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헤리티지 펀드 투자 피해자를 만나다
“평생 예금했던 은행이 뒤통수 칠 줄 몰랐다”
부실 시행사 검증 깜깜이…못한건가 안한건가
서명만 하면 된다더니 ‘공격형 투자자’로 둔갑
잔인한 돈, 냉정한 시선…“피해호소도 눈치보여”

국내 최대 규모의 금융스캔들인 라임자산운용(이하 라임)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한지 3년이 지났다. 라임·옵티머스 펀드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전액배상 조치를 받으며 사태가 진정되는 듯 했으나 여전히 분쟁 중인 부실펀드로 인해 많은 투자자들의 상처는 봉합되지 않은 채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이 지정한 5대 부실펀드 중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독일 헤리티지 펀드, 디스커버리 펀드가 라임·옵티머스 펀드와 같이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적용하는지가 쟁점일 것으로 보여 지는 바 사모펀드 피해자들과 판매사의 간극을 살펴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평생 예금했던 은행에서 투자기간이 2년으로 비교적 짧은 만기에다 예금금리의 몇 배가 되는 상품이고 독일이 망하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얘기하는데 누가 투자를 안 합니까?”(독일 헤리티지 펀드 투자 피해자 임원효씨)

독일 헤리티지 펀드는 2019년 7월부터 만기 상환이 중단되기 시작했다. 환매 중단 금액은 2020년 말 기준 5200억여원, 피해자는 2000여명을 넘는다. 이 펀드에 투자한 개인투자자 중 대부분은 은퇴자들이다. 한 사람의 인생 뿐만 아니라 한 가정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 따라서 그 피해규모를 숫자에 한정해서만 바라볼 수 없다. 

 2017년 6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신한금융투자 등에서 판매한 독일 헤리티지 펀드는 독일 정부가 지정한 기념물 보존 건물을 민간 고급아파트로 리모델링하고 그 분양대금을 기초자산으로 한다. 시행사는 독일 현지 시행사인 돌핀트러스트가 맡았고 투자운용은 싱가포르 반자란자산운용이 맡았다. 

그러나 돌핀트러스트는 개발 인허가 조차 제대로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고, 결국 현지 지방법원을 통해 파산선고 됐다. 이에 2019년 7월 환매가 중단됐고, 피해자들은 판매사를 고소했으나 현재까지 진척이 없는 상태다.

특히 금감원이 지정한 5대 부실펀드(라임·옵티머스·이탈리아 헬스케어·독일 헤리티지·디스커버리)중 독일 헤리티지 펀드만 아직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조차 열리지 않았다.

이에 몇 년째 금감원 앞에서 피해구제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독일 헤리티지 펀드 피해자연대의 홍영표 대표와 임원효 고문을 지난 19일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독일 헤리티지 피해자연대 홍영표 대표와 임원효 고문 ⓒ투데이신문
(왼쪽부터) 독일 헤리티지 피해자연대 홍영표 대표와 임원효 고문 ⓒ투데이신문

원금·수익율 지급 보장한다더니…은퇴자금 다 날려

“평생 믿고 거래했던 신한은행의 프라이빗뱅커(PB)가 투자 제안한 독일 헤리티지 펀드는 담보자산이 확실하고 안전하다는 말에 퇴직금 전부를 투자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투자한 펀드는 이름도 생소한 역외사모펀드였고 투자자산도, 실체도 없는 사기였다”

임 고문은 서둘러 투자권유를 받을 당시 투자설명서를 펼치고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퇴직금으로 받은 2억을 모두 투자했다. 노후 생활과 자녀 결혼 자금에 필요한 돈이었지만 가족들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PB의 제안을 받고 솔깃했다. “은행예금밖에 모르는 사람이 왜 투자 했겠나”라며 “PB로부터 2년 내 투자자에게 원금 및 수익률 지급을 보장한다는 말을 듣고 안전한 상품으로 알았다”고 털어놨다.

임원효 고문이 보관한 독일 헤리티지 펀드 투자설명서 원본 ⓒ투데이신문
임원효 고문이 보관한 독일 헤리티지 펀드 투자설명서 원본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이 입수한 당시 투자제안서 원본에 따르면, 해당 상품은 2년 만기 수익률은 1년차에 연 4.8%, 2년차에 8.8%로 총 만기까지 13.6%의 수익률을 제시했다. 또 2년 뒤 대상자산의 인허가 및 분양여부와 무관하게 현지 시행사의 신용으로 원금과 함께 이자를 지급하는 조건의 상품으로 명시돼 있다. 

투자자산은 1순위로 질권설정됐으며, 시행사는 독일 최대건설사로 독일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사업이라는 설명으로 안전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해외보도 등에 따르면 해당 시행사는 이미 지난 2014년, 2015년에 영국과 싱가폴 금융당국에서 지정한 무허가 경계업체였고, 회계장부도 없는 피라미드 사기업체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났다.

우수고객 특별승인이라고 속여 쪼개팔기

사모펀드는 특정한 소수의 투자자들로부터 비공개적으로 자금을 모아 운영되는 펀드로 전문투자자 등을 제외한 투자자의 수는 100인(가입 당시 49인) 이하다. 문제가 된 독일 헤리티지 펀드의 피해규모는 약 5200억원이다. 특히 신한금융투자에서만 피해액이 약 3900억원, 피해자 수만 1600명을 넘는다.

