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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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계’라는 단어를 보면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우선 그것은 별의 세계, 혹은 별이라는 세계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이 세계와는 별개로 분리된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혹은 별의별 세계, 즉 하나같이 별스러운 여럿의 세계를 뜻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김유림의 시집 『별세계』(창비 2022)는 이 중 무엇에 가장 가까운 세계일까.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고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답이겠지만 시집을 뒤적이다 보면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의미에 좀 더 근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세계와 별개의 세계인 동시에 별의별 세계인 세계. 시집에서 제목이 함의하는 이러한 세계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는 같은 제목을 달고 다양하게 변주되는 시들이다. 「인터뷰의 길」 옆에 「인터뷰의 길」이, 「비밀의 문」 옆에 「비밀의 문」이 있는 식이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내용이 하나의 시에서는 연을 나눠 진행되는가 하면 또 다른 시에서는 행갈이 없이 보여지는 식이다. 같은 제목의 같은 듯 다른 시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이 시와 저 시가 과연 같은 세계에 속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두 시가 태연하게 나란히 놓여 있는 이 시집은 일종의 웜홀을 구현하고 있기라도 한 것일까?

분명 독자들은 이를 뒷받침하는 단서들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별의별 세계를 연결하는 웜홀과 같은 이 시집에서 “버려도 되는 것과 버리면 안 되는 것”은 “같은 것”이다(「우리가 굴뚝새를」). 혹은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도서관으로 가지만은 않는다.//도서관으로 가려고 하면 도서관으로 가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도서관」).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통하는 ‘길’은 여럿의 가능성이 내재된,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웜홀이다. “생각했던 바로 그곳에서 상당히 먼 길”(「로터리에서 보고 만 것」)까지도 훌쩍 닿을 수 있는.

그런가 하면 이 시집에는 시인 김유림과 같은 듯 다른 김유림이 있다. 김유림의 시에 등장하는 김유림은 친구의 시를 읽기도 하고 길을 걷기도 하고 카페에 가기도 한다. 시인 김유림과 시 속의 김유림은 완전히 같다고도 완전히 다르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김유림의 시에 등장한 꽃나무”가 “진짜 꽃나무가 되고 말았다고”(「친구 그리기」) 시 속의 김유림이 말하는 걸 보면, 김유림 역시 시에 등장하는 순간 진짜 김유림이 되고 마는 것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나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평어 모임」), “나는 내가 셋이라는 걸 알”아차린다(「복수는 나의 것」).

김유림의 시가 이미 별개로 존재하는 여럿의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있는지, 하나의 세계를 여럿으로 별스럽게 쪼개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시를 거치며 범상한 세계가 별세계로 거듭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다리 밑 불빛이라는 건, 다리 밑 불빛이 아니라/다리 밑으로 흐르는 강물에 일렁이는 불빛의 반영”(「묘지는 묘지라는 것」)이라는 말처럼, 시는 세계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일렁이고 흐트러진 채로 반영한다. 돋보기에도, 촛불에도, 창문에도 외투가 있다고 주장하는 시에서 ‘외투’는 세계의 일렁이는 반영과 같다. “이 글에도 여러 가지의 외투가 사용되었음을 잊지 말아”(「엽서 연구」)달라는 시인의 당부는 시를 곧 세계 자체인 양 곧이곧대로 보지 말아 달라는 당부이기도 하다.

세계와 별개인 이 혼곤한 세계에서 “나는 나의 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아주 화가 났지만 괜찮았다」). 이 세계에서는 “우리가 장미주택을 지나다가 장미주택의 한쪽 담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을 때 장미주택에 사는 주민이 걸어 나와서/골목으로 사라져버린”다(「우리가 장미주택을 2」). 사진을 찍는 ‘우리’와 골목으로 사라지는 사람, 이 모든 것을 시로 읽고 있는 우리와 어딘가에 찍힌 채로 존재하고 있을 사진, 4중의 세계가 이곳에서는 무심한 풍경처럼 교차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나만의 것은 아닌 장미주택”(「우리가 장미주택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 또한 이 세계는 우리만의 것은 아님을 불현듯 깨닫는다. 패스트리처럼 겹겹이 포개진 세계의 한 낱장을 넘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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