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버리긴 아깝고 업사이클링 어려워…결국 소비자 부담
이미 판매한 상품 리폼·중고 거래 지원하는 기업 등장하기도 
환경단체 “기업 스스로 환경과 자원순환에 대한 대안 내놔야”

경기불황 속에서도 명품의 인기는 여전한 가운데,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제품을 고쳐서 쓰는 리폼 행위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명품 리폼은 친환경 및 업사이클링이라는 긍정적인 측면과 제품에 완전히 새로운 개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각광받는다. 반면 필연적으로 브랜드 고유의 디자인을 해치는 행위인 만큼 상표권 위반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제품의 소유권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라면 다행이지만 제 3자에게 유통될 경우 그 피해를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이에 본보는 명품 리폼을 둘러싼 여러 쟁점들을 살펴보는 한편, 환경을 위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짚어보기로 했다.

서울 시내 위치한 한 버버리 매장 [사진제공=뉴시스]
서울 시내 위치한 한 버버리 매장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비싼 돈 주고 명품 샀는데 상표권 침해를 이유로 리폼도 쉽지 않고, 환경 고민은 결국 소비자 몫 아닌가요?”

지난해 한국의 명품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30% 가까이 급증한 58억달러(한화 7조3000억원)를 기록하는 등 명품의 인기는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다.

명품의 인기 요인으로는 단연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고품질의 내구성과 희소성이 꼽힌다. 이는 기성세대를 넘어 고유의 취향을 중시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로까지 명품의 인기가 확산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에 명품 브랜드들은 고유의 디자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저마다 노력하는 모습이다.

버버리가 국내 교복 패턴에 자사 체크무늬 패턴이 이용됐다며 상표권 침해 소송을 펼친 사례나, 샤넬이 자사 로고를 도용한 제품을 판매하는 등 영리적으로 이용한 소매업자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는 소비자가 소장한 명품의 리폼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명품 리폼 업체가 고객의 의뢰를 받아 디자인 변경을 진행하는 경우 상표권 침해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실제 권리소진의 원칙, 혹은 최초판매의 원칙에 따르면 구매자의 소유권이 보장되지만 디자인이 변형된 리폼 제품이 ‘유통’ 될 경우에는 상표법 위반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실제 샤넬 등 명품 브랜드에서는 리폼으로 인한 브랜드 상표권 침해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명품 브랜드가 브랜드 가치 유지에 방점을 찍고 있으면서도 환경을 위한 노력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브랜드 가치를 위해 리폼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이미 판매된 제품의 업사이클링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은 내놓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자원순환팀 박정음 활동가는 “명품 브랜드가 자신들의 헤리티지와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노력할지 몰라도, 지구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노력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며 “명품 브랜드의 소비 지향적인 활동에는 탄소배출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데 정작 판매된 제품의 업사이클링 대안이 미흡해 소비자만 죄책감을 느끼는 행태”라고 말했다.

실제 주로 섬유와 피혁 등으로 이뤄진 명품 가방이나 의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버려진다면, 이는 더 나아가 환경 문제로도 이어지게 된다. 이는 명품 브랜드가 자사 브랜드 가치 수호만큼 환경을 위한 대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가방 제품을 언박싱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가방 제품을 언박싱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명품 ‘대물림’은 옛말인데…리폼 부담은 소비자에게만

명품 브랜드의 환경에 대한 자체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특히 포장이 겹겹이 싸인 제품의 상자를 개봉하는 ‘명품 언박싱(unboxing)’은 유튜브 인기 콘텐츠로 꼽힐 정도다.

포장을 풀어보는 과정 또한 경험으로 간주하는 명품 브랜드들은 수많은 유산지와 장식, 더스트백을 포함해 박스와 종이가방까지 과한 포장지를 제공한다. 

명품 브랜드 가치 보호를 위해 재고 상품을 회수해 소각하는 관행도 유명하다. 자원 낭비인데다 환경오염이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버버리는 지난 2018년 해당 관행을 멈추겠다고 선언했다.

당초 고가의 명품의 경우 고품질인 만큼 대를 물려주며 오래 사용하는 아이템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빠른 유행 전환과 유니크한 물건을 원하는 트렌드로 인해 옛말이 됐다. 이제는 리폼이 리사이클링으로, 즉 자원 재활용되는 시대다. 

