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투자 피해자를 만나다
伊 정부 지급 보장 약속 믿었다가 주택자금 날려
실사 결과, 상품 설명과 계약서 약관 모두 달라
마구잡이식 펀드 판매·돌려막기 의혹도 제기돼
수사권 없는 금감원, 결국 금융회사 방패막이로
“금융사기, 살인사건과 같은 형벌로 취급해야”

국내 최대 규모의 금융스캔들인 라임자산운용(이하 라임)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한지 3년이 지났다. 라임·옵티머스 펀드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전액배상 조치를 받으며 사태가 진정되는 듯 했으나 여전히 분쟁 중인 부실펀드로 인해 많은 투자자들의 상처는 봉합되지 않은 채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이 지정한 5대 부실펀드 중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독일 헤리티지 펀드, 디스커버리 펀드가 라임·옵티머스 펀드와 같이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적용하는지가 쟁점일 것으로 보여 지는 바 사모펀드 피해자들과 판매사의 간극을 살펴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탈리아 헬스케어 피해자연대 양수광 대표가 본인이 운영하는 한의원에서 펀드 가입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탈리아 헬스케어 피해자연대 양수광 대표가 본인이 운영하는 한의원에서 펀드 가입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이탈리아 정부의 지급이 보장되는 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이고 13개월 뒤엔 투자원금과 5%의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하나은행 프라이빗뱅커(PB)의 권유를 듣고 1년 뒤 가족들과 함께 살 주택자금 9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전부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조건의 상품으로 속여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는 산산 조각났다”(이탈리아 헬스케어 투자 피해자 양수광씨)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는 이탈리아 의료기관이 정부기관에 청구하는 의료비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다. 하나은행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투자자 약 400여명을 대상으로 1528억원을 판매했다. 당시 하나은행PB는 이탈리아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채권에 투자하기 때문에 안전하고 투자기간도 1년이라 짧은 편에 속하며 수익률도 5% 확정이라고 투자를 권유했다. 

그러나 2020년 4월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터지면서 해당펀드의 위험성 및 회수 관련 등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펀드를 소개하고 판매해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피해자연대 양수광 대표도 그 중 하나다.

“오랫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일만 하며 살았다. 이제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인생에 이런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단 한 번의 금융사기가 지금까지의 노력을 허물어뜨렸다. 한의사라 헬스케어 분야는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눈뜨고 코베였다.”

양 대표는 서울에서 전세살이를 하고 있었지만 치솟는 주택가격에 전세보증금도 크게 늘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 한 서울 외곽쪽에 집을 얻어 가족들과 함께 살 계획이었다. 그러나 투자 실패로 집은 고사하고 가족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됐다. 지난 3일 서울 노원구에서 만난 양 대표는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는 금융회사가 판매에만 혈안이 돼 마구잡이식으로 부실펀드를 팔고 피해와 책임을 고스란히 피해자에 떠 넘긴 금융사기라고 속을 털어놨다.

삼일회계법인이 실사한 이탈리아 의료비 매출채권 구분에 따르면 연 5%의 고정 수익과 1년의 상환기간은 허위로 드러났다 ⓒ투데이신문
삼일회계법인이 실사한 이탈리아 의료비 매출채권 구분에 따르면 연 5%의 고정 수익과 1년의 상환기간은 허위로 드러났다 ⓒ투데이신문

“명백한 사기계약”
약관에도 없는 투자조건

양 대표는 계약 자체부터 사기였다고 말한다. 펀드 가입 당시 하나은행PB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살펴보면 투자대상인 해당 매출채권의 조건은 5% 고정수익을 확정하고 있으며, 환급을 받는데 최대 1년인 단기이고 지역보건관리국(ASL)의 지급의무가 발생하는 채권이다. 다시 말해 인버짓채권(In Budget Receivable)에 투자하는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인버짓 채권이란 일반채권처럼 안전성을 담보하는 채권이다. 

그러나 지난 2020년 정의당 배진교 의원이 입수한 삼일회계법인의 실사 보고서에 따르면 인버짓 채권에서는 계약 당시 하나은행PB가 설명한 5%의 고정수익이 발생할 수 없다. 5% 이상 수익이 발생하는 채권은 엑스트라버짓 채권(Extra Budget Receivable)에 해당된다. 

엑스트라버짓 채권은 특수채권으로 수익률은 높은 대신 소송 등을 거쳐야하는 악성채권이 대부분이고 상환만기가 긴 것이 특징이다. 매출채권 분석표에 명시된 엑스트라버짓 채권의 최소 회수기간은 2~3년이다. 따라서 펀드 권유 시 설명했던 부분과 계약서 약관 모두 달랐던 것이다.

또한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는 역외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 펀드로 2019년에 해외자산운용사인 CBIM펀드에 투자했다. 이 펀드의 약관에 의하면 2~3년 환매제한기간이 설정돼 있음이 명시돼 있다.

