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lt;웃는 남자&gt; 공연사진 [사진 제공 =EMK뮤지컬컴퍼니]<br>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사진 [사진 제공 =EMK뮤지컬컴퍼니]

고전은 우리에게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고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고전의 가치가 바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뮤지컬로 재탄생한 고전도 예외는 아니다. 생동감 넘치는 무대예술로 눈 앞에 펼쳐진 고전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대표작이다. 재미와 감동을 뛰어넘어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탐색하는 과정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삶에 가치를 더한다.

뮤지컬 ‘웃는 남자’가 변함없는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웃는 남자’는 EMK뮤지컬컴퍼니가 만든 두 번째 창작 뮤지컬로, 2018년 초연과 2020년 재연을 거치면서 또 하나의 흥행 대작으로 자리매김한 작품이다. 이를 증명하듯 한국 뮤지컬 관련 시상식에서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등 일찍이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였을 뿐 아니라, 연이은 매진 사례로 인해 이제는 예매마저 쉽지 않은 뮤지컬이 됐다.

지난 6월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웃는 남자’는 올해로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하면서 더욱더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이번 공연은 오랜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박효신과 ‘웃는 남자’ 전 시즌을 함께한 박강현, 그리고 믿고 보는 배우 박은태가 주인공 그윈플렌 역을 맡아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순수함의 결정체’ 데아 역에는 이수빈과 신예 유소리가 더블캐스팅 됐으며, 겉모습은 거칠어도 따뜻한 내면을 지닌 약장수 우르수스 역은 민영기, 양준모가 맡았다. 또 무료한 삶에 지쳐 새로운 자극을 찾는 부유한 여공작 조시아나는 신영숙과 김소향이, 고 클랜찰리 공작의 사생아 데이빗 더리모어 경은 최성원과 김승대가 연기한다. 이처럼 탄탄한 출연진으로 개막 전부터 기대를 모은 ‘웃는 남자’는 오는 8월 22일까지 계속된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사진 [사진 제공 =EMK뮤지컬컴퍼니]

작품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 빅토르 위고의 1869년 작 동명 소설(‘L'homme qui rit’)을 원작으로 한다. 다만 워낙 방대한 분량을 담은 소설이다 보니 주된 이야기와 중심인물만을 살리고, 장르에 알맞도록 일부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상황에 변화를 줬다. 오히려 뮤지컬은 장 피에르 아메리스 감독의 프랑스 체코 합작 영화(2012년 작)에 더 가까워 보인다. 실제로 뮤지컬 ‘웃는 남자’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은 작품의 극작 및 연출을 맡은 로버트 요한슨으로부터 추천받아 비행기 안에서 이 영화를 보다가 영감을 떠올리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별빛이 존재감을 드러내듯, 뮤지컬에서는 꺼지지 않는 희망을 상징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강렬하게 아로새겨진다.

이야기는 17세기 영국에서 시작된다. 마음을 울리는 바이올린 선율이 무대를 타고 흐르면 한 편의 아름답고도 슬픈 동화가 눈 앞에 펼쳐진다.

‘어린이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의 만행 때문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웃음을 얼굴에 새긴 그윈플렌은 컨퀘스트 박사 일행으로부터 버려져 홀로 남는다. 이후 눈보라 속을 헤치며 정처 없이 떠돌던 와중에 눈이 보이지 않는 여자 아기 하나를 구조하게 되고, 아기 이름을 데아라 짓는다. 추위를 피할 곳을 찾다 우연히 발견한 마차 안에는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가 있었다. 우르수스는 가엾은 두 아이를 거둬 가족처럼 함께 살아간다.

가혹한 운명은 고귀한 신분을 타고난 그윈플렌을 끔찍한 외모를 지닌 괴물로 살도록 흘려보냈으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그를 제자리로 돌려보낸다. 생계를 잇기 위해 이어온 유랑악단 공연이 그가 또 다른 세상과 만날 계기가 됐다. 하지만 뒤늦게 되찾은 부와 권력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은 너무나 많았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특히 그윈플렌이 상위 1% 귀족들을 향해 우뚝 서서 세상을 바로 보라며 외치던 모습은 뮤지컬 ‘웃는 남자’를 대표하는 명장면이다. 현실적인 벽 앞에 끝내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그가 다시 자신을 품어준 세계로 돌아와 슬프지만 감동적인 마지막을 맞이하는 장면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뚜렷한 대비를 통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부각한다. 먼저 순수함을 상징하는 그윈플렌과 데아의 모습은 영국 귀족들이 보여준 위선과 오만에 대비되며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안긴다. 특히 새하얀 눈처럼 하얀 이미지로 그려진 데아와 불같이 타오르는 욕망을 지닌 붉은 빛의 조시아나, 사람 사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서커스단원들의 삶과 갖가지 도구로 빈틈없이 무장한 귀족들의 완벽한 대비도 흥미롭다.

▲ 최윤영 평론가·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공연을 말하다’
-클래식, 콘서트 등 문화예술공연 전문 MC
-미디어 트레이닝 및 인터뷰,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전문 강사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 경인방송 FM 리포터

무대 연출 또한 뮤지컬 ‘웃는 남자’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그윈플렌의 찢어진 입을 연상케 하는 곡선 디자인과 복잡하게 얽힌 나무 구조물이 무대 곳곳에서 눈에 띄는데, 이 같은 장치는 인물이 겪어온 고통과 상처를 연상케 한다. 또 여러 겹의 천을 사용해 표현한 바다나 강가를 표현한 물웅덩이, 정갈하게 깎아 만든 정원, 새빨간 색으로 물든 상원 의회 등은 각기 다른 의미로 작용하며 보는 재미를 더한다.

세상은 비록 그윈플렌에게 지워질 수 없을 만큼 아픈 상처를 남겼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보며 저마다의 상처를 치유 받는다. 누구나 평등할 권리를 가진 세상에서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란 문구가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다. 과거를 비춘 거울이 달라진 현실에 또 다른 빛이 되어 더 나은 내일로 인도하길 바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