그러나 유행이 지나고 낡아 버린 명품의 사후처리는 여전히 소비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루이비통과 샤넬 등 유명 명품 브랜드들은 국내에서 정식 수선 서비스를 전개하고는 있지만 리폼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상품 당 수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제품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에는 아예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기술이 없는 일반 소비자가 스스로 제품을 고쳐 사용하기는 어렵기에, 좀 더 편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설 수선 전문점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상표권 침해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문제가 있어 업사이클링 자체가 소비자에게만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대 초반 조민지씨는 “비싼 돈 주고 샀는데 금세 고장 나거나 싫증 나면 애물단지가 된다”며 “버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고쳐 쓰자니 품이 들어 방치만 하게 된다. 장롱 속 가방도 결국 버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0대 후반 이정은 씨는 “내가 직접 가죽을 다룰 수 없으니 환경도 챙기고 알뜰하게 사용하려고 리폼 업체에 명품가방을 맡겨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꿨다”며 “그런데 그것이 상표권 침해 논란이 있는지 이제야 알았다. 소비자는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리폼에도 제약이 있다면 너무 억울하다”라고 토로했다. 

서울대학교 의류학과 추호정 교수는 “기업이 고유 디자인 등 상표권 침해에 대응하는 것에 대해 비윤리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다만 영리적인 목적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창의성을 발휘해 업사이클링하는 행위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메스를 들이댄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 부문의 래코드 브랜드 소개 [사진출처=홈페이지 캡처]
코오롱인더스트리 FnC 부문의 래코드 브랜드 소개 [사진출처=홈페이지 캡처]

친환경 소재 사용 넘어선 기업 주도 ‘업사이클링’ 필요

이에 단순한 친환경 소재 활용을 넘어 새로운 시도에 나선 기업도 눈에 띈다. 

국내에서는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의 ‘래코드’가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사례로 지목된다. 유일하게 재고를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최근 중고 거래 서비스인 ‘오엘오 릴레이 마켓’을 오픈하며 제품 구입 시 포인트를 제공하는 등 구매에서 사용, 판매, 보상으로 이어지는 자사몰 순환 모델을 구축한다는 설명이다. 

래코드의 수선·리폼 서비스 ‘박스 아뜰리에’도 눈길을 끈다. 수선 리폼 전문가가 상주해 고객과 1:1 상담을 통해 오래 되거나 싫증난 옷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꿔주는 맞춤형 업사이클링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다.

코오롱인더스트리 관계자는 “이런 시도들은 당장의 영리적인 목적보다는 패션 상품의 사용주기를 연장하고 패션업계에 지속 가능성의 가치를 제안하는 실험적인 시도로 볼 수 있다”며 “지난 10년간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해 고민하고 도전해 왔고 이제는 업계를 선도하는 ESG 패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1982년 출범해 1987년 내수 무스탕을 최초로 개발한 정화모피를 전신으로 한 무스탕 모피 브랜드 OVINO(오비노)도 업사이클링에 나서고 있는 기업이다. 이들은 2대가 함께 운영하는 아다모 스튜디오를 통해 40년 동안 꾸준히 밍크를 재생하여 새로운 옷으로 재탄생시키는 캠페인을 이어 왔다. 자체 연구개발(R&D)로 다수의 디자인 및 특허를 가지고 자사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 뿐 아니라 모피 제품 자체를 새로 살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아다모스튜디오 관계자는 “업사이클링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소비자들을 보면 유품이나 물려받은 명품 등 의미있는 제품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며 “버려질 수 있는 제품의 가치를 다시 살린다는 점에서 보람 있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리폼, 리사이클링 역할할까…결국 기업 선택에 달려

전문가들 또한 지구와 환경에 대한 기업의 고민과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자원순환사회연구소 홍수열 소장은 “현재 의류 및 잡화 등 패션 분야는 ‘업사이클링’이 아닌 ‘다운사이클링’ 수준”이라며 “재고 등 버려지는 의류는 재활용이 어려워 대부분 폐기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패스트 패션 등으로 많이 생산하고 빠르게 폐기되는 패션산업을 고려해 보면 기업 스스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기업의 책임은 제품 판매 후 끝이 아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판매한 제품이 언젠가 쓰임을 잃고 버려질 때 이를 다시 수거해 활용해야 마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환경 제품 생산을 넘어 적극적으로 자원을 재활용하는 기업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도 정책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추 교수는 “최근 ESG경영이 중시되면서 기업이 환경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비단 소비자의 요구나 규제를 넘어 기업 자체가 자율적으로 지구와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결국 상표권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명품 리폼의 경우, 기업이 주도적으로 업사이클링 대안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이미 생산한 제품에 대해서도 책임지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또 최근 재활용된 플라스틱으로 원단을 만드는 리사이클링 생산이나 동물성 소재 대신 유기농 재료를 사용하는 사례 등이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드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박 활동가는 “최근 ESG 경영의 대안으로 친환경 소재를 이용하는 기업들이 많은데 실효성을 생각하면 이는 친환경을 위장하는 ‘그린워싱’”이라며 “새로운 소재를 활용해 또 다른 쓰레기를 생산할 것이 아니라 이미 생산한 재고 등에 대해서도 자율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명품의 브랜드 가치는 지속가능성의 고민 속에서 발견된다. 기업이 자원 순환 차원에서 리폼을 업사이클링의 과정으로 인지하는지에 따라 친환경 경영의 진정성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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