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sp;뮤지컬 ‘오션스’ 공연 장면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br>
 뮤지컬 ‘오션스’ 공연 장면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꿈을 꾸고, 희망을 품으며 살아라!”

날 때부터 뼈에 새겨졌다던 신분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단번에 나락으로 몰았다. 귀족의 새를 죽였다는 이유로 홀로 된 아이에게 아버지가 남긴 유언은 버텨야만 하는 삶의 동력이 됐다. 이름조차 갖지 못해 그저 활보라 불린 소년이 당으로 건너가 장군이자 거상이 되었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아시아 해상을 주름잡았다던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그런데 전달 방식이 참 새롭다. 기존에 봐 왔던 뮤지컬과는 확실히 다르고, 화려한 쇼나 토크 콘서트 같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무척이나 범상치 않은 작품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한 ‘오리지널 K-뮤지컬’로 말이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희망, 뮤지컬 ‘오션스’ 쇼케이스가 열렸다. 뮤지컬 ‘프리다’, ‘루드윅’의 추정화 연출가와 ‘블루레인’을 함께 만든 허수현 음악감독이 협업한 EMK뮤지컬컴퍼니 신작이다. 정식 공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로 가득 찬 객석은 뮤지컬 ‘오션스’를 향한 관심을 입증하는 듯했다. 이번 쇼케이스는 지난 9월 1일부터 4일까지 총 4일에 걸쳐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아티움에서 개최됐다.

작품은 해상왕(海上王) 장보고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에 극적인 상상을 덧입혀 만들었다. 장보고는 통일 신라말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며 동방 국제 무역 패권을 장악했던 인물로,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스스로 삶을 개척해 장군의 자리까지 올랐다. 일찍이 소설 뿐만 아니라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의 주인공이 되었을 만큼 상징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장보고의 인생 여정은 스토리텔러 그룹 오션스를 통해 전개된다. 우주, 스카이, 랜디, 아쿠아, 쏠리어로 구성된 오션스는 작품명과 동시에 작품 안에서 활약할 이야기꾼을 뜻한다. 남겨진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뿐만 아니라 구전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오션스에 의해 전달되는데, 이는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다루면서 발생할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무대에 어울리는 스토리로 자유로이 개발하기 위한 전략처럼 보인다.

또 출연진 구성 역시 독특하다. 작품에는 또 다른 5인조 그룹 코스모스와 아라리오가 등장해 흥을 돋우는 춤과 뛰어난 국악 실력으로 오션스 이야기에 날개를 단다. 이들은 단순히 춤추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극 안에 적극적으로 녹아든다. 예측 가능한 전개를 완전히 뒤엎은 대신에 여러 면에서 도전과 모험을 선택한 창작진의 결단이 놀라우면서도 반갑다. 장보고가 이룩한 기적은 이렇게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유쾌한 퍼포먼스, 찰진 입담, 뚜렷한 메시지와 함께 전해진다.

화려한 영상도 한몫한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무대와 마주하게 된다. 조용히 부딪힌 파도 소리는 잔잔하게 반복되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동시에 작품과의 첫 만남을 더욱 기대케 한다. 시작 전부터 눈길을 끈 영상미는 공연 내내 LED패널들을 통해 생동감 있게 펼쳐지며, 적절한 때에 빛을 발하는 무대 조명 또한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장보고가 휘두르는 칼날을 따라 밝혀지는 흰색 조명선의 활용과 극 후반부 공연장 전체를 향해 쏟아지는 듯한 빛 연출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장르를 넘나드는 오묘함은 웃음을 유발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우선 음악부터 남다르다. 국악, 뮤지컬, 팝 등 온갖 장르가 혼합된 넘버들은 뮤지컬 ‘오션스’가 지향하는 바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곳곳에 관객 참여를 유도하는 대목이 많은 점도 주목해 볼 만 하다.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가 현대화된 마당극처럼 펼쳐지다 다시 뮤지컬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덕분에 관객들은 집중력이 흐트러질 틈 없이 흥겹게 한 판 놀다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어색하게 느껴질 만한 지점도 몸이 부서질 듯 분투하는 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유쾌하게 넘어간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일부 관객들에겐 낯섦을 넘어 물음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은 더 살펴야 할 과제다. 분명 의심할 여지 없을 만큼 신선하고 재미있지만, 기존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 모두를 아울러 사로잡으려면 공간 규모나 장면 연결,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 일부 장면 등에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또 갑작스럽게 마무리되는 결말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4일간의 성공적인 항해를 마친 뮤지컬 ‘오션스’는 에너지 가득한 무대로 정식 공연을 향한 기대감을 높였다. 길이 없으면 만들겠다 외쳤던 장보고의 말처럼 지금까지 어디에도 없던 뮤지컬 ‘오션스’가 과연 한국 창작 뮤지컬계에 북극성 같은 존재로 자리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2023년, 더욱 완벽한 모습을 갖춰 돌아올 뮤지컬 ‘오션스’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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