홍 대표는 이러한 점에서 ‘펀드 쪼개팔기’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신한은행PB로부터 “우수고객 대상으로 49명만 모집한다. 300억 설정으로 최소 가입금액이 5억이지만 우수고객이므로 특별승인으로 2억도 가입해주겠다고 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은 1억에도 해준다고 들었다. 처음 설명을 듣고는 단독 상품인 줄 알았다. 쪼개서 판매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동일한 기초자산을 파생결합증권 형식으로 여러 번 판매함으로써 설정액이 1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공모펀드 규제를 피하려는 목적으로 여러 사모펀드 형태로 나눠 판매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홍 대표는 “이러한 사실은 49명 이상 모집으로 공모펀드에 해당되며 신한금융투자의 펀드 리콜조항에도 해당된다”고 덧붙여 말했다.

속여 판 상품에 ‘자기 책임 원칙’ 갖다붙여

자기 책임의 원칙은 투자자 스스로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에 따라 발생하는 이익이나 손실을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는 것으로 최근 금융당국은 라임 사모펀드사태에 이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적용한 바 있다. 그러나 신한금융투자는 투자자의 등급 성향이 공격형으로 분류됐고 투자자산이 투자시점에는 부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홍 대표는 “실제 자산이 엉터리였고 상품자체가 사기이며 판매방식도 고객을 기만했다. PB가 서명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어느새 공격형투자자로 분류됐다”며 “거짓정보로 속였는데 자기책임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무엇보다 신한은행 측이 현지 실사를 5회나 다녀왔음에도 파산진행 중인 독일의 시행사 돌핀트러스트에 대해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임 고문은 “자료 검증만 제대로 했어도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 투자를 진행하는 시행사는 회계장부도 없어 신용등급도 매길 수 없는 회사였다”며 “이런 회사를 독일 5대 부동산개발회사라고 소개하고 독일이 망하지 않는 이상 문제없다며 판매한 것은 명백히 사기에 해당되며 사기가 아니라도 중과실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신한금융투자는 투자설명서에 돌핀트러스트의 안전성을 적극적으로 홍보 했지만 결국 사기업체로 판명났다. ⓒ투데이신문
신한금융투자는 투자설명서에 돌핀트러스트의 안전성을 적극적으로 홍보 했지만 결국 사기업체로 판명났다. ⓒ투데이신문

이에 신한금융투자 측은 임 고문에게 “신용등급이나 회사 관련 자료는 전달만 했을 뿐”이라며 “판매사는 운용사에 대해 관여할 권한이 없고 실제 사업모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입장을 전했다.

임 고문은 “작정하고 팔아먹었다고 생각한다. 같은 상품을 판 유안타증권에서는 제일 처음 시행사 측에 독일 현지 등기부등본 등 관련 자료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이상함을 감지하고 1년 만에 판매를 중단했다”며 신한금융투자의 자료 검증에 대한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2018년 6월 신한은행 관계자가 제공한 독일 현지 착공식 사진을 두고도 보여주기식 가짜 착공식 사진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임 고문은 “이 무렵 시행사 돌핀트러스트에 대한 유럽언론의 사기 보도를 무마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며 “돌핀트러스트의 찰스 회장은 착공식이 있은 지 석 달 후인 2018년 9월 최고경영자(CEO)에서 돌연 사퇴했지만 신한은행은 그 후에도 계속 판매를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신한금융투자는 다른 판매사들이 판매를 중단한 2017년 말 이후에도 1년간 상품 판매를 지속했으며, 2018년에는 단독 판매해 피해 확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금융회사가 고객 자산 우습겨 여긴 게 제일 분해

피해자연대에 따르면 독일 헤리티지 펀드 피해자 대부분이 은퇴자이며, 피해 금액도 큰 편이다. 퇴직금이나 평생 예금 저축으로 비축한 금액인만큼 젊은층 보다 비교적 크고 금융지식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안전하고 투자기간이 짧다는 신한은행PB의 말에 아파트나 상가 대금을 넣은 투자자도 상당수다. 그렇기에 이들은 피해금액 이상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호소했다. 게다가 사모펀드의 특성상 위험한 거 알고 투자한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과 차마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은 마음에 혼자 속앓이 하는 피해자도 상당수였다. 

홍 대표는 “펀드가 위험할 수 있다고 우리도 생각할 수 있지만 이 펀드는 처음부터 사기 상품이다. 신한금융투자에서 기본적인 검증도 안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원금 및 수익률 보장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고 투자했을 뿐이다”라고 토로했다.

금감원 앞에서 시위하는 독일 헤리티지 피해자연대 ⓒ투데이신문
금감원 앞에서 시위하는 독일 헤리티지 피해자연대 ⓒ투데이신문

임 고문은 “제일 분한 것은 고객의 돈을 다루는 금융회사가 고객 자산을 우습게 여겼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생을 거래해 왔던 은행을 믿고 투자했지 처음 들어본 운용사나 시행사를 어떻게 알겠냐. 우리가 누굴 믿고 투자 했겠냐”라고 말을 맺으며 피해자들 곁으로 걸어 들어갔다.

임 고문과 홍 대표는 이날도 금감원 앞에서 피해자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 이상 이러한 금융사기가 재발해서는 안 된다며 금융업자의 신의성실의무를 촉구했다. 언제 끝날지 기약없는 싸움은 이날도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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