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대상으로 한 서브컬처로 분류돼온 BL 인기몰이
영화‧웹툰‧웹소설 등 다양항 형태로 마니아층 형성
다양성 향유 신호탄인가 단순한 호기심의 연장인가
철저한 여성 시각‧퀴어 장르와 구분 등 한계도 있어
다양한 플랫폼서 이용자 타겟팅, 산업적 가치 충분

은밀한 취향으로 치부 받던 BL(Boy's Love) 장르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유명 아이돌이 BL 콘텐츠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고, BL 콘텐츠가 OTT채널 1위를 차지하는 등 BL 현상은 날로 두드러지고 있다. 이로써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던 비엘러(BL 소비층)들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게 됐다. 하지만 남성을 성적대상화하고, 여성의 판타지를 채워주는 데 불과하며 반페미니즘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과연 BL이 대중문화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수면 위로 떠오른 BL 문화를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향유하고 받아들어야 할까. <투데이신문>은 [BL이 어때서]를 통해 1편에서는 BL이 갖는 문화적 가치와 함의를 살펴보고, 2편에서는 비엘러 3명과의 인터뷰를 진행해 BL에 관한 솔직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시멘틱 에러’ [사진제공=왓챠]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시멘틱 에러’ [사진제공=왓챠]

【투데이신문 박주영 기자】 현재 한국 콘텐츠 업계에서는 BL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BL은 보이즈러브(Boy's Love)의 약자로 남성끼리의 사랑을 소재로 다룬 장르이다. 단순히 말하자면 동성애(퀴어) 콘텐츠이지만 여성이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독특한 성향과 형태를 띄고 있다.

웹소설과 웹툰, 드라마, 영화, 예능, 게임에 이르기까지 BL은 다양하게 소비되며 급기야 대중화의 시동을 걸고 있다.

이러한 BL 현상은 과연 콘텐츠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현상일까. 아니면 여성의 판타지를 이용한 상업적 산물에 불과할까.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br>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BL이 뭐기에?

BL은 ‘하위 문화’, ‘부분 문화’인 서브컬처(sub-culture) 중 하나다. 과거 ‘야오이(일본어로 남성 사이의 동성 연애물)’라고도 불렸으나 지금은 국내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표현이다. 

BL 콘텐츠 창작자는 대부분 여성이며, 소비자 역시 대다수 여성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미소년인 경우가 많으며 연령대는 다양하다. 탐미주의적인 작품이 대부분이며, 판타지적인 요소가 강하다. 성별을 넘나드는 알파/오메가 세계관이 등장하는 등 파격적인 설정도 있다. 

이렇듯 주류에서 멀리 떨어진 BL은 동성애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이 대부분으로, 퀴어 콘텐츠와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과거 BL 작품은 성인 대상의 회원제 홈페이지 ‘성인동’에 가입 후 인증을 받아야만소설을 볼 수 있는 폐쇄적인 형태를 띄었다. 그러다 동인지, 소설, 남성 아이돌 그룹 팬픽 등 아마추어리즘 창작으로 더욱 다양하고 폭넓게 소비됐다. 이후 웹툰과 웹소설의 인기와 대형 콘텐츠 플랫폼의 등장으로 BL 작품의 소비가 크게 늘었고, 이제 하나의 장르로 공식 인정받게 됐다.

&nbsp;리디 원작 웹소설 &amp; 웹툰 ‘시멘틱 에러’ [사진제공=리디]
 리디 원작 웹소설 & 웹툰 ‘시멘틱 에러’ [사진제공=리디]

바야흐로 BL 시대

BL은 그동안 특정 커뮤니티나 여성층을 대상으로한 소수의 매니아층에 국한돼 은밀하게 소비돼 왔지만 이제는 다양한 형태로 소비와 노출이 이뤄지면서 BL의 양지화가 시작됐다.

현재 BL 주요 플랫폼은 리디북스, 레진코믹스 등이 있다. 그외에도 대부분의 웹툰과 웹소설 플랫폼은 따로 BL 카테고리를 설정하고 있다. 인기 콘텐츠의 경우 리뷰는 3000건이 넘으며,  작품 ‘좋아요’ 수는 164만이 넘는다. BL 독자들은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등 댓글로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리디북스는 자회사 오렌지디를 통해 BL 독자만 타겟팅한 브랜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평소 BL을 즐겨보는 20대 A씨는 “BL 웹드라마와 소설, 웹툰을 보기 위해 3개의 OTT 사이트와 카카오페이지, 리디북스를 이용하고 있다”며 “한 달 평균 5-6만원을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2월 왓챠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드라마 <시맨틱 에러>가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게되면서 BL이라는 장르는 이제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 <시맨틱 에러>는 리디 저수리작가의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BL 드라마로 공개 이후 장기간 왓챠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했고, 많은 매니아층을 형성하며 큰 흥행을 거뒀다.

<시맨틱 에러> 흥행 후 국내 콘텐츠 업계에서는 이를 기점으로 다양한 BL콘텐츠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리디 인기 BL웹소설 <신입사원>이 드라마화 돼 올해 말 왓챠에서 공개 예정이며, 웨이브(wavve)는 국내 최초 남성 동성애 커플 리얼리티 예능 <남의 연애>를 지난 15일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배우 차서원과 아이돌 그룹 B1A4 멤버인 공찬이 BL드라마 <비의도적 연애담>의 주연을 맡으면서 인지도 있는 배우들이 BL드라마를 선택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왜곡된 이미지 심기도 

그러나 BL은 성소수자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심고 있으며, 반(反)페미니즘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BL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들은 악녀로 설정되거나, 여성 캐릭터는 대부분이 들러리에 불과하는 등 여성을 배제하고 혐오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BL 작품에서는 성(性)역할을 구분할 때 ‘공(攻)’, ‘수(受)’로 분류하는 데 이는 결국 성별만 달라졌지 남성은 능동적, 여성은 수동적인 캐릭터로 담고 있는 기존 콘텐츠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도 있다. 오히려 남성과 남성이라는 폐쇄적인 설정으로 남성을 숭배하고 있다는 비난도 있다.

또한 동성애를 오락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왜곡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설정도 청소년들에게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도 지적한다. 

실제 2015년 페미니즘 운동이 거세지면서 BL은 게이 성관계에 대한 미화, 여성 배제 장르라는 비판에 직면, ‘탈 BL’ 운동이 일었다.  

BL은 단순히 여성의 욕망을 투사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연구자 “BL, 더 나아가 GL(Girl's Love, 여성끼리의 사랑을 담은 작품)은 이성에 대한 욕망을 투사하는 현상”라며 “이러한 판타지는 현실 이성에 대한 결핍을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소수에서 다수로

과연 BL은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고 대중문화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장민지 교수는 “남성들 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철저히 여성의 시각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점과, 퀴어 장르와의 구분 등 형태의 문제로 인해 대중문화로 올라서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장 교수는 “산업적인 성공은 끊임없이 추구 할 수 있다. 대중이란 범위 안에 소구되기는 힘들지만 OTT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BL 이용자들을 타겟팅 한다면 충분한 산업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며 “OTT 플랫폼들이 예전에는 거들 떠 보지 않았던 소수의 문화 자체에 집중하고 ‘니치 마케팅’을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은 “다양한 삶의 모습 또는 성적 행동 등 이런 것들이 그려지고 사람들이 그걸 통해서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은 좋은 흐름”이라면서도 “BL이 단순히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소비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최근의 BL 열풍은 BL의 산업적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대중화의 한계를 갖고 있음도 확인됐다. 그럼에도 차별화,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강점을 가진 만큼 당분간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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