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커버리 등 사모펀드 은행 신뢰 ‘악용’
투자등급 임의 조정·유도...계약취소 해당
원활한 금융 피해 구제 시스템이 ‘선진금융’
‘자기책임의 원칙’ 실질적인 의미 재고해야
사후 감독 절차와 피해 구제 절차 강화돼야

국내 최대 규모의 금융스캔들인 라임자산운용(이하 라임)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한지 3년이 지났다. 라임·옵티머스 펀드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전액배상 조치를 받으며 사태가 진정되는 듯 했으나 여전히 분쟁 중인 부실펀드로 인해 많은 투자자들의 상처는 봉합되지 않은 채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이 지정한 5대 부실펀드 중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독일 헤리티지 펀드, 디스커버리 펀드가 라임·옵티머스 펀드와 같이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적용하는지가 쟁점일 것으로 보여 지는 바 사모펀드 피해자들과 판매사의 간극을 살펴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금융경제연구소 이상훈 소장 ⓒ투데이신문
금융경제연구소 이상훈 소장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사모펀드 대규모 환매 중지 사태가 일어난 지 3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피해자였다. 이들 대부분 은행은 안전하다고 생각한 보수적인 투자자였고 ‘사모펀드’는 사건이 터지고서야 처음 들어본 단어였다.

이른바 ‘고위험·고수익’을 노리는 적극적인 투자자가 아닌 점이 피해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피해 자금의 성격도 모험성 자본이 아닌 은퇴자금, 노후자금, 주택마련자금 혹은 사업자금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삶은 제각각 고통의 사연 속에 멈춰있다. 

본보는 독일 헤리티지 펀드를 시작으로 디스커버리 펀드,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등 세차례에 걸쳐 사모펀드 피해자모임 대표를 만났다. 그들은 이제 금융사와 금융당국을 믿지 않는다. 펀드 가입 당시 누구 하나 제대로 알지 못했던, 이름도 생소한 사모펀드. 그리고 판매 경쟁에만 불이 붙었던 금융사들과 이를 감독해야 하는 금융당국이 만든 비극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특히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 조사 움직임이 펀드의 ‘사기여부’가 아닌 ‘부당권유 금지위반’과 ‘불완전 판매’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어 피해자들의 온전한 구제는 어려운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에 금융노조 산하의 연구소로 금융시장 전반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연구하고 보고서를 발표하는 기관인 금융경제연구소의 이상훈 소장을 만나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의 원인과 보완방안 그리고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들어 봤다.

부실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의 피해가 3년이 넘은 지금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사태의 원인은 어디에 있나.

판매회사는 투자자들을 모으는 역할 그리고 운용사는 모인 투자금으로 국내 또는 국외에 투자 하는 것을 담당한다. 이번 사태는 판매사와 운용사 모두 문제가 된 경우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투자자를 모은 판매사, 즉 은행은 고객 신뢰성이 유독 높다. 이러한 특수성을 악용한 것이 문제가 됐고, 운용 관련해서는 투자운용의 불투명성, 깜깜이 투자가 문제가 됐다. 형태만 약간씩 다를 뿐이지 반복해서 계속 발생하고 있는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금융위원회는 국내 사모펀드 시장 활성화를 위해 최소가입금액을 5억에서 1억원으로 낮추고, 운용사 설립을 인가에서 사후 등록으로 변경하는 등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성급한 완화가 피해규모를 키웠다고 보는가.

금융기관의 내부통제절차와 위험통제, 사후적인 피해 구제 시스템이 매우 미흡한 상태에서 문을 열었다고 본다. 사전적인 규제와 사후적인 피해 구제 절차가 균형을 맞춰가야 하는데 규제완화 측면만 강조한 것이 문제가 됐다.

금융 규제완화는 정교해야 한다. 규제를 완화하면 이에 부합하는 사후 감독 절차와 피해 구제 절차가 강화돼야 조화와 균형을 맞출 수 있는데 이번 환매 중단 사태는 금융소비자보호기능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불균형적 시스템에서 규제만 완화된 경우라 볼 수 있다.

미국을 포함한 금융 선진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여러 사람들의 돈을 모아놓은 펀드의 특성상 누구든지 악용할 요인과 환경은 존재한다. 이런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같은 상황이다.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정부도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다른 사업으로 돈의 흐름을 전환 시키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각 나라별로 공통된 문제다.

다만 그 사회가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모니터링하고 통제를 하느냐에 따라 금융선진국인지 후진국인지 판가름 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짧은 기간에 제조업 중심으로 발전했고 그다음 서비스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현재 금융업 분야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금융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사모펀드의 경우 자산운용에 있어 블라인드 투자(실제로 어떤 프로젝트에 투자하는지 공개하지 않는 투자방식)가 일반적이다. 이런 이유로 판매사는 자산운용사의 운용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워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모펀드뿐만 아니라 펀딩이 되는 모든 조직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보인다. 예를 들어 각종 구호금을 모집하는 단체의 경우 구호목적으로 해외에 돈을 지원하는데 운영이 깜깜이로 돼 어디에 지원하는지 명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영리조직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해외 계열사를 통해 비자금을 유출하는 등 악용 사례가 빈번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경우를 전체적으로 감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하물며 해외에 투자하는 역외펀드의 경우는 어떻겠는가. 그렇다면 피해자 구제에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금융당국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각종 감사나 해외조사를 한다면 투명성이 상당부분 담보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나 독일 헤리티지 펀드의 경우도 각국의 금융당국과 긴밀한 조사 라인을 마련하는 것이 향후 펀드 투자발전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모펀드 사기피해자들이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금융당국과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출처=사모펀드 사기피해 공동대책위원회]
사모펀드 사기피해자들이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금융당국과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출처=사모펀드 사기피해 공동대책위원회]

부실사모펀드 피해자들은 금감원의 역할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강제 수사권이 없어 진상파악을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 점과 분조위를 통한 배상비율조정이 피해자가 아닌 판매사들의 사정을 더 봐줬다는 시각 때문이다. 그마저도 권고에 지나지 않아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금감원 역할에 대해 듣고 싶다.