양 대표는 “1년 뒤에 주택마련자금으로 사용할 할 돈이라 해당 PB에게 무엇보다 상환기간과 안정성을 강조했고 계약서에도 13개월이라고 명시돼 있어 믿고 돈을 맡겼는데 실제 투자된 곳은 소송을 해야 받을 수 있는 악성채권에 상환기간도 3년짜리 폐쇄형이었다”며 “존재하지도 않는 투자대상과 만기상환 기간, 수익률을 허위로 조작했는데 이게 사기계약이 아니면 무엇이냐”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금감원 미진한 대처
피해자들 고통 가중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는 지난 6월 13일 하나은행의 불완전판매를 인정해 기본배상비율 30%에서 40%로 상향하고 피해자에게 미상환금액최대의 80%를 지급하라고 결정한 바 있다.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가 아닌 배상 비율을 권고함으로써 결국 피해자들이 감내해야 할 부분(자기책임원칙)을 남긴 것이다. 게다가 금감원의 이번 결정은 권고에 지나지 않아 피해자들은 다시 한 번 긴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양 대표는 “처음부터 계획된 사기임에도 금감원이 하나은행의 편의를 봐줬다고 밖에 생각이 안든다”며 “금감원이 이렇게 넘어간다는 건 앞으로도 계속 은행 마음대로 팔아도 된다는 의미나 다름없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어 그는 “처음부터 소송을 했으면 판결이 나고도 남았을 시간을 금감원이 중간에 끼어서 피해자들을 고통의 시간 속에 더 지체하게 만들고 하나은행에 시간을 벌어다 줬다. 금감원이 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피해자들은 다시 그 피 말리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더라도 계약취소 소송을 이어 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연대는 지난 7월 7일 서울남부지법을 찾아 부실사모펀드에 대한 검찰수사를 촉구했다 [사진제공=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피해자연대]
피해자연대는 지난 7월 7일 서울남부지법을 찾아 부실사모펀드에 대한 검찰수사를 촉구했다 [사진제공=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피해자연대]

“폰지사기와 다름없어”
100% 배상 가능성도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피해자연대의 법정다툼을 통한 계약취소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서울남부지검이 지난 5일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와 관련해 TRS(총수익스와프)서비스를 제공한 KB증권과 신한금융투자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피해자들의 100% 배상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 쟁점은 지난 라임·옵티머스와 같이 펀드 판매시점의 투자자산 부실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양 대표는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TRS증권사들은 환매중단 사태가 일어나기 전 이례적으로 증거금 100% 상향 등 선제적 조치를 취해 손실을 보전한 점 등 이미 하나은행과 더불어 펀드 부실에 대해 사전 인지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그럼에도 동일한 펀드를 계속 판매해 신규자금을 모집한 폰지사기를 저질렀다”고 분노했다. 양 대표가 가입한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는 계약시점부터 투자 설명과는 다르게 투자자산인 매출채권이 이미 손실 난 상태이기 때문에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TRS는 증권사가 자산운용사대신 투자자산을 매수하고 일정수수료를 취하는 방식이다. 자산운용사는 증거금을 예치하고 레버리지효과를 얻는다. 그러나 자산운용사의 펀드 손실이 날 경우 증권사는 증거금 상향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번 압수수색 TRS증권사들이 사전에 증거금 100%를 상향한 점과 관련, 이미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부실을 알고 있었는지가 관건이다.  

앞서 지난 4월 라임·옵티머스 펀드의 경우 금감원 분조위의 불완전판매 결론이, 법원에서는 계약취소 판결로 뒤집혀 피해자들의 100% 피해배상이 결정났다.

“금융사기는 살인사건”
상징적인 처벌 있어야 

피해자연대는 재발방지를 위해 금융당국의 강력한 처벌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금융당국은 최근에 발생한 부실사모펀드 대규모 환매중단 사태를 계기로 완화했던 규제를 다시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재발방지를 위해선 규제뿐만 아니라 사후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해자들은 입을 모은다.

양 대표는 “최근 옵티머스 김재현 대표가 징역 40년형을 확정 받았는데 아직 미국이나 유럽의 비슷한 사건의 형벌에 비하면 약하다고 생각한다”며 “애초에 이러한 사건이 발생되지 못하게 상징적으로 100년형 이상의 판결이 나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금융 사건에서의 사기는 살인사건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인생뿐만 아니라 한 가정이 파괴되고 고통받을 수 있다”며 피해자들의 고통을 강조했다.

피해자들은 하나은행 측을 고소한 이후 2년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었던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환영하며 기대감을 키웠다. 은행간판을 믿고 투자를 결심했지만 설명에도 없던 피해의 책임은 온전히 투자자의 몫으로 돌리는 행태를 향한 수사가 철저하게 이뤄지는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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