면 순차적·단계적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지역만 2022년 2월 기준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지구가 535곳이나 된다. 정부와 서울시의 정책 추진에 따라 이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1기 신도시 재건축 추진도 가시화되면서 수도권 일대 세입자들의 수요가 크게 출렁일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서울시 휘경3구역 재개발사업 철거민 대책위원회 주민들이 동대문구청 앞에서 주거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서울시 휘경3구역 재개발사업 철거민 대책위원회 주민들이 동대문구청 앞에서 주거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토지공개념 실현 통해 임대주택부터 늘려야

철거민단체 대표들은 정부가 민간에 떠넘기지 말고 직접 임대주택 건설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처럼 개발이익 중 일부를 환원해 임대주택을 짓는 방식이 아니라 공공재처럼 정부가 예산을 들여 직접 만들어야 된다는 얘기다.

전국철거민연합 남경남 의장은 “재개발·재건축에 앞서 권역별로 임대주택을 구해 원주민들을 수용한 다음에 사업을 진행하고 이후에 다시 입주할 수 있도록 순환식 개발방식을 고안해야 한다”라며 “국유지 등은 민간에 매각해서 개발하도록 하는 것보다 국가가 땅은 갖고 있되 주택건설만 민간이 맡아 임대주택을 늘리는 방법도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말을 꺼냈다. 주택멸실에 따른 전월세난을 예방하려면 이 역시 임대주택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남 의장은 “주택세입자는 임대주택을, 상가세입자는 대체상가 영업권 보장을 해야 한다. 조합원 부담이 높아 청산자가 된 가옥주에게는 정당한 보상이 지급돼야 한다”고 촉구하며 “그렇지 못하면 철거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씁쓸해 했다. 그는 “주택은 결국 토지가 있어야 지을 수 있다. 결국 토지공개념에 입각한 제도가 있어야 임대주택을 늘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국철거민협의회 이호승 대표 ⓒ투데이신문
전국철거민협의회 이호승 대표 ⓒ투데이신문

전국철거민협의회 이호승 대표는 “개발지구 원주민들을 위한 제도는 찾기 힘든데 그마저 점점 사업시행처와 건설기업 입맛에 맞게 바뀌고 있다”라며 “세입자들에게 주거권을 보장하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성남 분당에 1기신도시를 개발할 당시 원주민인 세입자들에게 5년 동안 살 수 있는 임시주거와 생계대책, 그리고 공공임대를 공급했다. 그런데 35년이 지난 지금 세입자들은 그보다 못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호소했다. 

이 대표는 “재개발·재건축조합은 가옥주인 조합원의 이익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조합이 자기 돈을 들여 임대아파트를 지으려 하겠냐”라며 “임대주택을 건설할 재원은 국가예산으로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임대주택을 세입자들에게 수혜를 주는 정책이 아닌 공공재로 인식해야 한다. 도로건설처럼 정부가 당연히 해야할 과제로 여겨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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