조사역량과 관련해서는 금감원 내 사법경찰 관리를 늘리고 강화해서 금감원 중심으로 강제수사를 주도할지 아니면 증권범죄수사본부의 검찰이 주도가 돼서 금감원을 통한 강제수사를 할 지 조직 간의 논의를 거쳐 체계적이고 확실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금감원 내에서 피해자가 구제받는 것은 일부 조정뿐이고 결국 사법체제 내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이번 사태의 경우를 두고 보면 집단 소송제도라든지 증거 확보를 편리하게 할 수 있는 사법체제의 개선도 연결돼야한다. 그래서 금감원은 결국 형사적인 강제수사와 외국 간의 공조체제 그리고 사법체제 내에서 서포트 연결 등이 종합적으로 결합돼야지 효율적으로 진화할 수 있다.

한꺼번에 변할 수 없지만 각각의 노력은 다 해야 한다. 어떤 부분 하나가 안 된다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단정 짓고 방임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영역에서 개선을 위한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줘야 한다. 

현재는 국내에서의 조사 역량, 해외에서의 자료 확보를 위한 공조체제 그리고 최종 사법구제를 위한 법원과의 연결 등 전부 미흡하다. 특히 앞으로 금감원이 해야 할 역량이 굉장히 많다고 보인다.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고 희망한다.

분조위의 결정을 보면 라임·옵티머스를 제외하고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가 아닌 투자자들의 ‘자기책임의 원칙’을 남겨둬 전액배상을 결정하지 않았다. 이에 피해자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약취소 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이번 사모펀드 사태의 경우 소장님이 바라보는 자기책임의 원칙은 무엇인가.

자기책임의 원칙이라는 건 당연히 투자에서는 본인이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게 원칙적이지만 ‘비례’가 항상 중요 기준이 된다. 결국 자기가 획득한 정보 내에서 감수할 수 있는지 판단했을 때 결과에 대해 본인이 책임을 지는 거지 주어진 정보의 수준이 제한적일 경우에는 그 범위 안에서만 책임을 부담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재로서는 그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는 수준이 아닌가 생각된다. 좀 더 실질적인 자기책임의 원칙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문제가 된 사모펀드 관련 가입 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투자성향이 가장 높은 1등급이나 2등급으로 분류됐다는 투자자도 많다. 만약 판매사 프라이빗뱅커(PB)가 고위험 상품에 가입을 권유하기 위해 임의로 투자등급을 유도하거나 조작했다면 그 계약은 취소라고 볼 수 있나. 변호사 입장에서 법리적 해석을 듣고 싶다.

의도적으로 투자등급을 조정한다거나 투자상품에 대한 어떤 일부 표시를 누락하고 과대평가하는 그런 경우는 굉장히 기망적인 행위이고 계약취소에 해당한다. 만약 계약 당시의 설명과 실제 약관이 다른 경우 사기펀드나 다름없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투자성향 등급을 매길 때 과연 그 등급이 적절한 것인지 회의적이다. 예를 들어 변호사의 경우 높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전문투자자로 분류된다. 그러나 주위 동료 변호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황당해 하는 이들이 많다. 대부분 펀드에 가입해 본 적도 없고 그와 관련된 지식도 거의 없다. 단지 자격증이 있다는 이유로 ‘매우 높은 위험의 공격형투자자’로 부여하는 게 맞는지 묻고 싶다.

사전적으로 사람과 상품의 관계를 등급으로 구분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문제 발생 시 자기책임의 원칙을 내세우기보다 사후적인 구제 방법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본다.

금융경제연구소 이상훈 소장 ⓒ투데이신문

강력한 사전적 규제만으로는 금융시장의 활성화와 선진화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되는데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금융시장이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투자자에게 좋은 투자처를 열어주고 만약 잘못됐다면 원활하고 합당한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선진화된 금융시스템이고 흐름이다. 그런데 이번 환매 중지 사태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사후적인 구제 절차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한 번 피해를 보게 되면 돈이 날아간다고 생각하지 소송을 통해서 원활한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금융도 사법도 후퇴하는 길이다. 

금융은 신뢰 싸움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금융기관도 망하게 되고 금융산업도 부실하게 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이 자기책임의 원칙을 내세워 금융소비자에게 계속 책임을 전가하는 방향을 잡게 되면 불안해서 누가 투자하겠나. 금융소비자 입장을 충분히 배려하고 보호하는 장치가 있으니 안심하고 투자하라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최근 금감원 분조위에서 라임·옵티머스를 제외한 환매 중지 사모펀드가 계약취소까지 나오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아직 많은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라임·옵티머스와 같이 계약취소 판결을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합리적인 결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우리 금융시장이 선진화로 나아갈 동력은 무엇인가.

판매사의 경우 문제가 된 펀드에 대해서 피해 변상을 최대로 할 경우 비슷한 분쟁에 선례로 남는 파급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피해 구제가 이루어지는 게 추후를 생각했을 때 훨씬 이로운 결정이다. 금융기관이나 금융당국이 피해 보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것은 불확실성 해소와 투명성 강화 측면에서 신뢰회복이라는 보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의 가장 중심이 되는 가치와 동력은 신뢰다. 따라서 피해 보상에 대한 과감하고 적극적인 행동과 결정이 앞으로 우리나라 금융 발전에 값진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신뢰를 바탕으로 투자가 투명해진다는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들한테도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게 돼 국가 발전으로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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